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3차 2025년06월01일 정기산행을 아래와같이 실시합니다.♥
장 소:문경 천주산 공덕산
준비물: 중식,간식. 물, 방풍의, 우비.비상약. 렌턴.스틱.여벌옷.
산 행 비: 40.000원 (조식.석식.산악회서 제공)
산행A코스:천주사 입구-첫이정표~천주산등산안내판~첫테크계단~두번째 테크계단~세번째긴테크계단~천주산~서낭당재~공덕산~옛고개~대승봉~쌍연봉~묘봉~부부바위~안장바위~묘적암~윤필암~주차장 * 산행거리 : 9.8 km * 산행시간 : 5시간 30분
산행B코스:천주사 입구-첫이정표~천주산등산안내판~첫테크계단~두번째 테크계단~세번째긴테크계단~천주산~서낭당재~공덕산~좌틀~이정표~대승사~윤필암주차장
* 산행거리 : 7.5 km * 산행시간 : 4시간 00분 *산행* 산행시 일어나는 모든 안전사고나 재해는 장수산악회 및 산행 진행자에게 민,형사상 어떠한 책임이 없고, 전적으로 산행에 참여한 회원 본인의 책임이므로 잘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천주산[天柱山] 842m" 천주산은 경상북도 문경시에 위치해 있는 산으로서, 전형적인 바위산이다. 전체적인 산세는 두드러진 주능선 없이 둥그런 모양을 띈 아담한 산처럼 보이지만, 정상부가 하늘높이 뾰족하게 솟아있고 그 주변을 거대한 기암절벽이 감싸고 있다. 그리고 정상은 큰봉과 작은봉이라는 두개의 봉우리고 이루어져 있으며, 이 사이는 좁고 가느다란 암릉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곳에 오르면 조망 또한 사방으로 막힘이 없이 무척이나 우수하다. 천주산이라는 이름은 "하늘 천(天), 기둥주(柱)"자로서, '하늘을 받치고 있는 기둥'이라는 뜻인데, 정삼각형 모양으로 하늘높이 우뚝솟아 있는 모습이 마치 '하늘의 기둥처럼 보인다'고 하여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공덕산[功德山] 913m" 공덕산은 천주산에서 북서쪽으로 약1.5km거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천주산과는 서낭당재를 경계로 연결되어 있다. 전체적인 산세는 천주산에서 바라보면 전형적인 흙산으로 보이지만, 공덕산 서쪽능선에 있는 쌍연봉과 묘봉은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덕산 기슭에는 유서깊은 사찰도 많아서 남서쪽 기슭에 서기 587년(신라 진평왕 9년)에 건립되어 유명한 고승대덕(高僧大德)을 다수 배출한 1,500년고찰 대승사(大乘寺)가 자리하고 있으며, 그 주변으로 묘적암과 비구니암자인 윤필암 등이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공덕산이라는 이름은 "공로 공(功), 덕 덕(德)"자로서, '공과 덕이 많은 산'이라는 뜻인데, 또다른 이름으로는 '사불산(四佛山)'으로도 불린다. 공덕산 서쪽능선 중턱에는 높이 2m, 한면이 1.5m인 바위가 있는데, 각 사면에는 불상(佛像)이 새겨져 있다. 이 바위를 일명 사불암(四佛巖)이라고 하는데, 이로인해 공덕산을 사불산으로도 부르게 된 것이다. @ 공덕산 사불암
@ 마애불좌상
@ 공덕산
@ 부부바위
@ 안장바위
@ 천주봉 오름 계단
@ 천주봉(천주산)
@ 공덕산 방향에서 천주봉
대승사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사불산에 있는 절.
사불산의 산마루에 있는 사면석불상에 관한 설화에 따르면 587년(진평왕 9) 창건되었다고 한다. 고려 고종 때 최자(崔滋)가 절 서남쪽에 있는 백련사를 새롭게 단장했으며, 조선초에는 기화가 반야사를 결성하여 후학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임진왜란으로 불탄 것을 1604년(선조 37)부터 1701년(숙종 27)에 걸쳐 여러 사찰 당우를 신축했는데, 1692년 금당을 지은 뒤 미면사 삼존불을 옮겨 봉안했다. 1725년 의학이 삼존불상을 개금할 때 아미타불 몸속에서 사리 1과와 705년에 금으로 쓴 〈화엄경〉 7권이 나왔다.
