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처럼
약을 먹는것도 중요하지만 운동을 하지 않으면 노년기를 불행하게 보낼 수 있다고 하는데 눈앞이 깜깜했다. 운동밖에 답이 없다고, 지금부터라도 근육을 저축했다가 나이 들면 빼 먹어야 한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날 집에 와서 바로 실내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에 10리 길을 자전거로 통학했기에 자전거 타는 일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실내 자전거라고 얕볼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2단 기어를 놓고도 뻑뻑해 발 구르기가 힘들었다. 얼마나 용을 쓰며 페달을 굴렸는지 어깨. 골반이고 허리까지 아리아리했다. 조급한 마음에 무리했다가 며칠을 앓았다. 여전 같으면 몸살을 핑계 대고 바로 그만두었을 텐데 진통제를 먹으며 매일 한 두 시간씩 꾸준하게 페달을 밟으며 독수리를 생각했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지혜롭고 현명한 독수리의 삶이 존경스러워 보였다. 평균 수명 70여 년을 사는 독수리는 마흔 살이 되면 부리가 닳고 노화 되어 사냥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때 독수리는 먹고 지낼 먹이를 최대한 모아놓고 부리 뽑을 결심을 한다. 30년을 더 살기 위해 닳고 낡은 부리를 쪼아 뽑아내는 고통을 선택하는 것이다 독수리는 최소한의 먹이로 연명하면서 노화된 부리를 바위에 쪼고 잘게 부수어 억센 발톱으로 뽑아낸다. 그 긴 고난의 시간을 견딘 자만이 다시 하늘의 왕이 된다는 것을 독수리는 이미 알고 있었고. 다시 한번 하늘을 날기 위한 최후의 도전이었으리라.
그들의 삶을 생각하니 내가 독수리만도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꺼내 쓰기만 해서 찾아온 소진증후군을 다시 채울 생각은 왜 못 했을까 이른 폐경 탓만 하며 손 놓고 지냈던 내가 매욱했다는 생각이 들였다. 독수리의 고통에 비하면 그깟 자전거 타고 걷는 일은 아무것도 아닌데 그것도 힘들다고 툴툴거렸으니 말 못 하는 독수리도 자기 몸을 끔찍하게 아낀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틈나는 대로 부지런히 걸었다. 어떤 날은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지기도 했지만, 이를 악물고 운동했더니 두 달 만에 5단 기어를 올려놓고 타도 될 만큼 허벅지와 종아리가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도 장년기에서 노년기로 접어드는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노후의 건강이 보장되는 듯싶다. 처절한 고통을 이기고 생의 변곡점을 맞이하는 독수리처럼 갱년기가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여성호르론 감소가 보내는 신호에 아프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나를 좀 봐달라는 것으로 받아들여 보상해 주는 기회로 삼으면 좋을 성싶다.
첫날, 신고식처럼 속에 쌓아둔 말을 풀어낸 그녀들의 표정이 갈수록 부드러워졌다. 부끄럽다고 꽁꽁 숨겨두었던 삶을 풀어내니 제법 공감할 수 있는 글이 완성되어 갔다 그녀들의 이야기에 같이 울고 웃을 수 있어 좋다. 바람이들어 구멍이 숭숭 난 자리가 메워지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새로운 부리로비상하는 독수리처럼 그녀들의 얼굴에도 곧 생기 넘치는 날이 찾아오리라 믿는다.
박종희
시흥문학상, 김포문학상, 성호문학상 등 다수 수상 한국작가회의, 충북작가에서 활동 중 수필집 가리개. "출가! essay022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