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적 꿈은 뭐였는고 하니... 호호.. <날나리>였다.
중학교 일학년때 헷세의 <크눌프 삶으로부터 세이야기> 라는 책을 읽었더랬다.그리고, 크눌프라는 인물에 크눌프의 삶에 매료되었더랬다. 더 어린시절에는 드립다 읽어대던 위인전집의 훌륭하신 인물들을 본받아야 겠다는 생각도 했더랬다. 하지만, 크눌프를 알고 부터는 위인전집에 나오는 아저씨, 아줌마들은 다 고루하게 느껴지더라. 그들의 삶이 더이상 내 가슴을 울리지 못하더라.
크눌프의 생이 경쾌함과 상큼함과 싱그러움만으로 빛난 건 아니지만 그의 생이 그렇게 매혹적일 수 없었더랬다.
그렇게 중,고교 시절 나의 꿈은 날나리였더랬다. 크눌프처럼 밝음과 경쾌함으로 지리멸렬한 일상을 요리조리 피해서 사뿐사뿐 살고 싶었더랬다.
비록 크눌프의 인생행로의 시작은 음침한 고뇌였고 마지막 은 병마에 시달리는 죽음일지라도 그 여정이 그렇게나 빛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여겼더랬다.
어리고 감수성 예민하던 그 시절 나는 날나리의 삶을 꿈꿨고... 그래서 어른으로 옮아갈 때 막막했더랬다. 어른들의 세상에서는 나는 꿈이 없었다.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마뜩찮았더랬다.
그러던 내가 어느새 규격화?된 어른이 되어 있다. 이제는 아무도 내가 날나리가 꿈이었을 거라 생각지 않는다. 나조차도 잊고 있었다. 내 어릴적 꿈이 날나리였음을...
어린시절 꿈이 불현듯 생각난 이유는?
뭐든지 이유는 있기 마련이다.
곳곳에서 내 꿈을 들춰내더라. 겐지의 글을 읽으면서 크눌프가 생각이 났고.. 자우림의 오렌지 마말레이드에서 막막하던 그시절 어디메가 떠올랐고.. 그렇게 몽롱하게 떠오르는 상념에 흐느적거리는 나를 한겨레의 기사가 헤집어놓았다.
정규직 거부하는 자발적 백수... 프리터.
몇 페이지 안되는 그 기사를 꼼꼼하게 읽었다. 햐..
밥 굶더라도 좋아하는 일은 해야한다 는 그들.. 출퇴근에 얽매이기 싫고, 비합리적이고 권위적인 조직생활에 스트레스 받기 싫고, 미래를 위한 투자나 안정적 경제생활에 관심이 없는 그들.. 하지만, 영화든 음악이든 만화든 감성을 쏟을 대상하나에 미쳐 있는 그들.. 적게 벌고 적게 쓰고.. 대신 돈벌이 할 시간을 줄여서 내가 미쳐있는 그 무엇에 오롯이 몰두하겠다는 그들..
근데.. 그들이 부러우면서도 난 그들처럼 될 수 없음을 스스로 안다.
그들에게는 있고 나에게는 없는 무엇.... 열정.
난... 지금까지 뭔가를-- 그게 사물이든 사람이든 추상적인 그 무엇이든 열렬하게 원해본 적이 없다. 감정의 극단까지 고양되는 애정을 그 무엇에게도 쏟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비록 어린시절 날나리의 꿈을 아직 가슴 언저리 그 어디메에 품고 있다하더라도 프리터가 될 수는 없을테지.
하지만 내 어릴적 꿈.. 날나리는 그러한 광기를 요하지는 않으므로 될수도 있을려나?
지금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이 도대체가 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날밤을 새운 상태라 머리속은 몽롱하고 몸은 피곤하고... 어수선한 마음은 흩어져 날리고 서로 엉키고 설키고...
내가 지금 삐딱님들을 붙들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정말이지 모르겠다. 내 어릴적 꿈이 날나리였음을 삐딱님들만이라도 알아줬으면 한다는 건지.. 겐지를 읽다가 헷세의 크눌프가 떠올랐다는 건지.. 한겨레에서 읽은 프리터에 대한 기사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지... 규격화?된 어른인 지금의 내모습이 넌더리 나게 싫다는 건지..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날나리처럼 살겠다는 건지.. 날나리처럼 살기에 스스로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건지.. 건지.. 건지.. 겐지.. 겐지.. 겐지.. 에이.. 겐지는 이제 그만 읽어야 겠다. 밤의 기별을 마지막으로 겐지와는 빠이빠이해야 겠다.
결국 하고자 했던 말은 이거였나.. 나 이제 겐지는 그만 읽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