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모아 서로를 위해 기도하자 (정호 신부님)
우리는 적어도 주일에 한 번은
하느님의 이름 아래 함께 모여 사는 사람들이다.
아니 매일을 그렇게 모여 살며 기도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순간들에 무슨 기도를 하고 있는가?
단 두 사람의 기도라고 하더라도
그 일이 무슨 일이라도 하느님은 들어주신다고 예수님은 다짐하신다.
그리고 그 곳에 예수님도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기회에 어떤 기도들을 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미 많은 일들이 일어났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사람들은 별 변화가 없다고 말한다.
별로 기도해도 신통치 않았다고 말한다.
하느님이 거짓말을 하신 것인가?
이게 어찌된 일인가?
도대체 우리의 기도는
이 무수한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결실을 잘 보지 못하는 것일까?
사실 우리는 함께 모여 있지만,
한 아버지의 이름으로 한 목소리로 자리하지만,
한 마음을 모아 서로를 위한 기도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기도하러 이곳에서 저곳에서 몰려드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기도를 가지고 서로 다투는 일까지 있다.
이 기도가 효과가 있다, 또 저 기도가 효과가 있다.
그렇다면 양 쪽에 함께 하시는 예수님이 서로 다투고 계신다는
우스꽝스러운 말이 되고 만다.
그러니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이 어느 한 곳에 모여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함께 마음을 모으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들의 바램을 하느님의 은총으로 내세울 수 밖에 없다.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협박이며 위협이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싸운다면
주님은 아무것도 아니 그곳에 머물러 계실 수조차 없다.
그러니 둘이나 셋이 모인 곳에서 우리는 기도하자.
마음을 모아 서로를 위해 기도하자.
우리는 지금 한 사람의 어이없는 죽음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누구 하나 그의 죽음에 책임지는 이들은 없다.
그는 나라를 위해 죽지 못했다. 나라가 그를 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희생자가 아니다.
희생자라면 무엇인가를 위해 죽었어야 한다.
그는 그의 죽음을 원하지 않았다.
또 우리도 그의 죽음을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희생자인가?
단순히 나쁜 살인자들의 희생자인가?
그들은 분명 그가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그러나 우리는 아주 빨리 그 길을 거절해 버렸다.
그리고 다른 것으로 그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죽었다.
둘이나 셋이 모인 곳, 우리는 한 곳에 모여 그의 생명을 지켜보았지만
우리는 그 생명과 하나이지 않았다.
우리는 결코 그와 함께 죽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이 죽음 속에서 하느님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안에 함께 계시겠다고 하신 그리스도를 볼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리스도는 외로움의 그와 함께 계셨고
모두의 따돌림 속에 그의 희생과 함께 하셨다.
지금 우리에겐 그리스도가 없다.
우리가 그분을 죽음으로 밀어내었기 때문이다.
"김선일" 그 이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악한 마음의 우리 자신의 거울이 될 것이다.
그의 영혼을 유일하게 사랑으로 안아 주시는 하느님께 봉헌한다.
☞주님말씀 사랑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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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실 우리는 함께 모여 있지만, 한 아버지의 이름으로 한 목소리로 자리하지만, 한 마음을 모아 서로를 위한 기도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반성하고 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형님께서는 용서를 청하셨습니다.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까. 존경스럽습니다. 화살기도 한방.
진정한 신앙인이란? 무엇일까 ? 오늘 저녁 묵상을 해보렵니다.
이기적인 제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우리의 이기심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음악이 참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