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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경험의 아픔>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조금 넘었다. 일행은 벌써 한 판 구슬치기에 몰입하고 있다.
끝마치기를 기다려 함께 인근 선술집에 들러 병어회를 안주 삼아 산소주 각 일병씩을 수면제 삼아 들이켰다.
11시 40분이 되어서 서초구청 앞에 도착한 관광버스에 올랐다. 2호차인데도 만석이다.
우리는 맨 뒷줄 네 자리에 꾸겨 앉았다.
이내 잠을 청하려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엔진의 소음, 흔들리는 차체 그리고 무릎을 꽉 죄어오는 앞좌석 때문에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다. 수면제는 전혀 약효가 없다.
이미 내심 잠은 포기하고 그냥 눈을 감고 있을 뿐이다.
비몽사몽 중에도 두차례 머무는 휴게소마다 차에서 내려 경직된 무릎을 풀며
컨디션을 조절한답시고 서성거리다가 다시 돌아와 몸을 던진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도 또 한차례 차가 멈추는 것이 감지된다.
눈을 비비고 내다보니 내설악 휴게소다.
새벽 2시 30분경쯤 된 것같다.
먼저 차에서 내렸던 백두가 갑자기, 마지막 휴게소이니 모두 내리라고 재촉한다.
산 밑에 도착 후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나서 새벽 어스름에 등산을 시작할 것이라고 들었는데 그건 오보였음을 뒤늦게 확인한 것이다.
하산 후에나 식사할 수 있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부랴부랴 휴게소 식당으로 기어들어가
때아닌 황태국밥 한 그릇을 소나기처럼 퍼 넣으며 걱정이 시작되었다.
거금을 주고 헤드랜턴을 구입하며 비상용으로만 사용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였는데
최악의 상황이 전개될 것 같은 예감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게 아닌가!
이런 내 마음은 알 바 아니란 듯 다시 올라탄 버스는 오르락 내리락,
좌우로 몸을 비틀어가며 미시령에 오른다.
배 속에서는 아닌 밤 중에 꾸겨 넣은 음식물들이 서로 뒤섞여 싸움질을 벌이더니
脫出하려고 몸부림친다.
뒷줄에 자리잡은 것을 後悔하며 調息法으로 진정시켜가며 참아냈다.
미시령에 도착하니 3시 15분이다.
너도나도 坑道에 들어가는 壙夫들처럼 머리에 헤드랜턴을 뒤집어 쓰고 불을 밝힌다.
그래도 몇 조각 반딧불일뿐 천지는 깊은 어둠 속에 숨어 몸을 드러내지 않는다.
<夜襲>
끼리끼리 일렬로 대오를 갖춘 후 준비운동도 없이 저벅저벅 進軍한다.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속으로....
선잠, 야식, 곡예운전의 후유증으로 속이 울렁이는 데다
어둠의 공포가 등줄기를 훑어내리니 어찔어찔하여 몸이 공중에 떠있는 것 같다.
우리 일행도 야간 전술대형을 짰다.
백두 살사가 뒤서고 猛將 아귀가 先鋒이다.
불수도북종주로 탄력받은 아귀의 駿足이 밤이면 더 강해지나 보다.
멀찌감치 앞서가는 그를 바짝 뒤쫓지 못한 내가 결국 선봉이 되고 만다.
뒤편에서 서두르는 소리에 마음이 조급해진다.황급히 작전 변경.
정완을 뒤로 불러들이고 백두가 선봉을 맡았다.
새로 산 백두 등산화 뒷축의 야광띠에 랜턴의 촛점을 맞춰놓고
온몸의 신경을 발끝에 集中하며 백두의 뒤를 밟는다.
그러다 보니 10분도 안되어 벌써 極度의 緊張感으로 숨이 헐떡거리며
다리가 경직되면서 경련이 인다.
그러기를 30분쯤 했을까? 나는 벌써 거의 녹초가 되었다.
극도의 긴장과 신경집중으로 에너지가 一時에 放電되어 버린 것이다.
되돌아 내려 가고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솔직히 말해서 抛棄하고 싶다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 했다.
그리고 두려웠다. 이제 겨우 동구밖에 왔을 뿐인데... 벌써....
<너덜바위에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버리고>
그래도 산길이 나있는 곳은 그래도 좀 나았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너덜바위" 구간에 이르니 가슴이 철렁내려 앉는다.
