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2014년 에 시작해서, 지난 주 영주권을 승인 받았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궁금해 하실 분들을 위해 후기를 남겨봅니다.
이민의 동기는 모두가 각자 다르고 또 같을 것이라 생각되어 생략하기로 하겠습니다.
저희가족의 이민 과정은 뉴질랜드 이민정책이 바뀌는 통에 한번 뒤통수를 맞았었지만 그래도 3년 7개월(저와 아이가 온 후로는 2년 7개월) 만에 영주권을 받았으니 나름 성공했다고 본답니다. ㅎㅎ
저희는 2014년 11월 남편이 코넬 요리과정에 입학하면서 이민의 첫 단계를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부모도움 없이 어찌됐든 둘이 알아서 해야하는 소시민 이었습니다.
전세금에 연금적금 다 털어도 1억이 될랑말랑 하는 돈으로 시작했지요.
막상 와보니 저희가 대체 무슨 용기로 이 돈을 가지고 여기 이민하겠다고 왔나 싶었습니다만 ㅋㅋ
살다보니 넉넉히 가지고 오신 분들이 한국인맥에 의존해서 한국식 삶을 고수하는 동안
더 치열하고 더 노력하며 살다보니 더빨리 자리잡을 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와보니 학교 등록만 해주고는 문닫는 유학원들이 정말 많습니다.
이름은 유학원인데 알고보면 집에서 그냥 하는 유학원들도 많다보니,
왔는데 그냥 잠적해 버리면 나머지는 스스로 알아서 해야합니다.
저희가 꼬박꼬박 보험이나 학생비자 워크비자 등등을 유학원에서 해준다니까 주변에서 놀라더라고요;;
자기네 유학원은 학교 등록만 해주고는 문을 닫은건지 전화도 안되고 해서 자기들이 혼자 다 하느라 죽겠다고요.
저도 오기전에 여기저기거기 여러군데 상담을 하고 이리저리 재 본 후 찰리로 결정하고 왔습니다만
상담하다보면
꿈같은 밝은 미래만 속살거리시는분
나보다 더 모르시는분;;
너는 아무것도 모르니 내말만 따르라는 분
내 꿈을 모조리 박살내고 현실직시하게 하시는 분-----> 찰리박 되시겠습니다.ㅋㅋㅋ
들이 계시더군요.
듣기는 싫지만 저희는 그나마 저희 사정을 이해하고 최대한 닥칠 위험이나 고난을 미리 알려주시는 찰리님을 믿어보기로 했고,
다행히 그 선택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맞벌이였던 저희는, 남편이 먼저 뉴질랜드에 와서 코넬에 다니는 동안
제가 한국에 남아 아이와 지내며 직장에 계속 다니는 걸로
조금이나마 돈을 덜 쓰기로 했습니다. 같이가서 홈스테이나 플랫이라도 하며 살아볼까 했었는데,
그때 다른 유학원 에서는 얼마든지 그러고 돈도 벌며 살수있다고,
원하면 자기들이 홈스테이며 플랫을 소개해 주겠다고 하신반면,
찰리님은 방이 항상 차리라는 보장도 없고, 사람이 있으면 소개야 해 주겠지만
그렇게 치면 본인이 등록한 모든 가족들이 다 소개받고 싶어하는데 제가 누구집에 먼저 소갤 하겠느냐 하시더라고요.
맞는 말이죠....
그래서 남편이 졸업할때까지 이산가족이 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중년의 나이에 외국에서 혼자 학교에 다니는 남편은
외국인 학생에게는 영어가 안되서 왕따..
한국인 학생들 에게는 아저씨라서 왕따..
나름 패밀리 맨인 남편은 나날이 시들시들 해가고
저도 남편의 빈자리가 생각보다 크더라고요.
에라 모르겠다 죽어도 같이죽고 살아도 같이살자...
고 일단 합치기에는 우린 돈이 없지요;;;
그래서 열심히 탐색검색한 결과 UUNZ라는 학교를 알게 되었습니다.
당장 찰리와 상담.
코넬은 당시 2년 과정이지만 1년만 해도 5레벨 졸업장을 주었더랬습니다.
그래서 유학 후 이민을 할 수 있었죠.
그래서 남편의 2학년 학비에 조금 더 보태서 제가 UUNZ 비지니스 학교에 입학하기로 했습니다
UUNZ는 레벨 8이라 영어공부를 해야했기에 매일 새벽까지 영어공부를 하는 팔자에 없는 학구열을 불태웠지요.
