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家族). 듣기만 해도 따뜻하고 정겨운 단어다.
남편의 생일은 설 명절 5일 전이라 매번 가족이 모이는 것은 힘들다.
이번에는 우리 가족이 완전체가 되어 캐나다 딸네를 제외하고,
고등학생인 손자들 까지 전원 참석했다.
우선 생일날 아침엔 정성을 가득 넣어 만든 생일상을 차려주었다.
남편을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께 감사를 드린다.
아침을 먹고 남편을 위한 이벤트가 시작된다.
우리의 자산은 공동이지만 남편을 축하해주기 위해 금성 송이간장게장 집에 가서
명목상 내가 대접했다.
점심 식사 이후 100억을 투자 했다는 '카페 너른'에 차 한잔 마시기 위해 갔다.
투자 한 만큼 수형이 오래된 조경수와 조경석으로 정원들을 조화롭게 잘 꾸며 놓았다.
딸기 스무디 한잔씩을 마시고, 열대 식물로 가득한 비닐하우스 식물원을 돌아봤다.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놓았다.
밖으로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네에 앉아 청풍호반을 바라보니 전경은 신의 한수다.
큰 딸네는 3박4일, 막내 딸네는 4박5일 일정으로 온단다. 아빠 생일 이벤트를 해주기위해
저녁때 도착한다는 카톡이다.
오랜만에 누리는 가족과의 남편 생일 파티다.
큰 딸네와 막내 딸네가 보내온 바다 해물 박스가 배달되기 시작한다.
바다에서 먹는 해물보다 더 다양하다.
생일 케이크와 큰 사위의 글로벌 요리. 화려한 파티 상을 차려 가족들이
아빠의 생신 축하 노래를 시작한다.
올해는 금쪽같은 손녀의 탄생으로 더 의미 있는 생일 파티다.
행복이 뭐 별건가, 자식들과 오손도손 함께 하는 이런 것이 행복이지.
이튿날 딸들에게 100억 투자한 카페를 추천하니 자기들의 취향이 아니란다.
제천 어느 시골농가 '1929 카페'를 추천해 그곳으로 갔다
논 귀퉁이에 자리한 카페에 주차 할 틈도 없이 자가용이 빼곡하다.
한옥을 개조해 만든 카페다.
큰딸과 막내딸은 너무 좋다고 난리지만,
나는 자랄 때 늘 봐왔던 풍경이라 신기할 것도 없고, 그냥 이런 곳을~ 하고 넋이 나간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풍경의 찻 집들,나의 취향은 첨단을 뛰어 넘는 곳이지만,
딸들은 소박하고 정겨운 옛 것을 좋아한다.
요즘 젊은 세대들의 트랜드가 헌집을 리모델링해 놓은 카페란다.
천정엔 서까래와 전선줄을 노출해놓은 옛날의 풍경을 되살린 가옥.
사람들이 계속 찾아오는 걸 보니 잘 되는 카페임을 증명해준다.
각자 취향에 따라 차 한 잔씩을 마시고 집으로 왔다.
이튿날, 육아로 고생하는 막내사위와 남편과 큰 딸을 위해 라운딩예약을 해둔
맏사위 덕분에 모두 골프장으로 갔다.
자식들이 우애있게 지내는 걸 보면 부모는 더 바랄게 없다.
이날 만큼은 손녀를 독차지 하고 싶었는데 항상 같이 있던
아빠가 나가는 모습을 쳐다보더니 시무룩하다.
그때부터 표정이 병든 병아리처럼 풀이 죽고 하루 종일 웃지도 않고 칭얼댄다.
어디 아프냐고 열을 좀 재보라고 했지만 열은 없는데 뭔가는 불편해보이고 웃을 기미가 없다.
아빠와 헤어진지 7시간 만에 손녀는 아빠 품에 안겨서 깔깔거리고 무릎에 앉아 펄쩍펄쩍 뛴다.
이런 손녀를 보니 가슴이 찡하다.
말도 못하는 손녀지만 자기만을 위해 사랑을 주는 아빠를 아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았는데 저렇게 좋아하다니 우리에게 많은 걸 느끼게 한다.
교직에 몸담고 있던 막내 사위. 휴직계를 내고 힘든 육아를 하겠다고 해서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론 미안했다.
결혼 10년 만에 낳은 자식이라도 예쁘기만 할까? 힘든 순간이 얼마나 많을 텐데...
남편과 나는 하루 종일 육아에 시달려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까 늘 마음이 짠하고 아팠다.
