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일본 속의 백제와 고구려 문화 탐방
최 은 범
나가노(長野)에서 히다카(日高)까지
내가 대한적십자사 국제부장 시절 국제협력과장으로 함께 일하던 동우회원 김용길공이 일본 속의 백제와 고구려 문화 탐방을 제안, 지난 6월 3박4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나와 전 전남지사사무국장 박종채, 전 교육원장 김용길, 전 경기지사사무국장 윤여갑 등 4인의 방일단은 첫날 1천5백년 전에 일본에 불교를 전파하러 백제에서 건너간 금동불상을 보존하고 있는 나가노(長野)의 젠코지(善光寺)로 갔다. 호텔로 가지 않고 대찰인 센코지 산하 39개소의 작은 절들 중 평소에 김공과 친분이 있는 암자 수량원(壽量院)으로 가서 그곳 주지인 고야마(小山)씨와 대화를 나누며 하룻밤 템플스테이를 하였다.
일행은 이튿날 새벽 5시에 젠코지 본당으로 올라가 한국과 일본을 통털어 가장 오래된 1천5백년 된 백제부처님 앞에서 행해지는 장엄한 아침예불 행사를 참관하였다. 일년에 6백만명이 참배하러 온다는 젠코지의 주지는 대대로 일본 황족 여인이 출가하여 이를 맡는데, 지금은 제121대 다카쓰카사 주지가 봉직하고 있단다. 당시 문화대국 백제에서 건너온 귀중한 불상이므로 천황의 명으로 비불(秘佛)로 지정하여 법당 내 깊은 곳에 감실을 만들어 보존하고 대신 분신불(分身佛)을 만들어 7년에 한번 씩 일반인들의 친견을 허락한다고 한다. 중견승려 덴다스님의 안내로 젠코지의 국보급 유물을 관람할 기회도 가졌다. 일본 전국에서 온 참배객 행렬이 아침부터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규슈에서 왔다는 어느 노파는 여기 계신 백제부처님이 생전 소원성취와 사후 극락인도에 일본 제일이라고 말하였다. 그 후 우리 일행은 과거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나가노의 산 속 온천장으로 가서 뜨겁게 솟는 온천수로 땀을 씻고 신칸센을 타고 동경으로 돌아가서 아사쿠사(淺草)의 비즈니스호텔 ‘토요코인(東橫Inn’에 이틀 밤 투숙하였다.
셋째날은 사이타마현 히다카(日高)시에 있는 고구려신사를 관람하러 갔다. 일본적십자사에서 기획관리부장을 끝으로 정년퇴직하고 지금은 일적동우회 임원인 호리노(堀野正則)씨가 고맙게도 이틀 간 우리를 위해 차를 가지고 와서 안내를 해 주었다. 지금부터 꼭 1천3백년전인 서기716년, 고구려가 멸망하자 일본 각지로 망명해 온 고구려인 1천7백99인을 이곳에 모여살게 하고 고구려 군(郡)을 설치, 약광(若光)왕자를 군장에 임명했는데, 뛰어난 농사기술과 금속공예 기술로 가장 부강한 소국가를 이룩하였고, 그의 사후 고구려신사를 지어 약광왕을 신으로 모시고 대대로 고구려인이 궁사(신사의 대표자)를 맡아 지금까지 순수 고구려 혈통을 유지하는 60대째 궁사라고 한다. 경내에서는 금년 봄부터 1천3백주년 기념행사와 축제들이 한.일 양국정부의 지원 아래 거행되고 있었다.
소원해진 한일관계 해소에 적십자 OB들이 일조
고구려신사 관람을 마치고 동경으로 돌아오는 귀로에는 이바라키현 우시쿠(牛久)에 있는 우시쿠다이부츠(牛久大佛)를 관람했다. 대불의 키가 1백20미터, 몸통 속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머리부분 밑에 있는 전망대까지 올라가 사방을 조망했다. 지진과 태풍과 해일 등 자연재해가 빈발하는 일본, 인간이 얼마나 불안하고 나약한 존재이면 이렇게 초대형 불상을 만들어 심신을 의탁하고 안심하려고 하는 일본인들의 심리를 읽을 수 있었다.
마지막 넷째날은 도쿄소재 일본적십자사 본사의 사료전시실을 보러 갔다. 그곳에선 일적에서 46년 간 봉직하고 1998년에 기획홍보실장으로 퇴임한 원로 타지마(田島弘, 83세)씨가 우리 일행에게 역사자료를 일일이 설명하는 예우를 하고 자신이 저술한 <平和에의 열쇠)도 한권씩 기증해 주었다. 그리고 또 사전에 아무런 연락도 안했는데도 내부 협의가 있었는지 고노에(近衛忠煇)사장(국제적십자사연맹총재 겸임)이 우리 일행을 위해 다과를 베풀며 환대하였다. 과거 젊은 시절부터 국제업무 협조를 통해 샇은 우정을 회상하면서 적십자의 현안 과제들에 관한 환담을 나누었다. 특히 姜英勳, 徐英勳 두 분 한적총재의 안부를 물어서 강총재는 얼마 전에 작고했고 서총재는 와병중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평생을 적십자사에서 근무하다가 은퇴한 양국의 적십자 OB들이 교류를 통해 소원해진 한일 양국관계를 예전처럼 좋은 관계로 되돌리는데 일조하자는 이야기도 나눴다. 우리 일행 각자를 소개하는 중에 나는 함경북도 출신이니 고구려인, 박공은 전라남도 출신 백제인, 김공은 경주김씨 신라인, 윤공은 충청남도 출신 배제인의 후예로서 우리 일행은 “이른바 3국시대를 대표한다”고 말하여 좌중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하였다.
이렇게 3박4일의 일본방문을 마치고 나리타공항으로 향하면서 우리 일행은 일본이 왜 강한 나라인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군사와 경제가 강한 나라라는 뜻이 아니고 역사와 문화의 보존과 재창조, 일본인 정신의 자랑스런 계승과 응용 등에 뛰어난 민족이라는 점이다. 1천5백년 전의 백제불상을 그처럼 소중히 보존하며, 1천3백년 전에 우수한 이민족이 와서 일본을 개화시키며 일본에 동화되는 과정을 문서로 정확하게 기록하여 전승하며, 고구려인의 혈통을 60대에 이르도록 지켜오며 이를 전 세계에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신사, 이런 정신이 일본을 강한 나라로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번 일본 여행은 인천-나리타 왕복 저가(低價)항공을 이용하였기에, 1인당 90만원 미만의 비용이 들었다고 경리책 김공이 정산보고를 했다. 끝으로, 이번 우리 네 사람의 일본여행이 어떤 형식으로든 양국 적십자 동우회(同友會) 차원의 교류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