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눈 맞추기
-조윤주의 제2동시집 『하늘이 커졌다』
박일
조윤주 시인을 빠뜨렸다. 그게 마음에 걸린다. 졸저 아동문학평론집 『동심의 풍경』(2021. 세종출판사)은 ‘부산 동시문학과 작가 탐구’라는 부제를 붙였듯이 36인의 부산 동시인의 세계를 기록했다. 이 작업은 계속되겠지만, 세미나, 작가 특집, 동시집 발문으로 썼던 원고들을 간추리면서, 조윤주 시인에 대해서는 새로 써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부득이 빠뜨릴 수밖에 없었다. 제2동시집을 발간하면 그의 자존감을 살려주리라 마음먹고.
제2동시집 『하늘이 커졌다』(2022, 청개구리)를 읽는다.
오래된 우리 동네/ 아파트//
재건축한다고/ 무너뜨렸다.//
학교 가는 길/ 벚꽃 터널 볼 수 없고//
형처럼 키 크면/ 몰래 따 주고 싶던/ 물앵두나무도 사라졌지만//
하늘이 잘 보인다./ 조각난 하늘이 이어져/ 하늘이 커졌다.
-「하늘이 커졌다」 전문
그의 하늘에는 걸리는 것이 없어야 한다. 아파트도 재건축을 빌미로 무너뜨리고 만다. 벚꽃 터널, 물앵두나무도 사라진다. 하늘이 잘 보인다. 커다란 하늘이어서 좋다.
하늘은 만물의 주재자, 절대자나 조물주를 의미하기도 한다. 절대 세계나 이상 세계를 상징할 수 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인간 세계의 다툼과 미움, 갈등의 삶을 초월하고 싶으니까 하늘은 맑아야 한다. 걸리는 것이 없어야 한다.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일기장」이 당선되면서 화려한 등단을 한다. 선용 심사위원은 “한 편의 좋은 시를 읽는 것도 행복이다. 그만큼 좋은 시는 오염된 우리들 마음을 치유하고 무한한 위안과 즐거움, 그리고 사랑과 평화를 느끼게 해 준다. 「일기장」은 흔하게 다루는 소재인데도 무리한 기교 없이 차분하게 동심의 세계로 이끌어 가면서 시적 환상과 아름다운 꿈을 심어 주고 있다.”고 평했다.
일기장은/ 기억의 냉장고야/ 하루에 보고 듣고 한 일/ 싱싱하게 보관해주는//
그냥 내버려 두면/ 쉽게 상해 못 먹게 되는 음식처럼/ 기억도 생생할 때 보관해 두지 않으면/ 곧 사라져 버리게 돼//
엄마가 장 봐 온 채소를 다듬듯이/ 하루에 일어난 일/ 잘 다듬어서 넣어 둬야지//
심심할 때/ 오래된 일기장을 꺼내 읽으면/ 냉동실에서 꺼낸 아이스크림처럼/ 꽁꽁 얼어 있던 옛날의 기억이/ 살살 녹으면서 달콤한 추억/ 맛보게 해 줄 테니까
-「일기장」 전문
일기장을 냉장고에 비유한 게 얼마나 멋진 상상력인가. 체험도 생생할 때 저장해 놓으면, 냉장고에서 먹고 싶을 때 꺼낸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추억의 맛이 되겠지.
동시집 머리말에서 ‘동시는 언제나 아이들의 시간과 함께 합니다. 코로나19로 익숙하던 일상의 장면들이 많이 변화하고, 때로는 답답함과 싸우며 성장했을 모든 어린이들에게 격려의 마음을 보냅니다. 많은 시간 동안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고 쌓아둔 생각과 에너지들이 이 동시집을 닫고 멀리 나아가 서로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코로나19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아이들은 ‘답답함과 싸우며’ 성장했으리라 생각하니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아침에 만나면/ -오늘 하루도 행복하자./ 클로버 같은/ 하트 모양 잎/ 활짝 펴서 인사하고//
저녁에 만나면/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하트 모양 잎/ 날개 접어/ 편히 쉬라 하지요.