1862년(철종 13) 건물 대부분이 소실된 후 몇 차례의 중수공사가 있었고, 1956년 다시 화재가 났으나 1966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극락전·나한전·시왕전·선원·요사채 등이 있으며, 부속암자로는 묘적암·운필암·상적암 등이 있다. 경내에는 대승사목각탱화부관계문서 4매(보물 제575호), 사적비, 아미타불상에서 나온 금자 〈화엄경〉 7권, 석가모니 사리 1과 등이 소장되어 있다.
@ 대승사 노주석
@대승사 노주석 @ 대승사 전경
@ 대승사 경북 문경시 산북면 대승사에 있는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대승사목각불탱 및 관계문서
대승사 대웅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 목조아미타불탱과 관련문서. 보물 제575호. 세로 256㎝, 가로 280㎝. 현재 법당안 주존후불탱으로 안치되어 있다. 본존여래좌상을 조각한 판목을 중심으로 좌우에 3매씩, 이와는 별도로 대부·개부 등 총 11매의 판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광배를 갖춘 본존은 높은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는데 매우 안정되고 착실한 수법을 보인다. 좌우 판목에는 1매에 상·하 4구씩 24구의 보살·사천왕상·천부상·나한상 등을 조각했는데 입상·좌상·꿇어앉은상 등 다양하다. 옆에는 존명을 쓴 명패가 있으나 떨어진 것이 많다. 손에는 각기 연화·보주·장검·비파·석장 등의 지물을 들었으며 더러는 지권인이나 합장을 하고 있기도 하다. 개부에는 화불이 있고 대부에는 구름무늬와 당초무늬를 조각했다.
금칠한 전면이 매우 화려하다. 원래 영주 부석사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인데 뒤에 반환을 요구하는 부석사와의 시비과정에서 작성된 등장 3매와 완의 1매 등 관련문서 4매가 함께 보물 제57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들 문서는 대승사목각탱화의 사연과 조선 후기 부석사와 대승사의 사정을 밝혀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대승사묘적암마애불좌상
대승사에서 묘적암으로 가는 길 오른쪽 암벽에 새겨진 고려시대 마애불좌상. 보물 제991호. 높이 600㎝. 연화대좌 일부가 떨어졌을 뿐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소발의 머리 위에 큼직한 육계가 있으며 육계 양 옆에 뿔처럼 뻗친 삼지의 초화무늬는 보기 드문 예이다. 갸름한 얼굴, 긴 눈과 귀, 윤곽이 선명하고 두꺼운 입술, 그리고 삼도의 표현이 특이하다. 통견의 법의는 무릎까지 늘어져 있고 다리는 결가부좌했으며,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서 바깥을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다섯 손가락을 약간 꼬부린 채 수평으로 들고 있다. 광배는 두광과 신광을 평행의 음각선으로 나타내고 주위를 불꽃무늬로 장식했으며, 불신 밑에는 활짝 핀 칠엽연판을 조각했다. 평면적인 조각수법이 고려 전기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 나옹스님이 출가한 문경 사불산의 묘적암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靑山兮要我以無語)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蒼空兮要我以無垢)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聊無愛而無憎兮)
물 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如水如風而終我)”
고려 말의 스님인 나옹선사 (懶翁禪師)의
청산은 나를 보고(靑山兮要我) 라는 시다.
이 시를 지은 나옹스님이 출가한 절이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사불산(四佛山)에 있는 묘적암이다.
김천 직지사의 말사인 이 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에 속하는 대승사(大乘寺)의 산내암자로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신라 말기에 부설거사(浮雪居士)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고려 말기에 나옹(懶翁)이 출가하여 수행한 사찰인데,
나옹이 처음 이 절을 찾아왔을 때의 일화가 남아 있다.
@ 문경대승사묘적암나옹화상영정 @ 윤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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