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전3:17-22. 성도는 주님과 약혼한 자
16절에서는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말씀이 있습니다. 선한 양심은 '더러운 양심(딛1:15), 혹은'악한 양심'(히10:22),다음으로 사단에 의해 완전히 기능이 마비되어 버린'화인맞은 양심'(딤전4:2), 이런 것과 반대 되는 것이 '선한 양심'입니다. 선한 양심이 왜 필요한가? 그것은 교회를 비방하고 성도를 핍박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십니다. 이 선한 양심은 내면, 즉 속사람을 선하게 갖는 것, 이상을 말씀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행위, 즉 삶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으로 은혜가 풍성하기를 축복합니다.
17절입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무슨 의미일가요? '선을 행함으로''아가도포이운타스'는 '윤리 도덕적인 행함'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선을 행하는데, 즉 하나님의 명하신 말씀을 따라 사는데 고난이 왔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선을 행하는 것이 고난일지라도 혹은 그렇게 느낀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날에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악을 행하다가 감옥에 가서 고난을 받는다면 그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선을 행하므로 받는 고난과 악을 행하다가 받는 고난은 차원이 다른 것이고, 또한 하나님의 나라에도 도덕의 질서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질서를 파괴하는 것을 용납하시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예수를 믿기 때문에 그 질서를 지키는데 고난이 왔다면 그 고난을 통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선을 보여 주는 행위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유익이 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무어라 하시고 있습니까?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1:2), 다시 말하면 고난이 올때 기뻐하라 하시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성숙되려면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주의 영광이 임하는 통로가 고난이라 하시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면서 몇십년 동안 직분자라 하면서 주님 때문에 받아야 하는 고난은 모두다 거절을 하고 있다면. 성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한알 밀알이 썩어지는 고통이 없다면 그는 새로운 변화체로서의 영광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과 약혼한 관계입니다.
그리스도의 약혼녀는 주님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주께서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이며 그의 신부로서 고난은 당연히 받아야 하는 부분인데 성도인 우리만 받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런 고난이 훗날에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주님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칭찬과 상급을 받는 복입니다. 누가는 행5:41절에서 기록하기를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또한 바울도 빌1:29절에 말씀하기를"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런가 하면 베드로는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벧전2:20),
18절입니다.
18절에는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신 실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소개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점도 흠도 없는 완전하신 분으로서 죄인인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짊어지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를 하나님앞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불의를 짊어지시고 고난뿐 아니라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바로 속죄제의 희생입니다. 우리 앞에 다가오는 고난이 그리스도께 받으신 고난과 같은가? 머리에 가시관을 씌운것 만큼 고통스러운가? 또한 채찍으로 때리며 조롱을 받고 있는가?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거듭난 우리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비교할수 없습니다.
이사야는 말씀합니다.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또한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53:3)
또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4:25)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2)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므로 위로를 받고 소망가운데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고난을 견디면 그것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과 같다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고난이 올때 기뻐하라 하시는 것입니다. 깨달아지시면 아멘,
18절에서 '영으로 살리심을 받으셨다'라는 의미는 예수님의 자연적인 몸 육신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영적인 존재의 영역에서 변화된 육체를 지닌 영원한 영의 형태로 살리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천상에서 영원히 거주하기 위하여 영적인 존재로의 부활이 필요한 것입니다.
19절입니다.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예수님은 분명히 옥에 있는 영들에게 찾아가셔서 무엇을 선포하셨을까? 이 본문은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이라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그냥 넘어가야 할까? 읽으시는 횐님들은 은혜가 되시면 받으시고 아니면 버리시기 바랍니다. 조용히 묵상을 하면....온 인류의 죄, 불의를 양 어깨에 다 짊어지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리고 죄의 삯은 사망이라 하나님이 정하신 법대로 우리 대신 죽으셨습니다. 죄인이 가야할 곳, 그곳은 지옥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고 죄인의 몸으로 옥으로 가셨습니다.
