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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카타르#이란
이스라엘의 카타르 공습과 중동의 역학적 재편.
많은 아랍 국가들은 하마스(Hamas)의 약화와 도하(Doha)의 영향력 축소를 지역 안정을 위한 도움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랍 지도자들은 공개적으로 최근 이스라엘의 도하 공습이 하마스 고위 관리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카타르(Qatar), 사우디아라비아(Saudi Arabia), 아랍에미리트(UAE)등은 이번 공격이 주권과 국제법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강력하게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이 발표 이면에는 더 미묘한 지역 반응이 있으며, 경우에 따라 조용히 지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Carnegie Endowment)의 분석가들에 따르면 이번 공습의 더 깊은 진실을 드러냈습니다. 많은 걸프 지도자들은 하마스를 불안정한 세력으로 보고 있으며 카타르의 후원자(patron)이자 중재자(mediator)로서의 역할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습니다.
카타르(Qatar)는 휴전 협상의 핵심 중개자로 자리매김했지만, 하마스(Hamas)에 대한 지지는 오랫동안 다른 아랍 국가들, 특히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Bahrain)과 같은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에 동조하는 국가들과의 긴장의 원인이 되어 왔습니다.
※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 이스라엘과 바레인 사이에서 미국이 중재하여 2020년 9월 15일에 체결된 아랍-이스라엘 정상화에 관한 양자 협정이다. 협정 서명식은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백악관의 트루먼 발코니에서 개최했다. 협정의 일환으로 아랍에미레트와 바레인은 모두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하여 완전한 외교 관계를 수립할 수 있게 되었다.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의 최초 협정은 1994년 이스라엘-요르단 평화 조약이 발효된 이후 이스라엘이 아랍 국가와 외교 관계를 수립한 첫 사례였다.이 협정은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예언자 아브라함에 대한 공통된 믿음을 강조하기 위해 "아브라함 협정"으로 명명되었다.
사적으로 리야드(Riyadh)와 아부다비(Abu Dhabi)의 관리들은 이스라엘이 카타르 영토를 침범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마스 지도부에 대해 결정적인 조치를 취한 것에 대해 안도하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작전은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행동 의지와 도달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이란의 지원을 받는 대리인들이 오랫동안 안전한 피난처를 이용해 온 지역에서 억제 태세를 강화했습니다.
한 걸프지역 논평가는 "더 이상 이스라엘을 위협할 수 있는 세력이 없다"고 언급하며 이 지역에서 전략적 재조정이 진행 중임을 강조했습니다.
많은 아랍 국가들은 하마스(Hamas)의 약화와 도하(Doha)의 영향력 축소를 지역 안정을 위한 순익으로 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지역 정치, 미디어, 외교 분야에서 카타르(Qatar)의 막강한 영향력을 오랫동안 경계해 왔습니다.
카타르(Qatar)는 인구가 300만 명 미만인 작은 국가이지만 부와 전략적 동맹, 이념적 포지셔닝의 결합 덕분에 해당 지역에서 훨씬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카타르(Qatar)를 둘러싼 긴장은 오랫동안 아랍 이웃 국가들을 불안하게 만든 이념적, 정치적, 전략적 요인의 복합적인 혼합에서 비롯됩니다.
주요 마찰 원인 중 하나는 카타르(Qatar)가 무슬림 형제단(Muslim Brotherhood)과 하마스(Hamas)와 같은 급진적인 이슬람 운동을 지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카타르(Qatar)는 이 그룹들을 정당한 정치적 행위자로 보고 있지만, 이집트(Egypt), 사우디아라비아(Saudi Arabia), 아랍에미리트(UAE)와 같은 국가들은 이들을 자국 정권에 대한 실존적 위협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카타르(Qatar)의 정치적 이슬람 지지가 국내 반대를 불러일으키고 내부 질서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또 다른 논쟁점은 아랍 세계의 극단적 이슬람 미디어 거물인 알자지라(Al Jazeera)에 대한 카타르(Qatar)의 자금 지원입니다.
※ 알자지라(Al Jazeera):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 세워진 아랍어와 영어의 텔레비전 방송사로, 현재 아랍권을 대표하는 방송사로 손꼽히고 있다. 알자지라는 아랍어로 "섬", "반도"를 뜻하며 아라비아 반도를 뜻한다.
