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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5일 성경침례교회 오전 성경공부 시간에 박승용 교수가 한 강의입니다. 마음에 깊이 새겨지기에 복습하는 마음으로 글로 준비했고, 저도 이 설교를 계기로 성경 읽기 정독 첫 번째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2019년 12월 신학교를 졸업하게 된 것이 성경읽기를 배우기 위함이었음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제 나리만큼 읽기는 포기하더라도 회심 이후 삶에 해당되는 연수만큼은 읽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올해로 5독을 해야 하기에, 그 1독을 시작했고, 2020년 5월 7일 현재 열왕기하 5장을 읽었습니다.
이제는 어느 곳에 있어도 성경 한 권만 있으면 행복합니다.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달고 오묘한 그 말씀이라는 찬송을 깊이 공감합니다. (작성자 고상석)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성경을 공부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성경을 공부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성경을 공부해서 무언가를 알았다고 말할 때에 과연 성경 말씀을 이해하고 알았다는 것, 그것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저는 지금 복잡하고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 아주 쉽고 또 구원받은 성도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여러분들에게 먼저 좀 알려드리려고 하는 것이에요.
성경을 공부하는 것에 관한한 여러분에게 자신감을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공부한다는 것이 마치 자기들만 심오한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면서 우쭐대는 소위 영지주의자들이라든지, 또는 잘난체하거나 거들먹거리기를 좋아하는 세상의 신학교 교수들이나 목사들처럼, 그 안에 감추어져있는 복잡한 의미를 찾아내고 해석하는 그런 과정이 아니에요. 복잡한 수학공식들을 이용해서 무슨 어려운 수학 문제 하나 푸는 것처럼 하는 것, 그것을 성경공부라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현학적이고 어려운 신학 용어들을 배우거나 또한 그것을 바탕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에요.
성경을 공부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또 성경을 깨달아 안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암시해 주는 아주 좋은 글귀가 하나 있어요. 이것은 영어킹제임스성경의 서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한번 들어 보십시오. "번역은 빛이 들어오도록 창문을 열어주고 거룩한 땅이 보이도록 장막을 걷어주며 우리가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우물의 덮개를 치워주는 것이다." 그랬어요. 바로 이것이 바르게 보존된 바르게 번역된 성경의 가치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바르게 번역된 성경을 우리가 제대로 읽기만 해도, 성경의 풍성한 진리를 깨달아 알 수 있다는 것이에요. 이것이 바로 바른 성경의 진가에요.
그런데 이렇게 킹제임스성경이 나올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윌리엄 틴데일의 역할이 매우 컸습니다. 중세 암흑시대에 로마 가톨릭이 성경 번역을 금지시켰을 때, 틴데일은 누구나 성경을 읽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번역을 하게 돼요. 영어로 번역을 하는 것이지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한 카톨릭 신학자가 틴데일을 비아냥거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무지한 백성들에게는 성경이 필요 없소. 그들에게는 거룩한 교황의 교시나 교황이 제정한 교회법으로도 충분하오. 교황의 교시나 교회법이 없이 사느니 차라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없이 사는 게 더 낫소." 그랬습니다.
이 말에 대해서 틴데일이 이렇게 바로 응수합니다. "자! 보시오, 영어로 성경이 바르게 번역되고 나면, 반드시 수년 내에 쟁기를 끌고 다니는 저 무지한 소년이 잘난체하는 교황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알게 될 것이요." 그랬어요. 물론 틴데일은 신약성경은 출간했지만 구약성경까지는 번역을 완수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1536년에 성경을 번역했다는 이유로 40세의 나이에 화형을 당하고 순교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했던 울부짖음이, 부르짖음이 있었어요. 이렇게 외쳤어요. '주여 영국 왕의 눈을 열어주소서.'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를 들어주셔서 그로부터 75년 만인 1611년에 바로 영국 왕 제임스 1세의 눈을 열어 주셔서 킹 제임스 성경을 번역 출간하게 하신 거예요.
