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화목하고 평화하라(욥22:21-30)
회개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그리고 복된 삶은 성경이 말하는 일반적 교훈입니다.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과 평안하라” 는 것이 본문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면서 가족 같은 화목을 원하신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도 서로 평화하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창조물을 아껴보시고(욥14:15), 세상을 사랑하십니다(요3:16).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과 화목하기 위해 예수님을 세상에 중보자로 보내셨습니다. 언약하신 대로 오셨고 수많은 그림자를 보여 주신대로 화목의 제물이 되셨고 사망의 머리를 깨뜨리시고 부활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화롭게 지내는 것은 복된 일입니다. 본문은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고 했습니다. 귀한 아버지를 모시고 살아야 할 아들이 아버지를 떠나 아버지와 불화한다면 스스로 복을 버리는 일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화하며 산다면 스스로 복을 차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화롭게 지낼 수 있습니까?
Ⅰ.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욥22:22에 “청하건대 너는 하나님의 입에서 교훈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교훈을 받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까?
이를 위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주셨습니다. 성경과 교회와 일꾼입니다. 성도에게는 영원한 교과서인 성경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성경을 가르치는 학교인 교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책임 맡은 교사들이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살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성도는 항상 성경을 묵상해야 합니다.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이 말씀을 깨닫기 위해 예배와 성경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의 가르치는 말씀을 경청하는 성도는 누구보다 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를 가까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그 뜻을 깨닫기 위해 성경을 이용하고 교회를 이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훈은 받은 것으로만 끝나지 않고. 그 교훈의 말씀을 자신의 마음에 새겨둡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것은 생활의 원리로 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 자기 나름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이 생활 원리입니다. 그 말씀이 자신의 사상이요 정신입니다. 말씀이 요구하는 대로 가고 말씀에 따라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남북전쟁 시 유명한 장군이었던 로버트 리는 자신의 삶에서 “성경은 내게 빛과 힘을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삼고 그 말씀을 마음에 두는 사람은 그 말씀 속에서 빛과 힘을 얻는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는 것은 순종함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와 화목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항상 순종합니다.
Ⅱ. 전능자에게로 돌아가고 불의를 버려야 합니다.
욥 22:23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면 네가 지음을 받을 것이며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는 길은 전능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는 전능자에게로 돌아가고, 소극적으로는 불의를 버려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은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고 말합니다(호14:1).
믿음은 최고의 의입니다. 믿지 않음은 최고의 불의입니다. 천국 가는 최고의 의를 얻는 길은 믿음입니다. 믿음만 가지면 누구나 천국 갈 수 있는 최고의 의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그 누구든 믿음을 갖지 못하면 그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화할 수 있는 길은 분명하고 확신 있게 그를 믿는 것입니다.
도덕적 선행이 의요 도덕적 비행은 불의입니다. 성도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두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도덕적으로 불의하다면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믿고 도덕적으로도 깨끗한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도적질을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간음을 싫어하십니다. 사기나 횡령을 하나님은 용서치 않으십니다. 불효자를 하나님은 결코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불의를 멀리하시며 불의와 타협도 않으십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진실하게 살 때 그것은 불의를 버림이요 그 삶은 하나님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 아는 것이 있는데 신자가 불신자에게 손가락질 받는 것입니다. ‘믿기만 하면 되지’가 아닙니다.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믿었으면 그 믿은 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이고 그 믿음이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되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야 합니다. 내 힘, 내 실력, 내 능력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그들은 어느 정도 자신을 과신합니다. 이런 생활 태도를 자율주의라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자신의 무능과 부족을 알고 자신의 삶을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려고 합니다. 이런 생활태도를 우리는 타율주의라고 부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삶의 자세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일하시게 합니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흥하게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잘된다는 말입니다. 발전한다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의 배경이 되어 주시고 힘이 되어 주시며 인도자가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Ⅲ. 하나님을 보배로 삼아야 합니다.
