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발은 안 뺐어요 / 한정숙
존경하고 사랑하는 선생님, ‘아름답다’는 한마디로 말하기엔 너무나 찬란했던 5월이 갔습니다. ‘꽃’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꽃들이 모양을 내고 향기를 뿜어 사람들을 기쁘게 했던 날들이었습니다. 그 덕분인지 가족은 더 사랑스러웠고 인연이 된 모든 것들이 더욱 소중했습니다. 교직 생활을 마무리 하는 시점에 이르니 선생님을 만난 인연은 저에게 정말로 특별한 화수분입니다.
20년이 훌쩍 넘었지요? 교사 시절, 국어 교과서와 교사용 지도서, 학습지도안 초안을 들고 선생님을 자주 만났습니다. 선생님이 제 지도 위원이셨거든요. 시간이 늦도록 장소를 가리지 않고 머리를 맞대며 생각을 주고받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세심한 지도로 탄탄하게 준비된 수업은 학교와 학생을 바꿔가며 교사들에게 공개되어 수업자와 참관자 모두가 조금 더 나은 수업을 위해 고민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환경과 수준은 제각각 이라서 당연한 과정이었고요. 새삼 고맙습니다.
참, 생각해 보니 선생님이 권해서 제가 글쓰기 반에 들어왔네요. 글 감각이 특별할 리 없는 저를 토닥여서 용기를 주시며 함께 다니기를 청하셨어요. 그 때가 2018년이었는데 글은 네 편 올라가 있네요. 그야말로 설렁설렁 참석했어요. 글쓰기를 별로 중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이지요. 꾸중에만 민감했고요. 그래서 결석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참 어리석은 학생이지요.
문득 평생교육원 강의실에서 장애인 따님과 같이 수업에 참석하시던 남자분이 생각나네요. 성실하게 공부하던 젊은 따님의 투지를 맘속으로 높이 사면서도 저는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어요. 짐작하시다 시피 제가 호기심은 많으나 게을러서 늘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미약한 꼴이거든요. 적잖이 실망하셨을 거예요. 사실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어렸을 적부터 선생님들께 글을 좀 쓴다는 칭찬을 들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줄 알았겠지요? 순전히 말장난 몇 줄 이었을 텐데요.
‘죽을 때 되니 철든다.’ 는 옛말이 빈 말이 아니에요. 요즘은 스스로 얼굴 붉어지는 일이 많아졌어요. 어른이면서 선생님인 나도 이렇게 말귀가 어둡고 가르침을 등한시 하면서 더디게 배우는 어린 아이들에게 이러쿵저러쿵하며 답답해 했으니 말이지요. 주제넘게 아이들의 부모를 탓할 때도 있었으니 제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겠어요?
선생님,
2018년에 발을 딛었으나 이름 뿐 이었던 학생은 이듬해도 다를 것이 없었어요. 그리고 4년 동안은 다른 세상에서 살았고요. 오로지 살아내는 일에 집중해야 했으니까요. 저를 살리는 일에 진심이셨던 선생님의 사랑에 또 가슴이 더워집니다. 텃밭에서 좋은 먹거리 뜯어다 주시고 바깥 선생님 손에 반찬 만들어 보내주시던 친정 엄마 같은 분이셨어요, 선생님은.
작년 2023년에 다시 글쓰기 반에 들어갔다고 하니 “잘했네.” 하시며 활짝 웃으시던 얼굴이 떠오릅니다. 여전히 일주일 내내 다른 일도 못하고 머리 속에 이야기를 가득 담아 서로 싸우게 한 뒤 전사시키고 말지만 점점 재미를 찾아가고 있답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1시간을 넘기면 온통 쑤시고 다음날 전전긍긍 하던 몸이 이젠 제법 버텨 준답니다. 건강이 좋아진다는 뜻이겠지요?
참, 올해는 좋은 선생님을 많이 만났답니다. 글쓰기 방에 올라온 과제를 매번 다 읽지는 못하지만 그 분들의 이야기를 읽노라면 독자의 입장에서 마음이 즐거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생활의 지혜, 삶을 대하는 현명한 태도를 배울 수 있지요. 글벗으로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제목과 낱말을 고르는 방법을 눈 여겨 본답니다. 이를테면 지도해주시는 교수님이 집을 만들어 방을 내어 주면 글벗님들이 격에 맞게 세간을 채우는 데 저는 여기저기 돌아보며 부러워하다가 어울릴 만한 곳에 살짝 제 물건 하나 꽂아 두는 격이라고 할까요? 그래도 배우는 재미가 쏠쏠하답니다.
선생님, 저번에 통화하면서 봄빛이 제법이라고, 이렇게 멋진 계절에 나들이 하시느라 바쁘시겠다고 하자 “감기가 심해. 코로나 때보다 더 한 것 같아. 자네 몸조심 하소.” 하시며 도리어 저를 걱정하시던 선생님께 시간을 벌어 뵙자고 한 후 만남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세상에, 확인해보니 통화한 지 두 달이 지났네요. 이젠 만날 때가 되었어요. 우리 글쓰기 반 이야기 많이 전해드릴게요.
추신: 올 상반기에도 과제를 욕심껏 올리진 못했답니다. 컴퓨터 안에서 잠 들어 못 일어나는 글도 있고요. 그래도 발은 안 뺐어요.
첫댓글 교수님, 일주일 내내 집만 여러 채 짓다가 준공을 못했습니다. 그래도 수업 시작 전에 빈약하나마 글 올려서 도리가 된 것 같습니다.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갖습니다. 감사합니다.
저 아침 운동하면서 '한 선생님이 왜 글을 안 올리실까?' 걱정했는데, 마음이 통했는지 딱 올라와 있네요. 늦게라도 올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행복한 하루네요.
선생님, 관심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반기 땐? 장담할순 없지만, 긴장하셔야 할걸요? 제가 연금녀가 되거든요.하하.
제목이 참 기발한대요.
하하, 지현선생님과 눈을 맞추려면 제목이라도? 스
펙타클한 일주일 보내느라 선생님 글을 읽었는지도 가물하네요.으.
@풀피리 날씨가 화창하네요. 좋은 한 주 보내세요.
오늘 아침 출근길에 햇살이 눈부셨어요. 참 좋은 계절이다 탄성이 나왔지요.
교직 선배님의 글 읽게 되어 반가웠어요.
2학기에도 부디 발 빼지 마시기를 응원합니다. 하하.
본 받을 만한 후배가 많은 것도 교직이 주는 선물이지요? 지도서 같은 반듯한 글 늘 애독합니다.
교장선생님이 되기까지 얼마나 애쓰셨을까요? 바쁘신 가운데 발을 담그고 계신 것만으로도 대단하세요. 그리고 선생님께서 따뜻하게 달아주는 댓글도 큰 힘이 됩니다.
와, 선생님의 댓글에서 사랑이 강물처럼 흘러요. 고맙습니다.
발 빼지 않기 잘 하셨습니다. 삶이 별거든가요.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본 받을 만한 후배가 많은 것도 교직이 주는 선물이지요? 지도서 같은 반듯한 글 늘 애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