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편
헤리온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헉헉,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필사적으로 도주한 탓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못 볼 것을 봐버렸다.
리첼을 품에 안고 있자니 위르넨이 슬쩍 그녀를 떼어 벽에 기대게 했다.
헤리온은 그조차도 느끼지 못하고 패닉상태에서 허우적거렸다.
뭐야, 뭐야.
“대체 뭐였어 그 영주는? 귀신이야 괴물이야?!”
빼액, 소리치자 위르넨이 못마땅해 하며 툴툴 댔다.
“괴물이건 뭐건 치사하게 너 혼자만 내 빼냐?”
“아, 아니 그야 당황스러워서 다 챙길 겨를이.. 그래도 잘 도망 나왔잖아. 그럼 된 거지 뭐. 헤헤.”
위르넨과 대화를 하며 다시 페이스를 되찾은 헤리온이 사소한건 잊자며 웃었다.
뻔뻔하다 못해 얄미워 위르넨은 헤리온의 머리를 쿵 쥐어박았다.
혼자만 내빼버린것도 사실이라, 차마 따지지도 못하고 울상을 짓자 카엘이 그의 머리를 슥슥 문질러 주며 말했다.
“그나저나 대체 뭐였을까요. 술사의 힘이 통하지 않는 자라니. 들어보지도 못 했습니다.”
“응,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형 같은 카엘에게 어리광을 부리며 헤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위험할 게 없다고 자만했는데, 이번만큼 위험했던 적도 없는 것 같다. 술사의 능력이 통하지 않다니.
그렇다면 위르넨과 카엘, 그리고 카르틴의 강함이 소용없는 게 아닌가.
리첼에게 묻고 싶어도 상태를 보아하니 마찬가지로 잘 모르는 듯 했다.
모두가 이렇다 할 결론을 못 내놓고 있는데 뒤에서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념체야.”
“에?”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영혼이라고 저거.”
지금 막 도착했는지 라니아는 복도 저편에서 느긋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니.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말에 라니아는 눈을 차갑게 빛내며 중얼거렸다.
“누군가가 개입하면 못 할 일도 아니지.”
“누구라니?”
아마 자신들이 이곳에 들르기 이전에 누군가 손님이 다녀갔을 것이다.
장난기 가득한 어둠의 종자.
“이를테면 마족이라던가.”
“!”
마족이란 말에 모두가 얼굴을 굳혔다.
한 때 대륙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지상 최악의 종족. 마족.
지금은 등장이 많이 소원해 졌다고는 해도 그들은 여전히 기피대상이자 두려움의 대상이다.
강한 전투력도 그러했지만 그들이 중간계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 대게 흥미를 위해서다.
단지 흥미를 충족하기 위해 인간을 농락하는 그들의 행위에는 치가 떨린다. 때문인지 마족과 관련된 일화중 비극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우연에라도 만나게 된다면 피해 가야할 종족 1순위.
아름다운 얼굴에 홀리면 영혼까지 내어주어야 한다는 우스갯 소리도 그들로부터 비롯되어진 것이다. 마족과의 계약을 경계 하는 말이다.
어쩐지 처음부터 기분이 안 좋더라니.
카엘과 위르넨이 심각한 얼굴인 반면, 카르틴만이 유일하게 마족이란 단어에도 무심했다.
라니아는 그들의 반응이 즐거웠다. 한편 호기심도 있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사념체에 육체를 주고, 힘을 실어줄 정도면 적어도 고위급은 된다는 소리다.
“이번 유희는 아주 재미있겠어.”
히죽 웃으며 입술을 핥은 라니아가 위험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것을 읽어낸 헤리온이 부들 떨면서 라니아의 볼을 꽉 잡아당겼다.
아파 라니아가 저도 모르게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으아으, 왜 이래 헤리온.”
“꿍꿍이 가득한 얼굴을 하니까 너야말로 마족 같다. 얼굴은 예쁜데 왜 이렇게 음흉하게 웃어. 가뜩이나 진짜 귀신 봐서 무서워 죽겠는데.”
