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월간 웹진 『비평공간』 4호 ‘고요한 우연’ (김수빈 저 / 문학동네) 토론 2025년 6월 22일 발행 / 출판놀이
이재복 : 비평공간 네 번째 시간입니다. 토론을 할 때마다 좋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개인적으로 책을 읽을 때보다 공부가 많이 되는 것 같아요. 꼼꼼하게 읽게 되는 면도 있고 생각도 다양하게 하게 되고요. 그래서 현장이 중요한 것 같아요. 사람들이 나누는 언어라는 게 눈빛, 몸짓, 대화의 분위기, 그런 메타 메시지의 영역이 있지 않습니까? 현장의 토론에 참여하면 그런 현장의 분위기, 오가면서 나누는 이야기의 열기 같은 게 있어서 몸의 감각이 깨어나는 것 같아요.
음악 공연이나 미술 감상도 실제 현장에 가서 감상할 때 확실히 다른 느낌이 있잖아요. 우리 토론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현장에 직접 참여해서 이야기를 나눌 때 몸이 감각적으로 느끼는 자극이, 상상력에도 영향을 끼치고 작품을 쓸 때도 열정 같은 걸로 옮겨가는 거지요. 이런 토론 자리가 쉽게 만들기도 어렵잖아요. 아동, 청소년 문학에 애정을 갖고 계신 여러분들이 함께 비평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비평 공간에서 나누는 책은 가능하면 최근에 대중들이 많이 읽는 작품들 중에서 찾고 있는데요. 많이 읽는 데는 다 이유가 있잖아요. 대중들의 인식이나 문학을 받아들이는 여러 가지 경향 같은 걸 확인해 볼 수 있기 때문에 글을 쓰는 작가들한테도 아마 상당한 공부가 될 것 같습니다. 저도 이 작품 읽으면서 상당히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요한 우연>도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의문도 들었던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먼저 김진영 씨는 작가로서 전체적인 느낌이 어떠셨습니까?
김진영 : <고요한 우연>은 저는 전에 읽었는데요. 제 딸이 중학교 1학년인데 이번에 학교 필독이었어요.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다시 읽었고요. 저는 작품의 문장 하나하나가 감성을 건드리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이게 베스트셀러이기도 하고 학교 필독이기도 한데 좀 의문이 들었거든요. 작품을 다 읽고 났을 때 아, 진짜 좋다, 이런 느낌은 안 들었어요.
이재복 : 의문이 되는 지점이 있으셨다는 거지요?
김진영 : 네. 그런데 필력이 너무 좋으니까 빠져 들어가면서 읽히긴 했어요.
이재복 : 일단은 간단한 소감부터 나눠보겠습니다.
정미경 : 저는 2023년에 읽었던 책이었더라고요. 그리고 오늘 토론하려고 다시 읽었는데요. 제목 속에 주인공들 이름이 다 들어 있잖아요. 처음에 봤을 때는 ‘고요한 우연’이 뭔가 했어요. 주인공 이름이 제목이어서 특별하기도 하고, 작가가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 들었고요. 두 번째는 주인공이 저랑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중학교, 고등학교 때 저 자신을 별로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작품 속 수현이처럼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함, 그런 것들에 대해서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신 없어 하는 느낌이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고요.
그리고 또 하나는 고등학생들이 굉장히 낭만적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우연이가 바다로 갔는데, 그 아이를 찾으러 또 바다로 가잖아요. 그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고요. 고양이가 매개체로 등장을 하는 것을 보고 동물이 청소년들의 어떤 매개 역할을 하는 중요한 무엇이 되었구나, 하는 느낌도 들었어요. 근데 저도 이 책이 굉장히 괜찮다, 좋다, 이런 느낌까지는 안 들어서 중학교 아이들 추천도서로 넣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박강 : 저는 청소년기부터 대학교 다닐 때까지 만화책을 많이 봤어요. 만화책 봤던 것 중에 강경옥 작가의 <17세의 나레이션>이라는 만화책이 있는데요. <고요한 우연>을 읽으면서 너무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바로 <17세의 나레이션> 같은 느낌이 많이 나더라고요. 그러면서 어, 이 책 되게 만화책 같이 썼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17세의 나레이션>의 내용을 지금도 기억할 정도로, 저에게는 되게 중요하고 의미 있었던 작품이었거든요.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때 생각들이 나더라고요. 나는 왜 그 시절 그 작품에 그렇게 열광했을까?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저는 <고요한 우연>을 오래 전에 읽었고요. 토론 과제로 올라와서 다시 훑어보았는데요. 역시 되게 만화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보면 아까 말씀하신 분들처럼 너무 낭만적인 건가,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저는 굉장히 좋게 읽었어요.
지은(채팅창) : 저는 고요한 우연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사실 요즘 청소년 소설이 다루는 묵직한 사회문제도 좋지만 평범한 아이들이 가진 소소하다면 소소한, 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소소하지 않은 면들을 다뤘다는 점이 참 좋았어요. 자극적이지 않은데도 페이지를 자꾸만 넘기게 하는 작가님의 필력도 좋았고요. 달을 매개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부분도 좋았습니다. 주인공 수현의 자존감 지킴이 지아의 역할도 참 좋았어요. 지나치지 않게, 툭툭, 수현이의 마음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잖아요. 그런 모습들이 참 다정하게 다가왔습니다.
이재복 : 네, 지아라는 인물이 보조 인물 같으면서도 어떻게 보면 상당한 역할을 하는 인물인 것 같아요. 그 지적을 잘해 주신 것 같습니다. 여기 나오는 인물 캐릭터들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는 분들도 있고 약간 불편한 것 같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불편하다면 과연 어떤 지점이 불편한 걸까요? 저도 이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이, 정후도 그렇고 주인공 수현이도 그렇고, 우연이도 그렇고 뭔가 이상하게 불편한 지점이 있었거든요. 그냥 평범한 아이들인 것 같았는데, 작품이 뒤로 가면서 뭔가 불편한 지점이 생겼던 것 같아요. 여러분들하고 토론을 하면서 생각해보고 싶은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이향지(채팅창) : 두 번 읽었는데요. 처음 읽을 때는 그 누구의 이야기도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아쉬웠어요. 정후는 어디가고 갑자기 우연이로 마무리가 됐지, 하고 느꼈어요. 그런데 두 번째 읽을 때, 시작부터 이 작가는 다섯 아이의 이야기를 동시에 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달의 앞면 같은 고요, 뒷면 같은 우연, 햇님 같은 정후, 퇴출된 행성이지만 그래도 빛나는 별인 수현이. 북극성 같은 지아. 모두가 빛나는 존재들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가장 크게 미덕으로 다가온 건 오버하지 않는 인물 묘사였어요. <여름이 반짝>에서 미덥게 보여준 작가의 역량을 다시 확인하는 기분이었어요.
이재복 : 네, 작품 속에서 작가는 인물들의 운명을 다 알고 있는 신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지요. 다섯 인물들의 운명을 전부 다 알고 있는 작가가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하듯이 인물들의 운명을 변주하는 서사 능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는 말씀이시죠. 그러니까 주인공이 따로 있고 보조인물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어떻게 보면 한 작품 속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작품이 펼쳐진다는 말씀을 해 주신 것 같습니다.
김미옥 : 저는 청소년 문학을 이번에 이제 두 번째 읽는 거고요. 작품에서 기억에 남는 게, 우연이 얘기한 것 같아요. 부부의 출산은 랜덤 뽑기다. 부모와 자식의 만남을 랜덤 뽑기로 얘기를 하면, 모든 부모들은 특별 한정판을 뽑고 싶어 하지만 대개는 평범한 캐릭터를 뽑는다. 나도 평범한 캐릭터다. 뭐, 이런 대화를 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작가가 어떻게 이런 발견을 해낼 수 있었을까? 아주 재미있는 생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구나 다 특별한 한정판이고 싶어 하잖아요. 사회가 또 특별 한정판을 만들어내고 또 특별 한정판이 되기를 강요하고요. 근데 그 속에서 사실 평범한 캐릭터로서 살아가는 삶이라든가, 특히나 이게 청소년 성장통 소설이라고 하지만 저는 중년을 넘어서는 이 나이에 오히려 굉장히 와 닿는 부분인 거예요.
