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인생을 많이 살고 보니 행복의 기본조건은 건강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어떤 운동을 하는 것이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 것인가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기공(氣功)수련이기에 기공수련을 하게 되었는데, 다른 분에게도 기공수련을 권하고 싶고, 또한 기공수련을 하고자 하나 수련비가 너무 많고, 어떤 곳이 잘 지도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기공수련에 관심은 있으나 좋은 정보를 모르는 분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이 글을 쓴다.
필자는 법원에 근무하다가, 퇴직하여 서울중앙지방법원 소재 동쪽 문 건너편에 법무사사무실을 1992년 7월에 개업하여 기공수련을 하고자 하였으나 수련소를 찾을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 사무실 부근에 있는 단전호흡 국선도를1993년도부터 배우기 시작하면서 체력단련을 하기 시작하였다.
친구 중에 그 전부터 기공수련(氣功修練)을 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서울 보람에 공원(공군본부가 있었든 곳)에 중국 교포가 와서 기공을 무료로 수련시키고 있다고 하여 당시 필자가 살고 있던 서울 신반포에서 매일 아침 5시 30분경에 택시를 타고(택시비약 6,000원)가서 90일간 수련을 해도 아무 느낌도 없고 건강에도 별 도움이 되지않아서 그만 두고 싶어도 그 친구의 체면 때문에 그만 둘 수가 없었다.
그 후 그 친구와 같이 모임(삼수회)이 있는 친구들과 전라도 여수로 여행을 갔는데, 여수에서 일박하고 새벽에 여수에 있는 향일암에 가서 기공수련을 오래한 친구의 지도로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면서 해가 뜨는 방향을 향하여 손바닥을 펼치고 있으니 해가 뜨는 순간 손바닥에서 무언가 찌릿한 감각이 있었다. 그 친구의 말이 그것이 기감(氣感)이라고 설명했다. 그 후에 해가 구름에 가렸고,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 다음부터는 기를 느끼고자 하였으나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 후에 서점에 가면 기에 관한 책이 있으면 관심있게 보았는데, 마침 송종훈이가 지은 초능력이라는 책을 읽어보고 기 수련을 하고 싶어서 그 책에 기재되어있는 주소로 연락하여 2001년부터 광화문에 있는 초능력 수련소에서 초 능력 수련을 시작하였다. 그 수련소의 원장은 송종훈이며, 그 원장과 그 외 몇 사람의 지도자가 초 능력 수련을 지도하였다.
초능력 수련방법은 음악을 들으면서 앉아서 눈을 감고 하나, 둘, 셋 숫자를 헤아리는 것이고, 수시로 지도자가 와서 1-2분 간 백회(머리윗쪽 가운데 부분)에 기를 넣어주고 원장님이 앞에서 두 손을 펼쳐 모두에게 기를 넣어주는 것 외는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아무런 느낌이 없어서 필자는 나이가 많아서 그런가 소질이 없는가 고민을 무척 하였다. 그만 둘 생각도 여러 번 하였다.
너무 세월만 보내는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6 개월이 지나자 눈을 감고 있는데 눈 앞에 어떤 이상한 영상이 나타나서 왔다 갔다 하여 이상하였는데 그것은 그런 것이 아니고 고개가 앞 뒤로 흔들이는 것이였다. 아! 이제는 되었구나 효과가 있구나 마음속으로 무척 기뻤다. 계속하여 수련을 하였더니 이제는 몸도 떨리고 팔을 이상한 방향으로 유도를 하여 그 대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7개월 이 지나자 머리에서 얼굴로 땀이 흐르는 것 같아서 손으로 땀을 딲으니 땀이 아니였다. 그는 몸속에서 기의 흐름인 것 같았다. 지도자가 가까이 다가올 때는 발걸음에서 많은 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게 되고, 머리에 기를 넣어 줄때 약간의 느낌을 느끼게 되었다. 가끔은 솔잎으로 약하게 찌르는 것 같은 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수련생 중에는 아시안 게임 금 메달리스트도 있었고, 대학원 학생도 있었다. 메달리스트의 말이 초능력 수련을 하니까 집중력이 좋아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하였다. 낮에는 근무를 하고, 퇴근하면서 그곳에 가기 때문에 저녘 식사를 할 시간이 없어서 수련생이나 수련소에서 먹을 것을 사 와서 조금 배를 채우고 담소를 나눈 후 수련을 시작하는데, 어느 날 20대 처녀가 필자를 보자마자 울기 시작하여 이상하여 물어 보았더니 “아저씨(필자)가 돌아가신 제할아버지와 얼굴이나 음성이 너무 닮아서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울었다”는 것이다. 자기 할아버지는 시골에 군수를 지내시다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그 처녀는 원장의 질녀(사실상 경영주의 딸)로서 잠깐 놀러 온 것이었다.
영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