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손님 / 양선례
밭에서 풀을 조금 매고 들어왔더니 그새 영상 두 개가 올라와 있다. 하나를 열었다. 퇴원을 앞두고 목욕하는 법을 조리원 도우미에게서 배우고 있는지 다른 때보다 꽤 길다. 옷을 벗기자마자 울기 시작한다. 머리를 감기고, 수건으로 닦으니 그 작은 입을 있는 대로 벌리고 울어 재낀다. 혀가 입천장에 닿을 듯 올라가 있다. 물에 들어가 있을 때는 그나마 좀 낫더니 눕혀 놓으니 또 자지러진다. 배꼽을 소독하고, 기저귀를 채우고, 보습크림을 바르는 동안에도 지치지도 않고 울어댄다. 사람 마음 참 이상하지. 그 소리조차 어여쁘다. 건강하다는 신호처럼 기특하다.
두 누나를 제치고 작년 3월에 결혼한 아들이, 손자를 낳았다. 아이가 좀 크다는 의사 소견에 따라 예정일보다 일찍 유도 분만을 시도했다. 유도제를 석 대나 맞고 양수도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나저제나 기다렸지만 낳았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입원한 지 하루가 넘어가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휴대폰 문자에만 신경이 쓰였다. 서른두 시간이 되니 슬슬 걱정이 되었다. 아무리 첫 아이라고 하지만 너무 길다. 먹지도 못하고 산고에 시달릴 며느리를 생각하니 더 안타까웠다. 그런데 이게 웬일? 기다리는 소식 대신 제왕 절개하러 수술실에 들어갔다는 아들의 문자가 왔다. 자연 분만하겠다고 지금껏 진통을 견딘 며느리 마음이 오죽하랴. 그러나 가 볼 수는 없었다.
아들은 제주도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수도권에 사는 사돈댁도, 치매 걸린 어른이 계시는 터라 우리처럼 산모 옆을 지킬 수 없었다. 육지라면 아무리 멀어도 밤늦게라도 가 볼 텐데, 기다리는 동안 손이라도 잡아 줄 텐데,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며느리는 그 흔한 입덧도 없었다. 뭐든지 잘 먹었다. 생일날 아침에도 전화하니, 돼지국밥을 먹는 중이라고 하여 놀랐다. 병원에서 임신 진단을 받기 전부터 입덧이 시작되어 열 달 내내 고통에 시달리는 나에 비해 얼마나 큰 축복인가.(그런데도 셋이나 낳았으니 할 말이 없다.) 통닭집 앞을 지날 때는 기름 냄새를 견딜 수 없어서 숨을 참고 가야 했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먹는 것에 극도로 예민했지만, 낳을 때는 수월하다는 거다. 잘 먹고 낳을 때 고생하는 며느리가 나을까, 열 달 내내 힘들지만 쉽게 순산하는 내가 더 괜찮은 걸까?
하루에도 몇 번씩 손주 영상과 사진이 올라왔다. 처음 몇 번은 톡으로 보냈으나, 파일이 커서 마음대로 되지 않자 별도의 요금을 주고 사돈과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족 앨범’을 만들었다. 그걸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아이는 대부분 눈을 감고 있었다. 아기를 왜 천사에 비유하는지 이해가 갈 정도로 자는 모습도 이뻤다. 전체적으로 아들을 닮았다는 사람도 있고, 오뚝한 코와 큰 눈을 보고 며느리를 떠올리는 이도 있었다. 자식이 부모를 닮지 않으면 누구를 닮으랴? 그 당연한 이치를 알면서도 신기했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달라졌다. 열흘이 넘어가자 몸무게도 0.4kg 늘었다. 볼살이 올라 얼굴이 네모가 되었다. 눈도 어느 정도 맞추고, 고개에도 빳빳하게 힘이 들어갔다. 특히 떼쓰고 울 때 더 그랬다. 무엇보다 깨어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지난 금요일 저녁부터는 아들도 조리원에 들어갔다. 그동안엔 단 10분간의 면회조차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이루어졌다. 손자를 바라보는 아들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게 영상으로도 보였다. 그러나 안아볼 수 없었다. 그런 아들이, 태어난 지 열흘 만에 손자를 품에 안았으니 얼마나 감개무량했을지 눈에 그려졌다.