바위덩어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제멋대로 울퉁불퉁 놓인 바위 하나하나를 건너 끝을 알 수 없는 어디까지 무작정 가야한다.
가지런히 놓여 있는 계단도 주의를 기울여 내려오는 내게는 정말 끔찍할 뿐이다.
손으로 만져 확인하고 조심스레 한 발씩 옮겨갔다.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걸어 가는 길을 나는 이제 막 걸음마 배우는 아기처럼
恐怖感에 휩싸인 채 네 발로 기었다.
내 體力은 이 첫번째 너덜바위에서 거의 거덜났다.
이렇게 헤메다 보니 후미가이드는 A4용지 위에 화살표를 그려
바위 곳곳에 띄엄띄엄 얹어 놓은 길案內標識를 거둬들이며 내 뒤를 바짝 뒤쫓는다.
"황철봉에서 日出을 보지 못하겠는데" 하는 그의 혼잣말이 아프게 고막을 찌른다.
나로 인하여 同志들이 해돋이를 보지 못한다니 미안한 마음에 괴로워진다.
아! 이 참담한 심정.
'盡人事待天命하자'고 마음을 달래며 이 極限狀況을 헤쳐나갈 수 만 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感謝하자고 기도했다.
너덜바위를 엉금엉금 기어오르면서 부끄러움도 사치이며 미안함도 오만임을 알았다.
그렇게 칠흑의 夜山에서 보낸 서너시간은 서너해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가파른 너덜바위몇 구간을 겨우 올라 황철봉 중턱을 지나려니
黎明의 빛그림자가 희미하게 발 아래 깔린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머리에 불을 밝혀두었다.
마침내 첫번째 봉우리 황철봉에 오르니 건너편 산봉우리가
벌써 선홍빛 해를 머리 위에 이고 있다.
나는 미안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우리 동지들의 어깨를 부둥켜 잡고
사진속에 감격을 담았다.
그런데 앞서가던 정완이 보이질 않는다.
길을 잘못 들었나 싶어 소리쳐 불러도 아무 대답이 없다.
한 십여분 내닫던 날쎈돌이 살사가 혼자 앞서가던 그를 찾아내고 안심했다.
나의 牛步에 진력이 났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또 고개든다.
<運命처럼 걸으며>
나즈막한 구릉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울산바위.
많지는 않지만 간간이 피어있는 철쭉.
이름 모르는 들꽃들과 짐짓 여유보이며 눈맞춤하는 것도 잠시,
또다시 몇차례 반복되는 너덜바위를 두어 시간 기어 오르니
저항령인지 저항봉인지 하는 언덕이 수문장처럼 눈 앞에 버티고 서 있다.
저항하지 말고 순순히 기어 올라오라는 건가?
그래 나는 저항령 앞에서 저항할 힘을 잃고 스스로 완전히 무장해제 했다.
이제부터는 그냥 가는거다.
運命처럼 마냥 걷다보면 어딘가에 끝이 있겠지...
언젠가는 그곳에 이르겠지...
<컷오프 -cut off- 通過>
"恐龍陵線을 오르려면 9시까지 마등령에 도착하여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바로 비선대로 下山시킬 수 밖에 없다"는 차내 안내방송이 가슴을 찍어누른다.
출발전, "뫼솔산악회가 세다. 그러나 우리정도면 中上水準은 될거다."라는 백두의 말에
'산에 누구하고 시합하러 가는 게 아니니 그정도면 됐지.'하고 생각했던 내가
지금 컷오프를 걱정하고 있다.
오만과 방심의 대가는 혹독하다.
밤잠 안자며 어둠을 뚫고 여기까지 올라 온 동지들에게
예기치 못한 부상병이나 속된 말로 초짜들에게나 있을 수 있는
中途下山이라는 汚辱을 안길 수는 없지 않은가!
몇 차례 雪岳大靑에 오를 때마다 백담, 천불동, 수렴동 계곡의 絶景을
悠悠自適 玩賞하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그러나 지금 그 아름다운 설악의 기억은 사치일 뿐이다.
오직 동지들이 컷오프에 통과하는 것.
그것만이 내가 지금 여기 있는 惟一한 理由요 目標일 뿐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 후 마등령에 이르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없다.
시계만 보며 내 딴엔 아무 생각없이 그냥 뛰었을 뿐이다.
얼마나 뛰었을까?
마등봉을 지나 마등령 입간판이 세워져 있는 자그마한 공터가 나타났다
기다렸다는 듯 한 젊은이가 저승사자처럼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게 보인다.
