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픈 거울 - 3 *
칼국숫집을 나와 엄니와 나는 강둑으로 향했다. 걸어서 2~3분이면 갈 수 있는 아주 짧은 거리였지만, 찬 강바람을 쏘이면 엄니 안면 마비에 나쁜 영향을 줄 것 같아 차에 올라 골목길을 빠져나와 호숫가 한 카페 앞에 차를 세웠다. 유리창을 내려 얼굴을 내미니 싸한 겨울바람이 볼을 스친다.
" 엄마, 잠간 여기서 쉬면서 밖에 내다보고 있어~. "
" 얼릉 집에 가서 쉬어야지. 여기는 왜 왔어. 맨날 보는 걸. "
엄니의 말을 뒤로 흘리며 난 차에서 내려 강둑으로 올라갔다. 앙상한 가지를 강바람에 떨며 봄을 기다리는 벚나무들, 강물 위를 부지런히 오가며 자맥질하는 오리들, 저마다 사연을 싣고 무지개다리 위를 오가는 자동차들. 호숫가 강둑 산책로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변함없이 나를 위로하며 반겨 주는 둘도 없는 친구다.
" 그래 그래, 반가운 예쁜 친구들아. 오늘은 엄니가 아파서 마음이 행복하지 않아."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에게 속삭이듯 무언의 인사를 나눈다. 초점 잃은 눈빛으로 호수를 바라보며 또다시 침묵이 흐른다. 엄니랑 밤하늘 별을 바라보며 행복했었지. 촉촉이 밤 이슬을 온몸에 받으며 자정이 넘어 집으로 돌아가곤 했어. 맞아, 난 그때 엄니 품이 좋아 잠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거든. 그래서
" 엄마~, 조금만 더 있다 가자~. 응~~. " 하면 엄닌
" 어서 일어나~, 어서~. 옷 젖는 거 봐라. 난 감기 들까 겁난다." 하셨지.
그랬던 엄닌 오늘은 차 안에서 무슨 생각에 잠겼을까? 이젠 엄니와 강둑에 돗자리를 깔고 밤하늘 별을 바라보며 행복한 추억 여행을 떠나는 일은 꿈속에서나 있겠지. 나무와 호수야, 너희는 알고 있지? 곧 봄이 돌아오면 꽃을 피우고 사람들은 강둑에 찾아올 거라고. 어쩌면 엄니랑 더는 너희를 볼 수 없을지도 몰라. 그런 엄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한없이 슬퍼지는 걸 어쩌겠어. 어서 빨리 새 생명을 틔우는 봄이 돌아와 너를 다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난 자신이 없어. 그건 왜 그런지 나도 잘 모르겠어. 왠지 그냥 그런 느낌이야. 우리 엄닌 너무 오랜 세월을 살아오셨어. 평균 수명을 훨씬 넘기셨으니까. 난, 솔직히 어렸을 때 다른 애들처럼 젊은 엄마를 갖고 싶었어. 그래야 엄니랑 오래오래 같이 살 수 있으니깐 말이야. 친구야, 이젠 집으로 갈께. 엄니가 오래 기다리시잖니.'
호수 건너 서쪽 화악산을 바라보니 하얀 설원이 눈에 들어온다. 잠시 카메라로 겨울 풍경을 담아 두었다. 어쩌면 엄니와 나눌 수 있는 마지막 추억을 그리는 일기 속에 채워질 친구들이기에...
" 뭘 그렇게 생각하며 추운데 바라보고 있어. 맨날 보는데, 뭔 구경할 게 있다고. 빨리 집에 가자."
차에 오르자, 엄니는 재촉하듯 내게 손짓하며 말한다. 마음은 엄니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서 집으로 가고 싶었다. 지난 추억을 얘기하며 잠시라도 행복한 추억을 그리고 싶었다. 엄니의 따스한 손을 잡고 도란도란 작은 웃음꽃을 피우며. 좌회전(신사우동 소양 2교 북단 횡단보도 앞) 신호를 받고 네거리 모퉁이를 돌아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다. 엄니의 야윈 두 손을 잡고 아장아장(이때는 쓰러지시기 전이라 걸으셨음)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엘리베이터를 나와 현관에 들어서자 성모 마리아님이 반겨주신다.
" 마리아 님, 집 잘~ 봐주셔서 이렇게 다시 돌아왔습니다. "
살아있다는 안도일까? 울 엄니의 감사의 기도 소리가 거실 가득 따스하게 퍼진다.
2007년 1월 5일 (금) 재빛 구름 가득한 날
*** _()_ ***
첫댓글
해피 플래너
2007.01.20 20:43 신고
증말 밉다 .... 이렇게 울려도 되는거예욤???ㅠㅠ
봄내지기
2013.10.22 17:48
봄내지기 Y 2007.01.21 18:32 수정 | 답글 | 삭제
죄송해요.
그날 참 마음이 무척 우울하고 슬퍼 혼자 독백처럼 강둑에서 생각에 잠기고 말았네요.
힘내야죠.
울어머니는 저모다 담담하세요.
