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 노동당이 이겼지만, 노동계급의 승리가 아니다
14년간의 보수당 집권 기간, 다섯 명의 총리가 여러 위기 속에서 허둥대며 시간을 보내고 난 뒤, 영국을 바꾸겠다는 약속을 내걸고 새로운 노동당 정부가 구성되었다. 이번 선거에서 노동당은 1997년 토니 블레어의 선거 승리 이후 가장 많은 과반수 의석으로 승리했고, 의회 의석에서도 사상 최대의 변화를 보인 선거였지만, 이것이 노동당 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등록된 유권자의 60%에 그쳐 2001년 이후 가장 낮았으며, 유권자 등록을 하지 않은 성인까지 포함하면 보편적 참정권 도입 이후 가장 낮은 투표율인 52%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노동당의 득표율은 33.87%로, 새 정부가 유권자의 17.5%의 지지를 받았다는 뜻이다!
이번 선거에서 성인 2명 중 1명만이 투표에 참여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며, 성인의 12%만이 정당을 신뢰한다고 답하는 등 정치인과 의회에 대한 신뢰가 사상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2008년 은행 구제 금융을 위한 긴축 재정으로 공공 서비스는 축소되었고, 그 기간 인플레이션을 반영한 일반 노동자의 임금은 8~10% 하락했으며, 영국 정치인들은 연이은 추문에 연루되었다. 동시에 자본가계급은 더욱 부유해졌고 사회의 불평등은 더욱 심해졌다. 2021년 통계에 따르면 영국 사회는 하위 50%가 전체 부의 5% 미만밖에 갖지 못했지만, 상위 1%는 23%를 갖고 있다!
많은 사람이 투표를 하면 우리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며, 그것이 맞다. 어느 정당이 국가를 통치하든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우리는 계급 사회에서 살고 있고 모든 계급 사회에서 국가는 지배계급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국가는 자본가계급의 도구이며,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독재를 집행하는 데 사용된다. 따라서 국가는 항상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보호하고 노동계급을 억압하기 위해 행동하기 때문에, 보수당(토리당)이 통치하든 노동당이 통치하든 상관없이 국가는 노동계급을 억압한다. 자본가계급에게 이른바 민주주의와 의회 제도는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의 노골적인 독재를 감추는 이상적인 위장, 즉 무화과 잎이다. 자본가계급은 선거를 통해 국가가 다수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소수의 이익에 부합한다. 처음에 자본가계급은 노동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에 반대해 치열하게 싸웠고, 1928년에서야 영국에서 마침내 보통 선거권을 실현했다. 교육 시스템, 대중 매체, 교회 등을 통해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통제함으로써 노동계급의 의식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야 노동자에게 투표권을 부여했다. 오늘날 민주주의와 의회는 노동계급에 대항하는 무기가 되었다. 오늘날 보통 선거권을 통해 유권자의 17.5%만이 새 정권을 지지하는 데도, 이 정권은 다수의 이름으로 우리의 임금과 생활 수준을 공격할 수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우리는 영국 자본주의가 220억 파운드의 막대한 재정 적자를 겪고 있으므로 세금 인상에 대비하고 희생을 감수하며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미 새 노동당 정부는 노동계급의 이익에 반하는 여러 정책을 발표했다. 그들은 생계형 절도를 단속하고 있으며, 절도의 원인인 빈곤을 해결하기보다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수천 명의 경찰을 새로 뽑아 노동계급을 직접적으로 공격할 준비를 하는 등 국가를 강화하고 있다. 그들은 “경제 성장 위원회”를 설립하여 기업, 즉 자본가계급이 경제 정책 결정에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그리고 아직 혜택을 받지 못한 연금 수급자에 대한 겨울철 연료비 지급을 폐지했다.
자본주의는 노동계급에 점점 더 악화하는 생활 수준 외에는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노동자가 과반수 의석을 차지해 체제를 전환할 수 있다는 생각은 뜬금없는 헛소리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적인 물질적 관계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 그것은 혁명적 투쟁을 통해 썩은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의회와 자본주의 권력의 모든 기관을 파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민주주의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선출한 사람이 직접 소환할 수 있는 대의원들로 구성된 노동자평의회와 같은 노동자 권력 기관을 만들어 현재 우리를 지배하는 '금권 민주주의'를 대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현재 잠자는 거인인 국제 노동계급이 깨어나 역사적 과제를 실현해야 하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수십 년 동안 낮은 수준의 계급투쟁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파업 물결로 우리는 희망적인 출발을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노동자들이 이러한 투쟁에서 교훈을 얻고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정치적 전망을 얻을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는 전 세계 노동자들의 진정한 이익을 증진할 수 있는 우리만의 국제 정당이 필요하다. 즉, 소수를 부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생산이 존재하는, 임금 노동의 착취가 없는 새로운 세상이 필요하다. 이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동자들은 스스로 파업 위원회와 대중 총회를 구성하여, 자본주의를 안전하게 유지하려는 제도권 정당과 노동조합을 넘어 자율적인 투쟁을 조직함으로써, 투쟁을 주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노동계급의 국제적 운동의 토대는 바로 여기에 구축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의 의회주의 속임수 안에서 노동계급의 더 나은 미래는 없다.
2024년 8월 19일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이 글은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기관지 「오로라」 최신호(68호)에서 발췌한 것이다.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4-08-19/labour-wins-but-it-s-no-victory-for-the-working-c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