“…쳇. 이 몸한테 고작 마족이 뭐야.”
게다가 좋은 말 내버려 두고 음흉이라니.
슬슬 볼에서 손을 놓아주자 라니아가 뚱하니 입을 반쯤 내밀었다.
헤리온은 그런 라니아를 안아 올려 얼굴을 부비적 거렸다. 아이라 그런지 살이 보들보들 거렸다. 알았어, 알았어 취소.
어린아이 취급이 그리 나쁘지는 않은지 크게 반항은 없었다.
그러면서도 장난기가 생기는지 위르넨을 슬쩍 곁눈질 하며 히죽 웃었다. 허공에서 눈이 딱 마주치자 위르넨이 이를 바득 갈았다.
“사악한 꼬맹이. 마족도 네 앞에선 꼬리를 말거다.”
“흥, 당연한걸. 그런 놈들은 내 발닦개 밖에 안 돼.”
오만한 얼굴로 코웃음 치자 할 말을 잃은 위르넨이 헛웃음만 흘렸다.
지나친 자신감 같기도 워낙에 지배자 성향이 뚜렷해 보이는 아이라 마냥 부정하기도 그렇다.
“그나저나 헤리온. 이제부터 뭘 어떻게 할 거냐? 돕자고는 했지만 마족과 관련된 자를 우리가 어쩌기에는….”
“…음.”
헤리온은 대답을 망설이며 리첼을 보았다. 손을 떼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서도.
리첼은 어느새 떨림이 가라앉았는지 멍한 얼굴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끔찍해.”
“끔찍해, 끔찍해.”
아픔이 절절히 배어나는 목소리였다. 라니아는 헤리온의 목을 두 손으로 꼭 끌어안고 어둠과도 같은 짙은 색의 눈동자를 굴렸다.
그녀는 두 팔을 부둥켜 안고 소리쳤다.
“끔찍해요! 그럼 영주는 죽어서 까지 절 소유하려 하는 거란 말인가요?!”
“너 영주가 언제 죽었는지 알아?”
“그런 거 나는 몰라요!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란 것도 당신에게 들어서 알았다구요.”
하긴 병사들도 모르는 눈치 더만.
납득하고 있는데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헤리온이 뒷걸음질을 쳤다. 의아해 왜 그러냐 묻자 헤리온이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 그 사실은 리첼씨도 귀신이라던가. 그래서 몰랐던건 아닌가 싶어서.”
“…….”
라니아가 눈꼬리를 가늘게 접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따악!
“멀쩡한 사람 귀신 취급 하지 마. 저 여자에게선 그 자와 달리 생기가 느껴지는데.”
“으하하, 그, 그렇지? 다행이다.”
“좋단다.”
귀신이 아니라는 말에 헤리온이 이마를 부여잡고 안도한다. 혀를 쯧, 하고 차는데 갑자기 몸이 허공에 붕 떴다가 바닥에 내려앉았다.
에? 강제적으로 헤리온에게 분리된 라니아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둘의 앞엔 청년과 소년의 경계에 있는 붉은 머리카락의 남자가 서 있었다.
“카르?”
“…무거워 보였다.”
라니아는 생전 처음 듣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무거워? 누가, 내가? 저 조악한 변명이라니.
홱 노려보자 무덤덤한 눈빛으로 맞받아친다. 위르넨 같은 타입에도 약하지만 저런 타입도 약하기는 마찬가지. 차마 화를 못 내겠다.
장난으로 위르넨에게 라이벌 이니 뭐니 했는데, 이거 장난이 아닌 건가? 아님 단순히 호감만 있는 건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데, 잠시 묻혀있던 리첼이 초조해 하며 말을 꺼냈다.
“그럼 어떻게 하죠? 전혀 타격을 입힐 수 없는 건가요?”
위르넨과 카엘은 고개를 저었다. 그들로서는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언제 사념체와 싸워 봤어야지.