얼떨결에 나는 휑뎅그레한 눈을 껌뻑이며 숨을 몰아쉬며
"가도 되느냐" 고 하소연하듯 물었다.
"가 보세요. 갈 수 있겠어요? 공룡만 다섯시간은 타야햐는데...."하며 말꼬리를 흐린다.
초췌하고 얼떨떨한 내 행색을 쳐다보는 것이
영락없이 거지꼴로 밥 내놓으라고 보채는 몽룡을 바라보는 월매의 눈이다.
염려되는 모양이다.
'가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 '
'비정하지만 나는 책임 못지겠으니 네가 결정하고 네가 책임지라는 의미인가?'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그저 동지들이 컷오프에 통과된 것만으로 더 바랄게 없다.
그러면서 내 마음은 "이제 나는 하산하는 게 좋겠다."는 誘惑과 싸우고 있었다.
<後悔와 歡喜>
잠시 후 나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이미 나의 발이 마음 속 갈등을 外面하고 공룡의 꼬리를 타고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능선에 오르면 脫出路가 없다는데 이미 체력이 고갈된 상태로 다섯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
深夜登攀에서 힘을 너무 쏟으며- 힘들게 오르고,
쉬지 못한 채 또 오르기-를 반복하다 보니 계속 고전의 악순환이다.
무거운 다리를 질질끌고 가며 '精神力으로 해내자'고 나 자신을 수 없이 격려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힘이 빠져나간 자리에 고요한 정적같은 것이 스믈스믈 채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몸은 힘 드는데 마음은 편안해 지는 느낌이 든다.
몸과 마음이 分離되어 따로 노는 것 같다.
죽음의 전조인가?
肉體의 고통에서 빠져나온 心靈의 自由로움인가?
나는 그런 상태로 그냥 걷고 있었다.
나는 淡淡해져 있었다.
오히려 마음이 豪放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기 페이스를 억제한 채 나를 받쳐주며 묵묵히 교대로 同行해주는
살사.백두와 진하게 無言으로 交感하며 心起一轉.
나한봉을 시작으로 공룡의 片鱗을 하나씩 벗겨가다 보니
어느덧 공룡의 심장부에 이르렀다.
갑자기 사방이 십자로 탁 트인다.
울퉁불퉁한 바위덩어리를 벽돌 쌓듯 좌우에 세워놓은 암벽의 정교함은 天衣無縫이요
골짜기 가로질러 건너편에 솟아있는 천길斷崖가 숨막힌다.
환희와 감격이 기암절벽에서 눈부시게 쏟아지고
육체의 피로가 계곡아래로 빨려 내려간다.
어딘지 모르는 이 곳에 안겨 나를 잊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부활의 힘을 얻었다.
생기가 조금 돈다.
<龍의 夢想>
龍의 등과 배에 오르내리기를 수차례.
어느새 용의 심장에 이르렀고 굽이굽이 등줄기를 돌아가는 동안
어느덧 우리도 龍이 되어갔다.
우리가 자라며 꿈을 키운 곳이 어디인가!
龍山에서 자라며 夢龍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설악에서 용을 만나니 50살 용은 그저 少龍일뿐.
수억년 설악을 지켜 온 恐龍은 地上의 帝王처럼 힘있고 峻嚴하다.
얼마간 용이 되어 昇天을 꿈 꾸며 '비라도 내려줬으면' 하고 잠시 夢想에 빠졌다.
고개 들어 올려다 보니 푸른 하늘에 붉은 太陽이 눈부시게 찬란한 정기를 쏟아붓는다.
<무너미고개의 別離>
여의주를 희롱하듯 들었다 놓았다 사정없이 회돌이 쳐 혼을 빼앗다시피
격렬하던 공룡은 고개숙여 무너미 고개마루에 우리를 내려 놓았다.
여기는 世俗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청룡열차도 타본 적 없는 우리는 다섯 시간이나 공룡에 올라타고
神仙境에서 노닐다가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먹는 것도 잊은 채 여기까지 왔다.
예서 그냥 하산할 수는 없는 법.
俗世에서 지고 온 모든 짐을 고개마루에 다 내려 놓았다.
참치캔, 장아찌, 떡으로 상 차리고 白頭産 포도주를 나눠 마시며
龍과 惜別의 정을 나누며 還俗儀式을 거행했다.
