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 1674, 421, 540, 359, 542, 620, 914, 9000 , 1, 9004 , 9012
* 묵도 – 84
* 찬송 – 212(구347)장
* 말씀 – 히브리서 5장 11절~6장 2절(신약357)
* 제목 – 성장하는 신앙
[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12] 때가 오래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6: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아멘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이 멈추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신다. 즉 우리의 신앙은 날마다 계속해서 성장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왜 우리의 신앙이 성장해야 할까? 그리고 신앙이 성장한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 어떤 신앙을 성장한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어보자!
1. 어떤 말씀이든지 이해할 수 있는 신앙(11).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먼저 말씀하시고 그 하신 말씀을 반드시 그대로 이루신다. 그래서 모압 나라의 발락 왕이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기 위해서 발람 선지자를 불렀을 때, 그 곳에 불려간 발람 선지자가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기를
(민 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말씀하시고 말씀하신대로 이루어 나가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모른다. 그래서 안타까운 것은 말씀을 잘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자들이 쉽게 이단에 빠지고 사단의 계략에 넘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하여 말하기를
(벧후 1:20,21)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고 기록하고 있으며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라고 말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면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으면 쉽게 시험과 사단의 올무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직분자를 세울 때에 반드시 성숙한 신앙을 가진 자를 세워 믿지 않는 자들에게 아름다운 영향력을 끼치게 하라고 말하였는데,
(딤전 3: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반드시 성장해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성장한 신앙은
2. 어떤 말씀이든지 받을 수 있는 신앙(12,13).
오늘 본문에 히브리서 기자는 신앙이 연약한 자를 젖 먹는 어린아이에 비유하여 말하고 있다. 이는 앞에서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성경에 대해 말한 내용에도 있듯이 신앙이 성장한 사람은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교훈도 받고, 책망도 받고, 바르고 의로운 자로 세워질 수 있어야 하는데 젖 먹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소유한 자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비유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신앙은 어떠한가? 위의 모든 말씀을 받을 수 있냐는 말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 세대의 많은 사람들이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한
(딤후 4: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라는 말씀처럼 바른 교훈을 받기를 싫어하여 예배자로 말씀은 받고 있으나 말씀과 상관이 없는 자기 사욕에 치우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마지막 때에 말씀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보일 반응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비유하여 말씀하시기를
(눅 7:32)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앞에서 말했듯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은 받으나 그 삶은 말씀과 상관이 없는, 즉 말씀 따로, 삶 따로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미 2:6) 『그들이 말하기를 너희는 예언하지 말라 이것은 예언할 것이 아니거늘 욕하는 말을 그치지 아니한다 하는도다』
라고 기록된 말씀처럼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을 때 자기 귀에 거슬린다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욕으로 듣고 그 말을 듣기 싫어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또는 스데반 집사가 말씀을 전했을 때 나타난 현상, 즉
(행 7: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라고 기록된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려도 회개치 않고 오히려 이를 가는 너무 악한 세대가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어떤 말씀이든지 달게 받고 변화되어 그러한 부류의 사람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신앙이 계속 성장해야 한다.
그리고 세 번째, 성장한 신앙은
3. 연단을 통하여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신앙(14).
인생을 사노라면 크고 작은 고난의 순간들을 수없이 만나게 되며 겪게 된다. 그래서 욥기에서는 말하기를
(욥 5:7)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가는 것 같으니라』
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즉,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려면 크고 작은 고난들을 겪게 되는데 그렇다 할지라도 어떤 경우든지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해서는 안 되며 또한 하나님을 떠나서도 안 된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지난주에도 말했듯이 그래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그 모든 것을 이겨낸 후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욥은 고백하기를
(욥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고 하였고, 사도바울도 말하기를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장성한 자, 즉 인생 가운데 젖이나 먹는 어린 아이의 단계를 뛰어 넘은 자만이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신앙에 있어서도 초보적인 신앙을 뛰어 넘어야 만이 어떤 말씀이든지 이해하거나 받을 수 있고, 그러한 자만이 어떤 연단이든지 이겨낼 수 있으며, 또한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계속 성장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크고 작은 연단은 계속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모든 연단을 이겨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 선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그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신앙은 반드시 계속해서 성장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로 성장한 신앙은
4.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데까지 이르는 신앙(6:1,2).
이는 신앙의 기본, 말씀의 기본적인 부분, 즉 예전의 죽은 행실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 가운데 세례를 받고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을 받아 터를 닦았으면 이제 성령 안에서 그에 합당한 믿음의 집을 지어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엡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라고 말한 후에
(엡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라고 말하였다. 이처럼 터를 닦았으면 이제 계속해서 신앙의 집을 지어가는 새로운 작업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다시 말해서 더 성숙한 신앙의 자리까지, 더 깊은 말씀의 단계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기초에만 머물러 있고, 말씀의 깊이를 체험하지 못하여 신앙이 성장하지 못한 체 그 이후의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엡 3: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고 말하였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한 성도들조차도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여 사단의 꼬임에 넘어가 하나님의 존재성을 의심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 이후에 히브리서 기자는 그런 사람에게 형벌이 따르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히 6:4~6)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반드시 성장해야 한다. 그래야만이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어리석고 욕된 삶을 살지 않게 될 것이다.
말씀을 맺겠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는 초보신앙, 즉 젖 먹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 죽은 신앙을 빨리 버리고 반드시 신앙이 성장해야 하는데, 즉 우리의 신앙은 어떤 말씀이든지 이해할 수 있는 신앙을 소유해야 하며, 어떤 말씀이든지 받아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신앙을 소유해야 한다. 그리고 삶 가운데 다가오는 모든 연단을 이겨 낸 후에 선악을 분별하여 악한 사단의 꼬임에 넘어가지 말아야 하며, 마지막으로 말씀과 신앙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데까지 이르러 결코 흔들림이 없는 신앙을 소유해야 한다. 그러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그 삶을 축복해 주실 것이다. 그러한 은혜를 모두 받아 누리는 우리 열방하이교회 모든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1028(비바람이 갈 길을 막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