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땡은 인레호수에서 가장 고풍스런 유적지이다.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는 수많은 탑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마을에서 산 정상의 사원에 이르기까지 길 양쪽에는 수많은 탑들과 작은 사원들이 마치 바늘을 세워놓은 것처럼 가파르게 하늘로 치솟은 샨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탑의 숲을 이루는 이곳의 탑은 1,054개에 달한다. 인땡의 역사는 인도의 아쇼카왕 시대까지 올라간다. 나웅쉐의 쉐안삐에 사원이 있는 비석에는 인땡 유적과 관련된 인물들이 새겨져 있다. 인도 아쇼카왕을 비롯하여 바간 왕조의 나르빠티시투왕과 꼰바웅 왕조의 민돈왕의 이름이 보인다. 인땡 유적은 기원전 3세기경 인도의 아쇼카왕에 의해 처음으로 개, 보수가 이루어진 이후 나르빠티시투왕과 꼰바웅 왕조의 민돈왕 등에 의해 지속적으로 수리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탑의 양식 등을 분석해보면 대부분 탑과 사원이 냐웅쉐 왕국에 의해 1864년 이후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한적한 시골 마을로 변하였지만 샨족의 왕이 나웅쉐를 통치하던 무렵 이곳은 정치 중심지였다. 미얀마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던 샨족의 왕 역시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 인레호수 서쪽 산 아래에 있는 인땡으로 가기 위해서는 산에서 호수로 흘러 내려오는 수로를 이용한다. 수로는 1년 내내 마르지 않고 흐른다. 우기에는 물이 많지만 건기에는 물의 양이 줄어든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산 아래에 작은 댐을 만들었다. 그리고 물의 양이 적어질 때도 배가 다닐 수 있도록 대나무와 풀을 이용하여 작은 보를 만들었다. 물을 가두어 배가 다닐 수 있도록 수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방책이다. 물길을 따라 가면 수로를 가로 지르는 수많은 다리를 만난다. 다리의 크기와 모양이 제 각각이다. 자시에 필요한 만큼 자신의 능력이 미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다리를 만들었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수로에서는 아침저녁으로 사람은 물론 소도 목욕을 한다. 수로 옆으로는 들판에 사는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배 정박지가 있다. 자가용 차고이다. 대나무 숲이 가득한 곳이 인땡으로 가는 수로의 종점 선착장이다. 선착장이 있는 마을에는 학교와 시장이 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운동장이 곧 장터이다. 평소에는 길을 따라 관광객을 위한 가판대만 줄지어 있지만 5일마다 서는 장날이면 마을 전체가 사람들로 북적댄다. 특히 장날에는 시자응ㄹ 보기 위해 내려온 산 너머에 사는 빠오족들을 만날 수 있다. 인땡 유적은 여러 군데 산재해 있다. 처음으로 유적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유치원 건물 뒤쪽이다. 무너진 탑들이 잡초와 동네 쓰레기 더미속에 방치되어 있다. 최근 바로 옆에 무너진 탑을 중심으로 하는 사원 건립이 시작되었다. 집들 사이로 보이는 낮은 구릉에도 탑들이 낭아 있다. 언덕 위에 오르면 배를 타고 지나온 수로가 보이고 넓은 들판이 수로 양쪽으로 펼쳐진 풍경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멀리 인레호수와 함께 이정표처럼 우뚝 솟아 있는 파웅도우 사원이 시야에 들어온다. 건너편 바위산에도 마찬가지로 역시 몇 개의 탑들이 있다. 마을 쪽을 바라보면 멀리 인땡 유적지 중심부가 푸른 숲 사이로 보인다.
인땡 유적과 두 번 째 만남은 다리를 건너 사원으로 올라가는 긴 주랑의 양쪽이다. 언덕 위의 사원으로 가는 길은 세 갈레 길이다. 가운데 기부자의 보시로 만든 함석지붕을 덮은 주랑이 있으며 왼쪽으로는 빠오족들이 사는 산으로 가는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오른쪽으로 물길을 따라가는 대나무 숲길로 올라가는 길이 있는데 특히 이 길로 가면 유적을 놓칠 수 있다.
이곳은 탑들의 무덤이다. 주랑을 통해 사원으로 올라가면 왼쪽 부분은 탑의 규모가 인땡 유적 가운데 가장 크다. 오른쪽에 있는 탑들은 입구와 외부에 수많은 스투코 장식들이 있어 가장 화려하다. 그러나 무관심 속에 파괴된 채로 방치된 상태이다. 탑에서 떨어져 나온 스투코 장식, 붕괴된 벽돌들, 세월에 녹 슬고 삐딱하게 서 있는 티, 목이 부러지고 훼손된 채로 나뒹굴고 있는 잔해들로 인해 적막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감돈다. 이처럼 탑이 파괴되는 주요 원인은 지진과 열대식물 그리고 무관심이다. 탑이 무너지면 그것은 보수하여 원형을 되찾기 전까지는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탑은 부처님을 상징하기 때문에 무너진 탑은 더 이상 부처님이 아니며 신앙의 대상도 아니다. 벽돌로 만든 탑형태의 부처님이 단순한 벽돌로 돌아가는 것이다. 지진 등으로 무너진 탑은 무관심 속에 방치된 채 열대식물이 탑을 타고 올라가 파괴를 가속시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