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앞으로 가세요. 여기서는 정문에서 100m 떨어진 곳부터 1인 시위가 가능해요.” “1인 시위에 그런 규정이 어디 있어?” “여기 규정이 그래요.” “그렇게 규정·법 잘 지키는 놈들이 그런 짓을 해. 우리가 백성인데, 우리가 힘없는 백성이고, 국민인데 왜 그런 짓을 했어, 그렇게 법 잘 지키는 놈들이 시신을 찾아주기를 했어, 유품을 찾아주기를 했어.” “그걸 우리한테 얘기하면 뭐해요. 그리고 지금 조사하고 있잖아요.” “그럼 여길 와서 이야기해야지, 어디서 해, 하여튼 나는 여기서 한 발자국도 못 움직여.” “그럼 언제까지 하실 겁니까?” “쓰러질 때까지.” 1987년 11월 29일, 동남아시아 어느 바다 상공에서 115명의 사람을 태운 비행기 한 대가 사라졌다. 누구는 115명의 사람이 ‘죽었다’라고 말하고, 누구는 이들이 ‘실종됐다’고 한다. 사건이 발생한지 19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115명의 사람들, 다시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큰 이 사람들을 ‘실종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시신 한 구, 유품 한 점 전해 받지를 못하고 사진 속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이들이 있다. ‘국가정보원과거사건진실규명을위한발전위원회’(국정원 발전위)는 지난 해 KAL858기 사건을 7대 조사대상 사건으로 선정했다. 이 사건 가족회 분들은 국정원 앞으로 달려가 적극적으로 조사에 임하라는 1인 시위와 ‘삼보일배’를 했다. 이미 하얗게 바랜 머리카락과 굽어진 등으로 1인 시위를 하겠다는 할머니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런지 모르지만 이러쿵 저러쿵 시비가 붙었다. 걷기에도 벅찬 무릎으로 걸음걸음마다 절을 했다. 실종된 자기 가족의 이름이 호명될 때는 너무나 보고 싶고 그리워서 모두들 눈물을 흘렸다. 지난 2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이 사회가 KAL858기 사건과 실종자 가족을 바라보던 그 시선만큼이나 지난해 삼보일배를 하던 아스팔트는 차가웠다. ‘안전기획부’가 ‘국가정보원’으로 바뀌고 ‘KAL858기 사건’보다 ‘김현희’라는 이름 석 자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시간만큼 가족들도 많이 변했다. 이제는 민주화가 되었으니 아픈 과거사 따위는 그냥 잊고 살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세월만큼이나 희생자 가족의 머리는 점점 하얘지고 등은 굽어갔다. 하지만 딱 두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하나는 19년 전 KAL858기에 탑승했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과 또 하나는 KAL858기사건 자체다. 가족들은 실종자들이 19년 전 그 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직도 꿈에 나타난다고 한다. 지난 여름 국정원 발전위에서 KAL858기의 동체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그 때 가족들은 혹시라도 유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온전한 모습은 아니더라도 뼈 한 조각이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눈물로 바라셨다고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비행기 동체가 아니라 커다란 바윗덩어리였다고 한다. 실종자 가족들은 ‘혹시나’하는 기대가 와르르 무너져 내려 며칠을 눈물로 보냈다.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자꾸 과거를 들추려고 하느냐”라고. 물론 이 사건이 ‘시간’으로는 ‘과거’일 수 있겠지만 가족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하게 할 텐데, 그럴 수 없으니 이렇게 맨몸으로 뛰어다니는 것이다. 11월 29일이면 다시 추모제가 다가온다. 실종자 가족들의 눈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다. 이제 19년 동안 가려져 있던 사건의 진실이 가려져야 할 때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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