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도 즉 7년전에 올렸던 글입니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행하지 못한 게 많으나 그간의 경험으로 추리고 추려
진행을 할 것입니다
새로이 정착을 하시려는 분들에게 조그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일일이 만나 대화를 나누지는 못해도 site에서 벌어지는 일들,글들을 읽어 가노라면
안타까운 부분들이 많다
수 십년을 일구고 땀을 흘렸던 직업을 버리고 이농,귀농하려고 떠나는 사람들,
저간의 사정이 있겠지만 그러나 너무 쉽게 생각하고 동화되는 사람들이 있기에
안타깝다
먼저 귀농을 하려고 발을 담근 분들에게 참으로 대단한 용기를 냈다고 싶다
그 용기가 쉽게 좌절되지 않고 꺾이질 않길 바랄 뿐이다
이제 3년차의 두리뭉실한 얼치기인 내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어줍잖지만
혹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해서 올리는 글이니 악플달면 맴 아포!
청양서 2년,농촌생활을 뒤로하고 산골로 들어 온지 한달 여,
전기도 없는 생활을 하다보니 며칠간은 황망스럽다
사람은 어디서나 이 보다 더 한 상황에서도 스스로 적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적응도 점차 불편이나 싫증을 느끼게 된다면 문제가 된다
촛불이나 호롱불 생활도 하루 이틀이지 버튼만 누르면 어둠도 밝혀주고
밥도 해 먹을 수 있고 시원한 맥주도 마실 수 있는 세상을 놔두고 어둠에 묻혀
더듬거리며 살아가 보려면 어떨까?
그래, 이건 그나마 운치가 있다고 돌려버리자
그래 말이 좋아 자기 위안이다
어제 밤처럼 바람이 지붕위로 벽으로 난리를 치고 요동을 치는 소릴들어가며
그 바람의 위력을 겪어보라
아무도 없는 첩첩산중 골짝엔 물소리는 얼마나 세차게 들리는지...
2시간여의 바람이 주는 공포, 무서움을 모르는 내게도 전율을 느낀다
아침,언제 그랬냐 싶게 산속도 환하게 웃음으로 비쳐준다
참으로 따사한 아침이다
산책삼아 산으로 더 올라본다
어제 바람에 꺾이고 부러진 소나무 8그루가 처참하게 널부러져 있다
전에는 무심하게 지나쳤을 나무들이 이제는 마음이 아프다
바위에 앉아 생각해 본다
무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머리는 폼으로 무겁게 꼭대기에 붙여놓은 것은 아니다
영양가있는 작품을 내라고 만든 것이다
그래 청양서는 완전 실패다
서울서 태어 나 시골은 산을 찾거나 여행을 다니다 알게 된 것이 전부다
30대에 괴산 연풍의 어느 마을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의 정경을 보고 농촌을 그리워 하고
열병에 빠졌었다
겉 볼 안이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가야 하는 데...하는 데...
여러 군데 발품을 팔고 헤집고 다니다 만난 곳이 청양이었다
혼자 옮기고 부터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이내 후회도 밀려오고 또 다른 갈등으로 올라갔다 다시 맘잡고 내려오고...
어느 날 아침부터 밤까지 술에 절여 있는 자신을 보고 놀란다
이렇게 까지 망가졌던가
다시 추스린다
동네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두려웠다
들은 풍월이 있어 텃세라는 못된 망아지 뿔만 연상했기에 그랬는지 모른다
동네에서도 떨어진 곳에 홀로 마음의 문을 닫고 벽을 쌓고 살았다
몇 달을 .....나의 건방짐이다
얼마나 무지스러운 소치인가?
더불어 살아야 한다 진리다
저 혼자 재주가 있고 용빼는 기술이 있다 하더라도 혼자서는 결코 살 수없다
싫더라도 부딪히고 어울리고 내 자신이 먼저 문을 열고 그네들을 공손히
맞아들여야 한다
설사 그네들이 앞에선 갖은 웃음과 사탕발림이 담긴 친절일지라도
나라는 존재,그 네들이 알턱이 없지 않은가?
강아지도 자신의 지역에 들어오면 이빨을 드러내며 짖지를 않은가?
어중이 떠중이중 하나인 내가 마을에 들어서는 데 어느 누가 반갑다고
덥썩 잡아준다 말인가?
