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엔가, 아고라와 세계엔 미국방에다 미국과 한국 집값이 반토막 날 거라고 이야기했다가 정말 '융단 폭격'을 맞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곳 시애틀에서도 제 글을 읽은 사람들이, 특히 부동산 쪽에서 일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전문가도 아닌 일개 우체부가' 집값의 미래에 대해서 운운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불쾌해 하셨고, 한국에서도 부동산만큼은 신화가 계속 지속될 것이라고 믿었던 이들이 제 주장에 대해 역시 마찬가지로 '일개 미국 우체부 따위가' 부동산 가격에 대해서 운운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욕설들을 날려 주셨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제가 집값에 대해 거의 '자신있게(?)' 폭락할 거라는 소신을 갖고 이걸 밝힐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 간단했습니다. 더 이상 신용 한도를 늘릴 수 없을만큼, 그리고 실제 가격보다 훨씬 부풀려진 집들이 거의 브레이크 고장난 자동차처럼 시장으로 튀어나오고 있었고, 분명히 '수요'가 있어야 할텐데 그보다 더 많은 공급 물량들이 나오고 있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구매자들의 능력을 전혀 무시한듯한 매물이 끝없이 쏟아져나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실물경제가 돌아가는 상황이 뻔했고, 부동산 경기와 건축경기에 의해 파생된 일용직들은 상당히 많았으나 정작 생산에 기반한 일자리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거품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2001년 구입 당시 20만달러가 조금 넘었던 제 집이 30만달러를 넘어서더니 35만달러까지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저는 이건 분명히 미친거다, 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집을 저당잡혀 받은 에쿼티로 새 집을 또 사고, 대형 가전제품을 들여놓고, 자동차도 기름 한없이 먹는 대형 SUV를 마구 사는 모습이 저는 미친걸로밖에 생각되지 않았었습니다. 심지어 직장이 없거나, 직장이 간당간당한 사람들까지도, 그들의 선대에서 페이먼트가 끝난 집이 있으면 바로 '부자'가 되었습니다.
에쿼티 융자를 받고, 크레딧 카드를 새로 발급받아 펑펑 돈을 쓰고...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상식'의 한계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불로소득의 달콤한 맛을 알게 된 사람들은 말 그대로 간이 커져가기 시작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새 집을 사서 이사하는 모습들이 많이 보이자, 아내도 제게 아이들이 자라고 손님 초대하면 함께 할 공간도 적으니 새 집으로 이사가자고 졸랐는데, 그 때문에 아내와 거의 처음으로 의견이 맞지 않아 말다툼을 했고, 결국 아내는 제 주장에 설득되어 새로 집을 사서 옮기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아내는 그때 제가 그렇게 강력하게 반대했던 게 조금 섭섭했던 모양입니다. 요즘 들어서도 가끔 "집이나 살까?"라고 말합니다.
이웃 데이먼은 65만달러의 훌륭한 집을 사서 이사를 갔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살던 집을 40만달러에 팔았습니다. 25만달러를 보태 새 집을 산 건데, 그 집의 요즘 가격은 38만달러입니다. 이곳의 집값을 쉽게 검색하고 변동을 파악할 수 있는 zillow.com 사이트를 통해 보면 지금 거품이 꺼지고 무너지는 상황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문제는 사람들의 감당할 수 없는 욕심, 그리고 그 욕심을 만들어 낸 체제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미덕은 '노력한 만큼 버는 것'인데, 사람들이 노력하고 자기의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부여하는 일자리는 계속 줄이고, 대신 그 간극을 '돈 놓고 돈 먹기'로 채운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그때 잠깐 자기가 부자가 된 것 같은 착각이 깨지며 보여진 실상은 '하우스 푸어'라는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적지 않은 미국인들은 원금은 커녕 이자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미련없이 집을 던져 버렸습니다. 그것은 포기 매물이 되었고, 이자를 못내 입주자가 쫓겨나 버린 집은 은행에 차압되고 공매 대상이 되어 '포클로저 매물'들이 됐습니다.
결국 그들에게 계속 이자 받는 재미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돈을 빌려준 은행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고, 그것이 발단이 되어 세계가 경제공황을 겪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집값은 얼마나 떨어졌습니까? 그 수치는 바로 우리가 튼튼한 지지대가 없이 누른 지렛대가 집값을 천정부지로 올렸다가, 지지대가 갑자기 무너지면서 모두 땅바닥으로 나동그라진 상황이나 다름없을 겁니다.
일자리와 복지라는 지지대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거품을 만들어내어 그 거품의 힘으로 경제를 돌리려 했던 신자유주의의 사회는 우리의 집값의 폭락으로서 그 지지대가 무너졌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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