-「사랑초」 전문
사랑초는 하트 모양의 잎을 가진 꽃이다. 다섯 장의 꽃잎도 사랑스럽다. 사랑초를 보면서 사랑과 행복이 넘치길 소망하고 싶었을 게다. ‘사랑초’라는 상관물을 통해서 그 사랑을 온전히 전하고 싶다. 어쩌면 윙크도 하면서.
「온천천 왜가리」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와 감정이입하여 혼자 즐거워한다. ‘-촬영 기사 별로군! 어쩌지?/ 고민이라도 하는지/ 가만히 서서 꼼짝 않는다.’고 하면서.
엉킨 실타래/ 풀어지면 좋고//
수학 문제/ 잘 풀리면 좋지만//
풀어지면 곤란한/ 것도 많아//
자꾸 흘러내리는/ 내 안경테 나사//
시험 전 날/ 공부하는 내 마음
-「풀어지다」 전문
수년 전이다. 부산대변초등학교(‘용암초’로 개명)의 ‘꼬마시인학교’에서 동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그의 성실과 열정을 보았다. 그는 풀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나는 대강 철저히였지만, 그는 아이들이 풀리지 않게 나사못을 죄듯 교재연구와 학습 준비도 철저히 했다. 그 때문에 결과도 좋아 나까지 우쭐하게 했다. 살아가면서 풀려야 하는 것도 많지만, 풀어지지 말아야 할 것도 많다. 그는 풀어지지 않는다. 성실하고 꼼꼼하고 차분함이 그의 매력이다.
-발이라고/ 언제나 맨 아래/ 있는 거 아니야//
-맨날 땅만 밟고/ 다니란 법 있어?//
-나도 맨 위에서/ 있는 게 좋아//
-깜짝 변신이 필요할 때/ 나를 불러 줘.//
-내 이름은 가발이야
-「깜짝 변신이 필요하면」 전문
조용하고 차분해서 농담도 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표현하지 않았을 뿐 여유와 유머를 즐길 줄 안다. 가발을 보고 어떻게 이런 착상을 했을까? ‘가발’도 ‘발’이었다. 깜짝 변신이 필요할 때 맨 아래가 아니라, 맨 위에 올라앉는 발이라고 너스레를 날릴 줄 안다.
아빠 출장 가고/ 없는 날//
거실도 방도/ 너무 크게 느껴진다.//
집에 오면/ TV 켜 놓고/ 누워만 있는 아빠인데//
아빠가 없으니/ 대문 잠그고/ 현관문 잠그고//
문단속 자꾸 해도/ 마음이 안 편하다./ 아빠 코 고는 소리 그립다.
-「아빠 없는 날」 전문
아빠의 존재감은 출장하고 집을 지우면 나타난다. 아빠는 집에서도 ‘TV 켜 놓고/ 누워만 있는’ 시간이 많다. 그런 아빠지만 아빠가 안 계시면 집안이 넓어지고, 대문과 현관문을 더 단단히 잠그게 하고, 문단속을 해도 마음이 편하지 않게 한다. 그게 아빠의 무게감이 아닐까? 가족에 대한 사랑이 절절이 느껴진다. 아빠 코 고는 소리도 그리울 만큼.
에프킬라/ 파리채 반격에/ 이리 저리 잘도 피해/ 약 올리더니//
작전을 바꾸어/ 집 안 불 모두 끄고/ 방충망 열어서//
후레쉬 비춰주며/ 잘 가시라 배웅했더니//
그제야/ 유유히 밖으로/ 빠져나갔다.
-「자존심」 후반부
똥파리 한 마리가 귀찮게 군다. 식탁에 앉았다가, 게임하는 내 팔과 목에도 앉는다. 그러나 파리 한 마리도 죽일 수 없다. 파리도 자존심이 있을까? 마음이 여리니까 파리의 자존심을 보면서 그를 살려낸다.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다.
그 순수한 마음은 「두꺼비 대이동 시기」에도 나타난다. 온천천 연못가에서 아기 두꺼비들이 이동한다. 그 길을 걸어갈 수 없다. ‘작은 생명들의 행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도 조심조심/ 실피며 걷자’며 당부한다.
