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픈 거울 - 1 *
온종일 함박눈이 포근하게 하늘을 수놓았다. 겨울날 잿빛 하늘에서 펑펑 쏟아지는 눈송이를 바라보면 마음은 어느새 동심으로 물들어 어린 시절로 추억 여행을 떠나며 즐거워 했는데, 왠지 마음은 슬픈 기억으로 가득해 무거운 침묵만이 흐른다. 그러니까 지난 목요일 저녁일이었다.
늘 그랬듯이 퇴근길 현관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가 엄니 몰래 안방 문을 빼꼼히 열었다. 그 시간이면 엄닌 소파에 앉아 티브를 보며 이제나저제나 막내가 돌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살며시 다가가 반색의 기쁨을 안기려는데, 웬일인지 엄닌 자리에 누워있었다.
" 에미 얼굴 좀 봐라. 말도 잘 안되고 이 모양이니 어쩌니! " 엄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얼굴을 내보이며 말했다.
" 엄마, 왜 그래! " 눈앞에는 한쪽으로 돌아간 엄마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안면 마비였다.
엄니 얼굴 윤곽이 왼편으로 휙 돌아가 눈까풀은 감기다시피 내려와 덮였다. 막내 누나를 낳고 산후풍으로 처져 있던 왼쪽 눈까풀이 이젠 눈동자까지 완전히 가려 보이지 않고 입도 돌아가서 발음이 어눌하다. 휴일 밖에 모시고 나가면 사람들로부터 '할머니 얼굴이 온화하고 귀여워요'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흉측하게 변했다. 슬픔으로 가득한 엄마의 일그러진 얼굴이 나를 깊은 어둠속으로 떠밀었다.
며칠 전부터 엄닌 '왠지 자꾸 어지럽다'고 말씀하시더니! 그게 전조증상이었지 싶어 마음이 더 무겁다. 평소 연세가 있어 가끔 힘없이 어지럽다는 모습을 보이셨기에 깊이 관심을 두지 않고 바라본 것이 한없이 죄스러웠다. 사는 게 뭔지, 막내 하나 곁에 두고 의지하는 엄니를 세심하게 살펴드리지 못해 더 큰 고통으로 몰아넣었다,는 마음에 슬픔과 암담함이 저녁 내내 머릿속에서 가시질 않는다. 그런 참담한 모습임에도 엄니는 내게 일하면서 걱정한다고 전화도 않고 호박죽까지 쒀 놓고 그저 막내가 돌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식을 둔 어미의 모성애 본능. 당신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입이 틀어져 말을 못 해도 어미의 정신력은 나무뿌리보다 굳세게 늘 '엄마자리'를 지킨다. 눈물이 울컥 쏟아지는 것을 억누르고 주방으로 나가 먹다 남은 찌개를 데우고 대충 김치랑 주섬주섬 저녁상을 보아 엄니랑 마주 앉았다.
엄닌 아랫 입술과 윗 입술이 마주 닿지를 않았다. 입술 사이로 국물이 흐르고 밥알이 새 겨우 몇 숟갈 뜨시고는 자리에서 물러나는 엄니모습을 바라보며 또다시 눈물을 삼켜야 했다. 엄닌 "그래도 먹어야 힘을 얻어 병을 이길 수 있어"하며 지난 수요일 마티즈를 수리하러 왔던 단골 손님(Yu kh)이 엄니 드시라고 사온 빵 봉지를 찾아오셨다. 철옹성 같은 정신력에 오히려 내가 위로받는다. 그래서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고 했던가! 그래도 먹어야 병도 이겨낼 수 있다,며 빵 봉지를 들고 오시다니, 가여움과 위안이 오버랩한다.
내가 빵을 조금씩 뜯어 그릇에 담아드리자, 엄닌 입에 넣고 오물거리신다. 목이 메어 저녁밥을 먹는 내내 눈물이 눈앞을 아른거린다.
큰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엄마가 이상해. 얼굴이 일그러지고 말도 잘 못하시고. "
대꾸도 안하고 전화를 끊은 누나가 잠시 후 집에 도착했다. 소파에 앉아 내 모습만 바라보며 웅얼거리던 엄마를 본 누나는 깜짝 놀라 할 말을 잃은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한동안 엄니 손을 잡고 얼굴만 바라보더니 말을 잇는다. 엄니 앞에서 차마 눈물을 보이면 엄니 마음도 더 슬퍼질까 봐 엄마 손을 잡고 애써 웃는 표정으로 누나는 다시 말을 꺼낸다.
" 울엄만 그래도 복 받았네. 혼자 쓰러졌으면 걷지도 못하고 막내도 못 보고. 그런 사람들보단 다행이라 생각해, 엄마."
" 난 저거(막내) 하나만 없으면 지금 죽어도 아무 걱정 없어. 에미 죽으면 혼자 떠돌다 밥도 못 얻어먹고 이리저리 떠돌며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 내가 죽어도 눈을 못 감고 가니 그렇지."
그때 웅얼거리는 엄니 얼굴을 바라보던 난 엄니 마음을 풀어주려고 웃으면서 안고 있던 내 베개를 엄마 무릎 앞에 휙 던지며
" 난 안 굶어. 엄마, 걱정하지 마. 엄마, 난 혼자서도 잘살거야. "
" 그래도 엄만 막내 때문에 이만큼 살은 거야. 아프면 병원에 데리고 다니고. " 누나가 또 다시 말을 거들며 위로한다.
누나랑 나는 엄니의 우울함을 떨쳐주려고 엄니와 어린 시절 살아가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자정이 넘도록 추억 여행을 떠나며 웃고 떠들었다. 그런 이야기가 엄니의 슬픈 마음을 잠시라도 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 엄마, 손 좀 내밀어 봐. 이렇게 그리고 발도 " 카메라를 꺼내 엄마 손과 발을 안팎으로 모두 담았다.
" 갑작스레 손은 왜 사진을 찍는다고 그래."
" 이 다음에 엄마 없을 때 엄마 보고 싶으면 손이라도 보려고 그러지. " 그리곤 소파에 앉은 엄마의 일그러진 얼굴 모습도 담았다. ㅠㅠ
" 엄마, 엄만 착하게 살았으니까 병원에 가면 다 낫게 해주실 거야. 낼 막내랑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이 다 낫게 해주셔. 걱정 마. "
큰누나는 엄마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며 늦은 밤 집으로 되돌아갔다.
2007년 1월 7일 (토) 함박눈 날리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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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쓰며 자꾸 눈물이 나와 마음을 추스리려고 해도 잘 안되네요. 그저 치료 결과가 좋아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뿐입니다. ^^
첫댓글 2021.12.30 신 에디터 변경(수정 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06.18 0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