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말
욥기는 도대체 무슨 내용일까?
욥이란 뜻은 아버지 어디계십니까? 복받은 자라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이 복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대부분 욥기의 앞 부분과 뒷 부분을 읽고 욥기를 다 읽었다고 한다. 욥과 친구들의 대화는 맞는 말 같기도 하고, 틀린 말 같기도 하여 애매모호하여 대충 보고 건너 뛴다. 이번의 욥기 강해는 그런 애매모호한 부분을 분명히 정리하였다. 이들의 대화에는 바리새인들의 율법주의 문제가 깊이 베어 있다. 바리새인들은 인과응보와 권선징악의 사상을 담고 있다. 욥기 강해는 이런 율법주의를 철저히 부수는 은혜 신앙을 가르쳐 준다.
나는 한 선교사의 간증을 들으며 욥기 강해를 쓰고자 마음먹었다. 그분은 체코 선교사인데 젊은 나이에 아들 하나를 두고 남편을 하늘나라로 먼저 보냈다. 그 선교사는 남편을 잃고 일주일을 울었다. 일주일 후에 욥기를 읽기 시작하였다. 욥기를 열 번째 읽기 시작하였을 때 선교사는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하여금 갚게 하겠느냐”(욥기 41장 11절)는 말씀이 마음에 꽂혔다. 자신이 선교사로 헌신하였는데 하나님, 이게 웬일입니까? 하는 원망이 있었다. 그러나 선교사는 자신이 선교사로 온 것도, 남편이 먼저 간 것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되었다. 선교사는 이를 깨닫고 감사해서 일주일을 울었다. 선교사는 여자로서 체코 한인회 회장을 세 번이나 하고 신푸드 사장을 하며, 체코 UBF 선교지부장을 하고 계신다. 그가 깨달은 욥기는 모든 것이 은혜라는 것이다. 그의 간증을 듣고 욥기를 은혜의 관점에서 읽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아서 섬기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아무 이유가 없어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 자체가 은혜인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자랑스러워하신다.
그러나 욥기를 읽다 보니 욥기는 은혜의 책인 동시에 겸손의 책인 것을 알게 되었다. 욥의 네 친구와 욥의 공통된 문제는 자신이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는 교만이다. 그들은 교만으로 서로를 판단하고 욥은 하나님께 불평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만나면서 그들이 얼마나 무지한 존재인가 깨닫고 겸손을 배우게 된다. 욥기는 천지를 지으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을 깨닫게 하는 책이다. 우리가 다 알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욥기 강해다. 유한한 인간이 어떻게 무한한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아는 것은 뉴튼이 그 많은 과학지식을 발견하고 자신은 넓은 바다에서 조갯껍질 하나 주운 것과 같다고 말한 것과 같다. 이 말은 하나님은 아는 것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을 알려고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되 겸손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면 믿을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의 의문이 해소된다. 나의 죄를 깨닫게 된다.
욥은 이런 소통이 안 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중재자를 기대한다. 대속자를 갈망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내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신뢰하고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긍극적인 승리를 신뢰할 수 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완전한 공의를 신뢰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 속에서 현재의 고난을 이해하게 된다.
조금 더 깊이 읽다보니 욥기는 겸손의 책인 동시에 고난의 신비의 책인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욥과 친구들에게 고난을 받는 이유에 대해서 대답하지 않으시고 다만 천체와 생명의 신비를 말씀하신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은 고난 속에 담긴 하나님의 무한한 신비를 깨닫게 하신다. 고난 속에 있는 하나님의 완벽하고 아름다운 섭리를 말씀하신다. 지구는 태양을 정확하게 오랜 시간 돌고 있다. 그렇게 하나님은 정확하고 아름답게 우리의 인생을 섭리하고 계신 것이다. 욥기는 고난의 신비를 깨닫게 하는 책이다. 신비롭게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다만 찬양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