‘커서 공부 잘하게 생겼대요, 얼굴이 미남이래요.’ 세상에서 저 혼자만 자식을 낳은 듯 아들은 주변의 작은 칭찬도 우리에게 낱낱이 보고했다. 낮에 목욕시키는 동안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달래면서 ‘폐활량이 좋은 아기’라고 했다는 도우미의 말까지도. 그래, 아들아! 너를 키울 때도 그랬단다. 특히 너는 딸 둘에 이어서 낳은 셋째라서 축하와 기쁨이 온 집안에 넘쳤단다.
흔히 자식을 손님에 비유한다. 손님이 오기 전에 집을 치우고, 맛있는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를 준비한다. 그 손님이 우리 집에 머무는 동안 불편하지 않도록 정성으로 대접한다. 그러나 손님은 언젠가는 떠난다. 자식도 그렇다. 부모는 자식 입에 들어가는 건 아까운 줄 모른다. 좋은 곳에 데려가고, 맛난 걸 골라 먹이며, 학업 뒷바라지하느라 허리가 휜다. 가족으로 묶여 함께하며 추억을 쌓는다. 자식도 영원히 끼고 살 수는 없다. 빠르고 늦고의 차이는 있지만 대학에 입학하거나, 군대에 다녀와서, 혹은 결혼하면서 부모 곁을 떠난다.
출산 휴가가 끝나면 며느리는 회사에 복귀하고, 아들이 육아휴직을 내고 손자를 돌볼 계획이다. 세상이 변했다는 게 실감이 난다. 내가 키워줄 것도 아니면서 배 놔라 감 놔라 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둘의 선택을 존중했다. 아들은 막상 분만 예정일이 다가오니 자신이 잘할 수 있을지를 수시로 전화하여 물었다. 가 보지 않은 길이라 낯설고 두려운 건 당연한 일이다. 하물며 한 생명을 기르는 숭고한 일인데, 왜 안 그렇겠는가? 오늘은 안는 것조차 어설프지만 곧 익숙해질 것이다.
‘아들아!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란다. 귀한 손님이라는 걸 명심하고, 네 곁에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서 보살피고 사랑하여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이 되도록 도와야 한단다. 할머니로 만들어 줘서 고맙다.’
첫댓글 할머니가 처음 되어 보니 신기하고 기쁘죠? 글로 생생히 적어 놓으니 저도 2년 전 손자가 온 날이 생각나는군요. 무럭무럭 잘 자라길 빌게요.
아이를 셋이나 키웠는데,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 게 더 놀라웠습니다.
잘 키워 볼게요.
고맙습니다.
진짜 귀한 손님 오셨네요. 손자분 너무 귀여울 것 같아요. 할머니 되신 거 축하드려요.
누구는 할머니 되는 게 싫다던데 저는 정말 기쁩니다.
아들이 고맙구요.
귀한 손님, 잘 키울게요.
예쁜 할머니 되신 거 축하 드려요.
하하, 고맙습니다.
예쁜 할머니가 되려고 노력할게요.
애국자의 어머니네요. 출산보다 더 큰 애국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축하합니다.
그러게요.
요즘같은 시절에는 낳아주는 것 만으로 감사해야지요.
고맙습니다.
축하합니다. 우리의 보물이군요. 행복해 하시는 글 잘 읽었습니다.
네. 집안의 경사라서 글로 꼭 남기고 싶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하하, 젊은 할머니가 됐네요. 이제 팔불출 군단에 들어가야지요. 축하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선배님처럼 매일 프로필 사진을 바꾸고 싶지만, 참습니다.
새로 발령 받아 온 분이 어떤 분인지 궁금하여 프사에 들어갔더니 손녀 사진만
200장이 넘게 있었는데, 좋아보이지 않았거든요. 하하하.
아니 벌써?. 할머니가 되셨다고요? 축하합니다. 누구보다도 양선생님이 더 좋아하고 계시네요.
입가에 번지는 웃음이 훤히 보입니다.
네. 선생님!
누구는 할머니 되는 게 싫다는 분도 있더라고요.
저는 정말 좋았습니다.
