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섰을 때는 이미 늦었다. 한 여름처럼 더울 줄 몰랐는데 달리기 복장은 작년처럼 겨울옷으로 준비했다. 긴팔은 그렇다치더라도 바지는 짧은 옷으로 준비해야 했었다. 평촌마라톤 친구들과 약속한 문의초등학교 인근식당은 마라톤 참가자와 관광객으로 초만원이다. 인근 곰탕집으로 옮겨 식사를 마친 후 행사장으로 향했다. 출발시간이 임박함에도 영상 27도의 기온은 내려가질 않았다. 바지는 롱타이즈인 겨울복장에다 상의는 예비용으로 준비한 긴팔을 입었다. 달리기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땀이 흘러내렸다.
송암과 경희친구 셋이서 끝까지 함께 완주하기로 하고 출발도 같이 했다. 3~4km까지는 함께 했지만 내가 쫓아갈 수가 없었다. 이틀 전 영산기맥 장거리 산행 근육통은 여전했고 며칠 전 걸린 감기로 인해 기침가래가 계속하여 올라오면서 발목을 잡았다. 천천히 이동하면서 후반에 컨디션이 회복되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야트막한 업힐도 걸었고 긴 평지도 중간중간 걸었다. 700여 명이 참가하는 선수 중 수많은 주자들이 나를 추월하며 후미 그룹으로 밀려났다.
저녁을 많이 먹기는 했지만 2cp에서는 떡을 컵에 잔뜩 넣고 걸어가면서 먹었다. 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먹어두는 습관을 들인 덕이다. 울트라마라톤은 먹은만큼 간다고 했으니깐. 38km 지점 3cp에 이르자 어둠이 내려 앉았다. 랜턴을 켜고 송암과 경희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1~2km 정도의 갭이 있었다.
이 즈음부터 퇴행성 관절염을 앓고있는 이명배씨와 10km를 동행했다. 바깥쪽 무릎 연골은 완전히 닳았지만 근력운동으로 버티고 있었다. 50km까지 진행해 보고 괜찮으면 15시간 목표로 완주해 보겠다고 했다. 대단한 의지다.
가는 길에 자봉하는 옥천마라톤클럽으로부터 맥주 한잔 얻어마시고(40km), 작년과 마찬가지로 42km 지점에서는 보은마라톤클럽으로부터 커피 한잔을 얻어마셨다. 내침 네 팀 구분 짓지 않은 두 클럽의 고마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
45km를 넘어서자 몸이 풀리는지 둔탁한 신발 착지소리가 사라졌다. 그만큼 몸이 가벼워졌고 속도는 빨라졌다. 내리막엔 5분주가 찍히기도 했다. 6분 30초를 유지하면서 앞선 주자들을 숱하게 추월했다. 4cp 개성휴게소(51km)에는 7시간 만에 도착했고, 송암과 경희는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려고 했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친구들을 따라잡으려고 했지만 그새 몸이 굳었는지 생각처럼 움직여주질 않았다. 허벅지 통증이 심해지자 다시 걷뛰 모드로 진행했다. 5cp 적음3거리(63.9km)에서 진통제 찾는다고 하자 자봉하시는 분이 두 알을 건넸다. 속쓰림은 조금 있었지만 허벅지 통증에 비하면 참을 만했다.
작년 대회 길을 못 찾아 헛걸음을 했던 곳에는 올해 이정표를 확실하게 함으로써 길을 놓칠 염려는 없었다.
70km를 넘어서서 고석2교를 건너고 있는 익숙한 몸매의 여성주자가 눈에 들어왔다. Anett 영사가 분명했다. 이름이 한글로 되어 있어 참가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도 감기에 걸려 남세우씨와 보조를 맞춰 천천히 가고 있었다. 앞에서 달리는 친구들을 따라잡아야 해서 그녀와는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72km 내리막길에서 두 친구를 만났다. 경희 친구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고 졸음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송암도 비슷했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셋이 함께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할 수 있었다.
6cp(76.5km)에서는 경희친구를 7~8분을 기다려야 했다. 피반령 오르막은 송암이 한참 앞서 나갔다. 경희는 점점 뒤처지고 있었고, 나 혼자 피반령 정상에서 경희를 기다리다 만난 다음 함께 달려 내려갔다. 1km쯤 내려갔을 때 작년에 넘어졌던 트라우마 때문에 걷고있는 송암을 만났고, 둘이 함께 오라고 하고는 나 혼자 빠른 속도로 7cp(85.5km)까지 달려갔다. 어묵탕 두 그릇을 비울 때쯤 두 친구가 도착했고 남은 15km는 계속 함께 하기로 했다. 5~6km 남기고 해가 떴다. 가까운 거리긴 해도 좀처럼 좁혀지질 않았다. 골인지점에 이를 무렵 11시 3분에 골인한 헌용아우가 왜 이제야 들어오냐고 구시렁대면서도 함께 달려서 보기 좋다는 격려도 한다. 14시간 33분으로 셋이 함께 골인한다. 100km 기록으로는 최악이지만 친구 셋이 끝까지 함께 했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 크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식사를 하던 중 뒤에 앉아있던 주자 한분이 갑자가 뒤로 나자빠지면서 몸이 굳어버린다. 순간적으로 숱가락을 놓고 용수철처럼 튀어나가 호흡은 하는지, 심장은 뛰는지 확인한 후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10번쯤 심장을 압박하자 정신을 회복했고, 누군가 119에 전화를 걸어 빨리 와달라는 요청을 했다. 심폐소생술로 인해서 회복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송암이 빨리 나오라는 독촉전화 때문에 그 후의 상황을 확인하지 못했다. 그분한테 아무런 이상이 없었으면 좋겠다.
울트라팀들이 서둘러 안양으로 향하던 중 재문형님이 부강역에 부려 준 덕에 나는 430번 시내버스를 이용해서 편하게 집에 갈 수 있었다. 지금은 감기와 진통제를 번갈아 먹어가며 몸이 회복되길 기다리고 있다. 이번 주 풀코스를 완주할 수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