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님
(누가복음 24 장 < 1 >)
우리 모두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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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가 사라진 무덤에서 부활에 대한
말씀을 잊어 버리고 근심하는 여인들처럼, 현실을 살며
우리가 하는 것이라고는 불안과 염려와 근심 밖에 없습니다.
여자들은
무덤에서 예수님을 찾았지만
사실 무덤에 있어야 할 자는 바로 여자들이고 우리들입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고
무덤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실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죽은 몸으로 계셨던 것은 우리가 담당해야 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죽음의 세계에 들어가셨던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은
한 달 뒤 혹은 일 년 뒤라는 시간적인
차이일 뿐 죽음은 우리 모두 피할 수 없는 생생한 현실입니다.
그러함에도
돈 없으면 무시받고 실력이 있어야 출세하는 세상에서
자신이 원하는 조건들이 충족되는 삶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충족들이 우리를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삶이 되게 할 수 있을까요?
결과적으로 그런 삶의 조건들은 모두 지나가는 것들 뿐입니다.
말씀을 잊고 사는 우리에게 주님 다가 오셔서
우리가 들었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고 그 말씀을 사실로
받아들이며 말씀이 증거하는 생명의 세계를 바라보게 하십니다.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이 잊었던 말씀을
기억함으로 부활을 믿고 사도들에게 달려간 것처럼
우리의 심령이 주님의 말씀으로 인해 부활의 산 소망을
가지고 남은 생애를 힘있게 달려갈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1.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기운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뵈지 아니하더라"
(누가복음 24 :1-3)
예수님이 금요일날
오후 3시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새로 만든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 지냈습니다.
니고데모가
찾아와서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근쯤 가져다가 시체에 향유를 발라드렸습니다.
안식일인 토요일이 지나고 주일 새벽이 밝아왔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이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을 발라주려고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무덤에 도착해보니
무덤 앞의 돌이 굴려져 있었고
무덤안에 있어야 할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를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 하신 것을 기억하라"
(누가복음 24 :4-6)
여자들이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으로 인하여 근심하고
있을 때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천사가 그들 곁에 나타났습니다.
여자들은 천사를 보고 두려워하여
얼굴을 땅에 대니. 천사가 말하기를 어찌하여
살아나신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고 책망하였습니다.
그리고 "갈릴리에
계실 때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고 하는 말을 듣고 기억해 보았습니다.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무덤
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모든 다른 이에게 고하니"
(누가복음 24 :7-9)
예수님은 분명히 그 때 갈릴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알게 되고
확신하게 된 여인들은 그 자리에 더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인들은 열한 사도와 모든 다른 이들에게 널리 고했습니다.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저희와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
들에게 고하니라 사도들은 저희 말이 허탄한 듯이 뵈어 믿지
아니하나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푸려 들여다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누가복음 24 :10-12)
예수님 부활 소식을 듣고 다수의 제자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을 때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무덤으로 달려가
현장을 확인해보니 역시 여인들이 말한 것처럼 빈 무덤이었습니다.
빈 무덤은 분명히 베드로에게도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큰 충격은 주님을
메시야라고 고백했고 그 사건에 대한 말씀을 분명히 여러차례
들었을 베드로가 부활사건을 기이히 여겼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말씀을 굳게 믿었었더라면
과연 부활사건을 기이히 여겼을까요?
부활의 신앙에 굳건히 서고자 하는 성도들은 말씀으로
돌아가 주님의 말씀을 한 말씀, 한 말씀 귀하게 여기고 믿어야 합니다.
2. 엠마오로 가는 사람들.
"그날에 저희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촌으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저희가 서로 이
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누가복음 24 :13-15)
엠마오는 예루살렘 동남편 약 십여KM 떨어진 곳에
있는 동네입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제자와 글로바 혹은
알패오로 불리우는 제자가 실의와 비통함에 빠져 내려가고 있습니다.
저들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그날에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천사들에 관한 여제자들의
간증을"허탄한 듯이 뵈어 믿지 아니"하고, 귀향길에 올랐던 것입니다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누가복음 16-17)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앞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알아뵙지 못한 채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섰습니다. 그들은 모든 소망을 걸고 따르던
예수님의 갑작스러운 죽음의 충격 때문에 제정신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천국의 소망도, 부활의 언약도,
제자 된 사명감도 상실한 채 "진리의 실체"도
분별하지 못하고, 노상에서 그저 슬픈 모습만 보여주고 있습니다.
3.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우거하면서 근일 거기서 된 일을 홀로
알지 못하느뇨 가라사대 무슨 일이뇨 가로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여늘 우리 대
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누가복음 24 :18-20)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나타내지 않으시고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자연스럽게 동행하시면서 이야기를 주고 받으십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인
글로바가 예수님에게 핀잔하기를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 최근에 일어난 일을 알지못하느냐고 합니다.
글로바의
핀잔섞인 반응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 되 물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능력있는
선지자로 보았습니다. 두 사람의 이같은
견해는 당시 일반 대중들의 의견과도 일치되는 보편적인 견해였습니다.
그들 두 사람에 의하면 예수가 선지자로
보여진 것은 그의 말과 행동에 권능이 있었기 때문이며
하나님과 민중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사람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백성들로부터 이처럼 인정받았던
능력있는 권능의 선지자 예수님을 자신들의 정치,종교,
지도자들인 대제사장과 관원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 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
라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으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누가복음 24 :21-23)
그들은 예수님이
악의 세력 아래서 신음하고 있는 백성들을 해방시키고
세롭게 변화된 다른 세계를 기대하며 예수님을 추종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기대했던 모든 것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 당함으로 무너지고 '
말았기 때문에 얼굴에 슬픈 빛을 띠고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지 사흘이 되었는데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예수님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천사로부터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의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누가복음 24 :24-25)
그래서 우리 중에 두어 사람이
여자들이 말한 것이 사실인가를 확인하러 갔다가
예수님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왔다고 부활하신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이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디 믿는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한 부활, 고난을 통한 영광의 그리스도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누가복음 24 :26-27)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동행하시면서 내가 바로 부활한 예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대화중에
영적 깨달음이 부족한 그들에게 주님
자신에 대하여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을 자세히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모세 오경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선지서에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관하여 기록된 것을 자세히 가르쳤습니다.
이사야서와 시편에 예수님에 대해서 기록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과 모든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이유는 메시야관이 잘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메시야관은
고난없는 영광의 메시야관입니다.
죄문제를 해결하는 영적 메시야관이 아니라 정치적인 메시야관입니다.
그들은 메시야가 오시면
이스라엘의 독립정부를 세우고 세계의
최대강국이 되어 그곳에서 영원히 통치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야는
미국 대통령보다 휠씬 강한 인물이고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야 왕국은 미국보다 휠씬 강한 초강대국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신 실패의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국의 소망도 부활의 언약도 제자된 사명감도
잃어 버린 채 여인들이 전해주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마저
허탄한듯 보여 기이히 여길 뿐 믿지 못하던 믿음 없는
제자들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 자신이 회개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는 하나님의 말씀 한 말씀 한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믿음으로 받아 들이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이 땅에서 부자되고 출세하고 건강
하게 떵떵거리며 사는 그런 신앙이 아니라 죄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이 예비해두신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는
우리 모두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4. 5. 17, -샬롬- 예수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