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풀등에 걸린 염주>를 받아놓고
내 이름으로 된 소설책 <풀등에 걸린 염주>가 도착했다. 표지는 깔끔하다. 막상 소설집을 엮었지만 별 감흥을 못 느끼겠다. 거실 한쪽에 쟁여있는 책 꾸러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괜히 책을 엮었다는 생각을 한다. 지인들에게 보낼 생각도 없다. 그럼 저 많은 책을 어쩌지? 난감하다. 오며가며 들리는 손님 중에 책 한 권 달라면 줘도 될까. 내 소설책을 읽지도 않고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것은 아닐까.
2006년도에 수필집 <푸름살이>를 엮었었다. 그 책을 받았을 때는 흥분했었다. 마음에 쏙 드는 책은 아니었지만 내 이름으로 된 수필집이 나왔다는 것에 반응이 컸다. 첫 작품집을 엮었다는 것에 한껏 부풀었었다. 여기저기 사인을 해서 보냈었다. 쓰레기 취급 받을 줄은 생각도 못했었다. 내가 다른 사람이 보내주는 책을 소중하게 간직하기에 내 책도 그런 대우를 받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내 책은 얼마 가지 않아 중고 서점에 버젓이 올라왔다. 작가의 사인이 담긴 첫 작품집이라는 설명까지 덧붙여져.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더 기막힌 것은 내게 가장 친한 벗이 내 책을 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내 작품이 실린 잡지라면 예사로웠겠지만 내 이름으로 낸 첫 책을 그 친구가 버렸다는 것을 알고 충격 먹었다. 더 이상 책 내는 것에 의미가 없었다. 너도 나도 책을 냈다. 지인들이 내게도 권했다. 한 권쯤 묶을 때도 되지 않았냐고. 발표한 작품들 엮으면 몇 권 될 것 같은데. 자비 출판은 솔직히 엄두도 안 났다.
사실 원고료 받은 것만으로도 몇 권의 책을 엮을 수도 있었다. 작품 공모전에 당선되어 상과 거금의 상금도 탔다. 한동안 신문지상에 이름이 오르내렸고 여기저기서 원고 청탁이 들어왔었다. 농민신문과 전원생활, 농어민 신문에 고정 필자로 활동할 때도 있었다. 원고료가 쏠쏠했다. 가난한 농부의 아내로 산다는 것은 허기지는 일이다. 그때는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엮기보다 그 돈으로 애들 공부 뒷바라지와 생활이 우선이었다. 이순 중반을 넘어선 지금도 사는 일이야 오십보백보지만 애들 뒷바라지가 끝나서 숨통이 튄다. 막상 소설집 한 권 엮으려니 너무 늦은 감이 들었다. 그만 두자. 포기했다.
그런데 농부가 농사꾼 퇴직한다는 바람에 슬그머니 나를 돌아봤다. 그냥 묻히기에는 내가 나를 용납하기 어려웠다. 운 때가 맞았던 것일까. 아르코든 경남지역이든 문예진 흥기금 신청을 해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다. 매년 공모전 시기를 놓쳐버렸지만 2021년에는 애들 도움으로 하반기 창작지원금 신청서를 보낼 수 있었다. 코로나 예술로의 기록 공모전에도 신청을 했다. 잊고 있다가 두 군데 다 선정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남편과 애들이 그 돈으로 소설책을 엮으라고 힘을 실어줬다.
소설가로 머리 올린 지 20년이 넘었다. 소설집 한 권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책을 묶기로 했다. 그동안 발표한 작품들이 수없이 많지만 막상 어떤 작품이 내 마음에 들었는지, 어떤 작품을 뽑아야 할지 자신이 안 섰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상 받은 작품을 우선 뽑자. 중편 두 편과 단편 세 편을 뽑았다. 신춘문예 당선 작품이었던 <풀등에 걸린 염주>를 제목으로 정했다.
농민신문 신춘문예 심사위원이셨던 작고하신 소설가 이문구 선생님을 많이 생각했다. 농사는 농부에게 맡기고 소설만 쓰라고 하셨던 생전 말씀을 잊지 않았다. 박경리 작가님과 박완서 작가님의 뒤를 잇는 소설가가 되라고 격려해 주셨던 그 분을 어찌 잊을까. 두 거목의 발치에도 못 미치는 나다. 노인의 반열에 들어서야 겨우 소설집 한 권 엮는 나를 기억이나 하실까. 서글픈 소회 한 줄 푼다. 소설집<풀등에 걸린 염주>는 그렇게 한 권으로 묶여 내게 도착했다. 며칠 째 책 꾸러미를 풀지도 않고 바라보고 있다.
창밖을 바라본다. 단감홍시를 놓아둔 통 위에 예쁜 새들 가족이 홍시를 파먹고 있다. 암수 한 쌍에 작은 아기 새다. 붉은 벼슬을 단 것과 긴 부리만 가진 새, 깃털이 진한 연둣빛이다. 저 새들은 내 마음의 상태를 알까. 사방을 경계하면서 먹이사냥을 하는 새들처럼 나는 내 책 꾸러미를 바라보며 갈등한다. 저 책을 어쩔까. 괜한 짓 한 것 같아 부끄럽기만 하다. <푸름살이> 수필집을 내고도 많이 후회했는데. 어쩌랴. 이미 엎질러진 물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