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일재 선생 49재 열려...추모사업회 발족
선생의 뜻 노동운동에 교훈...”의회정치에 갇히지 않을 것” 천용길 기자 droadb@newsmin.co.kr
2012년05월12일 19시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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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일재 선생 49재 열려...추모사업회 발족
선생의 뜻 노동운동에 교훈...”의회정치에 갇히지 않을 것”
천용길 기자 droadb@newsmin.co.kr
지난 3월 24일 향년 90세로 별세한 사회주의 노동운동가 故 이일재 선생의 49재가 열렸다.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울산, 서울, 대구의 활동가 40여 명과 유족은 12일 오후 12시 선생이 잠든 경북 칠곡 현대공원 묘역을 찾았다.
▲ 故 이일재 선생 묘비. 그의 묘비에는 '노동자투쟁의 현장에서 일생을 살다간 혁명전사 쇠비름 다시 봄날, 혁명을 불당겨 오라!'고 새겨져 있다.
임성열 민주노총대구본부장은 “최근 통합진보당 문제로 민주노총 내부도 시끄럽다. 이일재 선생님 뜻처럼 의회 정치에만 국한 되지 않는 민주노조 운동을 만들어 나가겠다”며 추모의 뜻을 전했다.
조돈희 울산해고자협의회 의장도 “선생은 의회활동을 부정하진 않으셨지만 운동의 길을 훼손할 때는 단호하게 버리라고 하셨다”며 “살아생전 마지막 소원이 비정규직투쟁 현장에서 싸우다 죽고 싶었다던 선생의 뜻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일재 선생의 삶은 국참당을 포함한 3자통합, 통합진보당 비례 경선 파동 등을 겪고 있는 현재에도 많은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이일재 선생은 일찍이 노동현장에 투신해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운동을 강조했다. 20년 옥살이를 마치고도 삼성 민주노조 건설 지원 활동, 전국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전해투) 지원 활동 등을 해왔다. 그는 생전에 “의회의 역할은 있다. 하지만 의회로 혁명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됐다”며 “자본주의 체제에 흡수되는 운동은 혁명이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
▲ 고인의 동지이자 친구인 권오봉 선생(왼쪽)
추모사를 마친 참석자들은 유족과 함께 제사를 지냈다. 선생의 오랜 벗이자 동지인 권오봉 선생은 “자네는 사후복이 타고 났다. 자네 뜻을 잃지 않고 이어가겠다는 동지들이 여기 있지 않은가. 편안히 쉬게”라며 술잔을 비웠다. 참가자들은 이일재 선생의 애창곡 ‘인터내셔널가’를 합창했다.
묘역 부근에서 식사를 마친 참가자들은 ‘혁명전사 故 이일재 선생 추모사업회’를 발족하는 총회를 열었다. 사회를 맡은 조돈희 의장은 “87년 전해투 총회 이후 거리에서 총회를 열기는 처음”이라며 “거리에서, 묘역에서 의견을 나누는 혁명적인 총회”라고 소감을 밝혔다.
총회 전, 2009년부터 이어져오던 이일재동지후원회는 공식 해산하고 회원들은 추모사업회 회원으로 전환됐다. 이일재 선생의 평전 발간 사업과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재판도 추모사업회가 계승한다.
▲ 고인의 평전 집필을 맡은 역사학자이자 작가인 안재성 씨
평전 집필을 맡은 안재성 씨도 참석해 “통합진보당, 민주노동당 등 많은 당이 있지만 제대로 된 당은 조선공산당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 산증인인 이일재 선생의 평전 집필을 맡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추모사업회는 울산, 대구, 서울 지역 운영위원과 전해투 등 각 단체별 운영위원들로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고문은 권오봉 선생과 오세철 교수가 맡았다. 추모사업회는 앞으로 선생의 활동에 대한 재조명, 노동자평의회 운동 지원, 평전 발간,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연대 사업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추모사업회 회원 가입 신청은 서창호 집행위원(010-8191-7744)에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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