특별 한정판으로 빛나리라고 기대했던 삶이 별거 아니구나. 풍선에 바람 빠지는 것처럼 점점 위축돼 가고 작아지는 내 삶과 주위의 삶들을 느끼면서, 내가 내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삶을 어떻게 가져나갈 것인가, 생각하는 우리 세대 역시도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 같아요. 끊임없이 나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사실은 지금 바람 다 빠진 여기에서 나의 특별 한정판에 대해 생각하고, 평범하게 느껴지는 내 삶에 대해서, 평범한 게 뭔지, 특별한 게 뭔지 되묻게 만드는 성장통의 시기에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었고요. 청소년 문학이라기보다는 부모와 자식의 탄생, 만남, 이런 것뿐만이 아니라 삶 전반의 어떤 새로운 성장통을 저한테 던져주는 작품이었습니다.
또 하나 굉장히 재미있는 게 우주를 이야기 소재로 만들었잖아요. 아주 절묘하게 서정적으로 풀어내는 게 작가의 역량인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우주다, 하나의 소우주다, 우리가 이렇게 추상적인 개념적으로 얘기는 해도 그것을 작품화하기는 쉽지 않잖아요. 굉장히 섬세하게 서사화 시킨 것 같습니다.
이재복 : 달의 앞면과 이면을 비유적으로 가져와서 상당히 서정적으로 읽히게끔 하는 힘이 있는 작품이지요. 달콤한, 뭐랄까? 카스테라 빵 먹는 것처럼 읽히는 것 같아요. 어떤 굵직한 서사라든가, 갈등 요소는 많지 않으면서 감성적인 문장을 쓰는 작품들이 최근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요즘 청소년소설 쓰는 작가들이 이런 섬세한 문장 감각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한번은 씨는 어떻게 읽으셨습니까?
한번은 : 청소년 문학도서로 최근 온라인 서점 베스트셀러로 랭킹된 것 중에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수작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전반적으로 무드가 되게 우아하고요. 비유나 상징을 어설프게 쓰면 오히려 독해에 방해되고 유치하게 느껴지기 쉬운데, 그 천문학적인 요소를 서사에 비유와 상징으로 자연스럽게 사용을 하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어디 비는 구석이 없이 되게 촘촘하게 잘 짜여있는 그런 부분들도 되게 좋았고요.
톤앤매너가 작품 전반적으로 되게 일관성이 있어서 그것도 좋았고요. 요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사건 위주로 흘러가는 작품이 많이 발표되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 그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사건이 크고 드라마틱하지 않는데도 작가가 심리묘사 하는 힘이 워낙 뛰어나서 지루할 틈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선생님들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보는 관점에 따라서 너무 낭만적으로 그리고 있지 않나? 하는 부분들도 분명히 있기는 하지만 그 안에 되게 현실적이고 리얼하게 그려진 장면들도 적지 않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수현이가 도와주고 싶고, 나름 용기를 내고 싶지만 감출 수밖에 없었던 그런 순간들도 리얼하게 표현되어서 좋았고요.
달의 뒷면이라는 게 작품에서 비중 있게 쓰이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 달의 뒷면이랑 연결해서 보면 우연의 뒷면, 고요의 뒷면, 정후의 뒷면을 좋은 시선으로 바라봐 주고 있는 지점들도 좋았어요. 뒷면들을 본다는 게 현상은 같지만 바라보는 시선이나 관점을 달리하면 똑같은 현상이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잖아요. 그 다른 해석을 이 아이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해주고 있거든요. 연쇄적으로 사슬처럼 촘촘하게. 그런 부분들도 치밀하고 좋았던 것 같고요.
다만 여기 주인공이 수현이인데, 수현이 캐릭터에 대한 호불호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수현이가 겉과 속이 다르다, 그 지점을 안 좋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 작품이 불호일 것 같고요. 불호 보다는 호 쪽이라면 작품이 되게 좋게 읽혀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대부분 긍정적인 감상평이었는데 그래도 조금 아쉬운 지점을 뽑자면 작가가 여기에서 조금 더 공감에 대한 묘사를 해줬으면 어땠을까 생각했습니다.
이재복 : 좋습니다. 우리가 토론을 하려면 이야기를 좀 더 다층의 시각에서 봐야 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문제제기를 해 보려고 하거든요. 우리가 지금까지 토론한 작품들도 대개 여성 작가들이 쓴 작품이었는데요. 뭐, 여성 작가나 남성 작가를 성별로 구별할 필요는 없지요. 저는 작품을 보면서 약간 불편함 같은 게 있었거든요.
수현이라고 하는 여자 인물을 작가가 캐릭터로 캐스팅해서 인물 탐구를 하고 있잖아요. 우리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수현이라는 아이는 되게 평범하고 능력도 출중한 것 같지 않고 또 보면 청소년 아이인데 자기 욕망을 거세했다고 할 정도로 보여요. 좋게 이야기하면 경쟁이라든가 그런 것을 다 내려놓았다고도 볼 수 있고, 달리 얘기하면 포기했다고도 할 수 있고요. 스스로를 가장 낮은 자리에 두고 그것을 평범함으로 동일시하고요.
수현이 높게 우러러 보는 애들은 정후 같이 잘생기고, 공부 잘하고, 여자들한테도 다정다감하고, 그래서 거의 완벽할 정도의 남자상이죠. 또 고요는 공부 잘하고, 집안도 좋고 그렇죠. 자기는 그런 애들 근처에도 못가니까 그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하나의 우상으로 모시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겠다. 이것이 내 자신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자세다.” 뭐 이런 식의 시선을 깔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것을 감성적으로 그리다 보니까, 수현이 되게 초연하고, 욕심도 없고, 순수한 그런 아이로만 느껴지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저는 수현이가 순진한 아이는 아닌 것 같아요. 모든 욕망을 내려놓은 것 같지만 상당히 욕망을 추구하는 아이로도 느껴지거든요. 이중적이라는 느낌을 받는 건데요. 토론을 하기 위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거예요. 46쪽에 보면 수현이 뒷자리에 앉아서, 달의 뒷면에 해당하는 우연이를 관찰하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그 시선이 얼마나 촘촘한지 제가 한번 읽어 볼게요. 저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약간 무섭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별다른 특징이 없었지만 계속 눈길이 갔다. 이우연이 항상 내 시야에 들어와 있다는 것도 큰 요인이었다. 의식하지 않을 때에도 이우연의 일부가 순간순간 내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지우개 가루를 그냥 바닥에 털어 버리지 않고 따로 모아서 쓰레기통에 버린다든지 우산을 새것처럼 반듯이 잘 접는다든지. 수업 시간이 지루해지면 교과서 귀퉁이에 낙서를 끄적이는 아주 사소한 습관 같은 것들까지. 어제 오후에는 쌀쌀한 느낌이 들어 어깨를 살짝 움츠렸더니 이우연이 창문을 닫았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주위에 무관심한 타입은 아닌 것 같았다. 고요가 등교하면 곁눈질로 한번 바라보긴 했지만 그 이외에는 특별히 고요를 의식하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는 턱을 괴고 핸드폰을 했는데, 손가락의 움직임으로 보아 게임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고 뭔가를 보는 것 같았다.
초연한 아이인데, 자신의 관심을 끄는 인물을 바라보는 그 눈이 아주 섬세하고 세밀하지요. 욕망 같은 것들을 다 내려놓은 아이인데, 한 인물에 대해서 이렇게 섬세하게 관심을 갖고 아주 작은 영역까지도 포착해 내고 있거든요.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남성의 시선을 비판할 때, 관음적인 시선이라고 그러거든요. 남성의 관음적인 시선이라는 것은 타자를 대상화시켜서 지켜보는 시선을 말하는 거잖아요. 권력자의 시선을 보통 관음적 시선이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수현이는 권력은 포기했지만 은밀하게 권력자 이상의 어떤 관음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거든요. 저는 퍼뜩 이런 애는 참 무서운 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요의 바다에 팔로우 요청을 할 때도 그렇지요. ‘이수현이라는 게 드러나지 않는 공간에서라면 두려울 것도 겁날 것도 없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손을 뻗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익명으로 들어가서 친구들의 고민을 듣게 되는 거구요. 여기에서도 권력자의 시선, 정보를 독점하고 이용하는 은밀한 관계가 스며들어 있어요. 겉으로 드러나는 수현의 모습과, 수현 안에서 작동하는 은밀한 시선 사이에 무언가 불일치가 있는 거지요.
저는 늘 모든 인간은 빛과 그림자가 있고, 양면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수현이라는 아이가 가지고 있는 욕망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으면서 작품을 읽었어요. 수현이는 자기는 욕망이 없다고 말하지만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너도 욕망의 덩어리야. 네 욕망은 뭐지?” 하고 물어 보면서 수현이라는 인물을 읽었던 건데요.