아랍의 봄(Arab Spring) 동안, 알자지라(Al Jazeera)의 보도는 혁명적인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여겨져 많은 정부들이 카타르(Qatar)의 의도를 깊이 불편하고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 아랍의 봄(Arab Spring):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시작되어 2010년대 초 중동 및 북아프리카 전역으로 확산된 반정부 시위, 혁명 및 봉기의 물결. 이는 권위주의 정권의 부패와 경제적 침체, 빈곤, 인권 유린 등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폭발하여 발생했으며, 민주화와 사회 변화를 요구하는 움직임으로 전개되었음.
카타르(Qatar)의 외교 정책도 이를 차별화합니다. 대부분의 걸프 국가들과 달리, 이란(Iran)과 독립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미군 기지를 주둔시키고 또한 이슬람 세력과도 협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균형 잡기 행보는 이란(Iran)과 그 지역 대리 세력에 맞서 단결된 전선을 선호하는 이웃 국가들을 좌절시키고 있습니다.
외교 중재자로서의 역할은 또 다른 복잡성을 더합니다. 카타르(Qatar)는 가자(Gaza)지구 휴전부터 탈레반(Taliban) 협상에 이르기까지 지역 분쟁의 핵심 중개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로 인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으면서도 카타르(Qatar)의 영향력과 성과 형성 능력이 커지는 것에 불편해 하는 사우디아라비아(Saudi Arabia)와 이집트(Egypt) 같은 전통적인 강대국들과거리가 멀지게 됩니다.
이러한 긴장은 2017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이집트가 카타르가 테러를 지원하고 지역 안정을 저해한다고 비난하며 봉쇄 조치를 취하면서 극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봉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카타르(Qatar)는 더욱 탄력적으로 튀르키예(Turkey) 및 이란(Iran)과의 관계를 강화했습니다.
본질적으로, 이번 공습은 걸프 지역의 권력 역학을 재편했습니다.
카타르(Qatar)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아랍 통합의 한계를 드러내며 이스라엘(Israel)의 전략적 우선순위가 외교적 예의(diplomatic niceties)에 의해 제약받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습니다.
많은 아랍 지도자들에게 36초의 정밀 화력으로 전달된 그 메시지는 조용히 환영받았습니다.
By Hezy Laing in World Israel News (September 14, 2025)
급변하는 이란의 내부 모습
유엔의 이스라엘 국제 대변인인 조나단 하루노프(Jonathan Harounoff)가 이란과 그곳의 유대인 삶에 대해 전합니다.
2022년 9월, 22세 쿠르드계 이란(Kurdish-Iranian) 여성 마흐사 아미니(Mahsa Amini)는 히잡을 부적절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테헤란에서 구금되었습니다. 도덕 경찰(morality police)에 의해 구금된 그녀는 "재교육" 센터로 이송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심한 구타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3일 후, 그녀는 부상으로 사망했습니다.
이어 이란에서 시위가 발발했습니다. 테헤란에서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테헤란 대학교에 모여 "여성, 생명, 자유"를 외쳤습니다. 마흐사의 비극적인 죽음과 그에 따른 시위는 국제 뉴스에 보도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여성, 생명, 자유" 연대 모임이 더욱 활발하게 벌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비극이 이어졌습니다. 정권은 자신들에게 저항하는 시위자들을 처형했습니다.
이란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 이란은 하마스와 10월 7일 테러에 자금을 지원했고, 중동 여러 나라에 영향력을 행사하엿고, 지난여름 이스라엘과 미국의 핵 시설 폭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 사람들은 이란과 그 역사, 그리고 그 국민에 대한 관심을 기울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페르시아 유대인이자 유엔 이스라엘 국제 대변인인 조너선 하루노프 작가가 나섭니다. 그의 신간 『Unveiled: Inside Iran's #WomanLifeFreedom Revolt』는 이란에서 벌어지고 있는 급격한 변화와 그것이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란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서방 세계에는 엄청난 정보 격차가 있습니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이란'이나 '이슬람 공화국'을 구글에 검색하면 정권의 파괴적인 핵무기 프로그램, 위험하고 막대한 비용이 드는 외교 정책, 그리고 광범위한 테러 대리 조직 네트워크에 대한 뉴스 기사를 접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9천만 명이 넘는 이란 국민에 대한 정보는 접하기 어렵고,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이슬람 공화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미국, 이스라엘, 그리고 다른 동맹국들에 대한 이란 정권의 방향에 동의하는지 여부에 대한 정보도 접하기 어렵습니다."
