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장급 37명 중 25명, 윤 대통령·한동훈과 ‘근무연’
김기환 기자
석경민 기자
이영근 기자
안대희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은 2003년 당시 불법 대선자금 수사팀을 이끌며 여야 거물급 정치인 40여 명을 구속해 국민의 전폭적인 성원을 얻었다. 당시 ‘안대희 사단’으로 불린 수사팀은 ‘우검회(愚檢會)’를 만들어 아직도 종종 만난다. 우검회는 ‘우직한 검사들의 모임’이라는 뜻이다. 김수남 전 검찰총장을 비롯해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등 검찰 내 대표적인 ‘특수통’이 참여했다고 한다.
근무연 겹치는 윤석열-한동훈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우검회처럼 특수부 검사 모임이었던 ‘남부군(南部軍)’도 유명했다. 박순용 전 검찰총장이 1987년 서울지검 남부지청 특수부장을 지낼 당시의 소속 검사들 모임이다. 남부지청에서 이름을 딴 남부군의 멤버가 전국 곳곳에 지청장으로 나갈 때 해당 지역을 방문해 우애를 다졌다고 한다. 서로 밀고 끌어준 덕분인지 12명 멤버 모두 검사장이 됐다.
특수부 자부심+전우애로 뭉쳐 ‘사단’ 생겨
근무연 겹치는 윤석열-한동훈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우검회나 남부군을 두고 단순 친목 모임이란 평가와 특수부(특수부는 현재 반부패수사부로 개편됐지만 특별수사를 한다는 의미에서 특수부로 통칭함)의 ‘그들만의 리그’ 문화를 대변한다는 해석이 엇갈린다. 권력형 비리 등 대형 사건을 맡아 밤낮으로 동고동락한 특수부 검사들 사이의 근무연(緣)이 각별하다는 점에 대해선 의견이 일치한다. 안대희 전 대법관은 “거악을 잡아낸다는 좋은 뜻에서 특수부 검사는 ‘선한 악질’”이라며 “특수부 검사의 기질과 ‘범죄와의 전쟁’과 같은 업무 특성상 전우애가 있다”고 말했다. 고검장 출신 김경수 변호사는 “특수부 검사들에겐 ‘우리가 검찰의 핵심’이란 자부심이 있고, 근무연으로 얽혀 인사에 영향을 주다 보니 ‘사단’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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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하극상’, 끈 떨어진 조폭들의 잔망스런 반란
윤석열 사단의 연결고리 ‘근무연’
검찰의 파벌은 크게 학연, 지연, 수사분야로 나뉜다. 학연은 서울대와 고려대, 지연은 서울과 영남, 수사분야는 특수통·기획통·공안통 등이 대표적이다. 이 파벌에 속하지 않은 검사들이 개인의 능력, 개별적인 친소관계, 혹은 안배(按配) 형태로 요직을 타고 오르기도 하지만 궁극적인 주류(主流)는 이 파벌들에 의해 결정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총장을 신임한 데는 그가 특정 파벌에 치우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도 나름대로 대검 중수 1·2과장을 거치고 중요 사건을 담당하는 등 요직을 거치긴 했으나 대부분의 경력이 검찰 주류와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석열에게는 ‘근무연(緣)’이라는 독특한 계보가 있었다. ‘함께 근무한 인연’을 뜻하는 근무연은 계보나 파벌보다는 전관예우를 비롯한 사건 처리와 관련된 아무 미시적인 관계에 작용하는 것이었지만 윤석열에 이르러 ‘근무연’은 일약 계보로 격상됐다.
윤석열과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는 검사들은 ‘꽃길’만을 걸어왔던 기존의 주류 검사들과는 또 다른 속성이 있었다. 윤석열과 근무했던 검사들에게는 ‘영광’ 뿐만 아니라 ‘곡절’도 있어왔기 때문이다. 곡절을 함께 겪은 인연은 영광만 함께 누린 인연보다 훨씬 강력한 밀착도와 결속력을 가진다.
사상 유례없이 검찰을 장악했던 윤석열 사단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발탁을 전후해 박형철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으로 임명하고 소윤으로 불리던 윤대진을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중용하면서 윤석열과 가장 가까운 2인을 정권의 검찰 포스트에 배치시켰다. 이 둘은 모두 윤 총장과 가까우면서 박근혜 정권에 의해 인사 불이익을 당했던 경력이 있다.