박강 : 저는 다르게 생각하는데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욕망’은 굉장히 협소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를 내려놓거나, 잘생기고 멋진 아이에게 선택받아야 하거나 그런 것만이 욕망은 아니거든요. 사람에게는 굉장히 다양한 욕망이 있고, 사람마다 자기를 이끌어 가는 어떤 욕망들이 다 다르게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선생님이 말씀하신 욕망에 대한 이미지, 욕망에 대한 가치는 굉장히 한정적으로 느껴져요.
작품에서 엄마가 자기 딸에 대해서 얘기하는 부분에서 ‘내가 굉장히 단단한 아이를 낳았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저는 수현이가 단단한 아이인 것 같아요. 세상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들을 그냥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존재가 수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욕망을 내려놓아서 나는 이런 아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객관적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요.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을 바라보기 때문에, 바라보면서 객관적으로 느끼는 것들을 다 쏟아내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욕망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생각하고요. 주인공은 정말 다른 욕망을 갖고 있는 거지요.
다른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불편하거나, 비난받아야 하거나, 아니면 문제 제기 받아야 하거나, 이런 것은 독자의 몫이라고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그게 작품에서 그 아이가 갖고 있는 그 아이 나름의 욕망이 그런 식으로 평가되는 것에 대해서는 좀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이재복 : 말씀 중에 수현의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저는 그걸 어릴 적 영웅신화라고 봐요. 지금 말씀하신 게 188쪽이거든요. 구체적으로 장면을 보면서 얘기하면 좋은 것 같아요. 토론이 추상적이 되지 않으니까요. 수현이의 천성이죠. 베푸는 여린 아이의 천성이요. 읽어보겠습니다.
“한 번은 너를 밀었던 그 개구쟁이 녀석이 넘어졌는데, 네가 달려가더니 그 애를 일으켜 주는 거야. 그 애는 부끄러웠는 지 네 손을 휙 뿌리치고 도망을 갔는데, 세상에! 다음 날부터 다른 녀석들이 네 근처에만 와도 저 멀리서 뛰어와서는 슬금 슬금 그 애들 앞을 막아서더라고. 혹시라도 너를 밀거나 너랑 부딪힐까 봐. 눈썹이 새까맣고 코가 아주 예쁜 남자애였는데, 진짜 귀여웠어.” 엄마는 엊그제 일처럼 얘기했지만,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시절의 이야기였다. “그때 알았지. 아, 수현이 너는 너만의 방식이 있구나. 나는 참으로 다정하고 단단한 아이를 낳았구나. 코끝이 찡해졌지.” 스스로 빛을 내지 않아도 밝게 빛나는 별이 있다고 말해 주던 다정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자신은 스물세 번째 피규어라고 했던 이우연의 말도 떠올랐다. 나 또한 그 어디쯤 서있겠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나는 엄마의 특별 한정판은 아니지만 엄마에게 꼭 필요했던 피규어다. 그걸로 됐다. 그러면 충분했다.
이런 이야기죠. 저는 이게 아이의 어릴 적 영웅 신화라고 생각되거든요. 천성적으로 포용성이 있잖아요. 밀었는데도 불구하고 가서 안아주는 타고난 천성이 있어요. 보통 아이들과는 다르죠. 보통 사람들이 갖고 있는 욕망, 그런 것의 뒷면에 존재하는 인간성을 가지고 있는 아이인 것 같아요. 동화적이죠. 이해는 되거든요. 그런데 소설하고 동화는 좀 다르잖아요.
교실이라고 하는 공간도 하나의 위계가 존재하는 사회적 공간이잖아요. 교실에서 동화 같은 아이하고, 위계 속에서 갈등하는 아이들이 서로 싸우고 하는 건데, 1인칭 시점이잖아요. 소설에서 절대적으로 베푸는 선한 쪽에 있는 수현이라는 동화 같은 아이를 드러내는 것이 주제라면 그것도 주제일 수는 있겠죠. 여러분들은 수현이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셨나요? 그림자 같은 요소는 느끼지 못하셨나요? 일면적인 것만 느끼셨나요?
전진영 : 113쪽에 수현이가 고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저도 그런 경험이 있었어요. 나하고 다른 특별한 아이인 거예요. 나는 절대 될 수 없을 것 같은, 랜덤인데도 불구하고 특별판으로 나온 것 같은 아이였거든요. 읽어 볼게요.
나는 처음부터 고요가 좋았다. 높은 곳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고요를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그 당당함이 부러웠고 절대로 무너질 것 같지 않은 그 단단한 마음을 동경했다. 그러나 높은 벽 뒤의 고요는 너무나 평범했고, 평범한 걸 넘어 애처로울 만큼 연약했다. 고요는 혼자라서 너무 외롭지만, 더는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싶지 않다고 했다.
청소년 시기에는 그 아이의 당당함이 부러웠고 동경을 했거든요.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다 보니 그 아이에게도 달의 뒷면 같은 어떤 연약함이나 외로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 세월이 흘러 깨닫게 된 거지요. 수현이, 고요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이라고 할까? 그런 것들을 저한테 빗대어서 본다면 양면성이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 평범한 아이라고 생각하지만 특별함을 부러워하고 동경하고요. 드러내진 않지만 질투를 하고 그런 게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어요.
고요도 다른 사람이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알았지만, 스스로는 외롭고 혼자인 것 같고 연약하고, 그렇게 생각했잖아요. 작가가 수현과 고요의 감정 혹은 정서적인 부분, 마음의 움직임 같은 것을 잘 표현한 것 같아요.
이재복 : 113 쪽은 저도 많이 공감이 되더라고요. 당연히 똑똑하고 그런 애들 보면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겠지요. 수현이 솔직하게 표현하는 이런 부분은 오히려 진정성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저도 상당히 재미있게 느낀 부분이었어요.
그 장의 끝부분에 보면 고요가 수현이한테 절대로 만나지 말자고 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만나지 말자, SNS 상에서 신비적인 관계로만 존재하고 실제로 소통이라든가 그런 것은 절대로 하지 말자는 거지요. 고요라는 인물의 성격이 확 드러나는 부분인 것 같아요.
저는 작가가 오히려 고요라는 인물을 상당히 개성 있게 잘 그린 것 같거든요. 거꾸로 솔직하고 건강한 아이가 고요 같기도 해요. 빛, 그림자가 명쾌하게 보이면서도 그 경계 속에서 막 갈등하고 흔들리고 하는, 씩씩한 척하면서도 흔들리는 그런 모습들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청소년들이 고요라는 인물에게 자신을 투사한다면 스스로를 더 깊이 성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번은 : 저도 수현이 캐릭터에서 고민이 됐던 부분이 있었어요. 수현은 얼핏 보면 생각이나 가치관이 되게 올바르고 착해 보이지만 작품에서 모든 사건의 시작은 수현으로부터 시작 되거든요.
수현이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걸 두려워해서 고요를 돕는 일에 용기를 내지 못하다가, SNS 비밀 계정을 통해서 우연과 고요, 정후에게 다가가서 뭐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변화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잖아요. 이것이 작품에서 가장 메인이 된 사건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부분 자체가 솔직하지 못하고 겉과 속이 너무 다른 부분으로 보여지거든요. 그런데 작가의 스탠스는 수현이라면 이렇게 할 수 있어, 라고 합리화하는 게 느껴지거든요.
“그래, 누구나 다 그런 익명성에 기대고 싶어 하지, 그럴 수 있어.” 하는 듯한 온정적인 태도가 작품 전반에 깔려 있다고 느껴지는 거죠. 그래서 이 작품이 많은 장점들이 있지만 그 부분이 크게 다가오는 독자에게는 작품이 불호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고요 같은 캐릭터도 사실 텀블러 사건에서 수현을 도왔던 모습이나 그런 것에 대처하는 행동을 보면 괴롭힘 같은 걸 참지 않는 성격으로 보이잖아요. 그런데 유독 교실에서 괴롭힘 당한 것만 참거나 무시하는 식으로 보여지거든요. 작가가 학교 안과 학교 밖에서 다르게 보이는 모습에 대해 문장으로 근거를 제시한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이런 부분들이 몰입을 방해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여성이니까 알아차리지 못했는데요. 선생님 말씀처럼, 수현이 만약 남성이었다면 수현 캐릭터의 문제점들이 훨씬 더 두드러졌을 것 같아요.
