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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th Sunday December 2013 성심교회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눅16:1~9
농부의 결산은 추수할 때 이뤄집니다. 사업의 결산은 분기마다, 연도마다 이뤄집니다. 인생의 결산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이루어져 구원과 상을 받을 수도 있고 심판과 형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인생의 끝은 아무도 모릅니다. 성경은 인생의 날 수가 칠십년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하였습니다. 청소년들에게 7-80년은 천년처럼 느껴지겠지만 지나고 나면 신속하게 지나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인생은 심판의 날을 맞기 전에 평소에 돌아보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새로운 한 해를 지낼 때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말씀으로 우리의 인생을 반성해 보는 것이 지혜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귀한 지혜를 주시기 위해 불의한 청지기로 비유하여 말씀해주셨습니다. 부자는 자신의 청지기가 재산을 낭비한다는 소식을 듣고 해고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청지기는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주인에게 빚 진 자들을 불러 주인의 허락도 없이 탕감해 주었습니다. 빚 탕감은 누가 보아도 부자를 더 화나게 만들 일입니다. 그러나 부자는 청지기의 지혜를 칭찬하였습니다. 이 일은 우리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듭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 : 불의한 청지기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지키고 늘려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야기에 나오는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허비하였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부자는 주님을, 청지기는 우리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부자가 칭찬한 청지기의 지혜가 무엇인지 깨닫고 우리도 가져야 할 것입니다. 2013년을 하나님 앞에서 결산하는 마음으로 두 가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 방탕하여 낭비한 자들
우리는 뉴스를 통하여 가끔 은행 직원이나 회사에 재무 담당자가 회삿돈을 빼돌려 탕진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곤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불의한 청지기는 오늘날 이런 자들과 같다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부자는 불의한 청지기를 해고하려고 마음먹었고, 청지기는 이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청지기는 거짓말 할 생각하기보다 자신의 불의를 인정했습니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벌을 피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해고 다음 일을 여러 방면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교회는 모두 다 자기 일에 충성하여 방탕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 눈에는 우리가 영적으로 방탕한 삶을 사는 것으로 비춰지곤 합니다.
둘. 자기의 유익을 위한 낭비
청지기가 주인 것으로 자기를 위해 쓰는 것은 주인 입장에서 낭비입니다.
재정을 주제로 간증 집회를 다니는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소유를 가지고 주의 일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 중에 어느 날 갑자기 부도가 나서 100억 원의 빚을 지게 됐습니다. 채권자 수십 명이 매일 전화하고 찾아와 괴롭혔기에 도무지 살 수 없었다고 합니다.
집사님은 채권자들을 불러 부탁했습니다. 사업해서 돈을 갚을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반드시 돈을 벌어 빚을 갚을 것이니 사업할 수 있도록 자유를 달라며 기간을 정하여 약속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집사님은 갈 곳 없이 집회에 참석하였는데 하나님께 한없이 원망만 하게 됐습니다.
하나님! 제가 무명으로 건축헌금을 일억 원이나 했습니다. 아프리카 선교사가 우물 파는 돈이 필요하다 해서 삼천만 원 헌금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망한 것입니까? 라고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네가 그렇게 하는 것이 나의 이름을 위해서 했느냐? 너의 이름을 했느냐?’ 집사님은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명으로 건축헌금 하고도 친구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신신당부를 했지만 이 이야기는 온 교회에 퍼졌고, 집사님은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 칭찬으로 자신이 공주가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주님의 것으로 자신의 이름을 높이려 했던 것들이 떠오를 때 통곡하며 회개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내 이름을 높이려 하면 불의한 청지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산을 옮기는 큰일을 하더라도 하나님 이름을 위해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이 한 해가 지나기 전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행한 것이 진정으로 오직 주님만 위해서 일을 했는지 우리를 점검하여 보는 귀한 시간을 가져 보기 바랍니다.
둘째 :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불의한 청지기는 자신이 행한 대로 주인에게 판결을 받아야 하고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처지였습니다. 청지기는 난국에서 어떻게 할지 깊이 생각한 끝에 친구를 사귀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자신의 즐거움을 행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막상 주인 앞에 서게 되니 그 모든 것이 자신에게 심판으로 돌아온 것을 생각한 끝에 남을 위해 사는 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친구를 사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청지기는 자신의 소유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아직 사용 권한이 있는 주인의 재산을 사용할 생각을 했습니다.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 빚을 감해주었습니다. 이 사건은 주인의 화를 더 키울 일이라 생각됩니다. 청지기는 주인에게 더 무거운 형벌을 받아야 할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인은 불의한 청지기가 지혜롭다며 칭찬했습니다. 부자의 계산하는 방법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생각해 봅시다.
하나. 주인과 빚진 자의 관계를 맺는 지혜
청지기는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 그 빚을 탕감해주었습니다. 만약에 청지기 이름으로 탕감해 주려 했다면 빚진 자는 탕감 받으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런 효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이름으로 빚을 감하여 줬습니다. 그래야 탕감에 법적인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누구의 것입니까?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는 불의한 것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 것이라고 생각해야 오늘 말씀의 지혜를 가질 수 있습니다.
