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요약> 화해와 평화/ 창세기 33:1-4
에서와 야곱 쌍둥이 형제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일터에서 돌아와 몹시 배고팠던 형 에서에게 야곱이 팥죽 한 그릇을 내밀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 일 때문입니다. 결국 형이 두려워 출가한 야곱은 20년간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고생한 끝에, 많은 식솔과 더불어 재산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문제는 형 에서를 다시 만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두 사람이 만나서 화해하는 장면의 도입부입니다. 물론 그 전에 야곱은 에서의 화를 풀어볼 요량으로 많은 선물들과 함께 하인들을 앞세워 보냈습니다. 왜냐하면 에서는 400명이나 되는 부하들을 거느리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복수당할 것이 몹시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두 사람의 만남은 시시할 정도로 싱겁게 성사되었습니다. 20년 세월이 지났기 때문에 에서의 감정이 많이 누그러졌던 것일까요? 심지어 에서는 야곱이 내놓은 선물을 거절하기까지 합니다. 자신은 이미 넉넉하니 동생이 주는 선물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합니다.
4절에 보면 거의 엎드리고 기어서 다가오는 동생을 본 에서가 달려가서 동생을 끌어안고서 입을 맞추고 함께 울었다고 합니다. 동생이 그리웠던 것일까요?
평화목 교회는 올 해로 12년 되었습니다. 2012년 창립하던 해는 용의 해인 임진년(壬辰年)이었는데, 올해는 갑진년(甲辰年)입니다. 평화목이라는 이름은 평화나무라는 뜻과 더불어 평화와 화목을 추구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평화목 교회는 평화신학적인 생각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교회입니다. 평화라는 말이 담고 있는 넓이와 깊이를 생각한다면, 비록 작은 교회이지만, 속생각만큼은 엄청나게 크고 넉넉한 교회입니다. 화해의 삶을 통해서 평화를 향하는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교우들이 세운 평화목교회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분쟁과 전쟁이 아직도 참 많습니다. 말과 논리로 싸우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25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 소위 “무력충돌”이 2009년 통계로 30번이 있었고, 1000명 이상이 죽는 “전쟁”이 12번이나 벌어졌습니다. 2차 대전 이후 약 150개 지역에서 236건의 전쟁이 있었다고 하니, 지구촌은 하루도 평화로운 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유엔 가입 193개국 방위비 총액이 1조 4640억 달러인데, 그 나라들 중 가난한 140개국의 국가예산을 모두 합해도 1조 4260억 달러라고 합니다. 세계인구 절반이 하루 2.5달러 미만으로 살고, 80%는 10달러 미만으로 하루를 산다고 합니다. 무력충돌이나, 전쟁이 없다 해도 힘들고 어려운 삶이니 화해와 평화의 길은 아직도 멉니다.
“예수 없이는 평화 없다”는 말보다 “평화 없이는 예수 없다”는 말이 더 그리스도교적인 것 같습니다. 많이 쓰이는 첫 번째 표현은 “독선적”인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지만, 두 번째 표현은 “반성적”으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평화의 삶이 반드시 동행해야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니 예수의 이름으로 전쟁을 벌일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길을 나선다면 반드시 화해와 평화를 이끌어 내야한다는 말이 됩니다.
야곱은 에서와 화해한 후에도 험난한 세월을 살았다고 말년에 고백합니다. 구약성서를 읽으면, 그 안에는 현실과 이상이 서로 교차하며 공존하는 것을 느낍니다. 마치 오늘 우리의 현실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모두가 평화로운 세상을 원하는데, 실상은 민족과 종교가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세계의 경제나 정치도 자국 중심으로 서로 대립하고 있으며, 같은 민족 안에서도, 같은 종교 안에서도 분쟁을 넘어선 갈등과 폭력이 평화의 길을 멀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희망을 가져야합니다. 야곱과 에서가 다시 만났을 때 그들은 서로 껴안고 입을 맞추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안도의 눈물과 회한의 눈물이 서로 만난 것입니다. 누군가는 잘못을 빌고 누군가는 용서를 하고 그래야 화해가 시작됩니다. 고백과 용서를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면 화해의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에서와 야곱의 만남에서 우리는 화해와 평화의 길을 보고 싶은 것입니다. 평화목교회의 앞으로의 여정에도 화해와 평화의 신앙이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2024년 6월 9일
홍지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