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적으로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목소리가 높아져 가고 있는 상황에서, 12.12 군사 반란과 5.17 광주 시민학살로 등장한 전두환 군부의 이른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1980.5.31) '법사위원'으로 발탁되어 승승장구, 노태우정부 시절 권력의 '황태자' 혹은 '리틀 프린스'로 군림했던 박철언씨는 2005년 여름 전격적으로 회고록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2005.8.10, 랜덤하우스 중앙)을 출간했다.
박철언씨는 회고록에서 '한 시대의 한 쪽의 사초를 남기고자' 또 '진실된 기록을 위하여' 자신이 소중하게 간직해 오던 20여권의 업무다이어리와 120여권의 수첩을 기초로 '반드시 기록해야 할 부분은 반드시 썼고, 일상적이고 군더더기 같은 이야기들은 확실하게 빼버렸다'고 밝히고 있다.
그의 회고록에는 1980년 전두환 군사정부의 출범에서 2003년 김대중 국민의정부 시절까지 '격동의 현대사 20여 여년의 현장에서 보고 듣고 체험한 사실'들이 많은 사진자료와 함께 비교적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그는 회고록에서 '벼랑끝에선 1987년' 1월 15일 '이민우 구상(내각제 개헌)' 백지화, 다음날 서울대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공식발표, 4월 13일 전두환의 '4.13 호헌조치' 특별담화문 발표, 노태우 민정당 대표주도의 '6.29선언(직선제 개헌)' 특별 선언문 발표에서 '월계수회와 12.16 대통령선거'까지의 상황등을 시간순으로 '드라마틱'하게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회고록에는 이상하게도 대선직전에 발생한 1987년 11월 29일 대한항공858기 실종사건에 대한 회고내용이 쏙 빠져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난감한 '사초'이자, 의심스런 '진실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권력의 심장부에서 그것도 무소불위 안기부 특보로 그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전략을 수립하며 권력을 보위했던 그가 김현희의 대한항공858기 사건에 대한 증언을 그냥 지나치다니! 예사롭지가 않다.
다만 그의 회고록에는 1988년 '보통사람의 시대를 열며' 1988년 2월 초 제33차 남북비밀접촉을 가진 내용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북측 한시해 대표에게 대한항공폭파 사건에 대해서 "우리 내부에서 북에 대한 응징론이 대두되고 남북 간 심각한 상황에 진입될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노 당선자를 비롯한 상부에 간곡히 말씀드려 이제 겨우 고비를 넘겼다. 하마터면 다시는 당신을 보지 못했을 뻔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의 회고록에는 1988년 2월 5일 특보실에서 마유미(김현희)면담 사진 한장이 게재되 있다(회고록 1권 291쪽). 북에서 출생, 김일성종합대학 예과1년 수료, 평양외대 일본어과 2학년 중퇴. 1980년 3월 북한 노동당 조사부 소속 공작원으로 선발되어 이후 7년동안 '초대소'와 해외에서 '사상학습'과 함께 '혹독한 테러 공작훈련'을 받았다는 '북괴 정예공작원이자 항공기 폭파범인 김현희' 모습이 왠지 어색해 보인다.
※ KAL858기 사건 '실종자 가족'들은 블랙박스는 커녕 탑승자 115명이 사라졌으나 시신 한구 찾지 못한 어처구니 없는 당시 군사정부의 사건 발표를 받아 들이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유가족'이란 표현을 반대하고 있다. 지난 9월 21일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청문회에서 폭발물과 항공기 관련 전문가들은 안기부 수사 발표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사건 진상규명은 물론이고 '바른 역사를 위한' 사건 관련자들의 '진실된 증언'을 고대하며, 정부와 국회는 국민적 의혹 사건인 KAL858기 사건을 전면 재조사해 주길 다시한번 촉구한다.
KAL858기 폭파장면과 영화 `마유미`
※ SBS에서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의 KAL858기 폭파 영화장면과 1990년 영화 `마유미`포스터...
1989년 KAL858 폭파범 김현희에 대한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실종자 가족들의 극구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시 노태우 군사정권의 비호 아래 수 십억의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 `마유미`가 제작, 상영되어 다시 한번 실종자 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칼기 실종 사건을 정략적으로 악용하여 대국민 기만극을 연출했다.
영화 마유미는 김현희 진술서와 안기부 수사결과를 기초로 제작된 일종의 반공영화로 칼 폭파범 김현희의 대법원 재판이 끝나자 마자 한 달도 안되어 1990년 4월 노태우 군사정권의 `특별사면` 조치로 사건이 엉터리로 종결된 직후인 1990년 6월 전국의 영화관에서 일제히 상영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칼858 폭파범 김현희는 특별사면 조치이후 사건당시 진술과 80여곳 이상이 엇갈리는 내용으로 내외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수기 '이제 여자가 되고싶어요' 발간 준비에 들어간다.
그런데 문제의 영화 `마유미`는 사건 진상이 규명이 되기도 전에 피해자 가족들을 앞세워 반공 궐기대회를 하고 3개월만에 사망처리를 다하고 픽션영화를 제작했다는 점, 영화 제작사상 초유의 수 십억원이 들어간 제작비의 출처 의혹(시중에는 노태우정권 시절 황태자로 유명세를 탔던 박아무개씨 의원이 댔다는 소문이 파다했었다.), 미국 폭발전문 용역회사 인트로비젼사에 100만 달러를 제공하여 충격적인 KAL858기 폭파장면을 촬영한 점등 숱한 화제를 뿌렸다.
게다가 이 영화는 일본에 약 123만달러에 팔리면서 오히려 일본에서 더 유명세를 탔으며, 또한 영화 제목 'VIRGIN TERRORIST'라는 영어제목으로 미국의 세계적인 배급회사 퍼시픽 아티스트를 통해서 2백만 달러에 팔려 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영화를 통하여 무고한 우리국민 115명을 죽인 칼 858 폭파범 김현희는 `미모의 테러리스트`로 완전히 둔갑하였고, 또 수기 '이제 여자가 되고싶어요'을 출간하면서 연약한 여자의 이미지를 상업적으로 부각하면서, 김현희는 책판매 수입등으로 일약 돈 방석에 앉게 된다.
그러나 이면에는 유품하나도 못찾은 실종자 가족들의 피맺힌 절규를 철처히 외면했으며, 당시 군사정권은 사건의 진실을 정치적으로 호도하고, 칼858기 실종사건을 `상업적 돈벌이` 로 악용하는 동시에 김현희는 `화려한 변신`을 하며, 국내 TV출연은 물론이고, 일본방송에도 스타로 출연하는 등 호화스러운 인생을 즐기기 시작한다...
일본 N-TV방송에 출연했던 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영모습
첫댓글 저도 그 책을 읽으면서 노태우 정권을 탄생시킨 KAL858기 사건에 대해 한마디 언급이 없었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웠습니다. KAL858기 사건은 100% 안기부에서 공작한 사건입니다. 노무현은 청와대에서 뭘하고 있는지 참....
초등학교때 전교생이 극장으로 가서 관람했던 기억이 납니다. 교육을 통해서도 철저히 국민들 생각에 뇌리를 박게 했지요. 그러게요 좌파집권당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은 무엇을 하셨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