마태는 주님의 비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 6: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0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이 말은 오직 주님만을 드러내고, 자신의 이름을 감추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청지기가 주인의 것을 탕감해준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것입니다. 홍길동처럼 도둑질해서 남에게 베풀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것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것이라고 인정하면서 베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재물의 달란트, 은사의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우리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 알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기에 우리 것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물질을 맡겨주셨고 은사를 맡겨주셨고 말씀을 맡겨주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거저 받았습니다. 그것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베푼 것처럼 베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감동되지 않으면 그 불의한 청지기의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지혜를 갖지 못한다면 내가 교회를 살렸고 내가 교회를 위하였고 내가 죽도록 충성하였고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선지자 노릇을 하고 많은 일을 했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인의 것을 허비하는 것입니다.
(마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이런 자들은 영원히 심판을 할 것이고 청지기처럼 오른 손이 하는 왼손이 모르게 하라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주인이신 영 성령께서 하게 하신 것으로 죽도록 충성할 때 하나님은 상을 주십니다. 그 상은 노력의 대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제대로 누렸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을 거저 주신 것처럼 우리도 베풀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지혜롭다고 상을 주실 것입니다.
둘. 탕감은 능력을 주는 지혜
불의한 청지기는 주인에 버림받을지라도 주인에게 빚진 자들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일부를 탕감해 주었습니다. 불의한 청지기는 가난한 자를 찾았습니다. 빚진 자를 찾았습니다. 스스로 살아 갈 수 없는 자들을 대접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름 백말을 오십 말로 고치게 하였습니다. 밀 백석을 팔십이라고 고쳐 쓰게 하여 이십 석을 탕감해 준 것입니다. 이것이 자신의 종말을 예비한 것입니다.
주인은 청지기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롭다 말한 것은 부자에게 베푼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능력 없는 자를 탕감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부자에게 주었다고 하면 그 주인은 끝까지 책임을 물었을 것입니다. 솔로몬도 부자에게는 주는 자는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부자에게 주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는 것입니다.
(잠 22:16) 이익을 얻으려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와 부자에게 주는 자는 가난하여질 뿐이니라
불의한 청지기는 솔로몬의 지혜로 가난하고 빚진 자를 찾아 빚 일부를 탕감해 준 것입니다. 빚 전부는 갚을 능력이 없지만 일부를 탕감하여 일부라도 갚게 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경영방법이라고 믿습니다. 기름 백말을 받겠다고 주장하다 그 하나도 못 받은 것보다 오십을 감하여 나머지를 갚게 할 때 주인은 그 청지기를 지혜롭다 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가난한 자를 찾아야 합니다. 진리의 이름으로 가난한 자에게 베푸는 것이 주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가난한 자가 있는 것입니다. 가난은 공중 나는 새와 굴을 가지고 있는 여우보다 더 가난한 자입니다. 바로 주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복음 때문에 가난한 자를 하나님처럼 대접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반드시 갚아 주십니다.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지혜가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로 말미암아 가난한 자를 도왔습니다. 수백 년 동안 천막에 계시는 주님, 그 주님은 지극히 가난한 주님이십니다. 그 주님을 위해서 성전을 건축한 것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을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빌려주어서 받은 것이 하도 많아서 그것을 계산할 수 없습니다.
(잠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복음 때문에 가난하고 이스라엘 백성으로 살려고 하는데 가난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대접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보고 지혜롭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을 주시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내게 갚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 주는 것은 이는 내 손길이 주님의 손길이요, 또한 받는 이가 곧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주는 것은 주께 대접하는 것입니다.
청지기는 그런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청지기는 탕감할 일로 주인에게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고 상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청지기와 같이 주님께 칭찬 받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감사하고 그것으로 인해 가난한 자를 주님께 하듯 대접하면 구원과 상을 주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것입니다.
매듭짓는 말씀
본문에서 불의한 재물이라는 것은 죄를 범하여 모은 재산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재물은 하나님께서 원치 않습니다.
(신 23:18) 창기가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어떤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
청지기가 주인의 것으로 탕감해 주는 것이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것입니다. 자기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의한 것입니다. 주인의 것으로 탕감해 주었더니만 그 탕감 받은 자가 친구가 됩니다. 이를 스데반과 바울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스데반은 바울에 의해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죽은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헛된 죽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데반은 죽어가면서도 바울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가 행한 것을 알지 못하니 사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바로 청지기가 주인에게 빚진 자를 탕감해준 것입니다. 바울에게 베푼 은혜로 말미암아 스데반 자신도 구원 받을 수 있기에 하나님께 죄를 범한 자를 용서 해 달라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어 주셔서 바울은 죄사함을 받고 스데반보다 더 큰 일로 하나님께 충성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빚진 바울을 스데반이 용서함으로 하나님께 지은 죄를 탕감을 받은 것입니다.
스데반도 주인이신 하나님께 죄를 범한 바울을 탕감하고 또한 바울도 그 탕감 받은 것으로 인해 구원 받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남은 빚을 평생 하나님께 빚을 갚는 신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빚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기의 죄를 회개하는데 나는 죄인의 괴수요 만물의 찌꺼기만도 못한다고 고백하며 자신이 하나님에게 진 빚을 갚아 나갔습니다. 하나님 앞에 빚을 갚은 생활로 인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 것을 보면서 우리도 빚을 탕감 받고 탕감을 하는 자로서 불의한 재물로 영적인 친구를 삼아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여 구원받고 또한 잘했다고 은혜로 상을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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