눈이 좋으세요.
제가 좋아하는 게 다 보였군요.
우와~~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할머니가 되신 그 기분 아직 저는 모르는데 선생님. 글을 보니 제가 더 기쁩니다. 앞으로 귀한손님 이야기 많이 들려주세요.
네. 선생님!
축하 고맙습니다.
손자를 보고 나면 눈앞에 삼삼해진다고 하더군요.
아마 저도 그러겠지요?
축하합니다. 그 누구보다 훌륭하신 할머니의 손자로 온 아기도 복이 많군요.
하하. 그리 말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귀하게 잘 키워야죠.
벙글벙글 입이 벌어지는 선생님 얼굴이 보입니다.
할머니 되신 것 축하드려요.
요즘 젊은이들 야무지게 잘 키울 거예요.
입이 벌어진 정도가 아니라 함빡 웃고 있습니다.
정말 좋습니다.
선생님 프사의 사랑스런 아기가 손주였군요. 축하드려요. 아기가 너무 예뻐서 진짜 깜짝 놀랐답니다. 음, 그런데 손주라는 단어가 선생님과 안 어울리는데 어떡하죠? 하하.
하하.
이른 할머니지만 그래도 정말 좋습니다.
요즘 시절에 아기를 낳아준 것 만으로도 고맙지요.
이쁘다고 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너무너무 귀여울 것 같아요. 우리 딸이 아기를 낳으면 어떨까 생각해 봤어요.
양선례 할머니, 축하드려요!
아직 못 봤어요.
보고 나면 눈에 어른거려 더 찾게 된다네요.
할머니라는 말이 아직은 어색하지만 곧 몸에 맞는 옷처럼 익숙해지겠지요.
축하, 고맙습니다.
이번 학기 선생님의 글 읽으면서 감동받은 적이 많아요.
옥도, 선생님 낭군님의 텃밭이 궁금하네요.
특히 아버지 이야기가 감동이었어요.
함께해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자식보다 손주가 이쁘다는데 진짜 그런지 궁금해요.
축하합니다.
자식은 사랑스럽고 이쁘긴 하지만 사회적인 인프라가 부족할 때라서 울며불며 키웠답니다.
요즘같은 혜택 많이 주는 시대에, 아기 안 낳는 젊은이가 이해가 안 될 정도로요.
축하, 고맙습니다.
드디어 손주를 보셨군요. 축하드립니다.
네. 원장님!
정말 좋습니다.
아들, 며느리가 고맙구요.
축하, 고맙습니다.
손주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부러워요. 제 큰 아들은 여자 친구도 없거든요.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제게는 혼기가 꽉 찬 딸이 둘이나 있습니다.
아들보다 누나지요.
그래도 뭐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선생님, 귀한 손님 맞이하셨네요.
축하합니다.
태어나 열흘 남짓의 삶을 이렇게 훌륭하게 글로 남겨 주시는 멋진 할머니를 만난 그 아이가 복덩이네요.
하하하. 선생님 글 읽으니 웃음이 절로 나요.
이가 보이게 환하게 웃었습니다.
아마도 자주 손주 이야기를 쓸 것 같습니다.
아들이 나도 어릴 때 그랬냐고 자꾸 물어보는데 아쉽게도 아무런 생각이 안 났어요.
육아일기라도 쓸걸.
그때는 생존에 바빠 그럴 여유가 없었어요.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나날에 사랑 꽃이 피었네요. 손주의 재롱이 3년쯤 가면 색이 바래서 아이들은 3년 터울로 낳으면 좋겠구나, 생각했답니다. 선생님 닯아 밝고 현명한 어른으로 자랄 거예요. 축하합니다.
저도 아들에게 그랬답니다.
3년 안에 평생 해야 할 효도를 다 하니, 힘들지만 많이 누리라고요.
임신 중에는 셋 낳는다고 하더니, 그 말이 쏙 들어갔습니다.
건강하고 지혜롭게 자라기를 바랄 뿐입니다.
고맙습니다. 선배님!
함께 글 쓰기 하게 되어 반갑고 기뻤습니다.
글로컬 박람회에서 먼 발치에서 뵙기는 했는데 인사 못 드려 죄송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