이재복 : 네, 이 작가가 어떤 면에서 상당히 단수가 높은 작가인 것 같아요. 감성이 있는 것 같고요. ‘비겁한 게 아니고 평범한 거야.’ 이런 말이 나오는데요. 비겁한 것이 아니고 평범한 사람들은 다 그런 거야. 이런 식의 중의적인 언어를 던지면서 생각하게 만드는 말들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SNS는 감성을 소비하는 공간이잖아요. SNS 상에서 소통하는 언어를 이렇게 가만히 들어보면, “아니야, 비겁한 게 아니라 평범한 거야. 모두가 슈퍼맨일 수는 없어.” 그러면서 서로를 위로해 주며 대화를 하거든요. 수현이라는 캐릭터는 현실에서 중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정적인 부분을 모두 흡수해서 의미를 부여해주고 있어요. 이렇게 다 의미를 부여해 주면서 갈등을 무화시키는 독특한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청소년들이 수현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긍정적인 공감만 한다면 그런 것은 또 어떻게 생각해야할까, 고민이 되기도 하고요.
갈등을 무화시키는 영역에 존재하는 아이가 여성 캐릭터잖아요. 여성 캐릭터한테 그런 역할을 부여한 것도 어떻게 봐야할지 생각이 좀 많아지고요. 남성을 비판할 때는 너무나 쉽거든요. 권력적이다, 관음적이다, 그런 식으로 단선적인 형태로 비판하기가 쉬운데 수현이 같은 여성 캐릭터는 상당히 많은 양면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어서 힘든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상대적인 아이로, 정후 캐릭터도 마찬가지인 것 같거든요. 정후라는 이 캐릭터도 되게 괜찮으면서도 저는 불편한 지점이 있었는데, 여러분들은 어떠셨습니까? 그냥 따뜻하고 다정하고 좋다. 이렇게 느끼셨습니까?
박강 : 저는 한번은 씨가 말한 것처럼, 전반적으로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어떤 스탠스를 정하고 있는 것은 맞는 것 같아요. 작가가 각 인물들에게 그 위치에 맞게 역할을 배분하고 있는 건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처음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만화책을 읽으면서, 긍정적인 요소들을 굉장히 많이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선생님은 인물들이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다 원래 그런 문제들은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이 각각 갖고 있는 장점들이 저한테는 더 의미 있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것들이 모아져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혹은 지금의 내가 되는 데 있어서 더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좀 더 많이 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까 선생님이 남자였다면 이랬을 것이다, 여자애도 이랬을까,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어떤 식으로 바라보든 문제가 없는 인물은 당연히 책에도 없고 삶에도 없다고 생각을 해요. 대신 책에도 삶에도 긍정적인 능력을 가진 긍정적인 성향을 가진 긍정적인 요소를 가진 인물들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저는 그런 요소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면서 책을 읽었던 것 같아요. 이 작품에서도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이재복 : 우리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선한 인간이 이런 거다, 그러면서 한 인간의 선한 면을 규정하는 도덕 선생들이 아니잖아요. 오히려 한 인물을 선으로 규정을 한다면, 일반 대중들이 보지 못하는 그 규정된 인물의 이면에 있는 모습을 지적하려고 하는 게 작가들이거든요. 완전한 인물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양면성을 동시에 볼 때 한 인물을 더 깊이 있게 볼 수 있겠지요. 양면성을 진정성 있게 보고 관계를 맺을 때 진정한 사랑이 시작되는 거지요. 단편적인 인물로만 보았을 때 건강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아는 사실이잖아요.
적어도 청소년 문학 정도 되면 아이들하고 토론을 할 때 인물의 양면성을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이 건강한 책읽기라고 봐요. 여러분들이 수현에 대해서 긍정적인 요소를 말씀해주시기 때문에 저는 반대로 비판적인 면을 문제 제기하는 거예요. 그렇게 균형 감각을 찾아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제 생각을 여러분들한테 말씀드린다기 보다는 사회자 입장에서 다양한 토론을 이끌어 가기 위해서 문제를 제기한다, 이렇게 생각해 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여러분들이 이해를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향지(채팅방) : 수현이를 두고 나누시는 이야기가 흥미롭네요. 수현이라는 캐릭터가 요즘 청소년 전부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공감 받을 면이 많이 있을 거라고 느꼈어요.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강요하기 시작하는 게 진로라고 생각하거든요. 원하는 걸 정하고 성취를 향해 달려가라고요. 성취를 달성하기 위해서 목표를 향한 공격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을 하기를 은근히 강요하고요. 그러면서도 관계에서는 원만하게 공격적이지 않게 지내기를 바라거든요. 배려하길 바라지만 욕망하기도 동시에 바라요.
그래서 순종해버리고 수용해버리는 수현이 캐릭터는 저항적이지 않은데 어떤 면에서는 지금 한국의 어른들에게 저항해버리는 재밌는 캐릭터 같아요. 수현이는 고요를 질투하지 않고 연민하니까. 요새 갖기도 찾기도 힘든 모습이긴 하잖아요. 그게 트렌디하지는 않아도 인간적이지 않냐고 작가가 이야기하는 거 같아요. 그런 면에 질색하는 독자들도 있을 거예요. 햇님이 되지 못하느니 차라리 햇님을 동경해버리는 게 요즘 아이들 같아요.
이재복 : 사람의 생각은 다양하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수현이라고 하는 한 청소년 캐릭터가 그렇게 건강하게 느껴지지는 않거든요. 많은 청소년들이 수현이한테 투사를 해서 “아, 이게 평범한 나를 대변하고 있구나.” 이렇게 투사한다면 서글픈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조금은 안타깝기도 하고요.
제가 사회자 입장에서 화제를 바꾼다는 의미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해 보겠는데요. 정후 캐릭터는 어떻습니까? 정후 캐릭터도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남성성인 것 같거든요.
저도 드라마 많이 보는데요. 로맨틱 코미디 같은 거, 낭만적인 드라마 보면서 눈물도 막 흘리고 그래요. 볼 때마다 정말 재미있는데, 거기에 나오는 온갖 남성들이 정말 이상적이고 환상적이잖아요. 드라마라는 게 그런 거죠. 우리는 또 즐기면 되는 거고요. 드라마에 있는 사람이 꼭 현실에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문제는 순수 문학으로 접근했을 때 좀 생각해 볼 지점이 있다는 건데요. 정후라고 하는 캐릭터는 드라마에 나오는 캐릭터 같잖아요. 청소년 아이인데 다정하게 여자애들 리본 엉키면 다 풀어주고, 얼굴도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고, 완벽한 이상을 갖추었잖아요. 수현이 같은 아이는 당연히 상대적으로 우상처럼 느낄 수 있어요.
저는 끝까지 읽으니까 정후라는 캐릭터가 실종된 것 같아요. 오히려 고요라는 캐릭터나 우연이라는 캐릭터의 성격은 잘 드러나는데요. 정후는 어떤 인물이라고 느끼셨습니까?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아이였는데 작품을 읽고 나니 기억에 잘 안 남는 거예요. 김진영 씨는 어떠셨어요? 아이들하고 토론할 때 나온 얘기도 함께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진영 : 작품 토론을 하면서 제가 아이들에게 ‘이 작품이 너희들의 학교생활이나 삶하고 어느 정도 비슷한지’ 물었을 때 한 아이가 0%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정후 같은 애는 없어요. 그런 애는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0%.”라고 했고요. 80%라고 얘기한 아이도 있었는데요. ‘SNS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것’은 자신들이랑 같다는 거예요.
아이들은 수현이에 대해서는 매력적이지 않다고 했는데요. 토론 중에 수현이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고, 고요나 다른 애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저도 좀 그랬던 게, 만약 고요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진행이 됐다면 과연 학교에서 추천 도서가 됐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수현이도 그렇고 정후도 그렇고 학교에서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영웅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요즘 아이들한테서 볼 수 없는 그런 인물들이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은 정후 같은 애는 없다고 하면서도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 또 정후였어요. 그래서 사심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이야기도 했습니다.
이재복 : <비평공간>에서는 지금 베스트셀러가 되는 작품 중심으로 살펴보잖아요. 베스트셀러가 되면 좋은 작품이니까 깊이 있게 성찰을 잘 안하려는 것 같아요. 우리는 베스트셀러를 다양한 시각에서 깊이 읽는 시선을 제공하려고 하는 거니까요. 제가 관심 있게 읽는 비평가 중에서 엘렌 식수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여성적 글쓰기에 대해서 깊이 있게 탐구한 철학자이자 문학가인데요. 엘렌 식수는 여성이면서 여성적 글쓰기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남성의 시선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잖아요. 여기 참여하신 분들도 대부분 여성분들이고 또 지금 청소년 문학이 상당히 수준 높은 인간에 대한 탐구가 가능하니까 여성 작가들의 여성성에 대한 시각이라든가 나아가야할 방향 같은 문제의식을 공감해도 좋을 것 같아요.