"현실은 이슬람 공화국과 평화롭고, 용감하고, 과감하며, 더 밝고 번영된 미래를 간절히 원하는 대다수 이란 국민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란을 탐구하다.
조나단의 조부모와 증조부모는 1950년대 초 마슈하드(Mashhad)를 떠났습니다. 이슬람주의자들이 장악한 이란 혁명 이후 유대인들의 삶이 더 어려워지자 다른 가족, 먼 친척, 그리고 가족의 친구들도 그 후 수십 년 동안 마슈하드를 떠났습니다 .
조나단은 "Unveiled(베일을 벗기다)"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이란의 유대인 역사는 트라우마적이고 고통스러운 요소들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란 유대인들은 여전히 이란에 대해 큰 자부심과 애착을 느끼고 있으며, 수천 년의 풍부한 역사와 문명을 지닌 이란과 46년 된 이슬람 공화국 이란 사이에는 종종 완전한 단절감을 보입니다. 많은 디아스포라 주민들처럼, 저희 가족도 권위주의 정권이 거의 50년 동안 이란을 이끌었다기보다는 점령했다고 생각했습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수만 명의 페르시아 유대인들이 이란을 떠났고, 인구는 당시 8만 명에서 현재 약 1만 명으로 감소했습니다. 놀랍게도 이란은 여전히 이스라엘 다음으로 중동에서 두 번째로 많은 유대인 인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저널리스트로 훈련을 받고 뉴욕 포스트와 Jewish Chronicle에서 기사를 쓴 저자는 이란 국내외의 이란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얻은 정보를 이 책에 포함시켰습니다.
그는 책에서 이스라엘과 이란의 관계도 심도 있게 다룹니다. 예를 들어, 이란은 이스라엘과 미국이 시위를 부추겨 이슬람 공화국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며 이스라엘과 미국을 비난했습니다. 이란이 자금을 지원한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관련하여, 조나단은 이란 주재 스페인 대사 엔젤 로사다(Angel Losada)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합니다. "10월 7일은 이란에게 구원의 은총이었습니다… 국제문제에 이란을 다시 끌어들여 국내 문제로 인한 주목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현재 이란의 유대인 공동체는 끔찍한 방식으로 대가를 치르고 있으며, 특히 6월에 이스라엘과 벌인 12일간의 전쟁 이후로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슬람 공화국의 유대인 관련 언어와 어조에서 매우 당황스러운 변화를 목격했습니다."라고 조나단은 말합니다. "이전에는 이란 정권이 '시오니스트 국가 이스라엘'이 적이라고 강조했지만, 이제는 유대인과의 전쟁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라이징 라이온(Rising Lion) 작전 이후 이란 내에서 대규모 체포가 발생했다는 보도를 읽었으며, 테헤란(Tehran)과 시라즈(Shiraz)의 유대인 커뮤니티 구성원 수십 명이 간첩 혐의로 기소되어 해외 친척과의 연락이 끊긴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런 악을 직면해도 희망의 빛이 있습니다. 이란의 유대인 공동체는 강력합니다.
“저는 이란 내부와 디아스포라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란 유대인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라고 조나단은 말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실명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공통된 이야기는 이 공동체가 용감하고 유대교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며 엄청난 고난 속에서도 회복력을 지닌 특별한 공동체라는 것이었습니다."
역사를 통틀어 이란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되돌아보면 낙관할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이 항상 이랬던 것은 아니니까요.
조나단은 " 이스라엘과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전인 20세기 중반 수십 년간 매우 이례적인 협력과 연대를 누렸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벤 구리온이 '우호적이고 비공식적이지만 은밀하지 않으며 상호 이익에 기반한 관계'라고 표현했던 이 관계는 현대 이스라엘 국가 초기에 이스라엘이 당시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아랍 국가들의 적대감에 대응하기 위해 터키, 이란 등 비아랍 국가들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던 시기에 형성된 주변국 정책의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했습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이 때문에 이란은 1950년 터키에 이어 두 번째로 이스라엘 국가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란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이스라엘, 미국, 그리고 전 세계가 12일간의 전쟁 동안 숨을 참고 이란 국민의 내부 봉기를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암울해 보일지 몰라도, 조나단은 여전히 긍정적인 변화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이란 국민들이 어떤 미래를 원하는지 결정하는 것은 바로 이란 국민의 몫입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다만 국제 사회는 이란 국민의 자유 추구를 지원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합니다.“
By Kylie Ora Lob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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