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침에 신호음이 울린다. 저녁4시30분에 영주에서 우체국으로 부친 인삼이 밤에 잠도 안자고 안동에 갔다가 대전에 집합해서 원주를 경유하고 단양 아침 11시쯤 배달된다는 문자가 송출된다. 바로 오는 것까지야 바라지도 않지만 경상도를 출발해 전라도에 집합해서 강원도에 경류해 충청도까지 오니 인삼도 피곤하겠다. 잠 한잠 못자고 오밤중에 전국 4개도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충청도 단양에서 가정으로 배달되니 얼마나 힘들고 피곤할까 과정도 복잡해 간편한 시스템이 아쉽다. 발신인이 없으니 또 궁금하다. 누가 부쳤지? 누가 보낸 것도 몹시 궁금하다. 인삼이 배달되었는데, 발신인이 남자 동창이 보낸 것이었다. 11시 반쯤에 남자 동창 친구가 왔다. 손에는 롤 케이크 상자를 들고 들어선다. 인삼 보냈는데 뭐 하러 롤 케잌까지 ~ 미안했다. 남자 동창 친구들를 만나는 순간마다 나는 회춘을 한다, 이 나이에 떨릴 가슴도 없지만 아무래도 보통사람보다는 학교 다닐때 남자 동창으로 생각되니 감정이 색다른 느낌이 든다. 얼굴은 이 나이에 마른 대추알 같아야 하는데 반질반질 다리미로 다려놓은 것 같이 중후하게 잘 늙었다. 남자동창은 남편이 중학교때 친구 세 명이 각별히 친했던 친구다. 벌써 한 친구는 하늘나라에 미리 가서 자리 잡고 살 만큼 한참 되었다. 이 친구는 예절이 바르고 공부도 잘했고 조용한 성품을 가진 친구다. 지금도 걷기 운동으로 건강도 챙기면서 오대 영양소 골고루 챙겨먹는 완벽한 친구다. 가끔 한번씩 우리 집에 오는 친구다.
남편의 친구들은 코흘리게 부터 참 다양하다. 오늘 온 친구도 우리에게 지성으로 잘 한다.
친구중에는 조경농장을 하는 동창 친구가 시골로 이사를 왔을때 조경 할 수 있는 나무를 몇 차 실어다 주고,너와 지붕의 멋진 정자를 준 친구도 있다.
어릴 적 친구도 몇 백만원하는 벽난로를 직접 제작해 보내왔다. 시골로 이사 왔을때 바베큐 할 도구도 몇개를 보내 왔다. 지금도 많은 제품들을 제작하면서 작은 기업의 사장님이다. 매해 지금까지 일반 쌀보다 배나 더 비싼 금쌀, 진도 누룽지 쌀을 부쳐주는 친구다.
고등학교때 친구는 서울에서 자기 사무실로 쓰던 컨테이너를 퇴직하면서 우리 집으로 보내와서 남편이 인테리어를 해서 손님방으로 쓰는 맑은가람 독채를 준 친구, 이 나이에도 지금도 능력자라 현장소장으로 일을한다. 요즘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 풍기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는 친구다.
남편 친구들을 보면 통이 보통 큰 게 아니다. 남편을 바라보는 나는 남편이 세상을 참 잘 살았구나를 느낀다. 남편 친구는 나이 들면 거의 격는 치과 치료를 받는 중이란다. 먹기 좋은 해물 떡 만두국을 끓였다. 만두국이면 반찬이 배추김치와 동치미면 끝이지만,그래도 먹던 안 먹던 상이 푸짐해야 될 것 같아 몇 가지 만들고 밑반찬까지 있는 데로 나열하니 푸짐한 밥상이 되었다. 남편이 제일 싫어하는 밥상이다. 남편은 신선한 두어 가지면 충분하다고 노래를 했지만 먹지도 않은 것을 들락거리는 걸 질색을 하는데도 나의 고집으로 평생을 생일상처럼 차려 주었다. 남편 친구가 이빨이 시원치 않으면 맛있는 게 없으니 맛은 기대는 안한다.
(다음회에 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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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덕은(德隱) 형(兄)님의 호(號) 숨은 베품이 벗님들에게 선행(先行)되었기에,
베푼 이상(以上)으로 돌아오는 겁니다. 마음이 넉넉해야 재화(財貨)를 나눌 수가
있습니다. 열린 마음이라야 너른 가슴으로 훈향(薰香)을 드리울 수가 있습니다.
덕장(德將) 밑에 사람이 모이고, 돈 쓰는 이 주위에 인산인해(人山人海)라는 말이
그 것을 증명(證明)합니다.
차(車) 작가(作家)의 솜씨 좋은 상차림을 보니 군침이 돕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애정(愛情)으로 매사(每事)에 임(任)하시는 정성(精誠)됨은, 언제, 누가
보아도 아름다우니 칭송(稱頌)의 대상(對象)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별로 베푸는 것도 없는데 주변에 사람들이 그렇게 베푸시니
저는 늘 인복과 먹을 복은 타고 났다고 하는 거지요.
구름밭님의 과찬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제가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글을 쓰다 보니 본의 아니 게
자랑 질만 하는 것 같아 비호감이 들까 봐 고민 할 때도 많습니다.
제가 지식적인 글을 쓸 능력도 없고, 문학적인 글은 더욱 자질이 없으니
오로지 저의 일상의 글 뿐입니다.
회원님들께 20년이 넘도록 자랑 질을 했지만 때론 갈등 할 때도 있습니다.
글을 안 쓰면 이 신경 저 신경 안 쓰면 될 터인데 하는 생각이 때론 듭니다.
또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는 주는 게 아닌 가 하는 생각도 하고요
글 쓰는 게 수 십 년 써온 낙이다 보니 글을 안 쓰면 내 인생은 암흑과 같아
열심히 씁니다.
손혁수님 혼자서 몇 년을 저에게 힘을 실어주던 후배님이 저에게는 큰 용기였습니다.
지금은 대신 구름밭님과 서정님이 계시지만 그래도 쌓은 정이 너무 오래되어 서운합니다.
김선생님이 새로운 조력자가 되어 주셔서 힘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