한 평생 조상으로 부터 물려 받은 땅으로 땀과 회한이 담긴 이맛살의 주름을 보면
외지인을 터부시하고 텃세받는 다는 가당찮은 생각은 버려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만든 것 뿐이다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삶의 터전에서 쥐뿔만한 이주 보상비로 몰아낸 것이 우리이지
그네들이 아니다
그네들이라고 황량하고 시들어져 가는 동네에 사람들이 들어 오는 걸,
싫어 할 사람은 없다
단지 또 다시 자신에게 해가 될까 싶어 경계하는 것 뿐이다
그 네들과 동화하고 마음의 문을 열고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게 나같은 사람들의 몫이다
어설프게 판단하지 말고 그 어설픈 판단으로 자신과 남에게 까지
생채기를 만드는 愚를 만들려 하지 말자
하물며 도회지로 갔다 다시 돌아 온 고향지기에게도 곱지않은 시선을 주는 데
말해 무엇하랴
그 네들이 문을 열어줄 때까지 싫은 소리,설사 이용을 당한다 할지라도
받아들일 때까지 가식이 없는 내면의 美를 보여주어야 한다
승질드런 넘이야 좀 더 철들어야 하겠지만...
보편적으로 자신이 쌓아왔던 터전이 살기가 낫다
그 삶의 터전을 버리고 시골 생활이 힘들어 떠났 던 곳을 다시 찾아 들려한다
농촌 산촌 어느 곳에서의 생활, 동경이 아니다
그림같은 집? 동화속에 나오는 숲과 잔디깔린 마당?
개 꿈이다
그래, 돈의 여유가 있어 부부가 좋은 땅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뒤로는 병풍을 두른
바위에 앞에는 개울이 흐르는 곳에 조금 더 보완하여 연못도 만들었다
그리고 조경수도 심었다
정말 환상적이다
생활비를 벌어야 하고 일도 해야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사람이 찾아오게 끔 멋진 펜션도 짓는다
찾아드는 이가 어찌 좋은 손님만 있을손가?
나 같이 개차반같은 이도 있을 것이며 술만 먹음 주사가 심한 젊은 넘들도 있을 것이다
말이 좋아 친절이고 서비스이지 50-60대에 자식뻘되는 이들에게 그러한 수발?을
할 것인가?
그렇다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호텔 맨을 섭외할 것인가?
생각해 볼일이다
오 가는 이들이 보면 성공했고 행복하게 살아간다고 할지 모른다
노동력은 점차 상실해 가는 데 60먹은 부인을 일일이 손님을 수발하게 만들 것인가?
그게 행복인가?
일을 하지 않으면 시간을 보내기가 어려운 게 시골이다
별 다른 문화생활 꺼리가 없으니 일을 해야 한다
농촌에선 사람구하기가 과장나게 말한다면 하늘의 별따기다
50대의 젊은 사람? 구한다면 행운이다
그 사람들도 5년이 지나면 그 나마 구하기가 힘들다
내가 50에서 쪼끔 넘었다
그렇다고 누구만큼 허우대 좋고 게다가 힘도 무지 좋은 것도 아니다
내 노동력의 상실하는 나이는 언제가 될지 모른다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다행히 건강이 허락되여 10년을 더 버티게 될지 모른다
지금은 5마지기의 밭을 갈군다하는 힘이 있다 하더라도
몇 년후에는 한 마지기도 힘에 벅찰지도 모른다
하물며 평탄한 田도 아닌 산세가 가파른 곳, 말이 좋아 3만여평이지
무슨 재주로 한단 말인가?
문제는 노동력이다
혼자서는 커녕 둘이서도 힘들다는 결론이 나온다
부치지도 못할 땅에 더 많이 가지려 하지 말라
풍기로 오기 전에 산을 답사하고 같이 할 사람도 만들었다
계획도 세우고 모래성을 쌓고 허물고 그랬다
계획했던 것들을 예를 들어 밝혀 본다
일단 생활은 해야 하니까 1년차인 단기적으로 이익을 낼 것을 호박(약호박,단호박)
율무, 육모초,일반 농사
자작나무(수액--허가 후)
다음에 중장기적인 가능성 있는 것들을 추려 보면
1.옻나무 묘목 각종 묘목(관상용포함)--5년
2.차가버섯,표고버섯-5년
3.지름 1cm미만 산 복숭아 씨앗(염주판매)
4.관광화훼 생산(죽통술-과일주) 발효차(국화 구절초등)
냉동건조한 흰 민들레(도공용)차, 칡 꽃차--5년
5.석,부작..희귀곤충,식물 상품화(솜다리,에델바이스,고란, 개붕앙란,금낭화 할미꽃-3년
6.지렁이,굼벵이 양식
7.토종씨앗 보급..흰진 나는 상추, 오이,개똥참외,가래,작약 ,당귀 옥수수 1-5년
대충 이렇게 계획을 세우고 이 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것도 있고
또 토질에 따라 안 맞을 수도 있다
상당한 양의 방대한 것 같지만 실지는 그렇지 않다
문제는 노동력이다
혹자는 실현 불가능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이 중에서 가능성있는 것들을 다시 추려야 한다
또 다시 사람구하기가 힘들고 설사 구한다 하더라도 인건비가 만만찮다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같이 뜻을 맞추고 동조하려는 사람이 있을까?