<천불동 계곡에 몸을 씻고>
설악의 勝景은 산도 산이지만 그 산이 만들어낸 계곡과
영롱하게 소리내며 흐르는 물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龍의 등줄기를 타고 오르느라 뜨겁게 흘린 땀방울이 바위 틈새로 스며내려
어느새 천불동 계곡을 휘돌아 차갑게 흘러내린다.
열병처럼 뜨거워진 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린 玉水로 쓸어내리니
화선지처럼 초록물이 배어든다.
굽이쳐 흐르는 물은 다시 돌아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듯 저만치 앞서 가고,
앞다투며 마음졸이던 나에게
서두르지 말라고 그리고 쉬지 말라고 타이르며 내 뒤를 쫓는다.
정녕 流水不爭先이다!
휘감아 돌다가 쉬어가는 물가에 내려가 만지고 마시며 水心에 젖어들고 싶은데,
지치고 아픈 다리에 한걸음이 아쉬워
가까이 오라는 마중을 잘 가라는 배웅으로 바꿔 들으며
양폭에서 귀면암으로 발길을 옮긴다.
귀면암 코 앞에 가파른 철계단을 절뚝거리며 오르니 낯익은 얼굴들이
꺾여진 난간 모퉁이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나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 나보다 더 힘겨워하는 이들을 보며
마치 승자라도 된 양 쾌감이 스친다. 가소롭다.
그들은 부상당한 동료를 도우며 하산 중이었다.
나는 그들보다 먼저 내려와 진행요원에게 그것도 정보랍시고 알려주며
늦게 도착한 것을 쬐끔 동정받았다.
깎아지른 절벽 허리에 걸려 있는 철계단을 오르내리며 수십길 발 밑을 내려다 보면
허옇게 배 드러낸 평평한 바위를 핥으며 龍의 體液이 점점 격정적으로 흘러내린다.
가도가도 끝이 없다.
비선대에 이르기까지 백두와 만나고 헤어지기를 두세 차례.
결국 혼자 남은 나는 자꾸만 기어들어가는 의식을 불러내려
"남몰래 흐르는 눈물", "물망초", "오렌지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플로벤쟈 내 고향"을
신음하듯이 흐르는 물에 속삭였다.
그러다가 제풀에 겨워 아예 넓직한 바위를 등에지고 누워
"하늘에 흐르는 구름이 내 맘이라면..." 홍민을 떠올리며
푸른 하늘을 향해 애절하게 하소연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빙그레 웃으며 다시 일어나 걷는다.
저 물이 끝나는 곳에 이를 때까지 마냥 걸어야 하므로.
<비선대의 사랑하는 사람들>
비선대에는 절벽 높이만큼 거대한 암반이 코끼리처럼 누워있다.
연인들, 가족들이 입 다물 줄 모르고 사진찍느라 웅성거린다.
다정하게 포옹하며 어우러지는 그들의 모습에 서울에 두고 온 내 가족들이 겹친다.
혼자 여기 와 있다는 게 쓸쓸해진다.
아주 오래 전, 아이들이 어릴 때 이 곳에 함께 와 본 적이 있다.
그보다 훨씬 전 1980년인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두 동생과 함께 왔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립다
그리고 4-5년 전에 아들과 둘이서 대청에 오르다가 억수로 퍼붓는 장마비 때문에
양폭에서 발걸음을 되돌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사는 것이 서투르고, 마음이 넓지 못하여 가족들이 더 강하고 절실하게 행복감을
느끼게 해 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다.
가슴이 저리고 콧마루가 시리다.
눈앞이 흐려져 하늘을 올려다본다.
흐르는 물에 얼굴을 닦고 산장으로 기어들어갔다.
아이스크림 한입을 베어 물어 뜨거워진 가슴을 식히고 산장을 빠져나와 또 걷는다.
無念, 無想.. 모든 念想이 無常한 것이라고 한 뜻을 어슬프게 음미하며 20분쯤 걷고 있자니 산길 한복판 펑퍼짐한 바위에 걸터앉아 백두가 초연히 미소짓고 있다.
"도사 다 됐군" "먼저 내려가 막걸리 한잔 걸치고 있지 않구서" "다리 좀 어떠냐" "고생했다" 云云하며 찡한 선문답을 주고받으며 거짓말처럼 날으는 듯 속보로 잘 포장된 소공원길, 신흥사를 지나 주차장에 이르니 다섯 시가 조금 넘었다.
먼저 하산한 사람들은 이미 형형색색의 화려하고 경쾌한 의상으로 갈아입고 삼삼오오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미 전투종료된지 한참이다.