제가 한 구절을 읽어볼 건데요. 여성성의 시선에 대한 구절이에요. 물론, 꼭 여성 작가라고 이름 붙일 필요는 없겠죠. 남자도 여성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남성 작가건 여성 작가건 여성성의 시선이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남자를 그릴 때도 여성성의 시선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는 되니까요.
‘타자의 능력이 있는 남자들, 여자가 될 능력이 있는 남자들’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이런 남자들이 참 멋있는 남자들이죠. 그러니까 정후라는 아이는 일단은 여자가 될 능력이 있는 남자인 것 같아요. 타자의 고통이라든가 어려움이라든가 그런 것에 공감을 하잖아요. 아까도 얘기한 것처럼 남자들이 타자를 대상화시켜서 권력적인 시선으로, 상징 권력 속으로 묶어 버리는 그런 언어를 써왔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건강한 사유를 하려면 일단 여자가 될 능력이 있어야 된다는 거지요. 그거야 뭐 누구든지 공감하는 거고요.
정후 같은 아이는 기존의 권력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야말로 타자의 고통이라든가 어려움에 대해서 공감하는 아이기 때문에 비유적으로 얘기하면, 그동안 여성이 그런 자리에 살아왔기 때문에, 여자가 될 능력이 있는 남자인 것 같아요. 여자의 자리로 내려갈 수 있는 그런 멋있는 아이에요.
그런데 정후가 여자 아이를 보는 시선, 그런 태도는 좋은데요. 스토리에서 보니까 정후는 고요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고요하고 우연은 사촌 관계잖아요. 이 아이들은 그런 사이는 아닌 것 같고요. 수현이는 정후를 좋아하고 정후는 고요를 좋아한 것 같아요. 그런데 정후는 이렇게 생각하거든요. ‘자신이 한 발짝 다가서면 고요가 도망가 버릴 것만 같다.’ 그러니까 정후가 여자가 될 능력이 있는 건강한 남자아이인 건 좋은데, 이 아이가 진짜 사랑할 능력이 있는 남자인가, 하는 것은 한번 물어볼 필요가 있어요.
박강 : 선생님은 지금 정후가 고요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저는 이해가 안 되네요.
이재복 : 그건 내가 넘겨짚은 건데 152쪽에 문장으로도 나와 있고요.
정후는 자신이 한 발짝 다가서면 고요가 도망가 버릴 것 같다고 했다.
박강 : 그것은 수현이가 그렇게 얘기하는 거잖아요. 정후가 고요라는 말을 넣은 게 아니에요. 수현이가 정후가 고요를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표현한 거죠.
이재복 : 문장이 계속되는 데요.
고요는 그런 정후의 마음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박강 : 그건 다 수현이가 생각하는 거죠. 저는 정후가 고요를 좋아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정후가 좋아하는 사람은 고요가 아니고 수현이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선생님이 읽은 부분은 맥락적으로 수현이의 생각이고, 수현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정후가 고요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했어요. 이 부분은 선생님이 정확하게 한 번 더 파악을 해보시고 나중에 정리를 해주셔도 되고요. 저는 어느 맥락에서도 정후가 고요를 좋아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친구로서 존중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그리고 정후가 끝에 가서 캐릭터가 없어진다고 하셨는데, 정후의 경우에는 끝까지 자신이 안고 있는 고민이 있었는데, 누나가 학폭을 경험한 것이었잖아요. 그리고 고요가 똑같은 학폭을 경험하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고 또 해결해 주는 인물로 나온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정후의 캐릭터가 없어진다고 생각되지 않고요. 정우에게 가장 큰 고민은 누구를 좋아하거나, 이성적인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니라, 누나가 학폭으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고 그것으로 온 가족을 힘들게 하는 부분이었다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자기 앞에 나타났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한 인물로 저는 이해를 해요.
이재복 : 그렇죠. 정후가 고요한테 쓰레기 버렸던 애들을 밝혀내잖아요. 적극적으로 고요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하지요.
박강 : 전반적으로 이 작품을 읽으면서 우리가 놓치면 안 될 부분이 저는 각각의 아이 뒤에는 각각의 부모가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을 해요. 수현이 어머니가 수현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수현이가 그런 아이가 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라고 생각을 해요. 고요가 그런 아이가 된 것의 이면에는 다른 관계도 있지만 부모와의 관계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각각의 인물들은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가족 안에서의 문제나 타인과의 관계 설정을 큰 과제로 안고 있거든요. 이 작품에서는 그런 문제들을 잘 연결되게 다뤘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수현이를 무슨 영웅 신화나 그런 차원으로 이해하는 것보다는 수현이의 엄마에 주목을 했어요. 함께 부대끼면서,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 알고 있잖아요. 무의식적으로 어떤 형태로든지 알게 되잖아요. 그래서 사실 이 안에서 고요도 힘들어하는 거고, 우연이도 힘들어 하는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수현이 캐릭터를 그런 식으로 연결을 해서 보지, 수현이를 영웅적인 그런거나 어른들이 원하는 그런 것으로 보지는 않아요.
그리고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고요가 중요한 캐릭터이고, 이런 캐릭터 저런 캐릭터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데, 그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어른들 시각에서의 재미와 그런 거라고 생각을 해요. 사실 아이들에게는 자기가 고민하는 가장 큰 문제가 해결되면 세상은 행복한 곳이 돼요. 그 문제가 부모의 관계일 경우가 가장 많고, 친구와의 관계도 그다음으로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그런 부분들을 같이 봐야 되는 게 아닐까 생각을 해요.
<비평 공간>에서 토론하는 것을 보면, 작품에서 어른들의 역할이 사라졌다, 그런 식으로 말하는데요. 작품들 속에 마치 어른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지만, 각각 어른들이 인물의 성장에 혹은 성장통에 얼만큼 역할을 하고 있는지 그런 것들을 같이 보는 일도 청소년 작품 읽을 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작가가 굉장히 많이 고민해서 내놓은 부분이니까 그런 부분들도 같이 얘기를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을 했어요.
작품 안에는 보이든 보이지 않던 어른들이 존재한다고 생각을 해요. 고요가 그런 성격을 가진 아이가 되기까지 당연히 이 작품 안에도 드러나고 있잖아요. 고요와 부모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그리고 친구와의 관계, 이런 것들 속에서 고요라는 아이가 된 거잖아요. 단독자로서 된 건 아니잖아요.
저는 전반적으로 작품을 이해할 때 그런 것들을 같이 보면서 인물에 대해서 호불호를 하던 어떤 것을 하든, 그런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좀 들어요. 오늘은 그런 얘기를 함께 다 짚으면서 토론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하게 되네요. 이런 작품은 우리가 아이들만 읽는 게 아니고, 선생님도 읽고, 엄마도 읽고, 여러 사람들이 함께 읽으니까 좀 더 많이 고민을 하면서 읽으면 작품을 더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저는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나서 당연히 정후가 좋아하는 아이는 수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선생님이 고요라고 딱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그 부분에서 작가와 완전히 다르게 이해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재복 : 정후가 누구를 더 좋아한 거냐,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아요.
박강 : 선생님이 정우를 판단할 때, 이 아이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고요를 좋아하는 것을 전제로 해서 비판하기 때문에 제가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재복 : 이 작품에서 제일 재미있던 장면 중의 하나가 있는데요. 정후하고 수현이하고 도서관에서 같이 잠이 드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밤새 SNS를 하느라고 지쳐서 거의 정신을 잃을 정도가 되어서 잠이 드는 거지요. 둘이 도서관에서 나오는데 정후가 별 이야기를 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상투적인 것도 같고, 오글거리는 것도 같고요. 정후가 금성을 바라보면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기도 하지.’ 그러면서 드라마처럼 달달하게 ‘수현이 너도 그래.’ 그렇게 말하잖아요. 영화의 한 장면 찍는 것 같이 재미있는데요.
누가 누구를 사랑했냐, 안 했냐 하는 것은 생각이 다를 수 있거든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요. 저는 정후하고 수현이의 그 장면이 자연스럽지가 않았거든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할까요. 청소년 아이들이라면 서로 이성적인 끌림 같은 게 되게 중요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이성적인 끌림 같은 데서 나오는 언어가 아니고,
박강 : 저는 선생님이 왜 욕망을 그런 식으로만 투영하는지가 이해가 안 돼요. 선생님은 작품을 읽을 때 욕망은 이런 것이어야 된다는 규정이 있는 것 같아요. 정후는 수현이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아이고, 정후가 욕망하는 것은 그런 것일 수 있는데, 선생님이 왜 그렇게 이해하는지 저는 참 이해가 안 돼요. 사람들마다 욕망이 다를 수 있고, 저는 당연히 수현이를 좋아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수현이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아이, 수연이가 가진 장점을 볼 수 있는 아이로 생각했지, 선생님처럼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전체적으로 작품을 볼 때 어떻게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그 등장인물을 평가하거나 인물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게 될 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거든요.