UUNZ는 1년 과정이지만 배우자 워크비자와 자녀학비가 면제되기 때문에
저희로서는 꼭 잡아야 하는 기회였습니다.
그렇게 입학이 결정되고 2015년 10월 남편과 헤어진 지 보름 모자란 1년만에 가족상봉!
그 이후로 저는 학교에 다니며 플랫과 홈스테이등을 하고
남편은 스시집에 취직을 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는데...
뉴질랜드 정부가 뒤통수를 칩니다.
영주권 주 신청자의 영어능력 검증....
남편은 코넬 입학시 아이엘츠 5.5를 받았었지만 6.5는;;;;
그것도 일을 하면서 공부해서 받기엔 너무나 먼 점수였지요.
비자 기간은 바작바작 다가오고;;
결국 제가 주 신청자가 되기로 하고 저의 취업전쟁이 시작됐습니다.
4개월여를 100군데 넘게 이력서를 내고내고또내고
불합격 메일을 받고받고또받고
하던중에 몇군데서 면접을 보고
면접에도 떨어지거나 면접에 붙었는데 비자지원 안해준다고 하고...
평생 생길 사리를 다 생성한듯 한 기간이 다 지나고
어찌어찌 현재 이곳에 취업을 해서 오게됐습니다.
지방에오니...
또다른 이민의 시작이더군요.
한국인은 커녕 동양인이 없습니다.
아이도 학교의 유일한 한국인이 아니고 동양인...
오클랜드에서는 대충 단어만 말해도 다 알아듣거나
한국가게 한국식당 한국인이하는 정비소 한국인이하는 보험 등등등
아쉬울 게 없었는데 여기는 제대로 뉴질랜드 ㅜㅜ
그때마다 도와준 현지인들과 하나하나 배워나가고 친목을 쌓으며 견뎌온 결과
아이도 영어가 많이 늘고 저희도 영어가 많이 늘었습니다. ㅎㅎ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도와준 이웃들이 이번에도 정성껏 레터를 써준 덕에
영주권 심사도 인터뷰도 없이 나온것 같습니다.
특히 90이 다된 나이에 손 달달 떨어가며 손편지 써주신 옆집 할머니께는 정말 감사하답니다.
이분이 써준 편지 내용이 어쩌면 뉴질랜드가 원하는, 이민에 성공할 수 있는 정답이 아닌가 합니다.
"이 사람들은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들이다.
정성껏 아이를 함께 키우고 화목함을 위해 노력하고
이 곳에서 살아나가기 위해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뉴질랜드에서 생활하는데 큰 불편이 없어지고,
더 나은 꿈을 꾸고 실천할 용기가 생겼다는 점이 좋습니다.
한국에서는 그저 아줌마였던 중년의 제가
남의 나라에 와서야 자신을 찾고, 더 도전할 용기가 생긴다는 것이 아이러니 하지만,
저는 그렇답니다.
울컥울컥 불안할 때마다 전화통 붙잡고 외치던 찰리....ㅋㅋㅋ
항상 정법대로 하라며 조언을 아끼지 않아주시고
힘들어 할때 다독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께도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감동적인글 잘 읽었어요.^^ 처음부터 긍정적인 마인드로 준비를 하시는 모습이 너무 좋았던 기억이 나는데, 몇일전 영주권 승인레터 받았다고 연락주실땐 너무 너무 기쁘더라구요.~~~ 아마 좋은분이 받아서 그 기쁨은 서너배가 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글은 읽으면서 정직하게 일해온 저에게도 하나의 상장 같이 느껴지네요.^^ 다시한번 축하드리구요. 이제 영원히 뉴질랜드에서 같이 살 가족이 되어주어 감사드립니다.^^
ㅋㅋ 감사합니다. 저 처음으로 좌우바뀐 운전대 잡고 운전한 날, 저도 모르는 어딘가에서 멘붕해서 살려달라고 전화하던 사건은 아직도 비실비실 웃음이 난답니다. ㅋㅋㅋ그때 식사하시다 뜬금없이 모르는 어딘가에서 살려달라고 외친 전화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ㅎ
"살려주세요...집에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어요 ㅜㅜ"
"거기가 어디신데요?"
"몰라요...."
"근처에 뭐가 보이나요?"
"산이랑....길이요..."
"....."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