하지만 라니아는 다른 모양이었다.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
“예?”
“두 가지 방법이 있어. 하나는 신관의 도움을 받는 것.”
슬쩍 헤리온이 카엘을 바라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고 보니 카엘은 무늬만 신관이었다.
카엘이 난색을 표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마검이나 신검의 힘을 빌리는 것.”
하지만 그 또한 소유하고 있는 자가 없었다.
라니아는 훗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하며 허공에 무언가를 그렸다.
이어 검은색의 구멍이 뻥 뚫고 라니아는 대뜸 그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것을 처음 본 일행들이 기겁을 했다.
헤리온이 위험하다며 라니아를 얼른 공간에서 잡아 당겼다. 다른 이들도 수선을 떠는 건 마찬가지. 때 마침 원하던 것을 꺼내든 라니아가 그의 품을 벗어나며 타박했다.
“아공간이다. 이 무식한 것들아.”
마법사라는 존재는 처음 보니 당연한 반응일 수 밖에.
라니아의 손에 들린 것은 붉은빛이 도는 작은 단도였다. 검집에 박힌 푸른색의 보석은 누가 봐도 값비싸 보였다.
헤리온이 괜스레 탐욕을 드러내며 침을 삼켰다.
그 시선을 모른 척 하며 라니아는 단도를 리첼에게 내밀었다.
“이건 영혼조차 베어버리는 신검, 이샤다.”
“신검?”
“저 정도의 영혼이라면 이걸로도 충분할거야. 하지만 이걸 쓰는 건 너여야 해. 그런 조건이라면 빌려주도록 하지.”
“…저는 검술 같은 건 배운 적 없는데.”
“누가 너더러 직접 맞대 싸우래? 방심한 틈을 노려야지. 그거 여자들 특기잖아.”
골똘히 생각하던 리첼이 고개를 살며시 끄덕이곤 검을 받아 품안에 넣어두었다.
애초 페리엘의 복수를 하려던 것이었다. 사념체라면 죽이는 수밖에는 없다. 이걸로 그와의 인연을 끊을 수 있다면 그걸로 좋았다.
“하지만 너, 후회하지 않겠어?”
무슨 뜻이냐는 듯 리첼이 돌아보았다.
“이 검을 쓴다는 건 이 세상에서 존재자체를 소멸시키는 거야. 단순히 죽인다는 것과는 차원이 틀려.”
“…괜찮아요.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그래. 네 결정이 그렇다면야. 대신 네가 벌인 일에는 책임도 네가 지는 거다.”
혹시 검을 사용하면 나쁜 영향이 있는 건가 그렇게 짐작해 보았다.
하지만 리첼은 상관없었다.
이로써 자신이 죽는다 해도 복수를 할 수만 있다면.
또한 영주의 존재 자체를 소멸시킨다 해도 결코 후회할 일은 없을 것이다.
“좋아. 그럼 이대로 다시 영주를 찾도록 하자.”
“아, 잠깐만! 그 전에 나한테 생각이 하나 있는데.”
가려던 발걸음을 멈추자 헤리온이 손을 불쑥 들어 올린 채 싱긋 웃었다.
헤리온 제발 사고치지 말고 조용히.... 조용히....ㅋㅋㅋ
정말헤리온이저럴때마다꼭사건들이하나씩터져ㅋㅋ그래도헤리온이니까ㅎㅎ
사고 쳐야지 헤리온이지ㅋㅋㅋㅋ
헤리온 덕에 일행들 고생이 많다~ㅎ
ㅋㅋ헤리온아...좀 조용히 살자꾸낰ㅋ
헤리온 역시 기대를안져버리는군ㅋㅋㅋ
페리온은 리첼을 배신한게 맞죠??영주는 정말 리첼을 좋아하고
뭡니까....으아....리온아...무슨일을 칠 작정이니....
영주가 불쌍하네요 ㅜㅜ 리온은 정말.. 좋습니다 ㅋㅋㅋ
죽이지않는게나을것같은데..
재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