선생님이 누구를 좋아하느냐 안 좋아하느냐는 문제가 아니라는 말 안에 깔려있는 것은, 아까 정후는 고요를 좋아하는 아이라고 규정했을 때 그 아이의 눈에는 그런 것을 바라보는 힘이 없다고 평가를 하는 거잖아요. 이 아이가 사람을 보는 힘을 갖고 있는 아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되는 거잖아요. 누구를 좋아하느냐 안 좋아하느냐의 문제는, 지금 여기서 좋아했느냐 안 좋아했느냐가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바라보는 힘이잖아요. 근데 선생님은 지금 고요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데서 정후 문제가 있다고 문제제기를 하기 때문에 제가 지금 짚고 넘어가는 거예요.
이재복 : 우리 토론은 각자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고요를 좋아했다고 볼 수도 있고, 수현이를 좋아했다고 볼 수도 있겠죠. 그리고 인물들이 이성적인 관점에서 좋아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고, 이성적인 관점을 넘어서 보편적이고 인류애적인 관점으로도 볼 수 있는 거지요. 어느 한 관점에서 보는 걸 좋다 나쁘다 부정할 필요는 없는 거겠죠. 이성적인 관점에서 보는 사람도 존중하고 또 인류애적인 관점에서 보는 사람도 존중해야겠지요. 왜 이성적인 관점에서 보냐, 왜 인류애적인 면에서 보냐, 누가 맞냐, 틀리냐, 이런 걸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이 작품에서 제일 흥미로운 것이 일종의 동물계를 끌어들인 거잖아요. 아까 정미경 선생님도 말씀하셨는데, 고양이를 데리고 와서 동물계하고 소통하면서 아이들이 치유되고 그런 장면이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작가의 역량이라고 느껴졌어요. 동물계를 가져와서 잘했냐, 못했냐를 떠나서 진정성이 느껴지면 되는 건데, 저는 아폴로하고 고양이 동물들과 소통하면서 교감하는 장면에서 진정성이 느껴졌거든요. 그런 장면이 주는 느낌이 있잖아요.
그런데 도서관 장면에서, 정후가 인류애적인 사랑의 감정을 베푸는 걸로만 느껴져도 좋은데, 오히려 자기 자신의 욕망을 다른 언어로 표현했다면 정후의 모습이 더 입체적으로 느껴지고 더 인간적으로 생각되었을 것 같거든요. 하지만 정후가 끝까지 일관성을 유지하며 인류애적인 사랑을 하는 모습이 더 좋은 독자도 있겠지요. 그건 정후의 특성이다.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까 엘렌 식수 얘기를 했는데요. 현대 철학하는 사람들은 욕망을 성적 욕망으로만 환원하지 않잖아요. 욕망을 성적 욕망으로만 환원시키는 것은 남성들의 시각이고 또 그러한 시각은 상당히 비판받고 있지요. 인간의 욕망이라는 건 상당히 생산적인 것이지요. 들뢰즈도 그렇고 현대 철학하는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그 욕망의 범위를 남성들이 여성을 억압하기 위한 성적 욕망으로만 환원시켜 가두는 그런 사고를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욕망을 성적 욕망을 초월한 것으로 보는 것도 남성들의 시선이고 시각이겠지요. 엘렌 식수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면은요.
‘사랑할 능력이 있는 남자는 여성이 될 능력이 있는 남자’라고 했잖아요. 그러면서 사랑할 능력 있는 남자는 어떤 남자인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성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현실의 사회적 틀 안에서는 버틸 수 없는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현실의 사회적 틀 안에서는 버틸 수 없다는 말이에요.
‘불가능한’ 주체인 여성을 생각할 능력이 있는 자들이다. 남성들이 만들어낸 틀 안에서 허용되지 않는 그러한 여성들을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남성들이, 여성이 될 능력이 있는 남자들이라는 말이에요.
이런 여성에 대한 욕망을 시인이 품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런 여성을 부인하는 코드들을 부수어 버림으로써만 가능했다.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문장이에요. 시인이 남성들이 만들어낸 사회의 틀에서 버틸 수 없는 엄청난 능력을 가진 여성에 대한 욕망을 품는 것은 건강한 일이라는 거지요. 순수한 욕망을 추구하는 게 남성들이 만들어낸 덫이라는 걸 우리가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욕망이라는 것을 성적 욕망으로만 치환하는 것은 남성들의 전략이었다. 동시에 욕망에서 성적 욕망을 배제하는 것 또한 남성들의 전략이라는 거예요. 건강한 여성성이 뭔가, 여성적 글쓰기란 뭔가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정후가 인류애적인 면을 보이고 있는데, 수현이 됐든, 고요가 됐든, 이성애적인 대상으로 애정을 표현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더 진성성이 느껴지고 오히려 건강하게 생각되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말씀드리는 거고요.
이 작품도 복합적이고 다층으로 해석할 요소들이 많은 것 같아요, 한 가지 답을 주지 않고 복합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장면들을 많이 보여준 묘한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러면 정리하는 느낌으로 한 말씀씩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하고 싶은데 못하신 말씀이 있다면 해 주셔도 좋고요.
김진영 : 책을 읽으면서 뭔가 좀 명확하지 않다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오늘 토론을 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여전히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어서 나중에 한 번 더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미경 : 제가 왜 이 책을 아이들에게 추천하지 않았을까, 계속 생각을 했거든요. 오늘 토론 중에 선생님들 말씀 들으면서 느낀 건데요. 저는 이 책으로 어떻게 주제를 끌어내어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담은 글을 써내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말하자면 어른들이 발견하는 어떤 지점인 양면성, 달의 앞면과 뒷면, 항성 행성, 가정환경, 아이들의 평범함과 특별함, 그런 이중적인 면에 대해서는 굉장히 발견이 많이 되는데, 아이들이 그런 것을 글쓰기 주제로 삼아서 글을 쓰면 의외로 재미있는 글이 안 나오거든요. 너무 뻔한 글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이 책을 선정하지 않았던 것 같고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작가가 작품 속에 비유와 상징 같은 것을 자연스럽게 잘 녹아들게 글을 쓰신 것 같아요. 아이들이 “왜 제목이 고요한 우연이에요?”하고 질문을 하면 뭐라고 대답을 할까? 생각을 해 봤거든요. 제목이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아니면 아주 고요한 우연들이 반복되는 것들이 일상인데, 그러한 일상 안에는 평범함도 있고 특별함도 있다. 그런 의미인지도 생각을 해 봤습니다.
박강 :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저는 만화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저한테 만화는 하위문화가 아니고 저를 존재하게 하는 문화였기 때문에, 쉽게 공감했던 것도 같고요. 이 작품을 읽으면서는 내가 만화를 좋아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이 책을 좋아해 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나는 만화를 당연히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른들은 나처럼 만화를 좋은 책이라고 생각할까? 이런 고민도 했어요. 이 작품이 어쨌든 토론 과제로 올라왔으니까, 뭔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기 때문에 올라왔겠지, 생각했습니다만, 저는 만화는 읽고 나서 토론하거나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만화는 그냥 내가 읽고 느끼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이 작품을 좋다 나쁘다, 평가하는 것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도 했고요.
그리고 오늘 토론하면서 선생님의 생각과 저의 생각이 다른 부분들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저는 그 부분이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선생님이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얘기하셨던 부분들이 반영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여성적 글쓰기, 남성적 글쓰기, 뭐, 여성적 조건, 남성적 조건도 다 다르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선생님이랑 저랑 계속 고민을 같이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재복 : 지금은 여성, 남성이라고 하는 이분법적인 사유를 넘어서는 시대인 것 같아요. 토론을 위해서 여성, 남성을 규정해 보는 거지, 실제로는 요즘 누가 남성은 이렇고, 여성은 이렇고, 그런 얘기는 안하잖아요. 이제는 성별이라는 경계를 넘어서서 지향하는 지점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 같고요. 오늘처럼 구체적인 작품을 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물론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생물학적인 성으로 남성, 여성은 등장할 수밖에 없는 거니까, 구체적으로 캐릭터를 어떻게 구상하고 또 묘사해 갈까, 그런 토론은 중요할 것 같아요. 답은 없겠죠. 하나의 답을 찾아가서는 안 될 것 같아요. 서로의 관점을 존중해 주면 될 것 같아요.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하면 될 것 같고요.
