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6일 첫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을 발표하면서, 교회개혁 의지를 밝히고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강력히 비판했다.
5개장, 288항으로 구성된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교회가 지금보다 더 선교적이 되고, 좀 더 자비로우며, 변화 앞에 담대해져야 한다는 자신의 비전을 드러내면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와 같이 교황으로서 자신의 ‘꿈’을 먼저 전했다.
교황은 “나는 선교적 선택, 즉 선교적 열정을 꿈꾸고 있다”면서 “교회가 자신의 존속을 위해서가 아니라, 현대 세계의 복음화를 위해 자신의 모든 관습과, 관행과, 스케줄과, 용어들과 구조 등 모든 것을 변화시키기를 꿈꾼다”고 말했다. 이어 특별히 교회가 “가난한 이들과 평화를 위해 특별한 열정을 지녀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황은 “문 밖에서 백성들이 굶주릴 때, 예수께선 끊임없이 ‘어서 저들에게 먹을 것을 내어주라’고 가르치셨다”면서 “안온한 성전 안에만 머무는 고립된 교회가 아니라 거리로 뛰쳐나가 멍들고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교회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교회개혁으로 인해 “길을 잃을까봐” 걱정하는 것보다 “잘못된 안정감을 주는 구조 안에, 냉혹한 판단을 내리게 하는 규율 안에, 편안한 느낌을 주는 습관 안에 우리를 가두어 두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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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바티칸 홈페이지 갈무리 |
<복음의 기쁨>,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실상 첫 문헌 “교회는 통행료 받는 곳 아닌 하느님이 머무시는 곳”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미 지난 6월에 회칙 <신앙의 빛>(Lumen Fidei)을 발표한 바 있지만, 그 내용은 주로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초안을 마련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에 발표한 <복음의 기쁨>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저술한 첫 문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의 존 알렌은 “이번 문헌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 특유의 친숙하고 소박한 언어가 빛나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교황은 그리스도인의 자질을 이야기하면서 명랑한 어조로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절대로 장례식에서 방금 돌아온 사람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교황은 “교회는 통행료 받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집으로서 모든 사람을 위한 자리가 마련된 곳이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고해소가 고문실 같아서는 안 되고, 우리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자극을 주시는 주님의 자비와 만나는 곳이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무엇보다도 교황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교황은 비록 이 문헌에서 교회개혁을 위한 포괄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단순한 암시에 그치지 않고 거칠게나마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교황 권력의 분산…지역 주교의 권한 확대되어야 “성체는 약한 자를 위한 치료제… 마녀사냥 세력이 문제”
교황은 먼저 “교황직 수행에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최근 몇 년 동안 교황권의 집중 현상이 거의 완화되지 않았다고 솔직히 밝히며, 이제 교황의 권한을 나누어 가지는 “건전한 분권화”를 촉진시켜야 한다는 말했다. 또한 지역교회의 주교회의에 “참된 교의적 권한을 포함하여 …… 법리적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동안 지역교회의 주교회의는 이러한 권한을 지니지 못했으며, 199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결정했던 것처럼 이러한 권한은 교황 및 교황에게 협력하는 개별 주교들만이 지니고 있었다.
한편 교황은 성체가 “완전한 자들을 위해 내리시는 상이 아니라, 약한 자들을 위해 주시는 강력한 치료제요 영양제”라면서 “성사를 향해 나아가는 문은 어떤 경우에도 닫혀서는 안 된다”고 권고했다. 교황의 이 말은 이혼하거나 재혼한 신자들뿐 아니라, 교회의 가르침 가운데 일부를 지지하지 않는 정치인이나 일반인들에 대한 성체성사 거부를 재고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어 교황은 “진짜 마녀사냥을 갈망하는 이들의 세력이 아직도 교회 안에 존재한다”면서 “만약 우리가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과연 누구를 복음화시킬 수 있을까” 반문했다. 또한 복음이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면서, 이 시대의 요구를 무시한 채 전례와 교리에만 “과시적으로 집착하는 것”을 경계했다.
한편, 몇 가지 측면에서 교황은 단호하게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교황은 교회의 의사결정과정에 여성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여성사제 서품이나 낙태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반대했다. “모든 이의 인권을 옹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태아의 생명도 교회는 옹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시장과 신성화된 경제권력 비판 “하느님은 모든 형태의 노예적 삶에서 해방되기를 원하신다”
<복음의 기쁨>은 사회문제와 관련해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고, 평화를 촉진하는 것이야말로 선교적 교회가 되기 위한 구성적 요소”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배제와 불평등의 사회를 비판하며 “오늘날은 경쟁과 적자생존의 법칙에 지배되고 있으며, 힘 있는 사람이 힘 없는 사람을 착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은 “더 이상 사회의 밑바닥이나 변방에 속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일원도 아니며, 버려진 잉여가 되었다”고 고발했다.
“‘살인하지 마라’는 십계명이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분명한 규범이었듯이, 우리는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에 대해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해야 한다. 이런 경제는 사람을 죽인다. 늙고 집 없는 사람이 노숙하다가 죽었다는 것은 뉴스가 되지 않지만, 주가지수가 2포인트 떨어졌다는 것은 뉴스가 된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교황은 자유시장체제로 경제가 성장하면 세상에 더 큰 정의와 통합을 가져온다는 ‘낙수이론’을 비판하며, “이 가설은 확인된 적이 없으며, 다만 경제적 지배권력의 선의와 지배적인 경제체제의 신성화 작업에 대한 순진한 믿음”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금융자본주의를 “새로운 우상”이라고 지목하며, 국가도 통제할 수 없는 경제권력을 “눈에 보이지 않은 채, 가상의 존재로 군림하는 경제적 폭정”이라고 지적했다.
교황은 돈과 권력을 절대적으로 여기는 태도 뒤에는 “하느님에 대한 거부”가 도사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자유시장이 절대화되면 “시장이 통제할 수 없는 하느님은 심지어 위험한 존재로 여겨진다”면서 “하느님은 모든 형태의 노예상태에서 해방되길 원하신다”고 말했다.
* 참고 기사 번역 제공 / 배우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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