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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사 41:8-16)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느 덧, 성탄절이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돌아오는 토요일이 성탄절입니다.
세상도 어수선하고, 우리의 마음도 어수선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는가를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여 부르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때로는 상황이 너무 안좋아, 하나님께서 안 계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이스라엘을 놓아 버리거나,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호세아 11: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고, 놓지 않으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놓아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우상에 빠져,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는 다른 우상을 섬기면, 더 잘 먹고, 잘 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간절히 원했던 풍요와 행복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행복을 그토록 간절하게 원했지만, 오히려, 그들은 불행의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나라의 번영을 원했지만,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아, 산천초목은 초토화되고 말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비롯하여, 하나님의 성전인 예루살렘 성전도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왕을 비롯하여, 모든 신하들과 백성들은 쇠사슬에 매여, 머나먼 땅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길로 가려다가,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싫어하여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9절 말씀입니다.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하나님은 머나먼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 고생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바벨론에서도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어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바로 이스라엘 땅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마 약속하신 땅입니다.
그 땅은 화려한 바벨론이 아니라, 어쩌면, 바람과 모래뿐인 이스라엘 땅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파괴되어 버려진 땅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땅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곳에 복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올 때, 비로소, 참된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되돌아올 때, 행복과 풍요를 맛볼 수 있습니다. 참된 안식과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교회로 다시 되돌아올 때, 삶의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코로나 19로 인하여, 주일날,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위드 코로나로 인하여, 멈추었던 만남들이 다시 회복되는 듯 했는데, 오미크론으로 인하여, 그 만남들이 하나둘 모두 취소되고 있습니다. 비행기 타고 제주도 가는 것도 취소되고, 바닷가 여행도 취소되고, 부부동반 송년회 모임도 취소되고, 가까운 얼굴들이 만나,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결혼식 참석도 계좌이체로 대체되고 말았습니다.
공공시설을 이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교회에 나와 예배 참석하는 것도 엄격한 제한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음은 한없이 무겁지만, 이럴 때일수록, 일상생활 방역에 방심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그 가운데에서,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성탄절이 점점 가까이 다가옴으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문제 많은 세상에 오셨는가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는 시간들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우리를 살리시려고 오셨습니다.
문제 많은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여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괴롭히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낙심과 절망을 처해있는 우리를 구경하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그 낙심과 절망의 자리에서 구원해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곳에, 희망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고, 웃음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머무는 곳에,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23절을 보면,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나타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임마누엘”이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구원자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구원자 예수님은 문제 많은 이 세상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10절 말씀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때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주변에 두려움이 가까이 와 있다고 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 가운데, 다른 사람은 코로나에 걸릴지라도, 나는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땅에서 바벨론으로 끌려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년, 십년, 오십년, 그렇게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하나님이 정말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같은 우리 조상들은 하나님을 섬겼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았는데,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애굽에서 힘겹게 살고 있던 우리 조상들을 모세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와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였다고 하는데, 왜 우리에게는 그러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광야에 살던 우리 조상들은 매일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다고 하던데, 왜 우리에게는 그러한 공급이 없는 것일까?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신 것일까? 우리를 떠나신 것일까? 이렇게, 이방 땅 바벨론에 버려진 채, 우리와 우리 자녀들은 희망도 없이, 절망 가운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바벨론에서 고달픈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그들을 떠난 것 같다고 하는 그런 두려움 속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스라엘 땅에 있을 때에만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 것이 아닙니다. 머나먼 바벨론 땅에 끌려와 고생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모세, 여호수아, 다윗, 솔로몬과만 함께 하신 것이 아닙니다. 바벨론에 끌려와 고생하고 있는 이름 모를 이스라엘 백성들과도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운 이스라엘 땅이 아니라, 이방의 땅 바벨론에서 태어난 그들의 자녀들에게도 함께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스라엘 땅이거나,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을 때에만,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 것이 아닙니다. 고단한 몸으로, 바벨론 강변에서, 잠을 청할 때에도,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무거운 돌을 나르고, 높은 성벽을 쌓아 올라갈 때에도,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 곁에 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코로나가 없는 세상에서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 것이 아닙니다. 코로나 19인 오미크론이 기승을 부리려고 하는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교회 안에만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현장 한 가운데에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 이렇게 어렵고 힘든 때 일수록, 우리는 철저하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전적으로 주님만을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나라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여호사밧 왕은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 20:12)라고 고백했습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방역당국의 조치들을 보면, 정말 무언가를 알고, 대처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코로나에 대하여, 어떻게,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할 때, 우리는 오직 주만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지식과 지혜를 활용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지식과 지혜도 활용할 줄 아는 그런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하나님은 해결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하여, 이렇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나는 너의 하나님이니,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상 2:6-7절을 보면, 한나는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삶을 책임져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오, 우리를 위하여, 아들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바로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나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디서든지,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그 아버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의지해야 합니다.