윤석열이 검찰총장으로 등극한 직후 있었던 검찰 고위직과 실무라인 인사에서는 그와 근무연을 가진 검사들이 검찰 수뇌부와 실무 요직을 채웠다. 본격적인 ‘윤석열 사단’의 시작이었다. 이때 대거 중용됐다가 2020년 1월 인사에서 떨려나갔거나 곧 떨려날 예정에 있는 검사들은 모두 하나같이 국정원 댓글 사건, 국정농단 특검 등 윤석열과 중요 수사를 함께 했던 검사들이었다.
이들은 겉으로 “정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실체는 “정권은 유한하되 검찰은 영원하다”는 ‘검찰지상주의’였다. 윤석열 총장에 이르러 그들의 수사 행태와 메시지에는 그들이 국가의 중심이면서 그들이 국가를 지키고 이끌어나간다는 도착(倒錯)적인 사고방식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헌법 정신’, ‘법과 원칙’을 입버릇처럼 내세우지만 이는 오로지 그들이 가진 검찰지상주의적 사고방식을 포장하는 외피에 불과했을 뿐 그들의 수사 행태는 헌법정신과 법과 원칙에서 멀어도 한참 먼 것이었다.
그들이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던 ‘외부 점령군’
기존의 검찰 파벌의 관점에서 보나 그들이 가진 도착적인 검찰지상주의적 관점에서 보나 이번 1월 인사를 통해 검찰의 요직으로 임명된 인물들은 집도 절도 없이 정권의 뒷배만 지니고 있는 ‘외부 점령군’에 불과했다.
송경호 차장이 신임 이성윤 지검장 앞에서 윤석열 총장의 취임사를 낭독한 것은 “나는 너를 검찰의 핵심 포스트인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선언이며 양석조 연구관이 심재철 신임 반부패부장에게 주사 행패를 부린 것은 “나는 너를 내 상관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도발이었다.
그들에게는 대통령의 인사권도 법무부 외청으로서의 검찰 인사체계도 전혀 무의미한 것이었으며, 오로지 윤석열 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검찰지상주의 라인만이 그들의 유일한 존중과 숭배의 대상이었다.
이성윤 중앙지검장은 ‘최초의 경희대 출신 검사장’이다. 이 지검장은 2018년 6월 대검 반부패부장으로 임명되면서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검찰에서 희소하기 이를 데 없는 경희대 출신에 호남 출신으로서 그에게 어떤 인맥이나 파벌은 남의 나라 얘기에 불과했다.
이성윤 지검장은 그들의 시각으로 보기에 대통령과 동문이라는 것 외에는 어느 하나 봐줄 것 없는 ‘듣보잡’이면서 특히 보수언론에 의해 ‘학살’로 불리기도 하는 이번 1월 검찰 고위직 인사를 직접 디자인한 주역으로 그들에게는 ‘공적(公敵) 중의 공적’이었다.
'무색무취' 중용된 1월 고위직 인사
서울동부지검장으로 조국 전 장관에 대한 대표적인 ‘별건 수사’였던 ‘유재수 감찰 건’ 수사의 총책임자였다가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영전한 조남관 국장도 이들에게는 눈엣가시였다. 조남관 당시 지검장은 유재수 감찰 건에 대해 불기소나 최소한 불구속 기소 입장이었다. 그러나 수사 실무자인 차장과 부장검사가 윤석열 직속 라인이었다. 이들은 불문곡직 구속영장 청구를 주장했다.
조남관 국장은 조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놓고도 수사 실무진들에 의해 ‘상갓집 주사 행패’ 수준의 수모를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련자 몇 사람만 조사하면 끝나는 간단한 수사였던 유재수 감찰 건에 대해 영장 청구 여부 결정이 늦어진 것도, 구속영장이 기각됐음에도 불구하고 기소 여부에 대한 결정이 늦어진 것도 모두 조남관 당시 지검장 때문이었다.
