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거짓말 안 해 노력한 만큼 돌려준다
김대성 씨는 지주식으로 김을 양식한다. 지주에 그물망을 끼워 김이 붙도록 하는 방식이다. 사진 C영상미디어
아버지의 바다로 돌아온 청년어부 김대성
“바다는 거짓말을 못해요. 제가 발로 뛴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바다인 것 같아요.”
5년 차 청년 어업인 김대성(35) 씨의 말이다. 그는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한 뒤 헬스트레이너로 활동하던 중 2020년 바다로 뛰어들어 김 양식을 시작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에서 목포까지 기차를 타고 다시 차로 1시간 넘게 이동했다. 전남 신안군 압해읍, 그곳에서도 멀리 떨어진 바다 위가 그의 일터다. 그가 깨끗한 작업복이 없는데 사진 촬영을 해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진흙이 잔뜩 묻은 작업복, 햇볕에 검게 그을린 피부는 오히려 그가 얼마나 성실하게 생업을 이어나가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김 양식은 김의 종자를 배양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시설하우스에 ‘김 씨’를 뿌린 뒤 채묘(성숙한 포자를 김발에 붙이는 작업)를 해 기르고 수온이 올라가기 직전에 수확한다. 양식법으로는 지주식과 부유식이 있는데 그중 지주식으로 김을 키워낸다. 바닷물이 빠지면 갯벌 바닥에 지주(장대)를 세운 다음, 지주에 그물망을 끼워 김이 그물망에 붙도록 하는 방식이다. 1년 중 서너 달을 제외하곤 이 과정을 반복한다. 고된 작업의 연속이다. 특히 도시에서 다른 일을 해온 그에겐 흔들리는 작은 배 위에서 중심을 잡는 것부터 도전이었다.
“항상 조심하자고 다짐하면서 바다로 나가요. 바람이 불면 굉장히 위험해요. 김이랑 물이 섞이면 무게가 늘어 배가 평소보다 가라앉을 때가 있어요. 갑자기 파도까지 치면 겁이 나요.”
서해는 조수 간만의 차가 유난히 크다. 하루에 두 번 김이 물 바깥에 노출되는 동안 빠르게 작업해야 한다. 체력이 좋은 청년들이 필요한 이유기도 하다. 그러나 마을의 어업인 평균 연령대는 60대다. 그의 또래는 한 명뿐이다.
“김 양식은 워낙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나이 든 분들은 더 힘에 부칠 수밖에 없어요. 자녀들이 가업을 물려받아 세대교체를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죠. 저도 아버지가 이 일을 해보라고 2년 동안 설득한 끝에 시작했어요.”
평균 연령 60대 마을 어촌계에 활력을 불어넣다
바닷가에서 나고 자랐지만 반평생 김 양식을 해온 아버지를 보면서 어업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종일 바다에서 일해야 하는 어려움을 익히 알고 있었다. 성인이 되면서 익숙해진 육지를 떠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김’이 수출 효자 품목이 됐다는 뉴스를 보고서야 마음이 달라졌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2020년 김은 역대 최고 수출액인 6억 달러를 돌파해 2019년에 이어 수출 품목 1위에 올랐다. 2023년 12월 기준 사상 최초로 1조 원을 돌파했다.
고향에 돌아와 먼저 어촌계에 가입한 뒤 선배 어업인들을 도왔다. 젊은 청년의 힘이 필요한 곳이라면 달려가 일손을 보태고 노하우를 배웠다. 그런 그를 지켜보던 주변에서 ‘청년어촌정착지원 사업’을 추천했다.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어촌에 정착하고 수산업 관련 창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해수부의 일자리 창출 사업이다. 수산업경영 경력 3년 이하 만 40세 미만 청년 어업인에게 3년 동안 매달 최대 110만 원을 지원한다.
“부자재를 사야 한다거나 일을 하면서 갑자기 돈이 필요할 때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요. 저는 뒤늦게 알아서 2년만 지원받았지만 이제 막 시작하는 청년 어업인들한텐 꼭 필요한 지원책인 것 같아요.”
김 양식은 1년 평균 인건비만 8000만 원, 자재비까지 더하면 최대 1억 6000만 원이 든다. 그만한 결과를 낼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은 해가 더해도 줄지 않는다. 극심한 기후 변화 탓에 이전과 달라진 바다 환경 또한 걱정을 더한다. 4월 말까지 할 수 있었던 작업을 지금은 수온이 높아져 4월 초면 끝내야 한다. 그럼에도 어업을 계속하는 이유는 바다가 주는 보상감 때문이다. 그는 “늘 힘들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열심히 한 만큼 돌려받는 곳이 바다”라고 했다.
매년 수확을 마치면 한 해를 정리하는 일기를 쓴다. 전년과 비교했을 때 기후 환경은 어떻게 변했는지, 작업 과정 중 실수는 없었는지 등을 기록한다. 최종 목표는 공장을 세워 자신이 뿌린 종자로 만든 김을 수출하는 것이다.
“제 피부가 많이 상했죠?(웃음) 속상한 마음이 들다가도 작황 결과가 좋으면 다 잊혀져요. 실패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 만큼 젊고요. 바다는 다 알고 있을 거예요. 좋은 김을 만들기 위해 제가 매일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는 것을.”
이근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