막내사위에게 "힘들지?" 하고 물으면 제가 좋아서 하는데 괜찮다고 걱정 하지 말라는 막내 사위다.
눈이 하얗게 내려 은세계가 아름다움의 극치지만 감성은 잠시,
폭설과 눈보라가 걱정거리다. 도로 곳곳이 빙판이 되어 우리를 애타게 하는 귀경길이었다.
안전하게 잘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나니 맘이 놓였다.
모처럼 가족이 하나 되어 행복한 날들이었다.
첫댓글 차작가님의 제천.단양 뉴스 112번째 연재 글을 읽으면서, 원앙 부부의 무병 장수를 기원합니다.
효심 가득한 영애와 서군 그리고 손주들의 축하 속에 진행된 덕은 형님의 생일 축하연이,
어울림 펜션에서의 아름다운 마침표를 장식하며 성료됨을, 큰 재 너머에서 늦게나마 감축 드립니다.
산야에 쌓인 서설까지 자연의 섭리로 축하객이 되어 찬연한 은빛 서기로 드리웠고, 자리하신
모든 이들의 사랑이 함께 하였기에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셨습니다.
낭군님의 탄신기념일에 동부서주, 진수성찬, 유비무환의 준비를 하셨던 소담 여사님의 정성 깃든
마음과 손길이 원문 속에 부부애로 투영되어 있음을 봅니다.
첨언하여, 저와 아내가 결혼 한 이후부터 습관적으로 행했던 생일날의 첫 순서는, 부모님께 큰 잘 올리는
것으로 시작했었지요. 전혀 자식들에게 시사하려는 의도를 배제했고, 오직 낳으시고 기르신 은덕에
감사한다는 의미로 서막을 열었는데, 자식들도 매우 공감하며 우리 가정의 고유한 장점이라고 했습니다.
늘 우리의 앞날을 축복해주시는 김선생님 감사드립니다.
자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이 행복했습니다.
북적이다 떠난 자리는 왜 그리도 허전하던지요.
김선생님 부부는 본이 되시는 삶으로
자식들에게 은연중에 교훈이 되시니 존경 받을 만 할 부모십니다.
모두가 건강하시어 자식들에게 걱정 안 끼치는 부모가 되고 싶은데
세월은 속절없이 흐르고 나이는 먹어가고 심란합니다.
아버지 삼형제분 유독 딸이 많습니다
사촌 남동생 해군사관학교 입학서류 면접에
가족사항도 기록되었던지
김00생도는 누이들이 이리 많느냐 그러더라고
둘째 큰집은 그래도 아들이 셋~
이집 저집 자식들 성장과 결혼 시키고 보니
가장 시끄러운 집이 둘째 큰집 며느리 세명의 불화로 그 큰어머니 맘 편한 날 없었지요
우리집은 딸 뿐이여도 부모님 가까이 다 살게되어
엄마를 중심으로 늘 웃는 날 되었어요
숫골 관사골~큰어머니 고모..종숙모님~한 경로당에 모이는데
울 엄마는 늘 남편이 차에 태워 어르신들 간식까지 사들고 경로당 모셔다 드리고
해지면 모시러 가고..
그 시절이 늘 그립네요
오죽하면 둘째큰엄마 너희 집에 나 좀 데려가다오 하고
작년 친정 재종숙모 105세 돌아가시니
고향 가도 누구 옛 이야기 회상하며 나눌 친척이 없어요
머럼~무섬 다섯살때 외나무 다리 건너던 기억이..
그 곳에 재종들 좀 있을 뿐이네요
소담님댁은 변화하는 세월에 잘 적응한 자제분들 부모에게 큰 효도하십니다
서정님 아버님은 딸 사랑도 대단 하시지만 딸만 낳은 엄마께 대한 사랑도 남다르셨네요.
서정님 자매님들이 부모님께 효도 하시는 걸 보면 세상에는 공짜가 없어요
다 보상 받더군요
우리도 남편이 딸들에게 지극 정성이더니 모두 효도를 하네요.
친정 재종 숙모님이 105세까지 사셨다니 놀랍네요.
저는 40대까지는 아들이 없어
작은 댁 얻으면 어쩌나 하고 불안 불안했는데 지금은 홀가분해요..ㅎㅎ
사위들은 아들보다 더 살갑게 잘해요.
딸이 있어 행복해요
얼마나 챙겨주는지 부러울 게 없답니다.
열 아들 안 부러운 삶을 살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