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현재 한국사진의 지형
-몇 가지 이슈를 중심으로-
글: 김영태(사진문화비평, 현대사진포럼대표)
한국사진은 올해 초에 국내 최대 사진행사인 대구사진비엔날레를 비롯한 대규모 사진행사들이 새롭게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큰 관심을 받았다. 또한 서울에 초상사진전문미술관을 건립하려고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와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외에도 ‘매그넘의 비밀’, ‘안셀 애덤스 사진전 등과 같은 상업전시도 여전히 열리고 있다.
그리고 지난 4월에 월간 사진예술 발행인이 김녕만 대표에서 이기명 대표로 바뀌어 또 다른 측면에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그다지 주목 할 만 한 개인전이나 기획전은 없었지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강홍구, 박진영 2인전이 기획되어 예술제도내에서 달라진 한국사진의 위상을 반영했다.
또 일민미술관에서 ‘우주 생활’이라는 표제로 기획자이자 비평가인 이영준이 전시를 기획하여 일부 작가나 이론가들이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현재 한국사진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확장되고 있고 기존의 예술제도내에서도 동시대 예술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어떠한 측면에서는 퇴행적이고 미래가 불투명하게 보이기도 한다. 2013년에 제정되어 2회째를 맞이한 ‘최민식 사진상’이 공정성 문제로 논란에 휩싸였다.
1회 수상자인 이갑철 작가나 올해 수상자인 최광호 작가의 작업이 ‘최민식사진상’의 취지에 부합하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를 제기한 이들의 주장이다. 또 아마추어 사진가를 대상으로 공모를 한 특별상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는데, 일부 수상자가 상을 주관하는 최민식 사진상 운영위원회 관계자인 고은사진미술관 이상일 관장으로부터 사진 수업을 받은 이들이고 심사위원들도 상당수가 고은사진미술관 사진아카데미 멘토이기 때문에 심사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이 사건은 객관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분명 심사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 본상도 수상자와 최민식사진상 운영위원회 관계자, 심사위원장인 정주하 작가 등과의 사진계 내부의 친소관계라는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 공정성을 의심받을 여지는 충분히 있다.
하지만 이번에 문제가 된 ‘최민식 사진상’ 논란의 핵심은 공정성에 있다기보다는 상으로서의 한계지점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첫 번째 수상대상이 다큐멘터리사진가로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상을 주관하는 이들의 다큐멘터리사진에 대한 관점이다.
‘최민식 사진상’을 제정했을 때 주최측이나 운영위원회애서는 최민식의 작가정신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해서 최민식의 작품세계와 공통점이 있는 작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상이라고 상의 취지를 밝혔다. 그 후 올해 두 번째 공모에서는 공모요강에서 최민식의 작품세계를 계승하는 작가라는 응모 요건을 삭제 해버렸다.
그런데 최민식 작가를 기리기 위해서 제정한 사진상 이라고 해서 최민식의 작품세계를 계승한 작가에 한해서 수상한다는 공모요강도 그다지 합리적인 요강이라고 이야기 할 수 없을 같다.
또 다큐멘터리사진가에 한해서 응모 할 수 있는 점도 동시대적이지 못한 요강이다.
프랑스의 초상사진가 나다르를 추억하지 위한 나다르 상이 초상을 찍는 사진가를 위한 상이 아닌 것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이다.
평생동안 일관되게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하려고 노력한 최민식 작가를 추모하기 위해서 상을 제정한 것은 최민식 작가의 사진가로서의 활동에 대한 평가와 별도로 충분히 공감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2004년에 일민미술관에서 최민식 작가가 대규모 회고전적인 개인전을 개최한 이후 다큐멘터리사진가로 작가를 평가 혹은 규정하는 시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는데 작가가 과거에 기회가 될 때 마다 사진관련 매체에 글을 기고하며 이야기 하였듯이 작가는 ‘인간가족展’전시도록을 우연히 접하고서 큰 감흥을 받아 인간(사람)을 찍기 시작했다. 특히 가난한 이들을 많이 찍었다. 그런데 작가는 인간을 다큐멘터리사진가로서의 태도로 기록한 것이 아니다. 또한 자신이 영향을 받은 서양의 포토저널리스트 혹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작품을 당대의 다른 사진가들처럼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이해한 것도 아니다.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한 예술사진이라고 이해 한 것이다.
최민식이 사진을 접한 시기인 1950년대나 60년대는 한국사진계에서 ‘다큐멘터리사진’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전이었고 다큐멘터리사진에 대한 개념도 정립되기 전이었다. 다만 임응식, 구왕삼, 이명동 등과 같은 사진가들이 서양의 포토저널리스트나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찍은 사진을 ‘Life’지와 같은 화보 잡지나 인간가족을 통해서 접하고서 리얼리즘과 스트레이트포토를 기반으로 화화주의사진(살롱사진)에 반해서 발생한 새로운 예술사진이라고 판단했을 뿐이다. 또한 이러한 경향을 수용해 확대 재생산하기 위해서 ‘동아사진콘테스트’를 제정했다. 이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이 사진공모전이 전국에서 일일이 거론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개최되지 못했다. 국내에는 사진공모전이 국전의 사진부문과 동아사진콘테스트가 거의 유일했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수적으로 미미했다.
그래서 상당수의 아마추어사진가나 사진입문자들이 해외공모전에 많이 응모했다.
이러한 사진문화를 배경으로 활동한 최민식 작가도 그러한 사진가 중에 한 사람이다. 다만 인간을 소재로 선택해서 평생 사진작업을 했다는 차별점만 있을 뿐이다. 다른 아마추어 사진가들처럼 일품 걸작주의 사진을 추구했었고 소재가 ‘인간’이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최민식 작가를 동시대적인 시각으로 평가하는 것은 한계지점을 만나게 된다. 다만 사진에 대한 열정과 애착이 남다른 사진가였고 후대 사진가들에게 끼친 영향력은 인정 할만하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처럼 최민식 작가를 다큐멘터리사진가로 평가하는 것은 여러모로 무리한 요소가 존재한다. 또한 1980년대나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사진계에서 최민식 작가를 다큐멘터리사진가로 평가한 시각은 전혀 존재 하지 않았다. 대중적인 인기에 부응한 평가라는 인식을 떨칠 수가 없다.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평가라는 이야기이다.
한국사진은 현재 최민식 작가에 대한 평가나 최민식 사진상에 대한 논란 외에도 여러 가지로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1990년대에 한국사진이 국제화, 현대화 과정에 있을 때는 어느 누구 보다도 사진에 대한 시각이 진보적이었던 이들이 사진을 위한 사진을 주장하고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진정성이 의심된다.
현재 한국사진은 전반적으로 2000년대에 비해서 침체되어 있다. 사진제도내에서의 신진 작가발굴도 정체되어 있고, 과거에 비해 늘어난 여러 수상제도도 권위가 상실되고 있다. 또한 여전히 여러 사진행사나 수상제도가 객관적이지 못하고 친소 관계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범 예술제도나 사회적으로는 확장되어 있고, 40대 중반 이하 젊은 작가들은 사진계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폭 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사진의 여러 주체들이 이처럼 변모하는 사회문화적인 환경이나 예술의 지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진정성을 상실한 채로 이해득실에 따라서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고 활동한다면 한국사진계는 예술제도로부터 소외되고 역사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동시대 예술의 지형에서는 매체는 매체 일뿐이다. 그것은 사진도 마찬가지다.
첫댓글 답답할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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