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462) - 명두(明斗)
신 불러온다는 놋그릇 ‘명두’
앞면 들여다보고는 화들짝
류 진사는 딸부자다.
류 진사 부인 절곡댁은 절에 가서 백일기도를 올리고 류 진사 어머니는 새벽마다 우물가에서 정화수를
떠 놓고 삼신할매한테 빌었다.
그 덕인가?
절곡댁이 헛구역질하고 청매를 먹더니 달덩이 같은 아들을 뽑아 칠두라 이름 지었다.
하오나 칠두를 낳고 나서 산독으로 일어나지 못한 절곡댁이 그 길로 속절없이 이승을 하직하고 말았다.
열다섯살 큰누이 류화가 포대기에 칠두를 싸안고 고개 넘고 물 건너 젖동냥을 다녔다.
칠두가 젖을 뗄 때 류화는 시집갈 나이가 되었는데 엉뚱하게도 무당집을 들락거리기 시작하더니
신내림을 받겠다고 입을 옥다물었다.
류 진사가 집안 망신이라고 큰딸을 붙잡고 눈물로 달래고 광에 가두어두고 식음을 끊어도 소용없었다.
큰딸 류화가 신어머니라 부르며 하늘처럼 떠받드는 무당을 할머니 대부인이 찾아가 류화를 제발 좀
풀어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신내림을 받지 않으면 류화는 제 어미를 따라갑니다”라는 무당의 말에 대부인은 섬뜩했지만
고개를 푹 숙인 류화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밥상을 들고 별당에 갔던 삼월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대부인에게
“별당 아씨가 밥상도 민 채 몸져누웠습니다” 하고 아뢰어 대부인이 종종걸음으로 별당에 가
류화의 이마를 짚었더니 불덩어리다.
사흘이 지나도 열은 내리지 않았다. 대부인이 무당을 찾아가 손녀를 살려달라고 통사정했다.
신내림굿이 나흘이나 이어지고 류화는 작두를 탔다.
춘하추동이 쳇바퀴처럼 몇번이나 돌고 돌았나,
류칠두는 헌헌장부로 과거에 급제해 궁궐에서 임금님을 보필하는 승지가 되었다.
한양으로 올라갈 때 꽃처럼 예쁜 새 신부는 당분간 시집살이를 해야 된다는 어른들의 권유로
시집에 남겨두고 홀로 올라왔다.
류화는 양반 대갓집 규수 점쟁이로 귀신도 피해 간다는 ‘주역(周易)’을 일곱번이나 곱씹은 역술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칠두에게 류화는 그냥 큰누이가 아니라 어머니 같은 존재다.
칠두가 큰누이 류화를 찾아가 상경 인사를 했더니
“한양에 간다고? 부탁 하나 하자꾸나. 다음에 고향 내려올 때 인사동에 가서 그럴듯한 명두(明斗) 하나
사다 주려무나.”
“누님, 명두가 뭣입니까?”
“무구(巫具) 중에서도 가장 중한 것이지.
일월성신(日月星辰)과 천지신명(天地神明)의 기(氣)를 응축한 것이야.”
칠두는 설명을 들어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명두란 한마디로 무당이나 점쟁이가 신(神)을 불러오는 놋그릇이다.
불룩한 놋그릇의 전면은 매끈하고 반들거려 사물이 비추어지고 움푹하게 들어간 후면은 표면이 거칠고
그림과 글자가 양각돼 있었다. 주로 해와 달 그리고 북두칠성 그림이다.
한양에 올라온 칠두는 밤이면 고향 집에 두고 온 새 신부 생각뿐이었다.
도승지의 허락을 얻어 일년 만에 휴가를 얻었다.
인사동으로 달려가 만물상을 샅샅이 뒤졌다.
명두 하나를 사서 보다가 깜짝 놀랐다.
세월의 때가 묻고 녹이 슨 앞면을 닦자 웬 선비가 코앞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게 아닌가!
“당신은 누구요?” 만물상 주인이 껄껄껄 웃으며
“명두의 앞면은 바로 어루쇠(거울의 옛말)요.”
“어루쇠가 무엇이요?” 칠두가 묻자 주인 영감님이 난감한 표정으로
“사물을 그대로 반사시켜주는 거요. 이 어루쇠 속의 선비는 바로 당신이요”라고 말한다.
칠두는 또 다른 만물상을 뒤져 새색시 선물로 명두 하나를 더 샀다.
고향으로 내려가는 칠두의 발걸음은 구름 위를 걷는 것만 같았다.
날이 저물면 주막에서 자고 동녘이 훤하면 걷고 또 걸었다.
집에 들렀더니 찬모 삼월이만 있고 아무도 없었다.
논에 피 뽑는 날이라 새 신부도 새참을 이고 들에 나간 것이다.
비단 보자기에 싼 새 신부 선물 명두를 별당에 두고 다른 명두를 들고 큰누님한테 달려갔다.
빈 그릇을 이고 집으로 돌아온 새색시는 삼월이로부터 서방님이 왔다는 소리를 듣고
펄쩍 뛰고 방으로 들어가 비단 보자기를 풀었다.
새색시가 대성통곡을 하고 별당을 나왔다. 들에서 돌아온 시아버지가 깜짝 놀라
“아가, 무슨 일이냐?” 묻자 새 며느리는 목이 메어 흐느끼며
“한양에서 어린 기생을 데려왔지 뭡니까, 으흐흐흑” 한다.
시아버지는 그 말에 명두를 들고 보다가 “아버님” 하고는 명두에 큰절을 올렸다.
[출처 ] 농민신문 사외칼럼 -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