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황석우
가을 가고 결박 풀려 봄이 오다.
나무 나무에 바람은 연한 피리 불다.
실강지에 날 감고 날 감아
꽃밭에 매어 한 바람 한 바람씩 탱기다.
가을 가고 결박 풀어져 봄이 오다.
너와 나 단 두 사이 맘의 그늘에
현음 감는 소리 타는 소리
새야 봉오리야 세우(細雨)야 달야.
* 실강지 : 실을 감아 두는 작은 나무쪽.
* 한 바람 : 실의 한 발쯤 되는 길이.
* 현음(絃音) : 악기줄 튕겨 나는 소리.
* 세우(細雨) : 가랑비.
황석우(1895~1960)
시인, 서울 태생. 아호는 상아탑.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과를 졸업.
<창조><장미촌>의 동인이었으며 초창기 시단의 선구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그의 시는
당시의 시단 풍조인 허무주의 이상주의적인 모든 경향과 색채를 낭만적이고 상징적인
수법으로서 시화해 본 시인이었다.
한 때 중외일보와 조선일보의 기자를 지낸 후 시단에 돌아와 다시 시작을 전개하여 호평
과 기대를 받았으나 큰 성과를 못 본 채 별세하였다.
저서에 <자연송 · 自然頌>이 있다.
<구성의 분석>
전 연으로 된 서정시.
제 1행. 가을이 가고 얼어 붙은 겨울의 결박도 풀려 봄이 왔다고.
제 2행. 그래서 나무와 나무의 가지들에 부는 봄바람은 마치 피리 소리같이 연하게 들린
다고.
제 3·4행. 실강지에다 실을 감는 것과 같이, 길고 긴 세월을 감아 꽃밭의 꽃나무에다 매
어 두고, 부는 바람으로 하여금 매어 둔 세월의 거문고 줄을 튕기게 한다고.
제 5행. 봄이 왔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제 6·7행. 너와 나 단 두 사람 사이에 느리워진 사랑의 그늘 아래에는 봄철의 현악기 줄
을 감는 소리 또는 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고 표현한 후에.
제 8행. 봄을 한층 즐겁게 하여 주는 사상들의 이름, 즉 새와 꽃봉오리와 가느다란 봄비
와 달을 감동적으로 부른다.
<감상(鑑賞)>
1900년 대에 시를 쓴 시인은 최남선 한 사람 뿐이다. 그 뒤
1910년 대에 이르러 김안서, 주요한, 황석우 등의 새로운 젊은 시인들이 나와 최남선의 뒤를 이어 쓰기 시작하였다. 이 시는 그 10년 대에 쓰여진 황석우의 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 시기에 배출된 상기한 시인들은 훨씬 후일인
1920년 대나 30년 대에 이르러서는 문학사에 남을 만한 좋은 시작품을 내어 놓았지만, 그들이 1910년 대에 나와서 처음으로 써 낸 작품들을 오늘의 안목으로 보면, 매우 단조롭고 유치하다. 다음의 작품 즉,
봄은 간다(김안서 작)
날은 빠르다.
봄은 간다.
깊은 생각은 아득이는데
저 바람에 새가 슬피 운다.
검은 내 떠 돈다.
종소리 빗긴다.
말도 없는 맘의 설움
소리 없는 봄의 가슴
꽃은 떨어진다.
임은 탄식한다.
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때의 작품들에는, 감상적인 사실만을 단조롭게 나열하여 놓았을
뿐, 그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전개하는 상상의 새롭고 풍부한 힘을 찾을 수 없다. 일상생
활에서 흔히 보고 당하는 평범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시가 그것을 우리에게 새롭고 풍
부하게 하여 주는 이유는 그 평범한 사실을 작품의 상상력에 의하여 사실 이상 갱신하
여 주며 사실 이상으로 풍부히 변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에 있어 상상력의
구사는 작자의 역량에 좌우되게 된다.
그런데 1910년 대의 시인들은 상상력을 구사하여 평범한 사실을 새롭고 풍부하게 변화
시켜 버여 주기에는 아직도 역량이 부족하였었다.
이러한 시기에 있어 쓰여진 시 작품치고는 황석우의 이 작품은 어느 정도의 상상력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제 3행과 제 4행의 표현에서 이 작자는 세월을 실에다 비유하고,
그 세월의 실을 꽃밭에다 매어 두고 거문고 줄 튕기듯이 봄을 노래하며 튕기겠다고 상상
적인 표현을 하고 있는 대목은 1910년 대의 시로서는 흥미롭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 행의 표현에서도, 말 마디의 종지사를 「야」로 통일시켜 일정한 리듬의
효과를 발생시키기 위하여, 「달아」를 「달야」로 고친 것은 이 시에서 작자가 얼마나
표현 기교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주제 : 봄을 맞는 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