자! 바른 성경의 가치가 무엇입니까? 바르게 번역된 성경은 우리에게 어떤 가치를 부여해 줍니까? 그것은 구원받은 성도가 올바른 믿음과 또 올바른 마음으로 바르게 번역된 성경을 읽기만 해도,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언제든지 그 말씀을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다는 데 있어요. 이것이 바른 성경이 가지는 가치에요. 우리에겐 그러한 성경이 있는 것이에요.
성경은 성경 스스로 해석한다는 걸 아셔야 됩니다. 우리가 어떤 구절의 의미를 해석하려 들기 전에, 성령 하나님께서는 그 의미를 이미 성경 안에다가 해석해 놓으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공부한다는 것은, 전에 없었던 어떤 새로운 해석을 발견하는 과정이 아니라, 성경 안에 이미 주어져있는 진리, 성경 안에 이미 주어져 있는 그 해석을 찾아내는 과정이에요. 마치 보석을 찾아다니듯이.
그래서 성경을 안다는 것은 어떤 진리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 그 구절이, 어떤 책 몇 장 몇 절에 있는가를 아는 것이에요. 그게 성경을 아는 거예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 구절이 다른 연관된 구절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아는 거예요.
예를 들면 어떤 차이가 있나? 이 구절과 이 구절이 어떻게 다르냐? 아니면 이 구절과 이 구절이 어떻게 비슷하냐? 이걸 여러분이 아는 것이지요. 그게 바로 성경공부에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공부이고 그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성경을 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 그걸 우리가 가르치는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인 것이에요, 여러분들한테. 어떤 아주 막 복잡하고 아주 어떤 은밀하게 숨겨진 뭔가를 여러분들에게 꺼내놓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성경 안에 다 답이 다 있는 거예요. 이것을 제가 여러분들에게 알려드리는 것뿐이에요. 저도 그렇게 배웠고, 좀 자신감이 생기십니까?.
그렇게 본다면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당연히 성경을 많이 읽은 사람이지요. 그래서 럭크만 목사님은 많이 아시는 거예요. 150번 이상 읽었단 말이에요. 성경을 잘 알고 싶으세요? 올해에도 열심히 읽으셔야 해요.
매일 정해진 분량을 규칙적으로 읽으세요. 근데 그동안 한동안 막 안 읽었다가 이제 막 읽으려고 하면요 잘 안 읽어질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몸을 성경을 읽는 일에 가지고 가셔야 해요. 여러분 밥 드시지요? 밥. 하루에 세끼 먹는데, 때로는 밥 먹고 싶을 때가 있고, 안 먹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럼 안 먹고 싶으면 안 먹습니까? 아니지요, 살기 위해 먹잖아요.
매번 성경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가지 육신적일 때가 있고 또 뭐예요? 마귀가 공격한단 말이에요. 그럼 어떡하실 거예요? 안 읽어버려요? 그럼 죽는 것이에요. 내가 살기 위해 먹는 거예요. 성경을 읽는 것이 내 감정에 따라 하는 행동들이 아니라, 읽고 싶을 때만 읽는 것이 아니라, 의무에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올해에도 그렇게 하셔야 됩니다. 반복해서 읽으셔야 됩니다. 읽고 또 읽으셔야 해요. 틈이 나는 대로 읽으셔야 해요.
내가 이 부분을 모르겠다고 하면 100번, 200번, 300번 계속 읽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그 부분이 나올 때마다. 자기 나이만큼은 성경을 읽고 나서, 하늘에 계신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각오를 하셔야 돼요. 자기 육신의 나이가 따라잡기가 너무 힘드세요? 그렇다면 최소한 구원받은 이후에 내가 흘러간 영적인 연수만큼은 따라잡고 나서, 주님 앞에 설 수 있도록 하셔야 됩니다. 지금까지 게을렀다면 지금부터라도 읽으셔야 돼요.