이사야 40:31절을 보면,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새 힘을 얻게 됩니다. 활력을 얻게 됩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것이든, 아니든, 우리는 이래저래 피곤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안하든, 쉽게 지쳐버립니다. 쉽게 포기해 버립니다. 이럴 때일수록, 주저앉아만 있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을 바라봄으로, 새 힘을 얻어야 합니다. 두려움없이, 놀람이 없이, 담대하게,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얼마나 힘이 되는 말씀입니까? 지치고 낙심될 때,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뭔가 일이 쉽게 풀리지 않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답답할 때, 시편을 펴서, 읽어보십시오. 읽으면 읽을수록, 힘이 납니다. 세상을 살아갈 맛이 납니다.
시편 2:7절을 보면,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여호와께 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안전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도움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시편 3:8절을 보면,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편히 눕거나 잠드는 것도, 주님께서 나를 평안히 쉬게 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굳세게 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참으로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시편 5:11절을 보면,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주님께로 피신하는 사람은 누구나 기뻐하고, 길이길이 즐거워할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님 앞에서 기쁨을 누리도록, 주님께서 그들을 지켜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8:4절을 보면,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라고 고백했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돌보아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가 하나님이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이 세상에서 패배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승리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지쳐 쓰러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힘을 내어, 일어나, 힘차게 달려가기를 원하십니다. 낙심과 절망의 자리에 주저앉아, 신세 한탄하며, 세월을 보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일어나, 승리의 노래를 부르기를 원하십니다. 다시 일어나 걸어가기를 원하십니다. 다시 일어나, 달려가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는 누가 봐도, 살아가기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거슬려 올라가 보면, 우리만 이렇게 힘들게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최후반부터 종전 직후까지인 1918년-1920년 사이에, 유행한 독감이 있습니다. 전쟁 중이라, 미처 손을 못 쓸 때, 중립국이었던 스페인은 그 독감을 조사하고, 그 위험성을 알리고, 확산되는 것을 막는 큰 역할을 했는데, 그 바람에, 엉뚱하게도, 스페인에서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독감으로 알려져 버렸습니다.
스페인 독감은 유럽에 창궐했던 14세기의 흑사병, 수백 년간 전 인류를 괴롭힌 천연두와 함께, 인류에 큰 피해를 남긴 유행성 전염병 중 하나입니다.
“미국 시애틀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승객의 대중교통 탑승을 거부했다.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미 착용시, 경우에 따라서는 유치장에 며칠 가두기도 했다.”
지금의 상황이 아니라, 스페인 독감이 유행할 때, 행하였던 조치들이라고 합니다.
어찌 보면, 지금과 같은 방역조치와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지금 백신 미접종자는 식당을 비롯하여, 공공장소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던 그 당시에도 사회적 거리 두기와 마스크 착용, 무증상 감염과 사전 격리 조치를 취하였고, 이에 따른 사회적 반발과 물류 마비, 자영업의 고난 등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스페인 독감이 어떻게 해서 종식된 것인지는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으나, 집단 면역 형성, 유전자 변이, 검역 격리와 방역의 효과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할 뿐입니다.
한때, 우리나라보다 일본의 코로나 상황이 아주 심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다각도로 조사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그 원인을 알 수가 없습니다. 방역조치로 인하여,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상황이 더욱더 힘들어지겠지만, 방역에 방심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때 일수록, 하나님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힘든 때일수록, 어려운 때일수록, 강하게 담대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코로나이든, 아니면, 다른 것이든, 우리에게 주어진 시험들을 잘 통과해야 합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닥쳐오는 환난도 잘 견뎌내야 합니다.
어떤 상황과 여건 속에서도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굳세게 하여 주실 것이고,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14절 말씀입니다.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하나님은 위험한 상황에 빠져있는 우리를 모른 척 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버러지 같은 존재입니다. 볼품없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께서 오른손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신다고 하는 것은 크신 능력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단단하게, 붙들어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13절 말씀입니다.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하나님은 능력의 오른손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붙든 그 오른손을 결코 놓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다시 노래 부를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우리가 이 땅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도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유일한 생명줄은 “기도줄”입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여러분! 이번 성탄절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깊이 느낄 수 있는 그런 성탄절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크신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사오니, 그 약속대로,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