다 먹고 치운 돗자리에 주저앉아 김치국에 밥말아 게눈 감추듯 마셔버리고 생막걸리 각 1병을 물처럼 빨아넣고 나서 물끄러미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하며 멋적게 차에 오르니 백마고지 포연 속으로 공룡이 가물가물 멀어진다.
<Epilogue>
희극을 보며 눈물 흘리고 비극을 보며 희열을 느끼는 것처럼 나는 고행의 공룡종주에서 일만볼트보다 더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다.
기쁨과 슬픔, 고통과 희열, 사랑과 증오, 분노와 용서 모두 그 뿌리는 같다.
밖에서는 꿈같은 아름다움이었던 공룡. 그 속으로 드러가니 고통과 인내의 화신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그냥 거기에 있을 뿐이다.
아름다움이란 고통과 인내의 터널 끝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가르쳐 주려는 듯이.
한참을 지나, 그것도 살사의 명문이 준 감동이 깊게 휩쓸고 지나간 뒤에 흉내내듯 이제서 이 글을 올리는 이유는 이렇다.
설악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것은 한낫 蛇足에 불과할 뿐임을 안다.
아직 山을 山으로, 물을 물로 볼 줄 아는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어리석은 자의 一喜一悲일 뿐이지만 이번 무박 산행은 나에게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특별한 경험이며 그래서 그 의미가 더 크고 남다른 것이기 때문에 소중하게 간직하고자 함이며 평생 좋은 친구요 배우자처럼 힘을 얻고, 힘을 주는 좋은 경험으로 간직하고 싶어서다.
묵묵히 서 있는 산을 오르면서 흘린 땀만큼 인내하며 仁山을 배우고, 쉼없이 흐르는 물따라 밑으로밑으로 내려 오며 想念의 부질없음과 水心을 느끼며 智水를 배우며, 나는 고통속에서도 산과 물과 조금 더 가까워졌다고 믿는다.
산을 欽慕하며 물을 敬畏하고
그 속에 살아있는 나의 存在를 소중하게 여기며
가족을 가슴저리게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함께하는 산술당 식구 모두에게 건강과 행복, 그리고 江湖諸賢의 넓은 가슴을 기대하며 글을 맺는다.
첫댓글 야 ~~~~~~~~ 기가막혀 말이 안떨어지고 눈이 안 감아진다 마음에서 울어나와 가슴으로 써내려간 이 산행기를 보며 우리의 산행은 계속될수 밖애 없음을 다시한번 느끼게한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마니마니 올리시게.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살사가 자연을 노래했다면 청천은 마음을 노래했네! 인고의 아픔을 읽었고 우정을 느꼈네! 살사, 백두, 아귀 고맙구먼! 번개만 없다면 우쩌다 만나 산행기를 같이 들을 수 있건만 씨잘데기없이 번개불땜시 그러한 기회를 상실함에 아쉬움이 남네. 나에게도 뒤풀이 이야기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있기를 기대하네.
산고생, 가슴에 두고 살 수 있는 경험이 되었구먼. 몸을 아끼세. 건강이 유일한 재산일세. 갈고 딱아 앞으로도 두고두고 이런길을 사서 가보자고... 수고들 하셨습니다. 동참치 못한 미안함을 고하며.......
청천의 글을 읽고 무언가를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들어왔으나 어찌 말이 필요하리오. 정말 숙연해지고 마음이 찡해옴은 왜인지? 정말 많은 소중한 것들을 생각케 해주는 청천의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산을가도 이런 경험하기가 쉽지않거늘... 청천의 글이 無想, 無念의 깨우침으로 인도하는구나! 살사,백두,아귀의 큰 보시가 있으메 큰 깨달음이 있나보다! 그러한 깨달음과 우정의 도움을 많이 가짐이 산술당의 존재이유가 아니겠는가?
이 글은 단순한 산행기라기 보다 수행기이며 고행하는 수도사의 고백서이다.숙연한 마음에 처연함이 더한다. 살아온 삶을 되돌아 보게도 하고 산행의 진정한 의미를 새삼스레 깨닫게 해주는 교훈서이다! 이러다가 전업작가 두엇은 나오겠지 아마도?
잘썼네...마음을 글로 담아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고생 했구만, 이제 누구에게도 한산 한다는 말 해도 되겠다. 산회장 ! 청천 등급 올려 줘야 되겠다. 종주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