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수의 사람이오,
예수님이 붙잡혀 끌려가던 그때 제자들은 혼비백산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그래도 사랑을 유난히 받았고 또 수제자라는 의식 때문일까, 아니면 얼마 전 주님에게 고백한 그 말 때문일까, 베드로는 조금 멀찍이 주님의 뒤를 따라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로 끌려온 예수를 따랐던 베드로는 바깥뜰에 앉아서 선생이신 예수가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달려오는 위협 앞에 맨몸으로 맞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의기투합하여 민주항쟁을 이끌고 목소리 높여 외치던 사람들도 물대포나 최루탄 가스가 발사되면 일단은 몸을 피하고 도망칠 수밖에 없습니다.
베드로는 상당히 용감하고 의협심이 강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내가 나선다고 어떻게 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닌지라 그저 지켜보고 있지만 그렇다고 도망치거나 물러설 수는 없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베드로는 한 가닥 희망이랄까 한방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수없이 보아온 예수님은 정말 대단한 분이셨고 예측이 안 되는 분이셨습니다. 그분의 말씀 한마디면 안 되는 게 없고, 손끝 하나면 못하시는 게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상황은 이렇게 되어도 극적인 반전이 있지 않을까, 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렇게 숨죽인 모습으로 앉아 있는 베드로에게 한 여종이 다가와 “당신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지 않았냐?”라는 말에 기겁합니다. 베드로는 순간 사람들 앞에서 부인하며 말하기를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하며 자리를 옮겨갑니다. 그런데 또 다른 여종이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맞아요, 이 사람은 분명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어요.” 베드로는 완전히 겁에 질려 맹세하고 부인하여 “나는 그 사람을 전혀 알지 못한다.” 합니다.
옆에 섰던 사람들이 “네 목소리가 증명한다며 당신도 한패라.”고 하자 베드로는 저주하고 맹세하며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말해버립니다. 그리고 곧바로 새벽닭이 울었고 베드로는 주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달려 나가 얼마나 통곡하며 울었는지 성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마 26:69-75).
이때 베드로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또 자신에 대하여 실망하며 무너졌을까, 그렇게 예수님은 모진 고난과 핍박을 받고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주님을 지키지 못하고 함께하지 못한 죄책감을 끌어안고 겨우겨우 시간을 보내던 제자들은 각자 삶의 자리를 향해 떠나기도 했습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디베랴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베드로를 주님은 다시 찾아오셨지요, 그리고 그를 만나 다시금 기적을 보여주시며 그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묻고 또 베드로의 고백을 들은 후 내 양을 먹이라(요21:1-) 하셨습니다. 배신자요 겁쟁이 같은 그를 왜 찾아오셨을까요.
베드로는 그렇게 주님의 사랑과 소명을 안고 다시금 그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게 되고 주님의 교회요 공동체에 소중한 인물이 됩니다. 역사에 의하면 베드로는 로마에 큰 핍박이 있을 때 다시 돌아왔고 마침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고 합니다.
베드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우리입니다. 다짐하고 고백하고 결단하며 주를 따르고 섬기겠노라 했지만, 어느 순간 주를 모른다, 부인하는 우리입니다. <예수와 함께 있었소!>라는 말에 그렇소, 나는 예수와 함께 있소! 말할 수 있는 담력과 신앙이 우리에겐 있겠지요.
주님의 용서와 자비는 어디까지일까요, 사순절을 살며 예수를 믿고 따르는 우리는 어떤 고민과 함께 마음의 숙제가 있나요. 하나님의 정의와 공평이 살아나고, 약하고 아픈 가난한 사람들도 살만한 세상을 만들며 꿈꾸는 것이 십자가와 복음을 주신 예수님의 간절한 소망이 아닐까요. 이 땅에서 긴 아픔의 시간을 지나 이제는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