김미옥 : 토론을 하면서 작가의 작품 의도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어요. 제일 포커스가 맞춰지는 게 ‘뒷면’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작가가 제일 집중적으로 힘 있게 이야기한 부분이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어느 면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마이클 콜린스가 봤다는 거잖아요. 달의 뒷면을.
그것을 작품에 녹이기 위해서 작가가 정후나 고요, 수현이, 우연이의 뒷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거든요. 달의 뒷면에 대한 설정을 하고 있어요. 정후 같은 경우는 리더십이 있고 아이들의 공감을 받아내는 반면에, 잠을 못 자고, 누나에 대한 아픔이 있고, 가정 안에서의 일들이 있잖아요. 그러면서도 조금 풀리지 않았던 것은, 정후가 이런 문제만으로 잠을 못 잔 건가? 한참 잠을 자야 할 청소년이 가족 간에 일어난 일로 이렇게 잠을 못 잘 일인가? 실은 여러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기 위해 타인에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다 보니까 밤에는 잠을 못 잘 정도로 마음을, 내면을 앓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백 프로 잘해야 된다는 강박 같은 것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고요 역시도 학교에서 요구하는 성적이라든가 여러 가지 기준을 완벽하게 해내지만 이 아이도 내면으로 앓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와 반대로 사회적 기준에서 비껴간, 작품에서 평범한 캐릭터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수현이나 우연의 달의 뒷면을 보면은요. 216 쪽에 친구 지아가 수현이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거든요. ‘이수현, 너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이야. 나처럼 조금 삐딱하고 매사에 의심이 많은 인간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감성이라고.’
작가는 수현이는 뭔가 독특한 게 없는 평범한 캐릭터지만, 수현이의 달의 뒷면은 사람과의 관계라고 도식을 시켰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정후나 고요와는 반대인 부분일 수도 있는 거죠. 토론하면서 선생님이 수현이의 관음적인 시선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만약 수현이가 남성이었다면 어땠을까, 이런 얘기를 듣는 중에 문득 우연이가 떠올랐거든요.
우연이도 평범한 캐릭터인데요, 고양이를 굉장히 섬세하게 그리잖아요. 어떻게 보면 우연이도 수현이처럼 대상을 섬세하게 관찰하는 관음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미술 대회에서 낙선한 경험은 있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동물에 대해서 굉장히 섬세하게 다가서고 또 그것을 그림으로 만들어내는 뒷면이 있어요. 작가가 ‘뒷면’에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까, 정후와 고요가 가지고 있지 못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망을 수현이를 통해 드러내고 또 우연이를 통해 섬세하고 세밀하게 다가서고 풀어내고자 한 것 같아요. 그게 작가의 의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공감과는 다르게 토론을 하다 보니까 작가가 달의 뒷면을 그리다가 보니 좀 도식화된 부분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결국 우리가 계속 논의를 했던, 낭만적이라든가, 현실적이지 않다고 느끼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한번은 : 저도 엔딩에 이를 때까지 정후가 고요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어요. 끝부분에서 이성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약간 우정인건가? 살짝 그렇게 생각했던 것도 같고요. 직업이 그렇다 보니까 베스트셀러를 대부분 다 읽는 편인데, 상대 평가했을 때 <고요한 우연이> 제법 잘 쓰인 작품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오늘 토론을 해 보니까 이 작품도 좀 문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다른 작품들보다 더 좋다고 생각했던 그 지점이, 어쩌면 똑같은 문제를 갖고 있는데 잘 감춰져 있어서 몰랐던 것도 같고요. 더 편협하게 읽고 생각을 조금 더 치열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카린 : 저는 오늘 좀 다뤄지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던 부분이 있었거든요. 어떤 지점이냐면요, 어른이든 아이든 청소년이든 우리 모두는 타인에게 보여주지 않거나, 보여주고 싶지 않은 뒷면들이 있잖아요. 그 뒷면들을 이 책 안에서는 SNS에서 불특정 다수이고 익명성 있고 절대로 나의 관계망에 걸리지 않는 사람들하고 나누더라고요.
저는 고요가 학폭을 당한 것이 더 큰 사건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진 것은, 두 사람의 뒷면을 본 주인공 아이가 실은 너희들과 교실이라고 하는 같은 관계망에 있다는 사실을 폭로되는 사건이었잖아요. 이 정도로 세상이 많이 변했구나, 감추고 싶은 자신의 뒷면을 나누는 관계망이 요즘 아이들한테는 SNS라고 하는, 제 생각으로는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나누는 세태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고요. 그런 지점에서는 이 작품이 요즘 청소년들한테는 다가갈 수 있었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고요. 오늘 토론에서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고민이 되는 부분을 말씀드려보았습니다.
이재복 : 소설이 됐든 판타지가 됐든 SF가 됐든 작품 속에는 공간의 개념이 작동하잖아요. <고요한 우연>에는 교실이라고 하는 사회적 공간과 SNS라고 하는 또 하나의 인터넷 공간이 작동하는데, 두 개의 공간을 동시에 사는 거지요. 중요한 건, 힘의 균형의 문제인 것 같아요.
이 작품도 그렇고, 요즘 아이들은 SNS에서 살아갈 때 훨씬 더 공감하고 자기감정을 위로받고 또 소비하는 것 같거든요. <비평공간>에서 지금까지 토론한 작품들에서도 SNS가 아이들의 삶의 공간이 되면서 아이들이 겪는 혼란과 심리적인 불안을 볼 수 있었잖아요.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현실공간과 SNS 공간 사이의 긴장감을 잘 그려냈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또 달리 이야기하면 실제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존재라는 것은 무엇인가, 자기 삶을 개척해 낸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 면에서는 시원하지 못한 구석이 있기 때문에 토론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 같거든요. 채팅창도 함께 보겠습니다.
김온(채팅방) :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다음 토론 때는 책을 제대로 읽고 참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에는 한번밖에 못 읽어서……. 갑자기 장에 탈이 나서 누워서 듣기만 하려니 좀 답답하긴 하네요. 다만, 서로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조금 공격적인 느낌이 들어 불편했어요. 반론을 제기할 때 상대의 의견을 꼬집어 말하기보다는 그저 다르게 해석한 자신의 생각만 표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 제기를 해주셔서 또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어요. 평론하시는 분들의 조금은 다른 시각이 작가들에게 큰 자극이 되기 때문에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향지(채팅방) : 오늘 재밌었어요. 저는 동화 위주로 쓰기 때문에 매번 어떻게 토론해야 하나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돼요. 그래서 책의 장점을 위주로 찾아보기로 마음먹었어요. 김수빈 작가님께 많은 걸 배운 느낌이고 궁금했던 부분은 토론으로 완성되는 것 같아서 더 좋았습니다.
이재복 : 저도 정리할 겸 이 작품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면요. <비평 공간>이 <죽이고 싶은 아이>부터 쭉 토론해 왔잖아요. <비평공간> 토론을 하면서 지금 청소년 문학의 흐름을 짚어나가고 있는 건데요.
<죽이고 싶은 아이>는 여자 아이들이 등장하는데, 서로 죽고 못 사는 친구라고 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서로를 이용하잖아요. 청소년 아이들의 우정 속에 내포된 그림자의 어두운 면을 아주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다는 면에서, 작가의 시선이 범상치 않다고 느껴지거든요. 독창적인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 이 작가가 이야기꾼이기는 하구나.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그 이면을 보려고 하는 날카로움이 있구나. 괜히 베스트셀러가 되는 게 아니구나, 그런 걸 느꼈어요.
또 <시한부>도 어린 청소년이 썼는데도 불구하고 가정으로부터 시작되는 트라우마를 깊이 있게 드러내고 있잖아요. 청소년의 삶이 결국은 부모하고 연계되어 있다는 면에서 부모들에게 반성문을 쓰게 하는 치열한 문제의식을 던져주는 작품이어서, 어른들이 꼭 읽어 봐야한다고 생각했고요. 이 작품에서도 역시 베스트셀러가 그냥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느꼈고요.
<율의 시선>도 한 남자 아이가 그야말로 자기중심적인 나르시스적인 남성성을 과도하게 형성해 가는 과정에서 겪는 트라우마를 잘 그려내고 있잖아요. 아버지 죽음으로 인해서 트라우마를 갖게 되는데, 자기 보호 본능으로 자기만의 독창적인 왜곡된 생각을 강화시켜 나가잖아요. 남자 아이 캐릭터를 잘 그려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대개 이런 작품들은 주인공들이 어떤 트라우마 같은 것들이 있어요. 그런데 수현이는 역으로, 좀 긍정적으로 본다면 어릴 적 영웅신화를 가진 아이고, 트라우마라고 할 정도의 서사를 가지고 있지 않아요. 엄마도 너무나 평범한 일반적인 엄마고요. 수현이라는 아이는 요즘 현대적인 아이하고는 좀 거리가 있는 것 같죠. 오히려 고요라는 아이는 어렸을 때 트라우마가 있지 않습니까? 기억에 깊은 상처를 가진 트라우마가 있는 애란 말이죠. 가장 친한 친구에게 배신당한 어릴 적 경험이 있고 가족과의 관계도 힘들고요. 오히려 고요야말로 우리가 앞서 읽었던 작품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될 만한 현대적인 아이처럼 보여지거든요.
