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고(東皐) 선생의 서릉시필록(西陵試筆錄)을 읽고 감회가 일어 짓다
동고 선생 나 데리고 서원(西園)에서 강학하며 문단의 온갖 시끄러운 새소리 씻어 내라 하실 제 몇 번이고 거친 말로 종이*를 망쳤어도 잘 헤아려 아름답게 다듬어 주시곤 하였지 너른 바다 엿볼 수 없는 좁은 소견 안타까워 근본을 닦아 자기 터전 마련해야 함을 절실히 깨달았으나 머리가 세어서도 실수가 많은 이 제자*는 선생께 의지하며 책에 써주신 말씀만 되뇔 뿐이네
나는 을사년(1605, 선조38, 오준 19세)부터 동고 선생(최립崔岦) 문하에 유학하며 한유(韓愈)의 문장과 두보의 시를 배웠는데, 선생은 나를 비루하게 여기지 않고 퍽 열심히 이끌고 격려해 주셨다. 나를 위해 《권학서(勸學序)》 한 편을 지어 주시고, 절구 4수도 주셨다. 그 절구에, “아름다운 구절 들을 때마다 마치 푸른 숲 본 듯하니, 문단의 온갖 시끄러운 새소리 씻은 듯 들리지 않네”라고 했고, 또 “근본을 닦아 자기 터전을 얻어야 함을 절실히 깨달아야, 뜻을 세워 깊은 경지 끌어낼 수 있네”라고 하시거나, “금옥 같은 인재 가장 사랑하노라, 이 한마디 책 속에 쓴 적 있다네”라고 하는 등의 구절이 있다. 감히 선생이 주신 시에 있는 표현을 사용하여 시를 지었다.
*종이: 원문의 ‘현지(蜆紙)’는 조개껍데기 가루로 표면을 처리한 매끄럽고 흰 고급 종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제자: 원문의 ‘후파(侯芭)’는 원래 양웅(揚雄)의 제자로서, 양웅에게 『태현경(太玄經)』을 배웠고 스승이 죽자 삼년상을 지냈다고 한다.
壁閱東皐先生西陵試筆錄感而賦之 열동고선생서릉시필록감이부지
東皐携我講西園 동고휴아강서원 一洗詞林百鳥喧 일세사림백조훤 蕪語幾回災蜆紙 무어기회재현지 賞音曾遇斲犧尊 상음증우착희준 自憐持管難窺海 자련지관난규해 最覺培根正得坤 최가배근정득곤 白首侯芭多失墜 백수후파다실추 依歸只誦卷中言 의귀지송권중언
余自乙巳年游於東皐先生門下, 受學韓文杜詩。 先生不鄙夷, 提獎頗勤, 爲作勸學序一篇贈之, 又贈絶句四首. 其絶有“每聞佳句如看翠, 洗盡詞林百鳥啾”, 又有“培根須得地, 立意可鉤深”, 又有“最愛人才似金玉, 一言曾向卷中題”之句, 敢使先生所贈詩上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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