일 년에 한 번이든, 두 번이든, 세 번이든 계획을 세워서 읽으셔야 해요. 그렇게 자주, 많이 읽어야 되는 것이에요. 왜 우리는 그렇게 강조하는 것인가? 그렇게 자주 많이 읽는 것을? 성경을 공부하는 데 있어서 반복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그래요. 시편 62:11절(하나님께서 한 번 말씀하셨고 내가 이것을 두 번 들었나니, 이는 능력이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것이라.)에서는 하나님께서 한 번 말씀하셨고 내가 이것을 두 번 들었나니 그랬어요. 예수님께서도 어떤 진리를 이야기하실 때, 아주 중요한 진리를 이야기하실 때, 진실로 진실로 이렇게 말씀하시잖아요. 진실로 한번 말씀하실 수 있지만, 반복해서 말씀하실 때도 있어요. 그러한 표현이 요한복음에서만 나오는데 무려 25번이 나와요. 진실로 진실로 이 표현이. 잘 들으라는 것이지요. 다른 말씀도 잘 들어야 하지만 특히 진실로 진실로 말씀하실 때에는, 더 잘 귀를 기울여야 되는 거예요. 그만큼 반복을 강조하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어떤 사실에 대해서 두 번 말씀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여러 번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4복음서가 그러한 사례를 잘 보여줘요. 예수님의 생애에 대해서 한 개의 복음서만 충분할 거 아니겠어요? 근데 왜 4개의 복음서를 통해서, 예수님의 생애에 대해 이야기했을까요? 어떤 부분을 강조하시기 위함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시험받으신 내용, 4복음서 중에서 세 번 나오지요? 광야에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에 대해서는 4복음서 모두 다 언급합니다. 중요하다는 것이에요.
뿐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통치하시는 그 기간이 천년이라는 것을 강조하시기 위해서 여섯 번 말씀하셨어요.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다는 것, 재림에 대한 그 확실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무려 500여 가지의 예언들을 제시하신 거예요. 반복하시는 거예요. 중요한 일에 대해서.
베드로후서는 왜 기록된 것인가?라고 우리가 묻는다면, 바로 베드로후서 3장 1절과 2절에 잘 제시되어 있습니다. 자!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지금 저는 반복에 대해 말씀드리고 있어요. 자! 베드로후서 3:1,2절 보시게 되면 베드로가 이 두 번째 서신을 기록한 목적을 이렇게 말해요. 1사랑하는 자들아, 이제 내가 이 두 번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는 것은 이 편지들로 말미암아 너희로 기억나게 하여 이 단어를 주목해 주세요. 기억나게 하여 너희의 순수한 생각을 일깨워 주려 함이니 2그리하여 거룩한 선지자들이 미리 전한 말씀들과 주 곧 구주의 사도들인 우리에게 주신 계명을 생각나게 하려는 것이라. 자! 기억나게 하고 생각나게 한다고 그랬어요. 진리의 말씀들을 기억나게 하고 생각나게 하기 위해서 베드로후서가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성경적인 진리를 기억나게 하려고 자주 반복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는 것이에요.
야고보서 1:23,24절(23누구든지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되고 행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타고난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24이는 그가 자기를 보고서 가서 즉시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잊어버림이라.)에서는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제로 행하지 않는 성도들을 어떻게 비유하냐 하면, 거울로 자기를 보고는 가서 즉시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잊어버리는 사람에 비교합니다. 잘 잊어버리는 것이에요. 그래서 반복이 필요해요. 그래서 거울 앞으로 계속 가는 것이지요. 바로 거울로 비유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를 계속해서 노출시키고 계속해서 투영하는 것이에요. 반복은 성경공부의 한 방법 중에 하나에요. 배움의 열쇠입니다.
이사야서 28:10~13절에서는 명령을 명령 위에 반복하고 줄을 줄 위에 반복한다고 그래요. 반복.
빌립보서 3:1절에서도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같은 말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에게 안전하다고 그랬어요. 어떤 같은 말을? 기뻐하라는 말씀이었어요. 기뻐하라. 감옥에 갇힌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계속해서 기뻐하라 기뻐하라, 이 말을 계속 반복한단 말이에요. 같은 말을 자주 하는 것이 너희에게 안전하다.
베드로 역시 아까 우리가 보았지만 순수한 생각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성도들의 기억을 상기시켜주려고. 어떤 지식이든지 여러 번 반복하지 않고는 제대로 습득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성경 말씀을 머리로만 아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의 마음으로까지도 온전히 이것이 받아들여져야 돼요. 그리고 받아들여진 말씀들이 우리의 몸으로도 나와야 된단 말이에요. 머리로 머무는 지식이 아니라, 머리로 들어온 그 지식이 마음으로 내려오고, 이 마음을 통해서 행동으로 나와야 된다고요. 그렇게 하려면 반복이 필요해요. 성경 말씀들이 완전히 체득할 때까지.
