유코 생각 / 진가록 (2023. 5.)
정말 오늘 왜 이럴까. 글을 쓰자고 펴놓은 노트를 마주하니 생각이 대학 시절을 떠다니지 않나, 기분 좋게 불어오는 아침 바람에 괜스레 마음이 붕붕 뜨지를 않나. 주제를 잡고 한참 글을 썼는데도 또다시 정신은 추억 속 캠퍼스를 맴돈다. 시원한 공기에 어떤 추억이 일어난 것일까. 그럼 내가 먼저 알아야지, 이유도 모르고선 머리채를 잡힌 마음이 이리저리 들쑤시고 다닌다.
노란색 커튼이 바람에 펄럭이는 것을 보다가 유코 생각이 났다. 유코는 우크라이나 키예프 국립대학교에서 함께 러시아어를 배웠던 일본인 친구다. 유코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 아이가 남자일지, 여자일지 꽤 오랫동안 고민했다. 아직은 앳된 얼굴에 단발머리를 양 갈래로 질끈 묶었는데, 그것 외엔 어느 구석도 여자애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저 애는 머리를 기르고 있는 남자애야.’라고 말했으면 ‘그렇구나.’ 하고 믿었을 것이다.
유코는 반팔 티셔츠 위로 까만색의 얇은 바람막이 점퍼를 걸치고, 종아리에서 펄럭거리는 통바지를 즐겨 입었다. 간절기에는 이 바람막이를 허리에 묶고 다녔고, 초겨울까지도 똑같은 옷을 입고 나타났다. 운동화와 샌들 두 켤레를 계절에 따라 번갈아 신고 다녔던 것 같기도 하다. 기숙사에서 학교까지 걸어 다녔기에 교실에 들어서는 그녀의 볼은 늘 발그스름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나보다 상급반에 있던 한국인 친구 애리가 같은 반 일본인 친구인 사쿠라와 친해졌는데, 사쿠라와 유코가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그들을 통해 우리는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가끔 한국인과 일본인 친구들이 모여 번갈아 자신 있는 요리를 만들어 먹었다. 사쿠라는 요리를 잘해서 우리에게 함박스테이크 만드는 법을 알려주었다. 이때까지도 나는 집에서 함박스테이크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지 몰랐다. 그때 내 옆에 서서 ‘스고이’를 외쳐댔던 친구가 바로 유코였다. 두 번인가 유코의 방에 놀러 갔던 적이 있다. 그녀는 주로 감자 퓨레를 만들어 먹는다고 말했는데, 요리 재료가 감자와 우유 그리고 버터뿐이라고 자랑하듯 말했다. 그 후 종종 장을 보러 가다가 감자처럼 동글동글한 유코와 마주쳤는데, 그때마다 그녀의 손에는 흙 묻은 감자 한 봉지가 들려 있었다.
거의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감자 퓨레만 먹는 유코의 독특한 점은 다른 데 있었다. 그녀의 책상 한쪽에는 뮤지컬과 오페라 리플릿이 쌓여 있었는데, 우크라이나에 나보다 육 개월 먼저 왔던 유코가 그동안 보았던 공연 리플릿들이었다. 나도 모르게 ‘스고이’라는 말이 입에서 나올 정도로 많았다. 그날 이후로 유코가 남달라 보였다.
어떤 친구가 유코에게 왜 공연을 보느냐, 이만큼 보는데 돈이 얼마나 들었느냐는 질문을 했는데, 그녀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유코의 이야기 중에 ‘일본에서 올 때 카드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말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일까. 일 년을 예상하고 우크라이나에 왔는데, 학비와 생활비를 모두 현금으로 챙겨왔다는 것이다. 돈이 너무 많아서 넉넉히 가져왔을 것이라면 그다지 놀랄 이야기도 아니다. 그때 아랍에서 온 어떤 학생의 기숙사에는 달러가 몇 자루 쌓여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유코는 그런 부류로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우크라이나의 연휴 기간에 발트해 근처 나라들을 다녀왔고, 겨울방학 때는 아제르바이잔을 혼자서 여행했다고 말했다. 다만 혼자 찍힌 사진에서 유코는 언제나 까만색 바람막이 점퍼를 입고 있었다. 당시 기숙사 근처 마트에서 감자를 일 킬로그램에 오백 원 정도면 살 수 있었는데, 유코는 정말 감자가 좋아서 감자 퓨레만 먹었을까.
외국에서 대학 생활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비용이 들 텐데, 철저하게 살았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욕망을 줄였던 것일까. 그때는 자세히 물어보지 못했다. 궁금함이 해결되지 못한 탓인지 가끔씩 불쑥 떠오른다. 유코를 생각할 때마다 그녀가 어떻게 일 년 동안 살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그저 ‘스고이’라며 혼잣말을 하게 된다.
오늘 문득 유코가 무엇을 위해, 어떤 것을 감수하며 살았던 것인지 궁금해진다. 이십대인 여자아이가 외모에도 관심이 없고, 감자 퓨레만 먹으면서 틈틈이 여행을 다니고 오페라를 즐긴다니. 유코의 유학 기간 일 년을 엑스축으로 두고, 그녀의 선택을 와이축으로 두면 어떤 그래프가 그려질까. 아마 그녀가 챙겨 온 현금을 엑스축으로 두어도 비슷한 함수가 나타날 것이다. 유코의 비범함은 여기에 있었다. 까만색 점퍼나 감자 퓨레는 그녀가 가진 가치관의 부산물일 뿐인 것이다.
한 사람, 혹은 한 인생을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무엇으로 어떻게 채웠나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나 추측해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유코처럼 살아간다. 삶이라는 엑스축에 선택이라는 와이축을 그려가면서.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나만의 와이축을 잊고 살기도 하고, 돈이면 다 될 것만 같아 엑스축의 본질을 혼동하기도 하지만 뒤돌아보면 나만의 함수가 그려져 있다. 인생 함수에는 각자의 가치관이 담겨 있다. 정답은 없다. 유코는 유코답고 나는 나다우면 그게 바로 스고이한 함수다.
내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 먼저 유학 생활을 끝내고 일본으로 떠났던 유코와 사쿠라가 서울에 놀러 왔다. 종로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그때 유코는 까만색 바람막이를 입고 있지 않았다. 일본어와 러시아어 그리고 영어 조금으로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서로를 좋은 친구로 여기는 마음은 느낄 수 있었다. 다음번에는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에 가보고 싶다는 유코의 말에 나는 함께 가자고 대답했다.
그날 이후 십 년이 흘렀다. 사쿠라는 취업도 하고, 결혼도 해서 요코하마 근처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유코와의 소식은 끊겼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글을 쓰다 보니, 유코를 처음 본 날이 노란색 은행잎이 날리던 계절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생각이 추억을 파고들었나 보다. 유코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어떤 선택을 하고 있을까. 연애도 하고 가정도 꾸려 조금은 남들처럼 지내고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유코답게 ‘스고이’하게 살고 있을까.
첫댓글 굉장한 신인이 등장하였지요?
"すごい~~~~!!!"
다른 글도 궁금합니다.~~
진가록 선생님, 신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감각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진가록 선생
이곳에서 만나니 반갑네요. 계속 상큼한 글 많이 쓰시기를...
잘 읽었습니다.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