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때문에 살고, 이렇게 닮았네요.
해마다 봄이 와서 세상이 푸르고 아름답고 풍요해지듯이 태어나고 자라는 아이들이 있어 세상은 살맛이 나고 행복해지는 것이다. 오늘 우리 교회와 마을에 아이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해야 하고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품어야 한다. 이들이 있어서 우리는 행복하고 살아갈 이유가 있다. 오늘은 더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이들의 머리를 만져주고 등을 토닥거려 주면 좋겠다. 이 아이들이 밥보다 사랑을 더 많이 먹고 자랄 수 있도록, 격려와 지지와 배려를 늘 맛보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매일 손을 잡아주고 눈을 마주쳐 주면 좋겠다. 신이 아이들을 세상에 보내시는 것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라 했다.
장자가 숨을 거두려 할 때, 제자들이 화려한 장례식을 준비하려고 하자 장자가 말했다. ‘하늘과 땅이 나의 관이요, 해와 달이 내 옆에서 짤랑대는 구슬이고, 행성과 별자리들이 내 주위에서 반짝이는 보석들이며, 만물이 밤을 새워 나를 애도할 텐데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모든 게 넘치게 준비되어 있구나!’그러나 제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스승님을 까마귀나 솔개에게 먹히게 할 순 없습니다.” 그러자 장자는 “땅 밑에 누우면 개미나 벌레가 먹지 않겠냐, 어느 쪽이든 먹힐 텐데, 너희들은 왜 새들에게 더 인색하냐?”했다는 것이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틀린 말이 결코 아니다. 첨단 문명과 물질의 세상에 살면서 스스로 대단하고 행복한 듯 자랑하지만, 현대인의 가슴에는 큰 구멍이 나 있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기계와 문명과 물질을 쥐고 있지만 아프고 불안하고 병들고 두려운 것은 오히려 옛날보다 더한 경우를 볼 수 있다. 장자는 우리가 영문 모르고 걸려든 바로 이 조직화와 통계, 전산이나 명분들을 들여다보게 한다. 우리 스스로가 얼마나 자기 목을 조르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훌륭한 사람이 되거나 괜찮은 자녀로 키운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넓은 가슴을 만들어 주고, 생각의 폭을 깊고 넓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좀 다르게 생각할 수 있고, 좀 더 멀리 내다보며 살 수 있도록 말이다.
장자가 말한 것처럼, 죽어 장사할 때 호화로운 예식이 다 무엇이며, 어디에 묻히고 하는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교육이란 사회화의 과정이지만 그러나 사회가 바르지 못할 때는 거꾸로 교육하는 것이 올바른 사회화의 길일 수 있다고 했다. 자녀를 이름 있고 세상적으로 인정받을만하게 키운다는 것은 분명 귀하고 옳은 일이지만, 요즘처럼 세상의 인정이나 유명세가 그렇게 훌륭해 보이지 않는다면 분명 다르게 살아갈 길을 일러줄 수 있어야 한다.
일그러진 시대에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것이 교회의 몫이고 예언자의 직무이다. 세상은 몰라도 교회에 다니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자녀들에게 그리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생각하며 살게 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너의 존재가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부모들은 정말 자식이 제대로 자랄 수 있도록 물질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정신과 가치와 신앙으로 양육해야 한다. 그것이 후회 없는 삶의 길이다.
그리고 이렇게 이만큼 길러주시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신 부모님께는 진심 어린 감사와 함께 정성껏 모셔야 한다. 아브라함 링컨은 “내가 만약 성공했다면, 그건 오직 천사와 같은 어머니의 덕이다”고 했고, 조지 허버트는 “한 사람의 아버지가 백 사람의 선생보다 낫다”고 했다. 그리고 소포 클레스는 “설사 자식에게 업신여김을 당해도 부모는 자식을 미워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나이 드신, 몸이 불편하고 정신도 오락가락하는 부모님, 어떤 경우에도 마지막까지 소중한 분으로 나의 분신처럼 여겨야 한다.
정채봉 시인은 ‘하늘나라에 가 계신 엄마가 하루 휴가를 나오신다면 아니 반나절, 반 시간 아니 오 분만 나온다면 원이 없겠다. 그러면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 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한 번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했다. 영원히 사랑스러운 아들과 딸, 사무치게 그리운 이름, 어머니 아버지.
쌍샘자연교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