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 봄, 서귀포에 허름한 창고가 딸린 귤밭 한 뙈기를 샀습니다. 백두산 기슭에서 태어난 내가 백두산 기슭에서 살 수 없는 몹쓸 세상 만나, 홧김에 한라산 기슭에 뼈를 묻으려고 작정한 것입니다. 한 달에 한 번 내려와 사흘 동안 그달에 번 만큼의 돈으로 공사를 하고 올라갔습니다.
일곱 해 동안 여든여섯 번을,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고향을 새로 만드는 일이었으니까요. 담쌓기, 연못 파기, 나무 심기와 작업실 리모델링까지 모두 끝난 가을 어느 날, 몇 해를 두고 벼르던 자작나무를 창문 앞에 심었습니다. 물을 주고 지주대를 세우고 손을 털고 그리고 이만큼 물러서서 바라보았습니다.
상큼한 키에, 날렵한 잎새, 분 향기 묻어날 듯 하이얀 수피樹皮. 아, 영락없는 개마고원 태생, 서글서글한 내 고향 북관녀北關女 였습니다. 그러니까 예순여덟 해 전 흥남 철수 때, 데리고 올 수 없어 울며 떼어놓고 온 고향이, 거기 와 있었습니다.
내가 못 가니 날 찾아 제가 와 있었습니다. 열다섯 그때 그 모습으로 와 있었습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