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th Sunday July 2018 AM 10:30 황등성심교회 박용근목사
우리는 바리새인이었다.
마9:9-13
성경에 바리새인이란 사람들이 나옵니다.
바리새인들은 간교하여 여우 같고
사악한 사람들로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주님을 트집 잡고 비웃고 조롱하며
결국은 죄가 하나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는 데
앞장섰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을 저주스럽게 여깁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잘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악하게 된 것입니다.
그 바리새인이라는 뜻은 ‘분리된 자’라는 뜻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히브리어 ’페루쉼‘에서 나온 말인데
율법에서 부정한 자들로부터 분리하려고 애쓰는 마음에서 생긴 말입니다.
이 말은 BC130년 경인 마카비 시대에 최초로 등장했는데
이는 바벨론 포로기 동안에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의 결과로
일반적인 유대인들과 회당 중심으로 생긴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바르게 믿으려고 하는 중에
주님의 뜻을 잘못 이해하면
바리새인처럼 믿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바리새인들처럼 믿지 않도록
우리는 바리새인이었다는 말씀으로
우리 자신이 과거에 바리새인들과 같이 살았던 것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죄인과 함께하신 주님
본문은 주께서 세관에서 앉아 있는 마태를 보시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
마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따라
세리의 직무와 세리에 관한 것을 버렸지만,
그가 가졌던 붓 하나만 들고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제자가 되었습니다.
세관에서 사용하였던 붓은
후일 마태복음을 기록하는 도구로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주께서 세리 마태를 주님의 제자로 삼고 난 후,
다른 세리들과 죄인들이 마태의 집에 모여
식사하는 자리가 화기애애한 것을 본
바리새인들은 심히 못마땅하게 여겨
주님의 제자들에게 예수를 비난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보기에
주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같이 먹는 모습이
예수님도 죄인처럼 보이고 세리처럼 보였기 때문에 비난한 것입니다.
같은 동류의 사람들을 말할 때
한솥밥을 먹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식당에서 같은 자리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을 두고
식구라고 하지 않습니다.
식구라고 함은 생사고락(生死苦樂)을 나누며
먹고 사는 사람들을 식구(食口)라고 합니다.
같은 식구는
괴로울 때는 함께 괴로워하며 밥을 같이 먹고,
슬픔 때는 눈물의 젖은 빵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기쁘면 잔을 높이 들고 축배 하며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 식구들입니다.
주님이 세리와 죄인들이
마태가 제자가 됨을 축하하고
죄에서 구속함을 감격하는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 보기에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모두 죄인처럼 보인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주님을 불평한 것은
자신들과 같이 거룩하게 율법을 지키고
믿음으로 사는 자들을 귀중하게 여기고,
죄인들은 부정하게 여겨 멀리하여야 하시는데
하나님의 법대로 사는 바리새인들은
독사의 자식이라고 악하게 취급하고
주님이 세리 마태를 제자로 삼고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본 바리새인들이
불평한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도 언제든지 그 바리새인들과 같이 되기 쉬우므로
바리새인을 조심하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해당하여 바리새인들처럼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마 16:11)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2)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그런데 바리새인들의 말이 세상 이치로 보면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학교에서 거친 아이들과 어울려
말이 거칠어지고 행동이 과격해 지면
부모님들은 염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를 잘못 사귀어
나쁜 습관에 물들면 부모님으로서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자기 아이에게 ‘나쁜 아이들과
절대 같이 어울리거나 놀지 말아야 한다.’라고 하며 분리하는 것은
자기 아들의 장래를 위해서 말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 걱정이 기우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말은,
묵을 가까이하다 보면 아무리 조심해도 검은 묵이 옷에 묻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선우당 이씨의 시조 중에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희고 흰 깃에 검은 때 묻힐세라.
진실로 검은 때 묻히면 씻을 길이 없으리라.”
이런 원리로 보면 주님이 죄인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주님도 위험할 뿐만 아니라
주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도
주님의 모습을 본받아 지낸다고 하면
사회가 문란해지고 교회가 부정하게 되리라 생각하여
바리새인들은 불평하는 것이 왜 잘못되었다고 합니까?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기 위해서
엄격한 규율을 613가지를 만들어 지킨 사람입니다.
앞에서 세 가지와 끝에서 세 가지만 소개하자면……
1. "생육하고 번성하라"(창 1:28).
2. 모든 유대인 남자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창 17:10).
3. 환도뼈의 큰 힘줄을 먹어서는 안된다(창 32:32).
중략
611. 하나님의 길을 따라 걸으라(신 26:17).
612. 안식년 장막절에 모든 이스라엘 회중을 다 모여야 한다(신 31:12-13).
613. 토라(율법)를 써서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신 31:19)
그들이 성경을 깨닫고 지키는 것이
하나도 잘못되거나 틀린 것이 없습니다.
주께서도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알고 있는 실력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법을 지키되
그들이 잘못된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당부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마 23: 0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자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법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 잘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많이 알고 있기는 하는 데 오해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가진 성경은 구약성경인데
바리새인들이 성경을 바르게 깨달았다고 하면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았어야 합니다.
구약성경에 인생은 태어나면서 부정한 것은
죄인으로 잉태되고 죄악 중에 출생하였고,
사람은 누구나 나면서부터 곁길로 가게 된
인생이라는 것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었다고 하면
주님이 죄인들과 함께하신 것을 보고
그들과 함께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어야 할 일입니다.
(레 12: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여인이 임신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곧 월경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시 51: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 58:3)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죄인을 정죄하기 전에
자기 자신이 죄로 부정하게 태어나고
죄인으로 출생하고 나면서부터 악한 길로 다니며 살았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믿음으로 살았다고 하면
주님이 죄인들과 함께 하심을 보고,
죄인들과 함께 하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 주님을 찬양하며 말하기를
주여! 주여! 내 말을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 날 부르소서!
찬송하여야 할 일인데 바리새인들이
주님이 죄인들과 함께 한 것을
비난하고 정죄한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도 바리새인을 지독하게 저주하면서도
우리 자신도 바리새인들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모님이 나쁜 점에 대하여 불평을 하면서도
자녀들은 그 부모님의 나쁜 점을 닮아가는 것처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웃고 조롱하고
저주하고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였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로 바리새인과 같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우리가 바리새인들과 같이 닮아가기 때문에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믿음으로 산 것은
죄인들과 같이 식사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이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주님이 우리를 붙잡아 주지 않았다고 하면
우리는 세상에 죄인들보다 더 악하고
거짓되어 멸망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의인이 다 된 것처럼
세상에 대하여 정죄하고 있다고 하면 우리가 왕 바리새인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감동으로
자신의 죄를 깨닫고 죄인이라고 늘 고백하면
주님은 우리에게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게 함으로
주님의 지체로 삼아 영생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주님과 함께 영원한 식구로 삼아주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주는 의인을 찾이 않으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