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이냐! 폐지냐!
(매일노동뉴스)
1. 한 시중은행의 임금피크제 사건이다.
지난주 금요일에 했는데, 어제 월요일에 다시 해야 했다. 원고 대표에게 자세하게 설명했는데, 원고 아무개에게 다시 되풀이해야 했다. 어쩌겠는가. 아무리 해도 부당하고 억울한 것을. 1심에서 패소한 사건을 수임해 항소이유서 초안을 작성해 보내줬더니 부당하게 당했다며 자신들의 억울함을 제각기 쏟아내면서 항소이유서에 추가해달라고 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의 임금피크제 사건이다.
2016년부터 정년연장에 관한 개정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 시행에 따라 기존 58세였던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면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어차피 2016년부터 고령자고용법에 따라 정년이 60세로 되는 것이었음에도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서 기존 임금을 대폭 삭감했던 것이니 너무 억울한 것이다.
그리고 임금피크제가 도입된 많은 사업장에서처럼 이 사업장에서도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아 도입했다. 55세 이상의 고령자가 아닌 대다수의 조합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라서 노동조합이 크게 부담을 갖지 않고 성과급 등을 고려해서 동의해준 것이겠는데, 적어도 대상자인 자신들의 의사도 묻지 않고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를 노조가 동의하고 사용자 은행이 도입했다는 것이 몹시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들어주지 않는다. 아무리 부당하고 억울하다고 주장해도 임금피크제를 적용받아 대폭 삭감된 임금을 지급받았던 고령노동자의 호소를 들어주지 않았다.
이리저리 찾아다니며 말해봤지만 자신이 수십 년간 일한 사업장(은행)에서는 퇴직하지 않고 버티는 퇴물 취급했고, 이런저런 준비서면들을 제출하면서 주장했지만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줄 거라 기대했던 법원은 임금피크제가 위법하지 않다고 청구를 기각했다.
그렇다. 오늘 이 나라에서 고령노동자에게는 임금피크제가 부당하고 억울해서 호소를 해도 들어주지 않는다. 그들이 듣는 대답은 한결같다. 정년을 연장해준 것이니 임금피크제는 위법, 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법적 정년 60세로 정년을 연장한 것이니 실질적으로는 정년이 연장된 것이 아니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허공에다 하는 것인 양 공허하다. 고령자고용법에서 금지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연령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답변만 듣는 고령노동자들에게 이 나라는 공허하기만 하다.
2. 이런 나라에서 다시 정년연장에 관해 말하고 있다.
집권여당 국민의힘의 격차해소특위에서 근로자 정년을 현재 60세에서 65세로 단계적으로 연장하기 위한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말했다.
2013년 5월 고령자고용법 개정으로 근로자의 법적 정년을 60세로 해서 2016년부터 시행해왔던 것인데, 이제 65세로 연장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정년연장을 주장해왔던 한국노총 등 이 나라의 노동단체들은 이를 환영하겠지만, 나는 선뜻 환영한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오늘도 고령노동자들의 대리인으로서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피크제에 관한 고령노동자의 부당함과 억울함을 듣는 나는, 정년이 연장되면 또다시 임금피크제로 인해 고통 받는 고령노동자를 보게 될 수 있기에 집권 여당의 정년연장 법안 발의 추진에 환영을 표하지 못하겠다.
고령자고용법은 근로자의 정년을 연장하는 사업장의 노사는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고(제19조의2 제1항), 이 규정을 근거로 이 나라에서 사용자들은 근로자 정년을 60세로 하면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서 고령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했다.
이 고령자고용법 규정을 삭제하고, 사용자가 고령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겠다는 것도 아니니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의 격차해소특위에서 추진한다는 근로자 정년을 단계적으로 65세로 연장한다는 법안 발의에 환영을 말하지 못한다.
오늘 이 나라에서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법상 합리적인 이유 없는 연령차별에 해당해 위법, 무효라는 노동자들이 주장해서 청구하면 법원은 고령자고용법에서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로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며 기각하고 있다. 이런 법을 그대로 두고서 근로자 정년을 현재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한다면, 그에 따른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고령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게 될 것이 뻔하다.
