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1027, 421, 524, 309, 430, 1833, 914, 9000 , 1, 9004 , 9012
* 묵도 – 60
* 찬송 – 314(구500)장
* 말씀 – 신명기 8장 1~6절(구약274)
* 제목 – 신앙은 훈련이다
[1]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아멘
신앙은 훈련이다. 이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는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시고 광야로 인도하셨다. 그러면 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을까? 바로 그들을 훈련하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사단의 종노릇을 하고 있었던 우리도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셨으나
(행 7:38)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고 기록된 것처럼 우리를 광야교회로 인도하셨는데, 그 이유 또한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이유와 동일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어 보자!
1. 명령을 지킨 자에게 축복을 주기 위해서(1).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가 명령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서뿐만 아니라 성경 곳곳에 하나님의 말씀이 명령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먼저 모세가 처음 하나님의 말씀인 십계명을 받은 후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출 19:7) 『모세가 내려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들 앞에 진술하니』
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모세가 죽은 후 모세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할 여호수아에게도 말씀하시기를
(수 1: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라고 말씀하셨으며, 그 후에도 하나님은 그 백성들에게 끊임없이 당신의 말씀이 명령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며 그 명령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그 명령은 그들이 지키기에 쉬운 명령이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들이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명령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명령에 순종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이유는 그 명령에 순종하는 자에게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시고 그들에게 명령하시며 그 명령의 순종 여부에 따라 그들을 축복하신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명령하시며 그 명령에 순종하라고 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어떠한 명령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그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그러할 때 우리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셔서 그들을 훈련하신 이유는
2.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2).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이유가 그들이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고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드러내어 그들의 실상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다는 사실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고 기록하고 있는데, 애굽을 빠져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에는 모세와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류의 사람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덧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을 분노케 하는 자들과 매 순간마다 원망 불평하는 무리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자들의 마음을 드러내어 그들을 심판하시기 위함이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런 자들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막 7: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라고 하셨다. 이는 우리 믿음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신앙이 결코 쇼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신앙은 안 통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자들의 그 모든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여 훈련을 시키셨던 것이며, 지금도 믿는 자들을 그렇게 훈련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아무리 쇼를 잘 하는 자라 할지라도 실제 훈련에 들어가면 결코 쇼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겉으로는 믿음이 좋은 척해도 불같은 시험이 다가오면 그 믿음은 결국 다 드러나게 되는데,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벧전 1: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되 쇼 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우리에게 주어진 광야 훈련 과정을 잘 통과하여 그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께 향해야 한다.
그리고 세 번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셔서 훈련하신 이유는
3. 말씀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3).
광야는 먹을 것이 풍부하지 않다. 마실 물도 없다. 다시 말해서 광야에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그 어떤 것도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한 환경 가운데서도 그 백성들을 먹이시되 매일 끊임없이 만나로 먹이셨는데,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스스로 농사하여 수확하기까지 먹여 주셨다. 이에 대하여
(수 5:12)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무 먹을 것도 없는 광야로 인도하셔서 만나를 주셨을까? 이는 위에서 말했듯이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그 어떤 것조차도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지 않으시면 인간은 결코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하여 말하기를
(출 16: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라고 하였으며,
(민 20:5)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라고 하였는데, 그러한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누렸던 그 모든 것들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아무것도 없는 광야로 인도하셨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눈에 보이는 만나와 같은 세상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그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신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이 향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골 3: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고 하였으며, 예수님께서도 40일 동안 금식하신 후 주리실 때에 예수님께 다가와 돌이 떡이 되게 하여 먹으라고 시험하던 사단을 향하여 오늘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하시기를
(마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라고 말씀하심으로 사단의 유혹을 물리치셨다. 그러므로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과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 어떤 훈련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모든 훈련을 잘 이겨내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셔서 훈련하신 이유는
4.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기 위해서(4~6).
우리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 경외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자는 그의 글 마지막부분
(전 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고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어리석어서 수많은 우상들을, 그리고 인간을 경외의 대상으로 여기며 섬기고 있다. 바로 애굽이 그랬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섬기던 그 모든 신들이 헛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애굽에 있던 모든 신들을 심판하셨다. 그것이 곧 애굽에 내리신 10가지 재앙이다. 그런데 그것을 목격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애굽에 머물러 있으며 그들의 문화에 젖고 그들의 풍습을 보고 자랐으므로 여전히 그 헛된 신들을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이 아닌 헛된 우상들을 경외하고 있었다. 이에 대하여
(왕하 21:15) 『이는 애굽에서 나온 그의 조상 때부터 오늘까지 내가 보기에 악을 행하여 나의 진노를 일으켰음이니라 하셨더라』
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떨쳐버리게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셨던 것이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끝까지 그 헛된 신앙을 버리지 못했던 출애굽 1세대 중에서 남은 자는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 밖에 없었다. 이에 대하여
(민 14:38)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서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
고 기록하고 있다. 즉 나머지는 다 광야에서 죽었다는 말이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체험하고 애굽에서 구원받았다 할지라도 여전히 과거 헛된 것을 버리지 못하게 되면 결국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을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계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고 경고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 또한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잊지 말고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기까지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할 때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저 하늘나라에서도 예비해 놓으신 상급과 면류관을 받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말씀을 맺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광야로 인도하여 그들을 훈련하셨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명령으로 받아 그 명령을 지킨 자에게 축복을 주기 위해서이며,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그 어떤 순간이든지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그 마음을 알기 위해서이었으며, 그들이 말씀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229 1322(광야를 지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