조금만 섭하게 해도 뒤 돌아 서 버리는 사람들이 많은 데...
하다 하다 안되면 욕심을 버려야 한다
자신의 역량에 맞춰 움직여야지 무리하면 시골로 내려 온 초지의 뜻이 아니다
왜 시골까지 와서 자신을 억압(일)하고 구속하려는 겐가?
앞으로 노후,잘 생각하고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지금 밤 자리에서 조금 힘 좀 쓴다고 앞으로도 지금의 젊음이 지속되리란 법 없다
자신이 좋아 하는 일을 찾아 하는 일도 행복이다
그러나 자신이 좋다고 가족까지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한 쪽만이 좋아 반 강제식으로 귀향하여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 하더라도
무언가 불만족스럽고 불안정하다면 그것 또한 고통의 연속이요
불완전한 삶이다
부부가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다한 들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이다
앞으로도 살아가는 동안 그러할 것이고 서로 맞춰 살아 야 한다
지겹고 단조롭고 권태롭게 보내려 하지말고 문제가 있음 둘이 서로 맞춰 살아야 한다
가족의 동의하에 1-2년이라도 살아보고 별 다른 잡음이 없다면 그 때 시작하는 것도
늦지 않다
나이에 쫓긴다고 결코 서두르지 말고 남들과 결코 비교하지 말라
그들이 그렇게 만들고 쌓아오기까지 일구어 낸 땀과 수고에는 고통도 있었을 것이고
수 많은 갈등과 싸움의 부침속에 일구어 낸 것이지 거저 된 것이 아니다
잘 사는 모습을 보고 기 죽을 필요는 없다
그 만큼 열심히 살면 그렇게 되지 않겠는가?
거듭 말하지만 시골로 온 이유, 사정은 각기 다르겠지만
일에 치우 쳐 자신을 구속하지 말고 즐겁게 하였음 싶다
죽을 둥,살 둥 마지 못해 일을 한다면 그건 자신에게도 이로울 게 없는 노동일 뿐이다
그럴바에야 뭐하러 힘들게 시골로 온다 말인가?
차라리 산에 올라 가 봄이면 봄대로 가을이면 가을대로 나오는 자연이 주는
양식이 지천으로 널렸는 데 먹고 사는데에 지장이 없고 있는대로 살겠다면
산에서 양식을 구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 수고로움도 힘들다면 밥 숟갈 놓는 수 밖에....
끝으로 요약하자면
1.건강부터 챙겨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말이다
아픈 것은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결례다
지켜 보는 사람도 본인 자신도 고통스럽다
가급적 부인이 차려 주는 밥상은 꼬박 챙겨 먹어야 한다
차려 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모르고
맘에 드는 찬이 없다고 타박하다가는 죽음으로 가는 지름 길이다
이,귀농할 결심이 섰다 하더라도 미리 땅을 사거나 마련하지 말고
자신이 살고 픈 곳에 터를 빌리든지 임대하든 1-2년 살아보고 결정하라
자신의 뜻과 안 맞을 수도 있고 힘에 벅차 그만둘 수도 있다
문화적인 생활이나 자식의 교육여건등 걸림돌이 나올 수도 있다
그리고 시골정서와 동 떨어지고 동네사람들과의 마찰로 쫓겨?나야 할 상황도
발생할 수있다
마음에 들고 살 자신이 있음 그 때 구입해도 늦지 않고 좀 더 좋은 땅 ,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일을 하되 즐겁게 하라
자신의 노동력의 시간이라는 사이클에 맞춰 무리하지 말라
일이 힘들고 지겹다고 생각들면 과감하게 하루라도 빨리 보따리 싸 들고 원 위치
하는 게 가장 속 편한 일이다
힘들게 여러 과정을 넘고 넘었다
곁에서 말 없이 묵묵히 남편과 자식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버린 사람, 바로 부인이다
그 부인이 곁에 없었다면 지금의 당신이 있었겠는가?
그렇게 고생하고 수고한 부인에게 60넘어까지 밥상을 차리게 하고
빨래를 하게 할 것인가?
조금 더 부지런히 벌고 아껴 부인의 수고를 대신 할 사람을 구해 남은 여생을
편안케 해 주는 것이 남정네의 몫이다
이제 꿈을 꼭 이루시길 빕니다
無處不當.....무슨 일을 당하든지 못 할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힘들게 일하는 만큼 성취감도 커지는 법입니다
소백산 줄기에서 산 고을 .......
첫댓글 참고하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칠갑산쪽 산속에서 몇가구 집이있는거 보았는데 너무 좋더라구요
무슨 수도원이라하던데 밤이 정말 왕밤이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