예수께서 신약에만 등장하시고 가르치고 인도하셨을까요? 구약성경 곳곳에서 예수님은 오셔서 사역을 하셨습니다. 야곱과 씨름하시고 그에게 이스라엘이라 이름을 바꾸어 주신 분이 천사일까요? 천사는 자기의 뜻대로 이름을 바꿔 주는 권세가 없습니다. 단지 주의 심부름을 하는 자들이죠, 이분은 바로 예수이십니다. 하갈이 아들과 함께 광야로 쫓겨나서 가시덤불 밑에 아이를 놓고 떨어져서 마주보고 울때 찾아오셔서 눈을 열어 터진 웅덩이를 보게하시고 위로 하시며 이스마엘에게도 한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이라 하신 분이 천사일까요? 예수님이십니다. 여호수아에게 군대 장관으로 나타나신 분이 천사일까요? 예수님이십니다.
구약에서 일하신 예수께서 구약에서 예언하신대로 마침내 온 세상의 구주로 오신 일, 그일을 이루신 일, 그 일들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옥에 이끌어 올리시고 즉 사망을 깨뜨리시고 부활하셔서 그에게 영원한 이름과 대제사장으로서, 또한 우리에게 중보자로 그리고 만왕의 왕으로, 그리고 신랑으로 세우시고 하늘 우편에 계시며 다시 이땅에 심판주로 재림하실 것입니다.
20절입니다.
그들은 노아시대에 불순종했던 자들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그 옥에는 노아 시대에 불순종한 죄인들만 있는 곳은 아닙니다. 전 세대에 걸쳐 불순종한 자들의 영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복음을 들었지만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노아를 조롱하며 비웃다가 물로 심판을 받은 자들로서 그때에 노아가 전한 그 구원의 길을 놓친 그들에게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말씀은 동일하게 적용이 됩니다. 지금도 참으시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지금 주님의 발자국 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리고 있습니다.
그때에 물로 구원을 얻은 자가 겨우 노아의 식구 여덟이라 하십니다. 겨우 여덟명, 소돔과 고모라에서는 겨우 3명,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사람은 1세대에서는 겨우 2명, 구원의 좁은 문을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도 좁은 문으로 들라 찾는이가 적다, 우리의 신앙 생활이 넓은지, 좁은지 한번 돌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말미암아'원어'디'전치사는 '~무엇을 통과하여' 이므로 물을 통과하여 방주안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물이 20절에서 세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례가 구원의 표라고 했습니다. '표'가 무슨 의미일까요? 세례만 받으면 다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는 걸까요? '표''안티튀폰'은 '모형''형상''예표'등 명사적 형용사입니다. 다시 처음부터 보면 세례라는 모형때문에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인해서라고 하시고 있습니다.
두 번째 세례가 물을 수단으로 해서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 연합을 이루었다는 공적인 선포가 중요합니다. 롬6:4절에서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물은 죽음이고 그 물에서 일으킴을 받을 때 새 생명으로 다시 사는 영적인 의미로서 하나님과 막혔던 담들이 무너져서 회복되고 교제길이 열린 것이며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간다는 양심의 서약을 한것입니다. 여기서 '나아간다는''에페로테마'는 질문''요구''청구'의 의미로 NIV는 'the pledge'로 '서약'이라 번역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양심의 '계약'으로 볼수도 있습니다. 세례가 할례의 대체로 주어진 것이라면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계약을 맺은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할례'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담보로서....
22절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하늘에 오르시어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우편은 신적인 권능을 누리는 자리를 의미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시110:1)하늘에 있는 모든 영적인 존재들이 모두 그리스도께 순복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왕 되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왕되시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자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이 성경, 즉 편지들을 남겨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편지들을 열심히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마음과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나아가야 합니다. 고난이 오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우리 앞서 고난을 받으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낙심치 말고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세상에 그리스도를 전하며 세상에 빛으로 향기로 편지로서 사명 감당하시고 그날에 주님 다시 오시는 날에 복된 자리에 다 들어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의정부등대지기 / 하늘산소..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