욥22:24. “네 보화를 티끌로 여기고 오빌의 금을 계곡의 돌로 여기라” 25절에는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화가 되시며 네게 고귀한 은이 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화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자신의 최고의 보배로 여깁니다. 믿음에는 반드시 세 가지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분명히 계신다는 존재의 확신이고 둘째는,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시라는 소유의 확신이며. 셋째는, 하나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고 하는 가치의 확신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존귀성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존귀함과 관계하여 본문은 “네 보화를 티끌로 여기라”고 했습니다. 세상에는 보화가 참 많습니다. 학문을 보화로 여기는 사람이 있고. 자녀를 최고의 보화로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최고로 여기고. 명예를 보화로 여기기도 합니다. 또 물질을 보화로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파상의 ‘진주목걸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한 부인이 친구에게서 진주 목걸이를 빌려 목에 걸고 무도회에 갔다가 그만 잃어버렸습니다. 그녀는 똑같은 목걸이를 구하기 위해 9년 동안이나 뼈 빠지게 일해 그것을 보상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잃어버린 친구의 목걸이는 가짜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은 금은보석 등을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으로 알고 그것을 가리켜 보화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을 최고의 보화로 여깁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보화는 티끌로 생각합니다. 세상의 보화는 하나님과 비교할 때 티끌만큼도 가치가 없습니다. 티끌을 집에 귀하게 모셔두는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 보화를 티끌로 여기라는 말은 세상 보화의 마음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은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빌3:8).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보화로 삼은 후 그의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버리고 가나안 땅을 향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다니엘은 총리대신의 높은 위치도 버렸습니다. 스데반은 자신의 생명까지도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의 보화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마6:19에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눅14:33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위의 말씀과 같은 의미로 “오빌의 금을 계곡의 돌로 여기라”고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이 기록될 당시에 오빌 지방에서 나는 금이 가장 질이 좋았습니다. 인기가 좋았고 값이 솟았습니다. 이런 귀한 금이라도 하나님과 바꿀 수 없고 비교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비교할 때 오빌의 금은 계곡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돌멩이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그에게 보화가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보화가 되어 주시면 만국의 보화가 따라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화롭게 지내는 삶의 결과를 본문은 이렇게 소개합니다.
기도의 열매가 있습니다. 욥22:27에 “너는 그에게 기도하겠고 그는 들으실 것이며 너의 서원을 네가 갚으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한 가운데 기도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들으십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과 가까움을 느끼고 하나님이 들으심을 심령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드리는 서원을 갚으리라고 말씀합니다.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께 드리는 서원을 갚을 수 있기에 더욱 기쁘고 좋습니다.
자신의 결정이 이루어집니다. 욥22:28에 “네가 무엇을 결정하면 이루어질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무슨 일을 계획하고 결정해서 일을 진행할 때. 그 하는 일이 자신이 결정한 대로 이루어지고 행복합니다. 일이 잘되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축복이요 기쁜 일입니다.
길에는 빛이 비칩니다. 욥22:28에 “네 길에 빛이 비치리라”고 했습니다. 빛이 비친다는 것은 성공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앞길이 형통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함께할 것입니다. 어두움이 없고. 막힘이 없으며. 소망이 넘치고 앞길이 열리는 복된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죄 가운데서도 건지십니다. 욥22:30에 “죄 없는 자가 아니라도 건지시리니”라고 했습니다. 성도가 세상에 살면서 온갖 죄를 짓고 있습니다. 성도가 죄가 없어서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죄인이지만 예수님이 죄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입니다. 죄는 하나님이 도말하시고 기억도 안하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불의를 버려야 합니다. 세상의 보화가 아닌 하늘의 보화를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의 큰 상급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창15:1). 하나님을 자신의 보화로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틀림없이 하나님과 화목을 이룬 성도입니다.
출처 / 초원교회에서 가져와서 편집했슴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