그나마 이성윤 지검장이나 조남관 국장은 대통령과 동문이라거나 참여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 근무라는 인연이라도 있지만 다른 인사들은 그마저도 없는, 정치적으로는 ‘무색무취’이면서 검찰 내 파벌로 봐도 주류라고 할 수 없는 ‘특색 없는’ 인사들이었다.
이들에 대한 윤석열 사단의 도발은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어 대외적인 위신을 떨어뜨리고 내부적인 장악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계획적인 공격이었다. 추미애 장관의 ‘상갓집 행패’ 설정이 없었다면 아마도 이들의 공격은 순차적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들의 유일한 희망 '윤석열의 수사권'
그들이 믿는 것은 “검찰 어디에 있든 윤석열의 태양 아래 있다”는 것이었다. 추미애 장관의 1호 지시였던 ‘특별수사본수 사전 승인’ 조치로 이들의 의도가 절반 꺾였지만, ‘수사권’을 쥐고 있는 윤석열 총장이 건재하는 한 얼마든지 권토중래(捲土重來)를 노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4일 신년기자회견에서 윤석열 총장에 대한 신임 여부를 묻는 거듭된 질문에 “국민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는 검찰의 조직문화라든지 수사관행 이런 부분을 고쳐나가는 일에까지 윤 총장이 앞장서 준다면 국민으로부터 훨씬 더 많은 신뢰를 받을 것”이라며 부드럽게 얘기했지만, 다른 답변에서 ‘대통령의 인사권’을 명시적으로 강조하면서 윤 총장에 대한 불신임을 공식화했다.
과거의 관행이라면 윤 총장은 이미 사퇴를 했어도 몇 번을 했어야 했다. 곧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검찰 실무진급 인사를 전후해서도 총장직을 계속 유지할지가 관심사이지만, “마땅히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과 “임기를 끝까지 채울 것”이라는 전망이 팽팽하게 존재한다.
윤석열 총장은 1월 인사 이후 대검 공공수사부와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치는 계통을 무시하고 ‘울산시장 선거개입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를 직접 지휘하고 있다. 법으로나 제도로나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만약 윤 총장이 계속 자리를 유지한다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전국에 흩어져 있는 그의 수족들을 직접 지휘하면서 정권에 상처를 줄 수 있는 수사로 검찰지상주의의 면을 살리려는 시도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정권 핵심이 아니더라도 더불어민주당 지자체장이 대거 장악하고 있는 지방정부 역시 정권에 대한 공격의 대상이 된다.
철없는 조폭들의 잔망스런 반란
따라서 7월로 예상되고 있는 공수처 설치 이후에도 고위공직자 수사에 대한 공수처와 검찰의 힘겨루기 국면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에도 불구하고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 및 기소 권한을 여전히 검찰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지검장 앞에서 총장의 취임사를 낭독하고 직속상관에서 반말 짓거리로 주사 행패를 부린 그들의 행위를 ‘반발’, ‘항의’, ‘항명’, ‘하극상’ 등 어떤 용어로 규정해도 좋지만, 그 행태가 엽기적이고 과격한 것은 튀는 행위로 충성을 과시하고 내부의 신임을 얻는 조폭적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이처럼 ‘의리’를 내세운 조폭적 결속력으로 공수처와 검경수사권 조정 등의 제도개혁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갖은 희생을 무릅쓰고 검찰에 대한 정치적 장악이 아닌 제도 개혁을 통한 검찰의 권력 해체를 밀고 온 것은 이러한 전근대적이고 구시대적인 검찰의 조폭 문화를 분쇄하는 데는 법과 제도의 개혁 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부려왔던 위세의 핵심인 ‘기소권 독점’은 이미 깨졌고, 마치 그들이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권력과 재벌 등의 특권층 수사는 공수처와 경찰로 대거 분산될 것이다.
앞으로도 그들의 소소한 도발은 계속될 지 모르지만 이미 그들이 ‘끈 떨어진 조폭’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자각하는 '현자타임'은 멀지 않은 미래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상관의 면전에서 행패를 부려대든 말든, 검찰총장이 일선 조직을 직접 지휘하든 어쨌든, 그것은 모두 검찰개혁이라는 거대한 대의 앞에서 철없는 조폭들이 까불어대는 잔망스런 반란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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