3. 근로자의 정년을 연장하면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서 고령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도록 하는 법에 대해서는 나는 반대한다.
이렇게 말하다 보니 임금피크제가 도입되지 않도록 한다면, 내가 그 정년연장을 환영한다고 여길 수 있겠다. 현재 60세로 근로자의 법적 정년을 정하는 것보다는 이를 연장하는 게 낫다고 이 칼럼란을 통해서도 나는 말해왔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겠다. 근로자의 정년을 연장하면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서 고령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도록 하는 법에 대해서는 나는 반대한다.
이에 대해 근로자의 정년이 연장되는 게 어디냐고,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에 관한 현행법 규정이 그래도 존치해도 괜찮다고 아무개는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반대한다.
어차피 이 나라에서 근로자의 정년은 국민연금 수급연령 상향과 연동돼 연장될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한국노총 등 이 나라 노동단체들은 국민연금 수급연령을 65세로 상향하는 것에 맞춰 근로자 정년도 연장돼야 한다고 요구해서 투쟁해왔다.
그런데 이런 요구를 내걸고 노동운동이 투쟁할 것은 아니라고 나는 주장해왔다. 지난 9월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국노총이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주최했던 ‘정년연장 입법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나는 굳이 요구해서 투쟁할 것이 아니라고 토론했었다.
국민연금 수급연령을 65세로 늦추면서 근로자 정년은 연장하지 않고 60세로 그대로 둔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보험료 납부를 통해 연금재정 확보를 위해서도, 그 기간 동안 퇴직노동자의 소득 공백으로 발생할 사회적 문제 예방을 위해서도 당연히 연동돼 근로자 정년 60세는 연장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4.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원칙으로 한다.
근로의 권리를 노동자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과 구체적으로 이러한 근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은 근로계약관계의 유지, 존속을 통한 노동자의 고용을 보호한다. 이에 따라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은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상 기간제 근로계약이 아니라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원칙으로 한다.
그런데 오늘 이 나라에서 정년이 문제되고 있는 노동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노동자를 말한다.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이란, 근로계약의 기간을 정하지 아니하고 사용자가 근로자를 사용해야 한다는 걸 말한다.
언제까지? 노동자가 근로계약에서 제공하기로 한 노무를 정상적으로 제공하는 한 사용자는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근로기준법 등 이 나라의 법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정년제도는 근로자의 일정 연령을 정해두고서 그때까지만 사용자가 노동자를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니, 기간의 정함이 없이 노동자를 사용하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에 관한 노동법리에 반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 정년제도는 이 나라에서 노동법리에 부합한다고 볼 수가 없고 오히려 위법, 무효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노동자가 정년을 위법, 무효로 주장할 수가 없다.
근로기준법은 정년제도를 규정하고 있지 않고, 기간제 근로계약이 아닌 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해서 노동자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지만, 고령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보호하겠다며 고령자고용법을 제정해서 근로자의 정년에 관해서 규정하고 있으니, 이 나라에서 노동자는 정년퇴직에 대해서 노동법리에 반해서 위법, 무효라고 주장하지 못하게 됐다.
법률이 정년제도를 규정하고 있으니 위법, 무효라고 주장하지 못하게 돼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이 나라에서는 그 법률이 정한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고 노동단체가 요구하고 합의해왔던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근로자 정년을 65세로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그에 따른 입법 추진도 타당하다고 볼 수가 없다.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원칙으로 노동법리에 따라서 노동자의 근로관계 존속을 보호하고자 한다면 60세든, 65세든 근로자의 정년제도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존재해서는 안 되는 정년제도로 이 나라 노동자들은 고통을 받고 있다. 그 정년을 연장해주면서 임금을 삭감해야 한다고. 그래서 임금피크제로 심란한 오늘, 이렇게 나는 말한다. 정년은 연장이 아니라 폐지해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h7420t@yahoo.co.kr