사람마다 믿음의 분량이 다르고 지식의 분량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지식이라도 사람마다 체득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있겠지요? 다 다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내가 성경을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읽고 내가 깨닫고 이것을 내가 마음으로 수용하고 믿고, 또 그대로 생활 가운데 실행해 나가기까지, 그때까지 계속 반복을 하셔야 해요.
성경의 어떤 특정한 진리에 대해서, 성경의 모든 구절에 대해서, 성경에서 주어진 어떤 명령이던지, 내가 그것을 알았다면 내가 그것을 실행으로 옮겨질 때까지는 계속해서 그 말씀으로 내 마음과 행동들을 단련시켜야 되는 것이에요. 그만큼 반복이 중요한 거예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목사가 어떤 주일 날 아주 감동적인 설교를 했습니다. 그날 설교를 들은 성도들은 정말로 도전이 되는 훌륭한 설교였다고 하면서 아주 좋아했어요. 자! 그런데 그다음 주일에도 이 목사는 똑같은 설교를 했습니다. 성도들이 고개를 좀 꺄우뚱 했겠지요? 그러면서도 아! 목사님이 지난 주일에 똑같은 설교는 아니더라도 설교한 것과 비슷한 내용의 설교를 했을 거야라고 그냥 넘어갔어요. 하지만 그다음 주일에도, 또 그다음 주일에도 똑같은 내용의 설교를 목사는 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뭐 어떻게 변명의 여지가 없잖아요. 너무 이상해서 어느 성도가 목사님을 찾아가서 물었어요. "목사님, 왜 목사님께서는 매주 똑같은 설교를 반복하는 겁니까? 언제 새로운 설교를 할 겁니까? 그러자 목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매주 똑같은 설교를 반복한 이유는 성도들이 이 말씀대로 실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실행할 때, 새로운 설교를 할 작정입니다. 그런 말을 했다고 그래요. 물론 우스개 이야기지만 그처럼 자기가 들은 말씀들을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반복이 필요한 거예요. 할 때까지. 제대로 할 때까지.
그만큼 반복이라는 것은 성경을 우리가 잘 배우고, 또 온전히 말씀대로 실행할 수 있는 방법들 중에 하나라는 것을 기억하셔야 돼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성경을 잘 알고 싶다, 또 내가 그 성경 말씀대로 실행하고 싶다, 그러면요 부지런히 성경을 반복해서 읽고, 또 그걸 내가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반복하셔야 되는 것이에요.
그러다 보면 여러분들에게 정말로 정말로 변화가 나타나는 거예요. 바로 그때에 여러분 안에 진정한 열매들이 드러나는 것이에요. 자 올해에도 열심히 성경을 공부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박승용 교수, 누가복음 공부 중, 킹제임스성경신학교)
여러분 이러한 성경공부가 현재 라이브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의 희망입니다. 세상의 헛된 교회에 속지 마시고, 바른 성경인 한글킹제임스성경에 기조로 한 성경공부와 예배를 체험하십시오.
저는 2015년 제 삶의 주인이 제가 아니고 하나님을 위한 삶으로 살겠다고 고백했습니다. 단지 고백했을 뿐인데 그다음부터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잘 몰랐는데 지난 후 알았습니다. 여러분도 삶의 주인을 바꾸는 것으로 시작하십시오.
킹제임스성경신학교를 3년 출석 수업하게 해 주셨고, 부모님을 다시 만나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을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더욱 깊게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학교를 다니며 로망처럼 꿈꾸던 브라질 여행을 보내 달라고 졸랐습니다. 28년 된 브라질 친구의 초청으로 2020.2.14~28일까지 그의 백악관같이 생긴 집에 머물면서 브라질의 일상생활을 경험하였습니다. 초청한 친구가 우리가 돈 쓰지 못하게 합니다. 집 밥이 훨씬 맛있어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휴가라 생각하고 낙원처럼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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