식탁들 모두/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고//
의자들이 그 위에/ 거꾸로 얹혀/ 숨죽이고 있다.//
줄 서서 기다리던/ 손님들 못 본 지 오래//
하루에도/ 수십 번 부지런히/ 닦아주던 손길 그립다.
-「휴업 식당」 전문
문학은 시대를 반영한다. 문학가는 그 현상을 취재하며 동화하거나 아파하거나 울분한다. 코로나19가 터지고 사회변화도 많아진다. 장기화되면서 ‘휴업식당’이 늘어난다. 그게 마음이 아프다. 어쩌면 연민이다. 여리고 선한 품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시멘트 포장길/ 틈새에 핀/ 민들레 한 송이//
노란 웃음 속에/ 일렁이는/ 흙의 마음//
매일매일/ 지나는 사람들에게/ 꽃길 되어 주고파//
시멘트길 틈새로/ 올려 보낸/ 흙의 소망
-「꽃길 되고파」 전문
겸손하다. 자신의 피해를 감당하면서도 남에게는 웃음을 보여야 한다. 그래서 ‘시멘트 포장길/ 틈새에 핀/ 민들레꽃 한 송기’가 되고 싶다. 지나가는 사람의 발길에 짓밟힌다. 그래도 ‘꽃길’이 되어서 꽃 같은 웃음과 사랑을 드리고 싶다. 이처럼 순박하고 겸손하게 살고 싶다. 그게 그의 천성이다.
박선미 시인은 발문에서 ‘작품에 담긴 세계는 모두 따스하고 희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도 함께하면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과 서로를 배려하는 인간의 도리를 쉬운 말로 나타내었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깊이가 있습니다.’라고 했다. 따스하고 희망찬 노래! 믿음과 배려의 언어! 그게 사랑 아닌가.
그는 조용하고 차분하고 겸손하고 사려 깊다. 목소리도 크지 않다. 그래서 음악도 요란한 소리의 악기를 싫어난다. 우쿨렐레 연주는 수준급이다. 핸드벨 같이 은은한 소리의 악기로 아이들과 즐긴다. 아마 오늘도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사랑과 눈 맞추며 소박하고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따스하고 차분하게 동심의 노래를 부르고 있으리라.
수년 동안 꼬마시인학교에서 조윤주 시인을 만났다. 그의 성실한 노력과 지도와 감화력에 아이들도 행복했으리라. 그때를 추억하며 그의 사랑과 눈 맞춘다.
(2023. 1. 28)
첫댓글 <무리한 기교 없이 차분하게
동심의 세계로 이끌어 가면서
시적 환상과 아름다운 꿈을 심어 주고 있다.>
조윤주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제가 가졌던 생각이
그대로 적혀 있어 반갑습니다.
응원과 격려를 해주는 선배님이 계셔서
늘 든든합니다.
책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박일 선생님, 동시집 꼼꼼하게 살펴봐 주시고 이렇게 귀한 글로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심의 풍경>>에 저에 대한 언급이 없으셔서 궁금했는데 이제야 알게 됐네요. 꼬마시인학교 오고 갈 때 차가 없는 저와 초혜 샘을 수년 동안 태워주신 덕분에 편하게 다닐 수 있었습니다. 늘 감사한 마음 잊지 않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마음에 걸려하셨다니 제가 좀 미련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좀 쑥스럽더라도 "선생님, 저는 왜 빠뜨렸어요?" 하고 여쭤봤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저의 졸작들이 선생님께서 평을 해 주시니 시가 더 맛깔스러워졌습니다. 심심한 제 시에 풍미를 더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초보자 수준의 제 우쿨렐레 연주까지도 수준급으로 봐 주시니 자존감이 하늘만큼 커 진 듯 합니다. ^^ 누구보다도 풀어지지 않으시고 부지런하신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조윤주 선생님의 동시집 <하늘이 커졌다>에 대한 해설을 잘 달아놓으셨군요.
열정적인 박일 선생님, 감사합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