수현이는 트라우마를 갖고 있지 않은 아이인데, 이런 아이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해서 이렇게 읽히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역으로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요. 수현이는 트라우마 같은 게 없는데, 주변의 다양한 트라우마를 가진 아이들을 연결하는 인물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어떤 면에서는 이 작가의 시선도 독특한 면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앞에서 토론한 작품 네 작품을 한 자리에 놓고 보면 의외로 <고요한 우연>이 나름대로 독특한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어요. 하나만 띄워놓고 생각하지 말고, 개성 있는 작품 속에서 <고요한 우연>을 놓고 보니까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성이 보이는 것 같아요.
여러분들이 너무 긍정적으로만 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제가 사회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비판적인 그리고 다른 관점에서 보게끔 자꾸 문제를 제기했는데요. 전체적으로 보면 이 작품만의 개성, 작가의 구성 실력, 작법, 문장의 힘, 관계를 배치하는 힘, 여러 가지 면에서 장점이 많은 작품입니다.
또 우리가 앞서 토론한 인물들은 복합적인 인물이거든요. 소설적인 인물은 상당히 복합적인데, 수현은 복합적인 인물이 아니고 마치 동화처럼 단색의 인물인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소설적인 인물들은 긍정과 부정, 빛과 그림자, 온갖 복합적인 성격을 보여주거든요. 그런데 수현은 일관되게 어떤 단선의 성격이랄까. 단순한 인물인 것 같기는 해요. 여러 가지로 이 작품이 주는 다양한 시선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은 : 제가 운전 중이어서 말을 못했는데요. 지금 주차를 해서, 좀 말해도 될까요?
이재복 : 그럼요. 충분히 말씀하세요.
지은 :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관점으로 인물들을 볼 수 있어서 오늘 토론이 되게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제가 느낀 소회를 이야기하자면, 제가 이 책을 읽은 것은 올해 4월 달이었는데요. 제가 그 커피숍의 풍경이 생생하게 기억이 날만큼 이 책에 푹 빠져서 읽었던 기억이 나요.
요근래 청소년 소설에 관심이 많이 생겨서 이것저것 많이 읽었는데 중간에 포기하게 되는 책들도 사실 많았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 이 책은 커다란 사건이 없는데도 책에서 손을 놓지 못하고 끝까지 읽었어요. 그래서 어, 신기하다하면서 책장을 넘겼던 생각이 나요. 책의 거의 끝부분, 215, 216쪽에 와서야 작가님이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지아의 입을 통해서 하셨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 거예요. 아까 김미옥 선생님께서도 어떤 구절을 읽으셨는데, 저도 발췌해서 읽자면, 수현이 보고 이런 말을 해요.
사람은 말이야. 따스한 햇볕을 쬐면 기분이 좋아지고 시원한 나무 그늘이 있으면 누워서 낮잠을 자고 싶어진다고. 그게 인간이야. 그 애들이 왜 너랑 친구가 된 거 같아? 네가 그런 사람이니까. 그 애들이 네 옆에 있고 싶었으니까.
이런 말을 해요. 작가님이 이 긴 스토리를 엮어내면서, 달의 뒷면 앞면, 여러 가지 장치들을 쓰면서 우리에게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수현으로 대변되는 우리 일반인들,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다정한 마음이 정말 중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살게 한다. 이런 메시지를 주고 싶어 한 게 아닌가, 생각을 했어요.
책 속의 수현이는 고요와 정후의 그 특별함을 되게 선망하고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보잖아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거의 없고 자존감도 높지 않아서, 지아가 오히려 옆에서 ‘너 그렇게 얘기하지 마, 너도 충분히 멋져.’라고 툭툭 늘 얘기를 해주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이야기의 끝에 가서는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덕목을 지니고 있었던 것은 수현이었던 거예요.
다정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잖아요. 예를 들면. 고요가 아이들에게 막 괴롭힘을 당할 때 직접적으로 그 앞에서 맞서지는 못하지만 일찍 등교해서 책상을 치워 준다던가. 또 우연이가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도록 진심으로 응원을 한다든가. 늘 한 발짝 물러나 있지만, 수현이가 가진 자신만의 방향으로 그 다정함을 늘 실천하는 아이였던 거예요. 그래서 이 작가님도 어떻게 보면 우리는 수현이처럼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사람이지만,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다정한 마음이고. 이 다정한 마음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짜로 관계 맺음을 할 수 있고,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진정으로 살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거 같아요.
저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수현에게 몰입이 됐어요. 수연이 마음에 공감도 많이 됐어요. 저도 너무 평범한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저도 스스로 부족한 부분들이 많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평가절하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런데 살면서 “네가 너무 다정하고 따뜻해서 좋아. 네 옆에 있고 싶어.” 이런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215, 216 쪽 읽을 때 제가 그 카페에서 울음이 터진 거예요. 다 큰 성인이고 어른인데 이 말에 위로를 받은 거예요. 나를 보통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가진 다정함은 나의 강력한 덕목이었어, “너는 정말로 지금처럼 살아도 돼.” 하는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를 받은 느낌을 받았거든요. 저는 이 책이 저에게 많은 위로가 됐고, 여러 가지 좋은 점이 많은 책이었어요.
이재복 : 너무 좋네요. 지은 씨가 그렇게 느꼈다면 되는 거지요. 우리가 한 문장이라도 나에게 힘이 되는 문장이 있다면 그 작품은 존재가치가 있는 거잖아요. 지은 씨 말씀을 들으니까 기분이 좋네요.
한 작품 읽고 감동해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 있으면 옆에서 보는 사람도 얼마나 기분이 좋은데요. 너무 행복하죠. 문학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쓴 작품이 아니더라도, 어떤 작품을 읽고 감동하고 에너지 받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고 인간에 대해서 긍정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거든요. 지은 씨가 너무 에너지 좋은 말씀을 해 주셨어요. 그럼 저도 지은 씨한테 답하는 의미에서 엘렌 식수한 문장을 하나 읽어볼게요. 지은 씨한테도 좋은 말씀 될 것 같아요.
여성 안에는 언제나 ‘다소’ 어머니가 있다.
수현이가 이렇지 않을까 싶네요.
회복시켜 주고, 먹을 것을 주는 어머니, 그리고 분리에 저항하는 어머니, 끊어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힘, 그러나 남성들이 만든 것이지요. 왜곡된 코드들을 헐떡거리고 위험하게 하는 힘이 있다.
여자는 남성적 나르시시즘과는 반대다. 남성적 나르시시즘은 자기 이미지를 확인하는 데 몰두한다. 쳐다보여지고, 스스로를 바라보며, 자기 광채들을 수집하고, 자신을 다시 호주머니에 넣는데 열중한다. (중략) 남자는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여자, 여자는 자신을 내던진다. 사랑하려 애쓴다.
이 ‘다소’라는 말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절대적으로 있는 게 아니라 ‘다소’ 어머니가 있다는 거지요. 지은 씨도 아마 다소 어머니가 있는 에너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은 씨 얘기 들으니까 <고요한 우연>이 엄청 좋은 작품으로 느껴지면서, 끝맺음이 좋네요. 여러분들 덕분에 오늘 <고요한 우연>도 정말 재미있게 토론했습니다.
문학에는 산문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시도 있잖아요. 동시도 있고요. 우리 <비평공간>에서 동시도 수용해야겠다는 생각을 시작할 때부터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수용을 해야 될까? 고민을 했는데요. 저희 출판 놀이에서는 <비평공간>도 만들지만 <동시빵가게>도 만들거든요. <동시빵가게> 만들고 계신 분들은 다 동시를 쓰시는 분들이고 최근 나오는 동시도 잘 알고 계시고요. 지금 <동시빵가게> 분들하고 협의를 하고 있는데요. 다음 회차에는 <비평공간>에서 동시를 토론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 또 여러분들 많이 참여해 주시기 바라고요.
돈으로는 바꿀 수 없는 작가들의 열정이 <비평공간>에서 이어져 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참여해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함께 <비평공간> 지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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