제가 힘들어 할까봐 그러시는지...겉으로는...^^
(답글정리) 2013.10.22 엄마가 영원히 내곁을 떠나신 지 한 달이 되던 날... ㅠㅠ
엄만 지금쯤 어느 하늘을 배회하며 걷고 있을까?
아님 날아다니실까?
또 슬픔이 복받쳐 눈물이 흐릅니다.
엄마... 엄마... ㅠㅠ
2013.10.22 (화) 맑음
해피 플래너
2013.10.22 21:02 신고
어쩌나....어머님과 이별 하셨군요.
가끔씩 들러보며 건제하심에
나도 모를 안도를 하곤 했는데...
어머님은 님과 같은 아드님을
두셔서 무척이나 행복 하셨을 겁니다.
또한 어머님과 아름다운 추억을
누구보다 많이 소유한 님또한 행복한
분이구요.
아드님이 힘들어 하지 않고 기운차게
밝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시는게
어머님의 즐거움일거라 감히 생각해
봅니다.
힘내시구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봄내지기
2013.10.23 09:40
답글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행복설계사님을 다시 뵙는군요^^
씩씩하게 잘 지내야죠.
언젠가는 이별연습을 하리라 마음의 준비를 하곤 있었지만
추석연휴 여행길에서 갑자기 쓰러지셔서...
한마디 인삿말도 나누지 못하시고 훌쩍 떠나버리셔서...ㅠㅠ
아직도 못다한 약속이 많이 남아 있어 안타까움과 마음이 아립니다.
특히 KBS인간극장을 찍지 못하고 가신 것이 가장 아쉽고 안타까워....
7월 달에 작가분이 전화를 하셔서...
그땐 날시도 덥고 장마철이고 무엇보다 엄니의 컨디션이 안 좋으셔서
날씨도 선선해지고 엄니 컨디션이 좋아지는 10월쯤 다시 하자고 했는데...
다시 하자고 했는데...
그럼 어머니의 생생한 모습을 화면에 담아 두고두고 볼 수 있었는데...
ㅠㅠ
해피플래너님 찾아주셔서 감사드려요 ♡
해피 플래너
2013.10.23 09:55 신고
인생살이 어느곳에나
부족함과 아쉬움은
항상 존재 하는듯 합니다.
그러니.....님.....
이제는 아쉬움은 뒤로 하고
오롯이 님의 인생을 찾아
나서기를 당부 드립니다.
아마도 영면에 드시는 어머님의
염려도 행여 홀로 남겨진 아드님이
슬픔을 감당치 못하면 어떡하나?
일겁니다.
하루 빨리 희망과 기쁨이 넘치는
봄내지기 일기를 볼수 있기를
바랍니다.
봄내지기
2014.04.29 15:52
잘 지내시나요?
모처럼 봄비가 내려 지난 추억을 떠올리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 있습니다. 전 폴럽 그 카페 안 들어간 지 얼마나 됐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네요. 어머니 돌아가시고 그동안 써놓았던 일기글을 묶어 어머니 영전에 보여드릴려고 올해 서울디지탈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편입을 해 늦은 나이에 공부하려니 머리는 고사하고 손발도 안 따라주고 정신없이 살고 있네요.
늘 건강하시고 하루하루 소중한 의미 부여하시고 감사하며 살아가자구요 ♡
해피 플래너
2014.05.09 05:54 신고
또 하루가 밝았네요.
변함없는 일상을 준비하며
그 변함없는 일상에 문득
감사함을 느낍니다.
이제는 무언가를 얻는 기쁨보다
가진것을 지킬수 있었음에 감사하게
되는 날들입니다.
편입소식 참으로 반갑고 부럽네요.
축하 드려요^^
전...ㅍㄹ 탈한지 수년째 입니다. ㅎㅎ
날마다 행복 하세요^^
대빵함뉘
2009.01.03 23:59 신고
워낙 고우신 천성이시라 그러신듯 하네요..... 아직도 훌쩍거려지는데... 어머님은 어떠 하셨을지...
봄내지기
2013.10.22 17:51
봄내지기 Y 2009.01.07 11:11수정 | 답글 | 삭제
아고라~ 넘 훌쩍거리시면 건강에 해롭습니다요~
이젠 그때 엄니의 모습은 일기에만 남겨 두고 있네요.
참 시간의 흐름이 빠른 것 같습니다 ^^
(답글정리) 2013.10.22 (화) 맑음
봄내지기
2013.10.22 17:53
엄마와 함께한 일기글을 읽으며 지난 추억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리고 말았네요.
엄마~ 지난 일요일 마트에서 산 내의,양말,모자는 조만간 보내드릴께요.
아버지 것도 똑같은 걸로 샀으니 두 분이 아끼지 말고 입고 따스하게 겨울 나셔야죠 ㅠㅠ
대빵함뉘
2013.10.26 16:35 신고
어머나~~~ 어머님이 가셨군요... ㅠㅠ 누구나 가야할 길이지만 헤어짐은 아프고 아프지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고통없이 편안히 가셨으리라 바레봅니다~~ 토닥 토닥 위로를 보내요~~^^ 한참도 더 많이 힘들거여요~~ 힘내셔요^^ ㅠㅠㅠ
2023.12.21 신 에디터 변경
2024.06.17 원고 글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